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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時代의 사진

모처럼 온가족이 모였다. 내 젊은 아버지(실제론 아빠라고 부르지만)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사실 진짜 주인공은 아흔이 넘은 우리 할매다. 아흔. 백에서...
모처럼 온가족이 모였다. 내 젊은 아버지(실제론 아빠라고 부르지만)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사실…

2017. 03. 13

모처럼 온가족이 모였다. 내 젊은 아버지(실제론 아빠라고 부르지만)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사실 진짜 주인공은 아흔이 넘은 우리 할매다. 아흔. 백에서 한없이 가까운 그 숫자는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위태롭다. 그 숫자가 위태롭다고 여기는건 할머니 본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할머니는 매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예순 한 번째 생일상을 바라보는 마음 또한 그러하다. 메뉴는 보리 굴비 정식이었다. 연세에 비해 먹성이 좋은 할머니는 보리 굴비 빼곤 다 맛있었다고 했다. 무뚝뚝한 우리 가족이 모두 웃었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 쯤, 할머니가 그랬다. 거기, 창밖으로 우뚝 솟아있는데, 집에서 만날 보는 거기 가보자고.

우리 집 베란다에 나가면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휘황찬란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날은 너무 가깝게 보여서 무서울 정도다. 시골집 근처의 산이 높은지, 롯데월드타워가 높은지로 입씨름하며 다섯 명이 타기엔 비좁은 차를 타고 잠실 바벨탑을 향했다.

석촌 호수 근처에 차를 대고 코앞에서 올려다본 123층의 빌딩은 실로 거대했다. 할머니는 너무 높아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고 말했다. 이른 저녁을 먹은 덕분에 해가 내려앉기 전이었다. 우리는 석촌 호수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함께 밥상에 앉는 일도 드문 우리 가족에게, 다같이 공원을 걷는 것처럼 낯선 풍경이 있을까. 할매, 내가 사진 찍어 드릴게. 여기 봐봐.

할머니 얼굴이 이상하다. 굳은 표정으로 연신 입을 뻐끔 뻐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자꾸 손사래를 치는 통에 사진을 찍기 어렵다. 아빠가 할머니 뒤에 다가가 어깨를 감싸 쥐고 엄니, 사진 찍읍시더, 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나서야 할머니는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영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아이폰7 플러스의 인물사진 모드를 선택했다. 화면 안에 할머니와 아빠의 모습이 꽉 찬다. 훨씬 좋다. 그리고 찰칵. 이거 봐, 사진 잘 나왔지? 응? 갓 찍은 사진을 화면에 띄워 보여주니 그제야 할머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이고, 잘 나왔네? 어찌 이 얄궂은 걸로 사진이 이렇게 잘 나오나. 희한한 일이네, 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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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정말 잘 나왔다. 아이폰7 플러스의 카메라를 리뷰하며 찍었던 어떤 사진보다 근사했다. 뒷배경은 그럴싸하게 아웃포커싱 처리되었고, 두 피사체는 선명하게 담겼다. 기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듀얼 카메라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사진은 그냥 사진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매일 보는 아빠가 낯설다. 언제 이렇게 주름살이 깊어졌나 싶다. 사진 속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염색을 싫어해서 있는 그대로 하얗게 센 머리카락. 환갑 선물로 내가 사준 재킷 안에 아웃도어 의류를 매치한 패션 센스. 큰 키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구부정하게 선 포즈까지. 그리고 옆에 선 할머니는 더욱 낯설다.

모두의 할머니가 그렇듯, 우리 할매는 대단한 여자다.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가 걸음마도 떼기 전에 세 남매를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그때 할머니는 서른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아흔하나가 됐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보청기 없인 소리도 잘 듣지 못하고, 걸음도 불편한 지경이지만 어디서나 기세가 꺾이는 법이 없다. 그런 할머니가 이렇게나 수줍게 웃는다. 아이폰 사진 속에 담긴 표정은 내가 아는 가장 연약한 모습이었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영정사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나 죽을 때는 쭈글쭈글한 사진 놓기 싫어, 네 고모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을 놓을 거야, 그 사진 속 내가 얼마나 예쁘던지, 그게 나였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

할머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찍은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어두었다. 흑백사진을 컬러로 복원해두었다. 물감을 입힌 듯 인위적인 색깔이지만 젊은 할매는 참말로 곱다.

나는 할머니 시대의 사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한다. 사진은 어렵고 먼 일이었다. 사진관을 찾아가거나, 졸업식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사진사가 커다란 카메라로 찍어주는 것이 사진이었다. 한복을 차려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심지어 할아버지와는 기회가 마땅치 않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에게 미덥지 못한 스마트폰을 들이대며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불편하고 낯선 경험이었으리라. 혼기 꽉 찬 손녀딸이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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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쓰지 않던 인스탁스 쉐어를 꺼내다가 필름을 넣고 사진을 인화했다. 이렇게 뽑아놓고 보니, ‘진짜 사진’같다. 할매, 이거 오늘 찍은 사진이야. 이거 봐봐. 인화한 사진 다섯 장을 할머니 손에 쥐어 드리니 뒤로 넘어갈 듯 놀라신다. 아니 이걸 어디 가서 뽑아 왔나, 이게 네가 찍은 거가? 설명은 간결할수록 좋다. 할머니 사진 뽑는 기계가 있어. 돈 드는 거 아니야. 공짜야.

손바닥만한 작은 사진을 할머니가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참 잘 되었다. 내가 네 애비랑 사진도 찍고, 경화랑 사진도 찍고, 오늘 참 잘 되었다.” 주문처럼 되뇌이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어지러워진다. 나는 아무 때나 셔터를 누른다. 명함을 받아도 사진으로 저장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봐도 사진을 찍으며, 저녁으로 먹은 보리 굴비의 처참히 분리된 대가리도 사진으로 남겨둔다. 수백 장의 셀카는 말할 것도 없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얼마나 더 좋아졌더라 하는 것은 내게 이미 지루한 이야깃거리다. 저조도 촬영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흔들림은 얼마나 잘 잡아주는지, 냉철하게 바라보고 못난 구석만 짚어내곤 한다. 이 기술이 주는 감동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지 오래됐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남길 수 있고, 그걸 바로 인화해 손에 쥘 수 있는 기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사진 다섯 장을 성경책 사이에 소중하게 껴놓는다. 다시는 붙잡지 못할 순간이고, 다시는 찍지 못할 사진인 것처럼. 할매, 할매, 사진은 언제든 찍을 수 있어. 내일도 또 찍을 수 있어. 또 찍자. 응?

이 시대엔 디지털 코드의 사진 파일이 도처에 넘쳐나는데, 할머니에겐 언제나 마지막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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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