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PICK] 추석에 뭐 먹었어?

타코도 먹고, 파스타도 먹고, 탄두치 치킨도 먹고?
타코도 먹고, 파스타도 먹고, 탄두치 치킨도 먹고?

2022. 09. 15

안녕 에디터B다. 나는 먹는 얘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에 뭐 먹을지 생각하고,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 뭘 먹을지 논의하는 걸 즐긴다(지금은 식단 중이라 꼭 이렇지는 않다). 어떤 메뉴를 골랐고, 왜 골랐는지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그려진다. 작은 선택이 쌓여서 그 사람의 취향을 만드니까.

디에디트의 객원 에디터들에게 추석에 뭘 먹었는지 물었다. 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드물었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출장으로 튀르키예로 다녀온 에디터도 있었다. 11명의 에디터에겐 11가지의 추석이 있는 듯했다. 집안의 분위기와 서사가 그려지는 음식을 소개한다.


1400_retouched_--2

삼색 부침개 / 에디터 임현경 @dolce.hyun

“요즘 누가 제사를 지내나?”에서 ‘누’를 맡고 있다.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긴 종갓집 장녀의 삶은 고달프다. 8살 때부터 줄곧 엄마를 도와 제사 음식을 만들었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각종 전 담당이 됐다. 집마다 상에 오르는 음식이 다 다를 텐데, 우리 집에서는 명태전, 동그랑땡, 두부전 등 여러 전과 함께 삼색 부침개를 먹는다. 부침가루를 물에 개어 달궈진 팬에 얇게 둘러 크레이프 같이 부친다. 그 위에 다시마, 김치, 파를 순서대로 나란히 놓고 다시 얇게 반죽을 부어 재료들을 고정시킨다. 적당히 익기를 기다렸다가 앞뒤로 노릇하게 부쳐내면 완성. 제사가 끝난 뒤 식은 전을 조각조각 잘라다가 탕국에 말아 먹는 게 정석이라곤 하는데, 대개는 김치 부분만 흰쌀밥 위에 얹어 먹는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론 아무도 찾아오지 않게 된 ‘큰집’이지만, ‘유교 깡패’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매번 제사상을 차리고 조상님들을 모셔왔다. 조상 덕을 봤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전을 부치고 있을 게 아니라 어디 좋은 곳에 놀러 나갔을 것 같은데 이상하지 않냐며 불만을 제기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음식 정도는 사와도 되지 않냐고 조상님도 더 맛있게 드실 거라고 살포시 제안해봤지만, 역시 단칼에 거절당했다. 정성이 부족하다나. 아마 각자 살기 바빠 얼굴 보기 힘든 가족들이 명절에라도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 먹는 광경을 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런 아버지가 드디어, 마침내, 다음 구정을 끝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합의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명절이라니, 꿉꿉한 기름 냄새에서 해방된다니! 내년 추석이 벌써 기다려진다.


1400_retouched_-20

돼지갈비찜팀포지티브제로(TPZ),  BGM 매거진 에디터 김정현 @kimjeonghyeon_

우리집 갈비찜은 익산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물론 친가 식구들 사이에서만 무성한 소문인 것 같다. 추석과 설날을 비롯해 가족 행사 때마다 매번 밥상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메인 음식. 전날부터 양념에 푹 재워놓은 돼지고기를 밤과 당근, 대추와 함께 뜨끈하게 쪄낸 돼지갈비찜이다. 식사 시작과 함께 일단 커다란 덩이를 집어 든다. 뼈를 잡고 야무지게 뜯은 뒤, 쌀밥 한 숟갈 뜨고, 잘 익은 밤을 씹어먹고는 양념을 부어 밥을 비벼 먹는다. 이걸 몇 년을 먹었는데도 혼자 서울에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종종 그리워진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지 평택 사는 E도, 장항 사는 J도 명절만 되면 익산 갈 생각에 설렌다고 난리들이다. 아쉽지만 이번 추석에는 여러 사정으로 모이지 못했다. 얘들아, 형은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지롱~


1400_retouched_-1

복호두 앙버터 호두과자 / 에디터 정경화 @_hwa_0125

명절에 가족을 만나러 갈 때 내 담당이 있다. 바로 디저트. 맛있는 가게의 디저트를 사 가서 가족들에게 신문물을 전파하고 입맛을 당겨주는 것이 임무다. 지난 설에는 에뚜왈의 마들렌, 작년 추석에는 압구정공주떡의 흑임자 인절미였고 이번 추석 픽은 복호두의 앙버터 호두과자다. 사실 호두과자는 그냥도 맛있는데 버터까지 더했으니 맛없없 조합. 상온에 두고 버터가 살짝 녹을 즈음까지 기다렸다 먹으면 팥 스프레드와 부드럽게 어우러지면서 최고의 풍미를 낸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나씩 까먹다 보면 사라지는 알들이 아쉽다. 복호두와 함께 이번 추석 임무도 성공적!


