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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갖고 싶을 나이

나는 물건에 상당히 집착하는 편이다. 뭐든 잘 버리지 않고, 못쓰게 된 것이라도 일단 모아둔다. 에디터M은 정반대다. 쌀쌀맞은 성격처럼 뭐든 태연하게...
나는 물건에 상당히 집착하는 편이다. 뭐든 잘 버리지 않고, 못쓰게 된 것이라도…

2017. 04. 28

나는 물건에 상당히 집착하는 편이다. 뭐든 잘 버리지 않고, 못쓰게 된 것이라도 일단 모아둔다. 에디터M은 정반대다. 쌀쌀맞은 성격처럼 뭐든 태연하게 잘 버리곤 한다. 옛날에 쓰던 휴대폰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얘기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구형 아이팟도 작동이 잘 되지 않길래 그냥 버렸다더라. 이 자리를 빌려 한번 더 까고 싶다. 아니 그걸 왜 버려??

‘프로 버리미’인 에디터M이 이상할 정도로 오래 쓰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2세대 아이패드다. 2011년에 출시되자 마자 구입했다고 하니 벌써 6년 째 쓰고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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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2세대 아이패드는 아직도 매일밤 에디터M의 침실에서 수청을 들고 있었다. M은 옆으로 누워서 아이패드를 옆으로 뉘어놓고 넷플릭스를 보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침실에 함께 눕는 사이가 되기에 맥북은 너무 ‘비즈니스 관계’고 아이폰은 너무 ‘작다’면서.

실없는 얘기지만 의외로 핵심을 꿰뚫어보는 헛소리다. 태블릿은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의 오묘한 어느 지점을 긁어주기 위해 태어났다. 스마트폰이 너무 커지고, 노트북은 너무 얇아지는 통에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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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 아이패드를 샀던 때가 떠오른다. 꽤 기분좋은 ‘사치’였다. 사치라고 표현한 건 꼭 필요한 카테고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없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있으면 더 좋다.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지금은 의존도가 조금 더 높아졌지만, 어쨌든 지금도 같은 맥락이다. 갖고 싶지만, 그냥 갖고 싶어서 사기엔 비싼 제품이다. 에디터M이 내 아이패드 프로에 집적대다가 포기한 이유도 결국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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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로 나온 아이패드를 살짝 만져보자. 이름은 ‘그냥 아이패드’다. 프로도 아니고 미니도 아니며 에어도 아니다. 이름만큼 모난 구석도 특출난 구석도 없다. 무게는 아이패드 에어 1세대와 같고, 프로세서는 아이폰6s와 같다. 시시해 보인다.

