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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는 나와 꽤 닮았소

내가 써본 첫 소니 스마트폰은 엑스페리아 Z1. 당시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여타 브랜드들이 촌티를 벗지 못한 스마트폰 디자인에 머물러 있을...
내가 써본 첫 소니 스마트폰은 엑스페리아 Z1. 당시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여타…

2017. 07. 07

내가 써본 첫 소니 스마트폰은 엑스페리아 Z1. 당시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여타 브랜드들이 촌티를 벗지 못한 스마트폰 디자인에 머물러 있을 때, 혼자서 도시적인 아름다움을 뽐냈으니까. 군더더기 없이 각 잡힌 디자인. 마치 미래에서 온 스마트폰 같았다. 그 디자인을 먼 미래인 2017년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엑스페리아 시리즈의 디자인을 ‘사골’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갤럭시가 엣지를 입고, G시리즈가 플라스틱 옷에 가죽 옷에, 메탈 옷까지 갈아입는 동안 엑스페리아는 한결 같은 외모를 유지해왔다. 동안 연예인들에게 종종 붙는 수식어인 “세월이 비껴난 외모”는 엑스페리아에게도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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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의 첫 자태를 봤을 때 “헉”하는 새로움은 없지만, 엑스페리아XZ 프리미엄의 디자인은 아름답다. 이제껏 이 브랜드가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아이덴티티에 섬세한 터치를 더했다. 만지다 보면 문득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우려낸 사골에는 깊은 맛이 배어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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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디자인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실물로 보면 이건 그냥 거울이다. 내가 사용한 실버 컬러는 거울 대신 사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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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가방 대신 납작한 클러치를 들고 외출했다. 도톰한 쿠션 팩트를 넣으려니 클러치 모양이 망가지더라. 그래서 거울 대신 엑스페리아XZ 프리미엄만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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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뒷면을 보며 아이라인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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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대도 지문이 묻어나고, 사진으로 찍으면 반사가 심해서 도통 예쁘게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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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손에 쥐고 사용해보면 기분 좋은 만족감에 휩싸인다. 고급스럽게 반짝이고, 쥬얼리처럼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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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건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아무 생각없이 매일 쓰는 제품일 수록 디테일이 훌륭해야 한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익숙해지면 크게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득 모서리에 시선이 꽂혔을 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깨끗한 마감을 발견한다면, 두고두고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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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의 곡선을 보자. 앞뒷면에서 이어지는 각도가 절묘하다. 손에 쥐었을 때 하나인 것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립감이 훌륭하다. 이런 건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진득하게 써보기 전에는 느낄 수 없다. 소니는 항상 이런 부분에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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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공을 들인 부분과 무심한 부분이 분명히 보이는 건 아쉽다. 순정에 가까운 UI는 XZ 프리미엄의 디자인과는 동떨어진 투박함이 묻어난다. 통신사 앱도 없는 터라 깔끔하고 가볍긴 하지만 뭐랄까… 무색무취의 UI다. 소니다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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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젤이 두껍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베젤이 남아 있으면 흉인 시대에 좌우상하 베젤이 이만큼 남아있는 디자인은 아이폰과 엑스페리아 뿐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베젤리스 디자인은 세련되고 근사하다. XZ 프리미엄에서도 베젤을 조금 덜어낸다면 화면 몰입도가 더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베젤이 완전히 없는 스마트폰을 쓰면 종종 불편함을 느끼는 건 나만 그런가? 특히 베젤 없이 위아래가 너무 길어지면 손이 닿지 않는데. 어쩌면 이건 손가락이 짧은 나의 비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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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은 패스. 안 좋기도 어렵다. 배터리 시간 나쁘지 않고, 디스플레이 꽤 좋다. 특징만 보자. 내 관심사는 오직 카메라.

사람마다 카메라 제조사에 대한 선호도가 있는 법이다. 우리 귀여운 에디터M은 뭘 안다고 그러는지 점차 격렬한 캐논빠로 거듭나고 있다. 자꾸 5D 마크4를 사달라고 조른다. 이 자리를 빌어 말하지만 그건 너에게 필요하지 않아요. 나의 경우엔 한결같이 소니빠다. 카메라는 소니!! 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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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소니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작은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관심이 쏠린다. 엑스페리아의 카메라는 항상 날 좌절 시켰다. 폰카 따위 쓰지 말고 계속해서 소니 미러리스를 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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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는 마시쩡.jpg]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으로 성에 차는 카메라다. 저조도에서 찍은 음식 사진이다. 노이즈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파워풀하게 확대해도 디테일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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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마시쩡2.jpg]

저조도 대응력은 갤럭시S8이나 여타 모델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해상력은 훨씬 좋다. 사진들을 확대해봤을 때, 수채화 현상 없이 깨끗한 결과를 볼 수 있다. 망원동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보라초라는 레스토랑이다. 멀찍이 서서 찍었는데 가느다란 폰트로 인쇄된 영업시간 안내를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여기 맛있다.

다만, 사진 파일이 커서 그런지 앨범에서 사진을 불러오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 PC로 확인해보니 평균 6.3MB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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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일 중요한 걸 볼 시간. 바로 모션 아이 카메라 시스템을 활용한 ‘슈퍼 슬로우 모션’ 촬영이다. 초당 960프레임으로 초고속 촬영이 가능하다. 처음에 960이란 숫자를 봤을 땐, 잘못 표기한 줄 알았다. 총알이 날아가는 모습까지 포착할 수 있을 정도의 프레임이다. 사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까지 담을 수 있다.

천진난만한 나는 항상 우울할 땐 비눗방울을 산다. 에디터M은 다 늙어서 뭐 그런 걸 사냐고 구박했지만, 이번 기회에 유용하게 사용했다. 사무실 앞에서 비눗방울을 세차게 불어대며 엑스페리아XZ 프리미엄으로 그 순간을 포착했다. 긴 영상을 960프레임으로 찍을 순 없고, 순간적으로 일부만 초고속 촬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어차피 모바일에서 960프레임으로 1분 이상의 영상을 찍는다면 처리 속도나 저장 공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영리한 판단이었다. 다만 비눗방울을 불며 딱 절묘한 순간에 초고속 촬영 버튼을 터치하려니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 20차례의 시도 끝에 건진 영상만 공개한다. 꼭 보시길. 비눗방울의 신비. 추억은 화학약품을 타고, 방울 방울.

멋지지 않은가? 인중에 땀맺혀가며 수차례 촬영한 보람이 있었다. 자주 써먹을 기능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기능을 차별화하기 어려운 중에 꽤 인상적인 시도였다. 기술력도 과시하고, 마케팅 포인트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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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엑스페리아XZ 프리미엄은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실제로 봐야 예쁘고, 거울 대신 쓸 수 있으며,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들을 천천히 붙잡아둘 수 있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