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겨울 서촌 산책, 카페부터 빈티지숍까지

안녕, 툭 하면 서촌에 놀러 가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서촌을 걷는 일은 즐겁다. 목적지 없이 한가로이 거니는 여유와 흥미로운 사람과...
안녕, 툭 하면 서촌에 놀러 가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서촌을 걷는 일은…

2023. 01. 18

안녕, 툭 하면 서촌에 놀러 가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서촌을 걷는 일은 즐겁다. 목적지 없이 한가로이 거니는 여유와 흥미로운 사람과 브랜드를 발견하는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돌담과 한옥이 만드는 고즈넉한 정경 속에 젊은 감각의 가게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한다.

작년 이맘때 쓴 겨울 종로 산책 기사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종로를 예찬하며 안국역에서 경복궁역까지 하루 잡고 코스로 다녀오기 좋은 곳들을 소개했지. 이번에는 서촌으로 범위를 좁혔다. 경복궁역을 나와 누하동과 통인동, 옥인동을 누비며 먹고 마시고 쇼핑하기 좋은 네 개의 공간을 모았다. 이불 밖을 나서보자. 추위는 잠깐이고 추억은 최소 5년이니까.


[1]
카페

나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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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으로 산책을 시작해보자. 누하동 골목에 위치한 나흐바는 지난해 10월에 오픈한 따끈따끈한 카페다. 나흐바nachbar는 독일어로 이웃이라는 뜻. ‘커피는 기분 좋을 때 먹어야 가장 맛있다’라는 믿음으로, 기분 좋게 머무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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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러도 친근하고 정감 가는 이웃 같은 카페.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만큼 말을 걸거나 과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손님의 상황에 맞춘 세심한 응대가 돋보이는데, 이는 커피를 추천해주는 방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오늘 처음으로 드시는 커피인가요?” 그렇다고 하면 우유가 들어간 것보다는 깔끔한 아메리카노나 필터 커피를, 이미 커피를 마시고 왔다면 라떼나 달콤한 커피를 권하는 식이다. 다르게 질문할 때도 있다. “혹시 커피 두 잔 드실 예정이에요?” 맞다면 블랙커피를 먼저, 이후에 우유나 꿀이 들어간 커피를 추천한다. 손님 입장에서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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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면적이 크지 않아 잡다한 요소를 두기보다는 우드와 스틸 소재를 조화롭게 배치해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 데 신경 썼다. 거기에 기다란 나무 의자와 스툴, 카페트로 곳곳을 채워 따뜻함을 더했다. 자연광이 가득 들어오는 큰 통창을 내고 대리석 대신 집에서 많이 쓰는 장판을 바닥에 깐 것도 비슷한 이유.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누하동의 골목 풍경이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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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흐바 커피하우스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는 총 5가지. ‘커피하우스’라는 이름을 덧붙이는 데서 알 수 있듯, 커피라는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이는 데 방점을 찍는다. 관악구 봉천동의 로스터리 카페 ‘고로커피로스터스’에서 가져오는 약배전 원두를 아메리카노 ・ 카페라떼 ・ 필터 커피 ・ 샌디에이고 ・ 시나몬 포틀랜드로 추출한다. 샌디에이고는 카페라떼에 아카시아꿀과 설탕을 첨가한 커피, 시나몬 포틀랜드는 드라이 스타일의 카푸치노에 시나몬 향이 첨가된 설탕 시럽을 소량 넣은 달콤한 겨울 시즌 한정 메뉴다.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는 은은한 오렌지 톤의 에티오피아 블렌드를, 필터 커피는 고로커피로스터스를 비롯한 다양한 로스터리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사용한다.

나흐바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2
  • 화-금 11:00-18:00 토-일 11:00-19:00 (월 휴무)
  • @nachbarcoffeehouse

[2]
빈티지숍
테이크 아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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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동네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빈티지숍 테이크 아이비. 일전에 재밌게 봤던 동명의 책이 생각나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가 그만 충동구매를 했다. Nautica Japan에서 만든 초록색의 리버시블 재킷이었는데 입자마자 내꺼다 싶었지. 아니나 다를까 구매 직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을 입었는지 모르겠다. 첫인상이 좋아 한 달 뒤에 또 들렀다. 역시는 역시, 한눈에 들어오는 스트라이프 패턴의 머플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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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캐주얼, 그중에서도 아이비룩을 주로 취급하는 숍이다. 아이비룩은 하버드와 프린스턴 등 미국 동부 명문대 8곳을 지칭하는 아이비리그에서 즐겨 입은 패션 스타일을 총칭하는 말. 테이크 아이비는 아이비룩을 상징하는 브랜드와 아이템을 소개하기 위해 가치 있는 빈티지 제품을 일본에서 공수해 판매한다. (위에서 언급한 책 <Take Ivy>는 60년대 초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한 포토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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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아이비룩 열풍을 불러온 VAN JAC ・ 예일대학교 캠퍼스 숍으로 시작해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가 된 J. PRESS ・ 4-60년대 미국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캐주얼웨어를 전개하는 Beams Plus 등의 브랜드를 만나볼 수 있다. 바시티 자켓, 스웻셔츠, 크리켓 니트에 넥타이, 머플러 같은 잡화류까지 아이비룩에 어울리는 다양한 제품을 취향껏 골라보자. 아웃도어에 관심 있다면 VAN JAC의 서브 브랜드인 Scene에서 제작한 90년대 마운틴 재킷을 눈여겨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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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매장임에도 여유롭게 공간을 구성한 덕에 불편함 없이 쇼핑할 수 있다. 카테고리와 색깔별로 분류한 행거들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소파나 테이블 등을 활용해 포인트를 준 디스플레이가 돋보인다. 이전 기사에서 소개했던 한남동 빈티지숍 우니쿠와 마찬가지로 제품 하나하나 천천히 돌아봐도 전혀 기 빨리지 않는 환경이라서 좋다. 물량으로 때려 박아 쿰쿰한 옷더미에서 보물을 힘겹게 찾아야 하는 가게는 이제 좀 힘들다.

