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땡땡이의 맛

낮에 마시고 싶은 맥주와 밤에 마시고 싶은 맥주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태양빛과 공기의 온도 그리고 취기의 상관관계 같은 이야기를 끝도...
낮에 마시고 싶은 맥주와 밤에 마시고 싶은 맥주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태양빛과…

2017. 04. 10

낮에 마시고 싶은 맥주와 밤에 마시고 싶은 맥주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태양빛과 공기의 온도 그리고 취기의 상관관계 같은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절댈 수도 있지만 그건 지루하니까.

오늘은 낮에 마시고 싶은 그런 맥주를 소개할거다.

때는 4월 어느 날, 빨래 말리기 좋은 날이었다. 날이 좋아서 우리는 땡땡이를 치기로 한다. 장소는 비상계단. 가끔 구름과자를 즐기는 나만의 시크릿 플레이스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알아둬야 할 것은, 디에디트 사무실 한쪽 구석에는 항상 맥주가 쌓여있다는 사실. 우리는 준비된 여자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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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땡땡이 메이트는 세인트루이스. 에디터H는 세인트루이스 프리미엄 뻬쉬. 나는 세인트루이스 프리미엄 프람보아즈.

세인트루이스는 람빅(lambic) 맥주다. 람빅은 하늘이 만든 맥주다. 정말이다. 맥아를 끓인 맥즙을 펼쳐놓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의 효모를 맞을 준비를 한다. 정제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연의 순리에 맡긴다. 효모가 내려앉을 시간을 충분히 준 이것을 오크통에 옮겨 담고 6개월에서 3년 정도 숙성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우리 곁에 온다. 람빅은 에일과도 라거와도 다른 맥주다. 물리적인 숙성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요, 실패의 위험도 훨씬 높다. 한마디로 아주 귀한 몸이라는 거다.

Processed with VSCO with kp1 preset[자꾸 헛손질을 하는 H. 술마시고 싶어 하앍하앍]

하지만, 이런 설명은 그냥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얼마나 귀한 몸인지 몰라도 세인트루이스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다. 250mL의 작은 용량과 2.6~2.8% 정도의 가벼운 도수, 그리고 상큼달콤 과일 맛 덕분에 맥주 한 병을 마시긴 부담스러운 나도 쉽게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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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쉬는(Peche)는 복숭아다. 달콤한 복숭아 맛과 향기, 그리고 람빅맥주의 새쿰(큼의 오타가 아니다. 상큼하면서도 아주 조금 맥주 특유의 쿰쿰한 맛이 난다)이 잘어우러져서 부담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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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세이트루이스 프리미엄 프람보아즈(Framboise)는 라즈베리맛이다. 라즈베리의 맛 자체가 워낙 화려해서 첫인상은 마치 사탕같다. 누구는 웰치스 포도에 맥주를 탄맛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화려한 인상을 걷어내고 마시다보면 맥주의 풍미가 ‘나 여기 있어요.’하고 고개를 내민다. 너 맛있구나.

saintlouise

[좌 크릭(Kriek), 우 그즈(Gueuze)]

맛있어서, 좋아서. 내친김에 세인트루이스의 라인을 몽땅 소개해야지. 세인트루이스의 가장 대표적인 맥주는 세인트루이스 프리미엄 크릭. 람빅 맥주에 체리(Kriek)를 넣고 또다시 6개월간의 숙성을 거친다.

그즈(Gueuze)는 1년된 어린 람빅과 3년된 람빅을 섞은 후, 2차 발효한 맥주다. 시큼함, 달콤한, 은은한 쓴맛까지 인간이 느낄수 있는 오미가 모두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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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시기 참 좋은 맥주다. 짜릿한 땡땡이의 맛. 일상이 무료해질 때 마셔보자.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