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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줄거야, LG 톤플러스 프리

작년 여름, 넥밴드를 차지 않는 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튕기던 나는 기어코 톤플러스를 목에 걸게 됐다. 나의 첫 톤플러스는 HBS-1100이었다....
작년 여름, 넥밴드를 차지 않는 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튕기던 나는 기어코…

2017. 06. 26

작년 여름, 넥밴드를 차지 않는 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튕기던 나는 기어코 톤플러스를 목에 걸게 됐다. 나의 첫 톤플러스는 HBS-1100이었다. 목이 훤히 보이는 V넥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맨 살갗에 닿는 느낌은 조금 차갑고 낯설었다. 자존심을 꺾은 보람은 분명 있었다. 첫 경험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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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톤플러스 HBS-1100]

장난감처럼 가벼웠고, 실 가닥처럼 가느다란 케이블을 당겨 귀에 꽂으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케이블이 쏙 감겨 들어가는 경험은 어떻고. 이어폰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음악을 듣는 순간이 아니라 음악을 듣지 않는 순간이다. 선이 엉킨 이어폰을 가방 구석에서 찾아 꺼내거나, 음악을 다 들은 후 이어폰을 다시 정리하고 챙겨 넣는 과정이 번거로우니까. 넥밴드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타일을 내어주고 얻은 강 같은 평화는 마약처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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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착용하니 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솔직히 말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결국 톤플러스를 그리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 유리창이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기 때문. 금색 넥밴드를 목에 건 모습이 영 마뜩잖더라. 내 공주병 때문일까.

그래도 첫 경험의 의의는 분명 있었다. 깍쟁이처럼 굴던 내가 왜 온 세상 사람들이 톤플러스를 쓰고 다니며, 짝퉁까지 생기는지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그 뒤로는 눈에 띄는 신제품이 있을 때마다 톤플러스 시리즈를 꼭 리뷰해본다.

LG는 2010년 첫 톤플러스 시리즈인 HBS-700 이후로 수많은 변주 모델을 출시해왔다. 간혹 너무 많아서 세포분열처럼 여겨졌을 정도다. 이런 활발한 제품 개발에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단점은 브랜드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고, 장점은 소비자의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튼의 배열은 보다 직관적으로 바뀌고, 바디는 가볍고 얇게, 디자인은 보다 더 심플하게, 사용 환경은 더 간편하게 업그레이드됐다. 톤플러스의 진화 과정은 놀라울 만큼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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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제품은 역대 가장 파격적인 변화를 자랑한다. 톤플러스 프리. 벌써 이름만 들어도 홀가분하다.

지금 이 시기에 LG가 완전 무선형 이어폰을 낸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만, 평범한 무선 이어폰이었다면 톤플러스 브랜드를 계속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톤플러스는 ‘넥밴드’라는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데, 쌩뚱맞은 제품이 톤플러스 프리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면 베스트셀러의 이름을 억지로 빌려 쓰는 모양새가 됐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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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택한 게 이 형태다. 완전 무선형 이어폰을 만들면서도 넥밴드의 장점을 취하는 형태다. 하이브리드라 볼 수도 있겠고, 원플러스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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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톤플러스 프리의 본체는 조약돌처럼 작은 이 한 쌍의 이어폰이다. 이것 자체로 완벽하게 구동되고, 필요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다. 그 외의 부분은 본체를 더 풍요롭게 쓸 수 있는 양념의 역할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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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넥밴드는 왜 달려있는 걸까? 넥밴드는 일종의 구원자다. 완전 무선형 이어폰의 두 가지 함정을 구하러 온 우리의 구원자. 잃어버리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고.

나는 원래 애플의 완전 무선형 이어폰 에어팟을 사용하고 있다. 편리한 제품이지만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다. 분실의 위험성이다. 음악을 듣다 잠깐 빼놓으면 어딜 갔는지 사라져버리곤 한다. 한 번은 집에 와서 에어팟 케이스 뚜껑을 열었는데 텅 비어 있어서 식겁했던 경험이 있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실종 신고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 에어팟 못 봤니? 혹시 사무실 바닥에 하얗고 작은 에어팟 굴러다니는 거 못 보셨나요? 결국 에어팟은 그날 입었던 청바지 주머니에서 배터리가 방전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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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플러스 프리의 넥밴드는 이런 슬픔을 막기 위한 용도다. 귀에 쏙 끼고 음악을 듣다가, 쓰지 않을 때는 넥밴드와 결합해 목에 걸고 다니면 된다. 생각보다 단단하게 체결이 되는 구조라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넥밴드와 이어버드가 분리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덜렁거리지 않고서야 잃어버리기 힘든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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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SH 버튼을 누르면 이어버드와 넥밴드가 분리된다]