테이크 아이비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49-1 지하 1층
  • 12:00 – 20:00 휴무는 유동적으로 인스타그램 통해 공지
  • @takeivy_official

[3]
음식점
부르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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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게 맛있는 서촌의 파스타, 스시, 뇨끼 음식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버거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동네에 단골 수제버거집이 없다는 사실이 늘 씁쓸했다. 부르크보드가 생기기 전까지 말이다. 2022년 4월에 통인시장 옆에 오픈한 부르크보드는 근래 경험했던 수제버거 중 가장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의 버거다. 맛도, 모양도, 매장 분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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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설명할 때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단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크다.” 부르크보드가 지향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버거를 구성하는 모든 재료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것. 그 안에서 소고기 패티가 가진 육향과 풍미를 한껏 살리는 데 집중한다. 매일 같이 직접 갈고 다지는 두꺼운 패티를 둥그런 모양으로 잡은 뒤 미디움 굽기로 굽는다. 촉촉한 패티가 녹아내리는 체다치즈와 어우러지며 입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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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종류는 햄버거 ・ 치즈버거 ・ 부르크 클래식 ・ 비엘티 ・ 스테이크 샌드위치 총 5가지. 그중에서도 치즈버거와 부르크 클래식의 인기가 높다. 개인적으로 버거에 토마토 대신 양파나 피클을 넣는 걸 선호하는데, 부르크보드의 치즈버거엔 야채라고는 적양파와 피클만 들어간다.

프렌치프라이 위에 직접 제조한 라구 소스를 얹어주는 라구 프렌치프라이도 궁금하다. 이날은 아쉽게 재료 소진으로 맛볼 수 없었지만 일반적인 칠리 프라이와는 또 다를 것 같아서 다음 방문 때 시도해보기로. 버거도, 프렌치프라이도 과하게 짜거나 느끼한 맛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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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나 이태원, 성수동에 가면 힙합 음악과 서브컬처의 향기가 느껴지는 아메리칸 바이브 수제버거집이 많다. 부르크보드는 좀 다르다. 힙합도, 농구 저지도, 스케이트보드와 슈프림 스티커도 없다. 대신 투박한 나무 바닥과 감성적인 필름 사진, 읽다 만 책들, 삐뚤빼뚤한 낙서 같은 것들이 공간을 채운다. 유럽 어딘가의 에어비앤비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는데, 버거 맛처럼 매장 분위기도 개성이 너무 세거나 과하지 않아 좋다. (참고로 벽의 알록달록한 낙서는 사장님이 직접 쓰고 그린 것이다. 조카가 놀러 와서 솜씨 좀 부리고 간 줄 알았다.)

부르크보드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76 1층
  • 화-일 11:30-19:30 (월 휴무)
  • @burg_board

[4]

오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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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아래 작은 바 오무사. 달콤한 와인과 칵테일, 디저트를 판매하는 이곳은 북적거리는 서촌 중심가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다. 경복궁역을 이제 막 나섰다면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15분에서 20분가량 한가로이 걸어 보자. 통인시장 입구와 효자베이커리를 지나쳐 어느새 새삼 고요해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거의 다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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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 ‘오무사’는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전구 가게에서 빌려 왔다. 가는 길에 깨지거나 불량품이 있을 수 있으니 괜히 먼 거리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전구 하나를 더 챙겨주는 주인장이 있는 가게다. “귀한 덤”을 얹어주는 그 마음에서 서촌의 작은 바를 운영하는 태도에 관한 힌트를 얻었다. 추워 보이는 손님에게 먼저 담요를 가져다주고, 서로의 술을 맛볼 수 있도록 여분의 잔을 건네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멀리까지 찾아와준 이들을 위한 다정한 시선이야말로 오무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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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조도와 차분한 톤의 나무 소재가 돋보이는 내부는 겨울 산장을 연상시킨다. 바 구역의 격자무늬나 입구에 피워 놓은 향을 비롯해 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도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바깥세상과는 분리된 것만 같은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술 한 잔과 함께 아늑한 휴식의 시간을 누려보자. 혼자 들러 사색에 잠기고 싶은 분들, 가까운 사람과 마주 앉아 조곤조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에게 방문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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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류를 취급하되 주 종목은 달콤하게 마실 수 있는 주정강화 와인과 와인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주정강화 와인이란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을 말한다. 포트, 셰리, 마데이라 등이 대표적이며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달큰한 맛이 특징. 와인과 시그니처 칵테일을 비롯해 위스키, 맥주, 논 알콜, 드립 커피까지 선택지의 폭이 넓다.

사진 속 메뉴는 오무사의 시그니처 칵테일 ‘백의 그림자’와 초콜릿 포트 아포가토, 레어치즈케이크. ‘백의 그림자’는 쑥으로 만든 압생트와 화이트 와인을 섞어 산뜻한 첫맛과 묵직한 끝맛의 조화가 절묘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부어 아포가토 형태로 먹는 달콤한 초콜릿 포트 와인은 잔술로 먹기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딱이다.

오무사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9길 1
  • 월-목 16:00-0:00 금 16:00-1:00 토 14:00-1:00 일 14:00-0:00
  • @bar.omusa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