1400_retouched_-8288

타코 / 에디터 차영우 @eunnok

차례를 간소화하자 시간이 생겼다. 연휴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는 일에 드는 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 결과, 연휴 때 하루 정도는 귀성하지 않는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났다. 그래서 올해 추석에는? 타코를 먹었다. 토르티야 안에 넣는 속재료에 따라 맛이 전혀 달라지니까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가볍게 먹기 좋아서 부리토보다는 타코를 좋아한다. 다만 같이 먹으러 갈 의로운 친구를 찾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어서 “타코를 먹으러 가자”라고 먼저 말하고 동료를 구해야 한다. 이번 추석에는 다행히 의로운 친구가 응해주었다. 언젠가 친구들을 불러모아 타코 파티를 하고 싶다는 계획만 가지고 있다. (음식점은 한남동에 있는 타크 tac @tac.seoul)


1400_retouched_-1-2 1400_retouched_-4

파케리 파스타, 추석 블렌딩 / 커피 칼럼니스트 심재범 @oz_barista

차례를 지내지 않는 우리 가족은 추석 연휴 음식이 자유롭다. 이번 추석 연휴 첫날에 싸모님이 파케리 알리오 올리오 호박 파스타를 하사하시었다. 호박과 선드라이 토마토를 함께하는 알리오 올리오 소스와 함께 녹진하면서 경쾌한 파케리 파스타가 참 맛있었다. 커다란 파케리 파스타를 조금씩 잘라 먹어 보니, 특제 올리브 믹스의 감칠맛과 훈연 파프리카의 단맛과 매콤한 맛까지 어울렸다.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커피 리브레의 추석 블렌딩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마셨다. 싸모님은 단맛, 여운, 질감의 임팩트가 선명한 리브레 커피에 별 다섯 개를 하사하시였다. 문득, 이만하면 참 괜찮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400_retouched_-

토끼소주 선비진 / 바이브랜드 에디터 김정년 @avalanche____ / buybrand.kr

선비진은 토끼소주에서 출시한 고도수 진이다. 면적이 넓은 유리잔에 따라 마시면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증류주. 얼음과 토닉워터를 얹어 마구 뒤흔들면 즉석에서 웰메이드 칵테일 완성. 향미가 빼어난데 도수까지 높으니 손이 척척 간다. 힙한 큐레이션에 나서는 편집샵이나 지역 내 주류 바틀샵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국산 증류주다. 추석 1주일 전, 더현대서울 나이스웨더에서 ‘오크 숙성’ 버전을 발견. 곧바로 결제에 나섰다. 1주일 만에 바틀 하나를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명절 내내 만난 고향 친구들이 좋아한 덕이다. 고단했던 사회생활을 위로하며 절반, 아기 돌보느라 고생했다고 절반. 2말 3초 결혼적령기를 맞이한 동무들과 행복을 논하며 점잖게 첨잔을 이어간다. 토닉워터와 섞여 달콤하게 목을 적시는 48도 술이 목구멍을 뜨끈하게 적신다. 추석이 지나면 무엇이 우리 인생을 뜨끈하게 만들 것인지도 생각해 본다.


1400_retouched_-1053260

탄두리 치킨 / 디에디트 에디터B @summer_editor

추석에 탄두리 치킨이라니. 사연은 이렇다. 부모님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셨다. 나는 고향 방문을 10월 초로 미루고, 연휴 동안 서울에만 있었다. 꼼짝없이 배달 치킨만 먹겠구나 싶었는데, 독일로 유학을 떠난 줄 알았던 친구C에게 카톡이 왔다. “잘 지내냐? 나 서울 왔다.” 그렇게 탄두리 치킨 회동을 하게 되었다. 아, 메뉴 선정은 내가 했다. 오래전부터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되었을 뿐이다. 이 식당은 <비정상회담>에서 럭키가 고향의 맛을 완벽히 재현한 곳이라고 강력 추천한 곳이다. 이름은 헬로 인디아. 뭄바이의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그게 뭔데?) 헬로 인디아에 가봐도 좋겠다. 인도식 볶음밥, 면 요리, 각종 커리 등 메뉴판만 읽어도 타지마할이 머리 위로 선명히 그려지는 인도 음식으로 가득하다.


1400_retouched_-4645

친구가 가져온 전 / 1.5℃ 에디터 조서형 @veenu.82

“늘 먹던 거 말고요” 이번 추석에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구하지 못할 것 같아 처음부터 포기했다. 대신 집에서 밀린 일을 걱정하다가 책을 읽다가 했다. 추석 다음 날엔 다른 집 추석 음식을 먹었다. 고향에 다녀온 친구가 명절 음식을 싸 왔다. 어려서 나는 남의 집에서 밥 먹기를 좋아했다. 평소와 다른 밥을 먹으며 친구의 먹고사는 일을 상상하곤 했다. 친구가 정읍의 집에서 가져온 전을 에어프라이에 돌렸다. 속까지 뜨거워진 전을 종류별로 맛봤다. 친구네는 해산물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갑오징어, 대구, 새우 같은 게 있었다. 우리 집은 다들 비린내를 좋아하지 않아 생선 전이 거의 없다. 친구네는 전에 쑥갓 잎을 얹어 구웠다. 나무처럼 예뻤다. 우리 집은 청고추와 홍고추를 얇게 썰어 올렸다. 세상은 넓고 전은 다양하고 명절 연휴는 짧다.


