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을 이해하기 위한 7단계

솔직히 처음엔 좋았다. 예쁘고 쿨해보였다. 그러다 금방 불편함을 느꼈다. 꼬박꼬박 자동이체로 요금을 내면서도 우린 소원해졌다. 애플뮤직 말이다. 근데 에어팟을 쓰기 시작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에어팟을 톡톡 두 번 두드리면 시리를 소환할 수 있다. 음성으로 재생목록을 넘길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시리야 다음곡 틀어줘.” 사람들에게 들릴까 수줍은 목소리로 부탁했는데, 시리가 안된단다. 왜지?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멜론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성 컨트롤은 애플뮤직만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애플뮤직을 쓰기 시작했다.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겠다는 열망 하나로.

나는 이제 애플뮤직을 얼추 정복(?)한 것 같다. 애플뮤직을 이해하기 위한 7단계를 밟아보자.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어렵… 아니, 속은 따뜻한 서비스다.

1. 애플뮤직은 어렵다.

사실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특히 초창기의 애플뮤직은 난해함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UI와 애플이 만들었다는 환상에 취해 한 달 정도는 붙들고 살았는데, 인터페이스에 적응하지 못해 헤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낯선 부분은 ‘홈화면’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멜론이나 네이버 뮤직같은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는 홈화면에서 인기차트나 추천음악 등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한다. 앱을 실행하자마자 음악이나 앨범을 반사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다. 사용자가 음악을 찾아 헤맬 일이 없는 대신, 늘 실시간 차트나 추천 음악에 올라와 있는 ‘뻔한 음악’만 듣게 된다.

애플뮤직의 첫화면은 ‘보관함’이다. 내가 이미 저장한 음악을 첫 페이지에서 보여준단 얘기다. 이상하다. 슈퍼마켓에 장보러 갔는데 내 냉장고에 무엇이 들었는지부터 보여주는 격이다. 새로운 음식(음악)을 찾고 싶으면 다음 탭을 향해 직접 이동해야 한다. 나태한 내겐 버거운 여정이다. 카트를 밀며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긴 해야겠는데, 내가 뭐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맨날 먹던 메뉴는 지겹다. 멜론 실시간 차트 TOP 100말고 색다른 음악을 듣고 싶다. 미지의 음악에 대한 탐구심이 들었다면 애플뮤직은 좋은 선택이다. 조금 낯설고, 조금 귀찮더라도 둘러볼 가치가 있다.

2. 일단은 무조건 ‘둘러보기’다.

한 가지 꼬투리를 더 잡아보자. 애플뮤직은 하단 메뉴바에 다섯 가지 탭을 제공한다. 차례로 볼까. 보관함, For You, 둘러보기, 라디오, 검색. 솔직히 ‘검색’ 탭 말고는 이름만 들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바로 감이 오지 않는다. 모호하고 헷갈린다. 출시 직후엔 검색 탭도 없고 더 심각했는데 업데이트 후 많이 나아진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어디가서 들으란 말이야? 이럴 땐 무조건 ‘둘러보기’를 선택하라. 애플뮤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큐레이션 서비스는 이 안에 숨어있다.

둘러보기에 들어왔다면 상단에 이미지 카드 형식으로 펼쳐진 내용부터 슬렁슬렁 구경해보자. 눈에 띄는 곳에 배치했다는 건 현시점에서 추천하는 재생목록이거나 앨범이란 뜻이다. 이 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된다. 따끈따끈한 태연의 첫 정규 앨범과 ‘봄이 왔어요’라는 이름의 상큼한 재생목록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의 재생 목록을 보관함에 추가하거나 바로 재생할 수 있다.

추천 큐레이터에 재밌는 게 눈에 띈다.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가 애플뮤직 사용자들을 위한 러닝 음악 리스트를 만들었다. 러닝 초보부터 숙달된 마라토너까지, 러닝 속도나 거리에 따라 다양한 재생 목록을 제공한다. 재생 목록마다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각각 다른 템포의 음악을 담았다. 특히 각 리스트의 첫 곡 선정이 기가 막히다. 서서히 발목을 털면서 뛰기 시작할 때의 설렘과 리듬감이 있달까. 이렇게 듣기만 해도 뛰고 싶어지지만, 결국 뛰지는 않는 나라는 사람.

