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힙스터란 누구인가

요즘 들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힙스터란 누구인가?’ 물건이나 브랜드에 대해 다루다 보니 그 물건을 쓰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힙스터란 누구인가?’ 물건이나…

2017. 05. 23

요즘 들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힙스터란 누구인가?’ 물건이나 브랜드에 대해 다루다 보니 그 물건을 쓰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졌달까. 힙스터여, 답해주오. 당신은 누구신가요.

batch_18588922_10154920629298451_2925798554536599694_o

힙스터들이 나의 질문에 답해줄 리 만무하다. 일단 침착하게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힙스터란, 194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단어로 주류문화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좇는 사람들을 말한단다. 한 문장씩 분해해 보자. 일단 지역은 미국이고, 시기는 1940년대다. 이때 미국은 대량생산과 엄청난 경제 거품으로 가장 밝은 시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가장 어두운 시대기도 했다. 이 정도 설명은 아직 내게 부족하다. 흠. 명확한 정의 같지만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시작과 출신 지역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모두 말해주진 못한다.

배경지식은 이쯤하고, 이제 내 머릿속 힙스터에 대한 느낌을 나열해 볼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얄궂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들은 트렌드의 최전방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지금 뜨고 있는 것을 소비하고, 찬양한다. 그러다 그것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산되면, 그들은 조용히 자리를 접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철새 같은 존재다. 물건을 살 땐, 설령 그것이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라 할지라도 대놓고 브랜드 이름을 광고하는 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혹은 아예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batch_Shinola-NYC-flagship-store-1

그래 솔직히, 힙스터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에 가까웠다. 한때 힙스터가 되기를 꿈꿨지만, 나의 한계를 깨닫고 지금은 먼 발치서 그들을 훔쳐보는 나의 열등감의 발로일지도.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가장 힙한 브랜드 시놀라(shinola)를 알게 되면서, 힙스터에 대한 나의 시선은 많이 변했다.

sh_12

시놀라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엄청난 번영을 누렸던 곳이지만,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부진으로 급속하게 쇠락했다. 그 많던 공장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가난과 범죄만 남겨졌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최근 몇 년간 디트로이트는 시민 스스로 펼치는 운동을 통해 아주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늘 소개할 브랜드 ‘시놀라’가 있다.

batch_Shinola-NYC-flagship-store-4

시놀라의 창업자는 바닥을 친 이 도시의 회복을 브랜드에 담고 싶어했다. 시놀라의 본거지를 디트로이트, 그것도 과거 GM(제네럴 모터스)의 공장으로 선택한 것도 그 이유다. 싼 임대료, 그리고 아직 디트로이트에 남아있는 숙련된 기술자들은 덤이다.

dfe2

“Where America is made”

시놀라는 ‘메이드인 USA’의 상징이다. 애초에 시놀라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 덕분이었다. 눈발 날리는 시놀라 매장 앞에서 시계를 차고 환하게 웃는 오바마 대통령 사진이 그 시작이었으니까. 미국이 만든 시계라니 생소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최대 시계 생산국이었다.

최근 미국은 싼 인건비를 위해 생산라인을 모두 해외로 보내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전세계의 물리적인 거리를 무너뜨려버렸다. 소비와 생산의 분리는 대량샌산을 가능케 했고 덕분에 모든 것을 싸게 만들었지만, 모든 것은 획일화 됐다. 미국 사람들은 더 이상 ‘메이드 인 USA’ 상품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때 미국의 힙스터들은 외쳤다. 과거로 돌아가자. 우리 주변에서 만든 것을 사자.

일종의 ‘국뽕’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말하는 ‘신토불이, 국산품 애용’이란 고리타분한 외침을 우아하고 세련되게 포장하는 방법이다. 힙스터들은 말한다. 지금 자기 자신과 가능한 가까운 장소에서 만든 물건을 사고 그런 브랜드를 응원하는 것이 내 가장 가까운 주변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단순히 어떤 브랜드를 산다는 개념을 넘어 나의 소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기분 좋은 만족감을 준다.

dfe3

시놀라의 디자인 자체도 굉장히 미국적이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지만(실제로 시계부터 가방 멀티탭 그리고 자전거까지 아주 다양한 제품군을 자랑한다) 시계를 주력으로 하고 있으니 시계 디자인 먼저 언급해보자. 큼직한 다이얼, 큼직한 숫자. 조금 투박해 보이는 디자인까지. 아메리칸 스타일, 미국식 실용주의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슈트와 캐주얼 모두 훌륭하게 어울린다.

batch_thebedrock_imagesfortheblog_v1_1_0

특히 내가 요즘 초록색 다이얼에 빠져있는데, 그 시작은 시놀라에서 본 시계 때문이었다. 롤렉스의 그린과는 또 다른 느낌. 점잖으면서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오묘한 그린 컬러. 브라운, 블랙, 심지어 레드까지 어떤 스트랩과도 잘 어울린다.

batch_16403073_10154611964258451_767007536718095118_o

시계의 가격대는 400달러에서 1,000달러 대. 싼 가격은 아니지만, 딱히 비싸다고 하기도 힘든 가격대다. 용의 꼬리냐, 뱀의 머리냐. 여기서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시놀라는 명품은 아니지만 시계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좋은 품질의 물건을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대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dfe

단순히 가장 트렌드한 것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힙스터. 그런데 어쩌면 이제 힙스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놀라를 보면서 코리아 힙스터가 나아갈 길도 생각해본다. 당장 나부터도 프랜차이즈 카페 보다는 집 근처의 카페를 가야겠다. 힙스터가되기 위해서라도!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