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미술관의 혁명가들

안녕, 나는 미술관에 살고 싶은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다소 거창한 질문을 던져본다. 혁명은 무엇일까? 세상에 대변화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일을...
안녕, 나는 미술관에 살고 싶은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다소 거창한 질문을 던져본다.…

2023. 01. 16

안녕, 나는 미술관에 살고 싶은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다소 거창한 질문을 던져본다. 혁명은 무엇일까? 세상에 대변화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일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세상의 문법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정의를 새롭게 쓰는 것도 개인이라는 우주의 혁명 아닐까? 그런 혁명가들이 바로 미술관에 있다.


[1]
에르빈 부름 개인전
<나만 없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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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납작한 캔버스 위의 그림이 아니라 어떤 입체적인 작품, 무언가를 깎거나 뭉쳐서 만든 형상, 아니면 학교 앞 단군 할아버지 동상? 그것도 조각인가? 오스트리아의 조각가 에르빈 부름은 바로 이렇게 새삼스러운 질문-무엇이 조각이고, 어디까지가 조각인지를 궁금해했다. 그는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장르의 경계를 넘어 전방위적 탐구에 나선다. 이번 전시가 바로 이 주제에 대한 에르빈 부름 나름의 답변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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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모든 것이 조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도 조각이고, 그림도 조각이며, 하물며 전시를 보는 관람객도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조각인가? 여기에 대한 작가의 답이 재미있다. 사람이 살이 찌고 빠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있는 조각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몸을 ‘조각’해 보인다. ‘8일 만에 L 사이즈에서 XXL 사이즈 되는 법’이라는 책자형 작품인데, 이 안에는 8일간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해야 할 행동 강령들- 점심 먹고 낮잠 자기, 핫초코 1리터 마시기, 지방과 설탕이 가득한 음식 섭취하기 등을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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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전시에는 조각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나가는 작가의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발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또 작가의 작품을 손으로 만지면서 관람객이 조각의 일부가 되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보고 나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조각에 대해 마음의 거리를 한 뼘 좁힐 수 있을 것이다.

  • 기간 2022.12.7~2023.3.18
  • 장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
키키 스미스 개인전
<자유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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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일본산 종이에 포토그라비어, 에칭, 사포질, 69 x 90.2cm, 1994]

몸을 특별하게 바라본 작가가 또 있다.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키키 스미스는 신체를 주제로 한 작품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신체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그가 우리의 몸을 작품의 화두로 삼은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스스로의 몸을 피사체이자 실험체, 모델이자 대상으로 과감히 내던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신체의 부위별 크기를 왜곡해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한다거나, 머리카락을 복사기로 인쇄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나체를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한 뒤 동판에 새기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몸이라는 객체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새삼 자각하게 만든다.

1400_89667 [키키 스미스, 지하, 면 자카드 타피스트리, 293.4 x 190.5, 2012]

전시는 이 밖에도 설화, 신화, 종교 등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탄생시킨 140여 점을 소개한다. 작품은 조각,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지만 저마다 생동하는 에너지를 분출한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특히 한 여성이 늑대의 배를 가르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순간을 조각한 <황홀>은 쉽사리 앞을 떠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기간 2022.12. 15~2023.3. 12.
  •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
최우람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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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작품일 뿐인데, 가볍게 웃어넘기기 힘들 때가 있다. 이를테면 <미생>이나 <좋좋소> 같은 드라마를 볼 때. 그 속의 지난한 일상을 견뎌내는 캐릭터들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재미있게 보다가도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최우람 작가의 <작은 방주>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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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명의 사람이 4.5m의 거대하고 무거워 보이는 원탁을 짊어진 <원탁>이라는 작품이 특히 그렇다. 원탁 위에는 작은 공이 굴러다니는데,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테이블의 기울기를 끊임 없이 바꿔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쭈그렸다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한다. 모두가 함께 원탁을 받치고 있다 보니, 쉬고 싶어도 옆 사람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 이들은 어깨로, 머리로 원탁을 이고 있느라 정작 공은 바라볼 새도 없다.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어느새 동작에는 의미도 목적도 없이 반복되는 노동만이 남을 뿐이다. 관성적인 노동을 끊어낼 길 없는 우리의 일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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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 작가는 1990년대부터 ‘기계생명체’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는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살아 숨 쉬는 듯한 기계생명체를 만들고, 이들 사이의 서사를 만들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해왔다. 이를 통해 인간의 욕망, 경쟁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설치·조각, 영상·드로잉 등 49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특히 ‘살아 움직이는’ 작품이 많다. 특히 하나의 전시실을 거대한 배 한 척으로 가득 채운 작품 ‘작은 방주’는 놓치지 말 것. 앰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좌우로 도열한 35쌍의 노가 일제히 군무를 시작하고, 출렁이는 흑백의 물결을 만들어내며 항해를 시작하는 듯한 퍼포먼스는 관람객을 압도한다.

  • 기간 2022.9.9~2023.2.26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4]
박민준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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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관 탐험을 즐긴다면 이 전시만큼은 꼭 챙겨볼 것. 박민준 작가는 두 편의 소설을 집필하고 이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다양한 매체의 작품으로 구현해나가고 있다. 소설 <라포르 서커스>와 <두 개의 깃발>은 천재 곡예사인 형 라포와 평범한 동생 라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라포르 서커스 단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이번 전시는 글로 묘사된 캐릭터의 성격과 생김새, 그들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화려한 색감으로 되살려낸다.

39d8054c514a4b.resize_large [박민준, Tower of eternity, Gold leaf, oil on canvas, 220 x 145cm, 2021]

작품 속에는 자아를 지닌 거대한 동물, 요정 같은 인간 등 초현실적인 요소가 가득하지만, 섬세한 이미지 덕분에 지구 어디인가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리얼함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갤러리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이세계의 서커스장에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지도 모른다.

  • 기간 2022.12.21~2023.2.5
  • 장소 갤러리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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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전시, 공연, 와인에 대한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뉴술레터' 운영자. 뭐든 잘 타요. 계절도, 분위기도, 쏘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