둘러보기 탭에는 인기 차트부터 무드 별 재생목록 등 주옥같은 큐레이션이 넘쳐난다. 문제는 진입 방식이 썩 직관적이지 않다는 거. 뎁스(단계)가 너무 많고, 자칫 헷갈릴 수 있게 설계됐다.

3. 애플뮤직은 사람을 갈아서 만든다

나는 음악은 잘 모른다. 음악 취향이라고 거창하게 늘어놓을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 귀에 익으면 듣기 좋다고 여기고, 올드팝이나 7080 가요를 좋아한다. 이렇다 보니 새로운 노래를 찾기 마땅치 않은 입장이다. 멜론이 추천해주는 최신곡은 대부분 비슷했고, 난 이 넓은 세상에 무슨 노래가 있는지 모르겠다. 서비스 담당자가 대충 트렌드에 맞게 배열해주는 거 말고,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고 취향 좋은 사람이 직접 추천해주는 그런 리스트를 원했다.

대부분 애플뮤직이 사용자의 패턴에 따른 알고리즘을 분석해 음악을 추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애플뮤직의 큐레이션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각 음악 장르마다 전문 음악 에디터가 있어서 직접 재생목록을 만들고 추천 음악을 편집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애플뮤직의 최신곡 목록은 다양한 시야에서 다뤄진다. 최신곡의 인기트랙엔 말 그대로 ‘한국에서 먹힐 만한’ 최신 음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걸 판단하는 것은 에디터들의 솜씨다. 곡의 순서 또한 한국 사용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설정할 정도다. 현지화된 리스트지만 케이팝만 있는 건 아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곡들이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인기 트랙의 경우엔 개별 노래를 선택해 바로 재생하거나 보관함에 담을 수 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던 실력있는 신인 아티스트를 조명해보는 코너도 있다. 짤막한 앨범 설명이 있어서 좋더라. 음악과 아티스트에 대한 애플의 애정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애플뮤직의 에디터들이 한땀 한땀 작업한 ‘큐레이터 재생목록’은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메뉴다. 장르나 계절, 트렌드에 따른 추천 재생 목록과 함께 테마&무드 재생목록을 구성해 뒀다. 파티, 운동, 주말, 로맨스, 휴식, 의욕, 집중, 슬픔, 추억. 애플뮤직에서 가장 직관적인 제목을 가진 메뉴다. 조용히 휴식할 때, 집중이 필요할 때, 광란의 파티를 벌일 때. 각각 다른 상황마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재생목록을 만들어뒀다. 상황별 재생목록이 다양해 많은 취향을 포용할 수 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큐레이션된 재생목록은 임의재생하지 말고 순서대로 듣는 게 더 좋다. 첫 곡은 전체 리스트의 분위기를 대변하며 ‘도입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노래로 고르더라. 순서까지 신경써서 큐레이션하는 게 틀림 없다. 과연 애플의 디테일이다.

나는 일할 때 ‘집중’ 카테고리의 ‘편안하게 즐기는 클래식’을 듣곤한다. 원래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들으면 글을 못 쓰는데, 클래식은 괜찮더라고. 뭔지 잘 모르고 듣는 거지만 음악은 원래 듣기 편한 게 최고니까.

4. 재생목록은 살아 움직인다.

최신 음악 재생목록은 일관된 ‘컨셉’을 가지고 구성된 리스트다. 재밌는 게 많다. 쇼핑하는 기분으로 둘러보시길. 케이팝 리스트나 히트 예감, 글로벌 댄스 히트곡같은 재생목록은 애플 뮤직 에디터들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하는 재생목록이다. 처음엔 이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재즈를 좋아해서 ‘The A-List: 재즈’라는 재생목록을 보관함에 추가해두었다고 해보자. 이 재생목록엔 담긴 재즈 인기곡은 때에 따라 계속 업데이트된다. 타이틀은 그대로지만 그 안에 담긴 곡은 계속 변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보관함에 ‘새로운 핫 트랙’이나 장르별 재생목록을 추가해 놓으면, 일 년 내내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대신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재생목록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때 그때 음악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개별 트랙을 보관함에 추가하는 수고스러움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볍게 듣기 좋은 재생목록을 일러드리자면 ‘오늘의 히트곡’이 만만하다. 한국 사용자들이 애플뮤직에서 많이 듣는 음악을 중심으로 뽑아내는 플레이 리스트다. 재생목록 고르기 귀찮을 때, 쓱- 들으면 좋다.