오직 거치만을 위해서 거추장스러운 넥밴드를 제공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넥밴드는 배터리를 품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동안 이어버드를 꽂아두면 자동 충전이 된다. 완전 무선형 이어폰은 디자인이나 착용감을 위해 크기를 최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러다 보면 물리적인 공간이 모자라 배터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톤플러스 프리는 음악 재생시간 기준 최대 3시간까지 연속 사용할 수 있는데, 넥밴드로 충전하면 사용시간을 7시간 이상으로 연장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다양해진 셈이다. 일반 이어폰처럼 이어버드만 들고 다니며 착용해도 되고, 넥밴드를 걸고 다니며 거치대와 배터리로 활용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넥밴드는 따로 착용하지 않고 배터리로만 활용했다. 취향에 맞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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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순 보관과 배터리 충전 목적이라면 넥밴드보다는 충전 크래들이 편리하다. 아쉽게도 이건 따로 판매하더라.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디자인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이어폰은 귀에 착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내 얼굴의 일부가 되고, 내 스타일을 가늠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완전 무선형 이어폰의 경우엔 유선 이어폰보다 귀에 꽂아 넣는 부분의 부피가 조금이라도 커질 수밖에 없으니 디자인에 더 예민하다. 아주 조금만 커도 부담스럽고, 조금만 무거워져도 착용감을 해친다. 최소한의 것만 남겨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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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플러스 프리는 이와 같은 고민이 묻어난다. 무난한 블랙 컬러지만 자세히 보면 에메랄드빛 펄 광택이 빛난다. 마감은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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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한없이 심플하다. 이 정도 사이즈로 만들기 위해 고생깨나 했을 것. 자, 착용해볼까?

한 끗만 어긋나도 보청기로 전락하는 디자인이지만 선방한 것 같다. 부담스럽거나 우스꽝스럽지 않다. 정면에서 봐도, 측면에서 봐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매일매일 착용해야 하는 제품이니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건 좋은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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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과 크기를 비교해보자. 조금 더 뭉툭하고 짧다. 솔직히 나는 에어팟의 디자인이 더 유려하다고 생각했지만, 에디터M이 손사래를 친다. 톤플러스 프리는 그냥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했다는 느낌인데, 에어팟은 꼬리가 잘린 콩나물 같다면서 강경하게 말하더라. 디자인은 당연히 취향을 타는 요소겠지만 여러 명의 의견을 물은 결과, 톤플러스 프리의 디자인이 “덜 낯설다”라는 일반론이 형성됐다. 거부감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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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넥밴드에 결합해 착용해보자. 깔맞춤으로 블랙 상의를 입었다. 오늘따라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역시. 내가 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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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질은 인상적이다. 사실 내가 리뷰했던 모든 톤플러스 시리즈가 음질에 있어서는 꽤 만족스러웠다. 가격이나 포지션이 비슷하니 계속 에어팟과 비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같은 음악을 들었을 때 톤플러스 프리의 저음 표현력이 더 풍부하다. 이어팁의 형태 때문인지 차음성 역시 톤플러스 프리가 월등하다. 다만 장시간 착용했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보면 에어팟 쪽이 귀에 부담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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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 리뷰를 하면 평소보다 음악을 많이 듣게 되는데, 이번에 우연히 발굴한 아티스트가 있다. 톰 로젠탈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인데 나만 몰랐었나? 음색이 정말 끝내준다. <A Thousand Years>라는 노래를 꼭 한 번 들어보시길.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묘한 목소리에 바람소리와 작은 새소리가 깔린다. 작은 소음까지 담아낸 것 같은 섬세한 사운드를 감상하기에 알맞았다. 몰입감이 좋은 이어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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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플러스 프리는 이 시리즈가 ‘무선 이어폰 시대’의 입구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같은 제품이다. 뭘 줘야 할지 몰라서 몽땅 다 준다는 느낌. 이야기를 풀어내는 느낌은 조금 투박하지만, 제품의 완성도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계속 새로운 것들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가격은 23만 9,000원. 충전 크래들은 5만 9,000원이다. 6월 30일까지는 크래들을 공짜로 준다는 얘길 주워들었다. 따로 사려면 손 떨리고, 없으면 아쉬우니 사실 분은 빠르게 사시길. 완전 무선형 이어폰을 고민하고 있었다면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다. 오늘의 리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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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