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개콘보다 웃기고, 뉴스보다 날카로운

일이 없는 날엔 넷플릭스를 켠다. 딱히 봐야 할 게 있어서가 아니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집에서 심심할 때마다 냉장고를 여는 것과...
일이 없는 날엔 넷플릭스를 켠다. 딱히 봐야 할 게 있어서가 아니다. 목적도…

2017. 02. 14

일이 없는 날엔 넷플릭스를 켠다. 딱히 봐야 할 게 있어서가 아니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집에서 심심할 때마다 냉장고를 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내가 이래서 엄마한테 맨날 등짝 스매싱을 당한다). 요즘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다. 한 손엔 맥주, 다른 손엔 과자 봉지를 끼고 소파에 몸을 깊게 파묻는다. ‘그래 어디 얼마나 웃긴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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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넷플릭스엔 약 30개 정도의 스탠드 업 코미디가 있다. 거짓말 안 하고 거의 다 봤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것도 있고, 꺼이꺼이 포복절도하게 하는 것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익숙지 않은 장르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는 놀라운 장르다. 화려한 CG나 분장 같은 것 없이 오직 마이크 하나로 수만 명을 웃겨야 한다니. 전적으로 코미디언의 말발과 예리한 통찰력에만 의존해야 한다.

“다들 미드만 추천하길래…”

넷플릭스에 미드만 있는 줄 아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여러분을 스탠드업 코미디의 세계로 초대한다. 스탠드업 코미디 뉴비 여러분도 편하게 볼 수 있을 만한 작품으로 다섯 가지 골랐다.


앨리 웡: 베이비 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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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추천하는 작품이 바로 이 기사를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이 여자 완전 미쳤다. 임신 7개월, 볼록한 배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걸출한 입담을 쏟아낸다. 뾰족한 안경 사이로 빛나는 눈빛 만큼이나 결혼과 임신에 대한 통찰은 날카롭다. 여러분을 위해 앨리 웡의 공연에서 가장 무릎을 치며 봤던 부분을 캡처했다. 놀라운 언니다.

wong[이미지 출처:  NETFLIX 캡처]

루이스 C.K: Hilarious

3

오 마이 갓! 루이스 C.K의 스탠딩 코미디를 넷플릭스에서 보게 되다니. 벌써 몇몇 사람들은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이 남자의 공연을 본적이 있을 거다. 루이는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진 40대의 이혼남. 그는 퇴근길 지하철 내 옆자리에서 고개를 떨구며 졸고있는 아저씨같다. 아, 물론 어마어마하게 유머감각이 있는 아저씨긴 하지만. 인생은 매일매일 별로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는 ‘shit’ 같은 상황의 반복이지만 그의 코미디를 보면서 낄낄거리다 보면 내 인생만 이렇게 시시한 게 아니라는 일종의 따듯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louie[이미지 출처:  NETFLIX 캡처]

존 멀레이니: 더 컴백 키드

4

솔직히 별 기대 없었다. 사포처럼 거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엔 너무 고운 외모였으니까. 다른 코미디언들이 과장된 몸짓과 질펀한 성적 묘사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면, 존 멀레이니는 비교적 가볍게 툭툭 잽을 날리듯 웃긴다. 몸에 잘 맞는 쓰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 낭창낭창한 몸으로 무대를 헤집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도 잘 듣지만 약간 삐뚤어진 9살짜리 소년을 보는 기분이랄까. 볼 땐 별생각 없더라도, 잠자기 전에 생각나서 피식 웃게 되는 건, 존 멀레이니의 유머다.

meley[이미지 출처:  NETFLIX 캡처]

일라이자 확인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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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그렇다면 일라이자 언니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일라이자는 남에게(특히 내 남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여자의 속내를 낱낱이 까발린다. 와 이 언니가 여자들이 큰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는 모습을 흉내내는 걸 보는데, 이거 나보고 만든 거야? 그녀의 공연엔 유독 여자들의 휘파람 소리와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옆에 앉은 남자들은 아마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겠지. 미안, 하지만 언니가 하는 말은 다 사실인걸.

ilaza[이미지 출처:  NETFLIX 캡처]

가드 엘마레: 고삐 풀린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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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에디터H의 선택이다. 가드 엘마레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온 프랑스인이다. 에디터H는 분명 영어를 하는데도 불어의 향기가 낭낭하게 나는 이 남자의 발음에 매료된 것 같다(아무래도 그녀를 파리로 보내야겠다). 그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미국인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그의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웃고 있긴 하지만, 아마 속으로 뜨끔하고 있을걸?

ben[이미지 출처:  NETFLIX 캡처]

솔직히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면서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이들을 돌려까기의 달인들이니까. 웃기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쏟아내고, 인종과 성별, 계층을 가리지 않고 깐다. 헉 저렇게까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거야? 너무 심한거 아님? 하지만, 당신의 선비질을 잠시 접어두자. 스탠드업 코미디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개그는 개그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낄낄거리는 게 필요한 세상이니까.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