5. 라디오 방송은 끝나지 않는다.

애플 뮤직의 매력 중 하나는 라디오다. 정확히 말하면 애플이 밀고 있는 서비스라고 보는 게 맞겠다. 비츠원 라디오방송에 들어가면 유명 DJ들이 24시간 내내 힙한 기운을 물씬 풍긴다. 애플뮤직 에디터들 외에도 여러 DJ의 취향과 스타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라디오 스테이션도 내가 좋아하는 코너. 소울 명곡이나 디즈니 OST, 가라지 록, 시대별 팝 음악 등 눈길이 가는 스테이션이 많다. 내 취향에 화살을 꽂은 건 60년대 팝 히트곡. 가수도 음악도 처음 보지만 듣는 순간 마음이 경쾌해지고 귀가 녹아내리는 명곡을 다수 발견했다. 라디오 스테이션은 말 그대로 라디오다. 지나간 노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무한 재생되는 대신, 이전 곡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마음에 들면 +표시를 터치해서 보관함에 담아 놓으시길.

6. 애플뮤직은 내 습관을 기록한다.

이젠 오로지 데이터에 기반해 만들어지는 재생목록을 소개할 차례다. ‘For You’ 탭에 만들어지는 리스트는 말 그대로 나만을 위한 음악이다. 내 사용 습관을 데이터로 만들어 개인별 맞춤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이 탭에 소개되는 음악 역시 계속 업데이트되는 방식이다.

애플뮤직이 내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애플이 수집하는 데이터는 다양하다. 가장 직접적으로 음악 취향을 표현하는 방법은 ‘마음에 드는 노래에 ‘하트’ 표시를 하는 것. 일종의 ‘좋아요’다. 하트가 어디 있냐고? 특정 트랙이나 앨범을 선택한 상태에서 ‘더보기(…)’ 아이콘을 누르면 하트를 찾을 수 있다. 왜 이렇게 숨겨놨는지 모르겠다. 하트를 취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 역시 당신의 취향 데이터에 영향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음악을 보관함에 추가하고, 보관함에서 삭제하는 습관까지 데이터의 일부가 된다. 음악을 듣다가 썩 내 취향이 아니라 스킵해버린다면 그것도 애플뮤직의 레이더망에 걸린다. 내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넘겼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데이터가 켜켜이 쌓이면 애플뮤직은 내게 새롭지만 익숙한, 처음 듣지만 단번에 귀에 감기는 음악을 추천해줄 수 있게 된다.

7. 애플뮤직은 취향 좋은 편집샵이다.

애플뮤직이 최고의 스트리밍 서비스인지는 잘 모르겠다. 에디터M이 그러더라. 애플뮤직의 취향은 근사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그런데 너무 고가의 브랜드만 갖춰놓은 고급 편집샵처럼 때론 둘러보기가 머쓱하고 불편하다고. 장단점이 분명한 상태다.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재미는 어떤 서비스에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신선한 감동이다. 하지만 익숙한 음악을 찾을 때 피로도가 크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 비해 훨씬 많은 음원을 갖추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한국 음원이 부족한 상태다.

어떤 인터페이스는 쉽고 직관적이지만, 어떤 것들은 숨은 그림 찾기 처럼 난해하다. 음악을 플레이하면 앨범 커버 이미지가 커지고, 정지하면 커버 이미지가 작아지는 효과는 별거 아니지만 인상적인 포인트다. 하지만 노래 가사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한눈에 알기 어렵다. 참고로 노래 가사는 화면을 위로 들어 올리면 아래에 표시된다.

오늘은 애플뮤직의 추천 재생목록을 탐닉하다가 뜻밖의 노래를 발견했다. The Kinks의 <All Day and All of the Night>라는 곡인데 벌써 한 다섯 번 들은 것 같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운명처럼 귀에 감긴다.

알고리즘의 큐레이션과 에디터의 아날로그 큐레이션이 공존하는 애플뮤직. 모난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이다. 일단 한번 써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