나는 아이패드 프로를 쓰고 있기 때문에 비교 조건이 더욱 가혹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가 쏙 빠졌다. 네 방향 스피커와 트루 톤 디스플레이 말이다. 태블릿 주제에 귓구멍이 ‘뽕’ 뚫릴 정도로 빵빵하게 뿜어내는 사운드와 주변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바뀌는 화면 색온도는 이전까지 썼던 모든 태블릿을 부정하게 만들 만큼 좋다. 진짜 좋다. 그런데 여기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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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것만 찾는 건 나쁜 버릇이다. 장점은 반드시 있다. 이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새로운 아이패드는 비행기 좌석으로 따지면 ‘프리미엄 이코노미’ 쯤 된다. 티켓은 비즈니스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이코노미보다 월등히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다. 가격으로만 따지자면 ‘특가석’이 더 맞겠다. 여태까지 출시된 그 어떤 아이패드보다 착한 가격이다. 32GB 와이파이 모델 기준 43만원. 대신 옵션을 몇 가지 덜어 낸 것이다. 좌석을 180도 젖힐 수 없고, 기내식은 코스 요리로 나오지 않는다. 아쉽지만 괜찮다. 전채요리부터 시작하는 화려한 기내식이 없어도 여정은 괜찮듯, (경험한 적이 없다면) 크게 아쉽지 않을 기능만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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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만 읽으면 신형 아이패드가 뭔가 나사 빠진 저가형 모델 같겠지만, 실제로 조금만 써보면 그렇진 않다. A9 프로세서는 여전히 현역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특히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에서는 손가락이 훨훨 날아다닐 성능이다. 여전히 말이다. 내가 자주 쓰는 ‘픽셀메이터’로 고용량 이미지를 불러와 편집해봐도 버벅임 없이 매끄럽다. 9.7인치 화면에서 멀티 터치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은 언제나 그랬듯 가볍고 빠르다. 흠잡을 곳 없는 디스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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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기기 성능을 테스트 할 때 으레 플레이해보는 레이싱 게임에 도전해보았다. 내가 제일 못하는게 레이싱 게임이다. 여러분, 에디터H가 신나게 기물파손 중입니다. 화면속에 순위는 8대 중 6위인데, 10초후에 8위로 전락한다. 그만하자. 프레임이 끊김 없이 부드럽게 구현되는 것만 확인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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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요즘 되게 재밌게 하는 ‘빅헌터’라는 게임이다. 창이랑 도끼 같은걸 던져서 동물을 사냥하는 내용이다. 조작이 쉽고 단순해서 좋다. 혼자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스릴 넘치게 플레이한다. 이상하게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게임을 잘 안하게 되는데, 여기선 갑자기 해보고 싶어서 다운로드 했다. 큰 화면으로 조작하니 더 신난다. 앱스토어의 인디 게임 코너에서 발견했다. 알고보니 개발사가 한국 회사라더라. 역시 아이패드의 가장 큰 매력은 기기 자체가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앱스토어다.

성능에 대해 조금 언급해보자. 동영상 플레이어를 팝업 창으로 띄워놓고, 두 개 앱을 동시에 실행하는 ‘스플릿 뷰’를 사용해도 무리 없이 잘 굴러간다. 물론 이 기기로 4K 영상을 촬영하거나 4K 영상 소스를 편집하는 건 어렵다. 솔직히 아이패드에서 그런 작업을 시도할 정도로 유난스러운 타입이라면 프로를 쓰는 게 맞다. 마음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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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프로와 에어2에 있던 반사 방지 코팅이 빠진 것 또한 서글픈 소식이지만, 다행히 사용환경에선 크리티컬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걸 상쇄하기 위해서인지 밝기는 아이패드 프로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

사진 촬영을 할 때 야외였는데, 카메라 던지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날씨가 맑았다. 그 와중에 확인한 야외 시인성. 밝기가 받쳐주기 때문에 야외에서 쓰기에도 무리 없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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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한 스마트 커버는 핑크 샌드 컬러다. 핑크를 싫어하는 에디터M도 눈길을 주는 은근한 컬러다.

태블릿 시장은 지금 보릿고개다. 애플이 영리하게 자존심을 꺾었다. ‘조금 시시해진’ 아이패드를 ‘훨씬 착해진’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프로는 부담스럽지만 아이패드는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좋은 핑계가 생긴 셈이다. 구형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는 에디터M 같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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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패드는 포기한 것과 취한 것이 명확하다. 솔직히 내겐 포기한 것들이 강하게 와닿는다. 이를테면 화면 사이에 미묘하게 보이는 ‘에어갭’같은 것들. 그러나 에디터M은 잘 보이지도 않는 거로 꼬투리를 잡는다며 나를 까더라. 결국 사용자 군이 확실히 나뉜다는 얘기다. 유난스러운 내겐 아이패드 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에디터M은 새로운 아이패드의 가벼운 바디와 가벼운 무게에 군침을 흘린다.

때마침 5월을 목전에 두고 제품이 나왔다. 선물할 시즌이 많은 달에, 선물하기 좋은 제품이 아닌가. 이렇게 애플이 또 돈을 번다.

5월은 어른이날, 우리들 세상. 한창 아이패드 갖고 싶을 나이니까.

마지막은 수상한 개봉기.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