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M의 취향] 발라유 백화유

세상은 플라시보 효과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이 리뷰도 여러분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건지도 모른다. ‘여러분 여기...
세상은 플라시보 효과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이 리뷰도 여러분에게…

2017. 06. 12

세상은 플라시보 효과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이 리뷰도 여러분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건지도 모른다. ‘여러분 여기 방금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멋진 물건이 있습니다. 이게 어디에 얼마나 좋냐면요. 블라블라블라….’ 이렇게 리뷰를 하다 보면 당장 나부터 주문에 걸리곤 한다. 어머 이건 정말 완벽해.

하지만, 난 플라시보 효과를 사랑한다. 세상은 진실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 흉물스럽고 잔혹하다. 우리에겐 때때로 못생긴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환각제가 필요하다. 이 드라이한 일상에 기분이 좋아지고 통장 잔고를 살짝 마르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이 효과를 왜 배척해야 하는가.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

자 레드 썬! 잠깐 정신을 차리고 이 물건을 보자. 몽롱한 내 정신을 맑게 또렷하게 해줄 물건. 이건 위약이 아니라 진짜다. 홍콩에 다녀오면 적어도 꼭 하나씩은 사서 온다는 홍콩 쇼핑리스트 1순위, 화홍 백화유다.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GS25에서 판다. 용량 5ml에 5,500원. oh! 오! 5!]

다행히도 이걸 사기위해 홍콩까지 갈 필요는 없다. 젖과 꿀이 흐르는 우리의 낙원 편의점, 정확히 말하자면 GS25에서 살 수 있으니까. 요즘 편의점은 안 파는게 없다. 사실 GS25가 오늘 나의 첫 편의점은 아니다. 조금 아까 CU에 들러서 아이코스를 예약 주문하고 왔으니까. 사람 빼고 모두 살 수 있는 편의점. 넌 사랑이다.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

그런데 이상하지. 내 생활반경 안에 있는 GS25에는 하나 같이 백화유가 없었다. 당당하게 들어가 ‘백화유’있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알바생의 이건 또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을 마주하곤 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사 에디터H가 강동구 편의점에서 친히 사와주셨다.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

사실 이 제품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8팔이 패키지 덕분이다. 어렸을 적 할머니 화장대 혹은 약통에서 본 것 같은 예스러운 디자인이지만 그래서 더 멋진걸. 1927년 시작된 오랜 세월을 패키지에 고스란히 품고 있다.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

성냥곽처럼 생긴 멋스러운 박스를 뜯으면, 5ml의 앙증맞은 사이즈의 유리병이 모습을 드러낸다.딱 검지 손가락만한 유리병에 들어있는 투명한 액체의 정체는 바로 마사지 오일. 이게 말이지 벌레 물린데, 근육통, 감기, 멀미 등 못 고치는 게 없다. 정말이다. 특히 모기 물린데 바르면 짱짱맨. 머리가 아프다고? 관자놀이에 슥슥 발라주자. 두통이 사라진다. 근육이 뭉친 곳에도 효과가 좋다. 이래 봬도 홍콩에서 2초에 1개씩 팔리는 베스트 셀러라니까.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

조악하게 만들어진 뚜꺼을 열면 동글동글 하고 작은 입구가 나온다. 아무곳에나 바르고 싶은 곳에 병 입구를 문질문질해주면, 딱 적당한 양의 오일만 나온다. 되게 대충 만든 거 같아 보였는데 나름 과학적이다.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

향은 호랑이 연고와 물파스 그 싸한 영역 어디쯤에 있다. 솔직히 향만 따지고 보면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잠이 쏟아지는 시간이라 코 안쪽에 살짝 터치를 해준다. ‘쏴아아아아’ 와우, 이거 뭐야? 잠이 확 달아난다. 효과는 확실하군. 자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인 임상실험을 해볼차례야. 마루타엔 역시 H지. 맨날 어깨가 아파서 고생하는 그녀의 어깨를 내가, 아니 백화유가 씻은듯이 치료해 주겠나니. 다짜고짜 목과 어깨가 만나는 곳에 백화유를 둥글게 굴려 발라주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려본다. 이게 처음엔 잘 모른다. 백화유가 몸에 스며들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 둘 셋 넷…

반응이 온다! 조금 기다리면 살갗을 뚫고 어떤 기운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에디터H의 말에 따르면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느낌이라는데 맞다. 아프면서도 시원하고 서늘하면서도 끓어오른다. 아, 이게 얼마나 전달이 될지 모르겠는데 정말이다. 백화유는 이런 역설적인 문장으로밖에는 표현되지 않는다. 이게 참 좋은데, 아 정말 좋은데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이 마음.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절대 네버 백화유를 만지고 눈을 비비지 말 것. 눈알이 뽑히는 것 같은 고통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Processed with VSCO with fr4 preset[마데 인 홍콩. 난 지금 백화유 high에 취해있어]

이상하지.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약간의 취기가 도는 것 처럼 몸이 폴폴 날라다닌다. 이 작고 예쁜 아이가 내 앞에 있어서 일까. 아님 이 녀석의 흔적이 내 살갗에서 타고 있어서 일까. 지름의 즐거움은 뜻하지 않은 선물같다. 아아 이런게 바로 내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플라시보 효과다. 뿜뿜.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