1400_retouched_--3

스팸 / 헵매거진 에디터 남필우  @nampilwoo

“LA 갈비를 꼭 이야기할 테야!”라는 의지를 꺾어버린 주인공은 ‘스팸’이다. 명절 선물로 흔히 오가는 스팸을 추석에 먹었다고 특별하게 자랑하는 게 이상해 보일 테지만, 이번에는 포인트가 약간 다르다.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명절 때마다 동료 선물 기획하는 역할을 하곤 하는데, 소위 SNS에 자랑할 법한 트렌디한 것들을 늘 찾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범한 품목인 스팸을 선물하며, 스팸이란 브랜드의 히스토리와 왜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명절 선물이 되어 있는지가 잘 설명되어 있는 동영상을 함께 제공했고, 동시에 스팸요리 레시피까지 잔뜩 모아 링크트리로 공유했다. 소떡소떡의 자리를 넘보는 ‘스떡스떡’, 백종원 레시피로 유명해진 ‘스팸라면’, 통스팸 사이에 칼집을 내 치즈를 넣은 ‘스팸 아코디언’, 초밥의 스팸 버전인 ‘하와이안 무스비’, 전의 세계를 장악할 ‘스팸깻잎전’ 등.. 반응은 뜨거웠고, 난 그날 바로 스팸깻잎전을 해 먹었다. 극강의 미니멀인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 다음으로 최고의 조합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 링크트리)


1400_retouched_-005

기내식 / SRT매거진 기자 김은아  @una3090

추석 연휴에 맞춰 해외 출장을 떠나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그러니까 꼭 2년 8개월 만의 출국이었다. 목적지는 튀르키예. 그사이 간간이 국내선을 탔기 때문에 비행기에 탈 때 능숙하게 신발을 벗지 않고 올랐지만, 기내식은 달랐다. 이륙 후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고, 승무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일 때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치킨과 생선 중에 뭘 고를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와’잍ㅌ 와인”이라고 속으로 혀도 굴려보고. 그렇게 받아든 한 상. 찜과 구이 사이에 있는 대구 요리, 참기름과 고추장이 드레싱(?)인 샐러드, 김치, 당근케이크라고 주장하는 어떤 디저트, 그리고 튀르키예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 솔직히 맛으로 따지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원래 기내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니까. 웅웅대는 비행기의 소음, 창밖의 구름, 작은 모니터로 나오는 영화야말로 진정한 기내식의 메인요리 아닌지. 너무 오랜만이라 낯선 기내식의 조명, 온도, 습도가 다시 일상이 되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본다.


1400_retouched_-4732

제사 대신 파티 / 조향사 전아론 @ahro_official  ahro.co.kr

9월 9일. 이번 추석 연휴의 첫날은 아빠의 기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5년이 지난해,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남은 우리 가족은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동생. 이렇게 셋뿐이었고 엄마는 인천에서, 나는 남편과 서울에서, 그리고 동생은 약혼자와 파리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 예정이었다. 기일은 휴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제사상을 엄마가 혼자 준비해야 할 것이 뻔했다. 게다가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혼자 사는 엄마가 절대 다 먹을 수 없는 종류와 양이었다. 우리에게 바리바리 싸준다 해도, 버려지는 것은 매한가지. 어딜 보나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빠가 여전히 그리웠고, 아빠의 생일과 기일만큼은 특별한 날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가 아니라 파티를 선택했다. 그날만큼은 하루종일 아빠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파티.

파티의 룰은 간단하다. 아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최대한 성대하게 준비한다. 이날은 제철을 맞이한 꽃게를 잔뜩 쌓아두고, 선물 받은 좋은 한우도 준비했다. 파리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빠에게 가져다주자’고 챙겨왔던 푸아그라와 리예뜨도 함께였다.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했던 아빠의 초딩 입맛에 맞춰서, 요즘 스타일의 피자를 알려드리자며 잭슨 피자의 ‘멜팅 치즈 버거’도 사 왔다. (버거에 들어가는 조합을 피자에 접목시켜 만든, 버거 맛이 나는 피자다!) 물론 좋은 술도 빠지면 안 된다. 올해에는 한국에 잠깐 들렀던 동생이 프랑스에서 공수해준 샴페인과 레드 와인으로 잔을 채웠다. 새삼 아빠와 제대로 된 샴페인을 마신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마 샴페인, 엄청 좋아하셨겠지? 파티를 위해 아빠가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순간순간이, 참 즐겁고 가슴 아프다. 먹는다는 행위는 살아있는 사람만 가능하다는 게, 새삼 절절히 떠올라서.

우리는 그렇게 마련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아빠 사진을 자리에 함께 두고, 와인을 마시며 아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기억들, 추억들, (우리가 기억하는) 아빠의 무용담…. 그러다 보면 나와 내 동생의 어린 시절이나 엄마의 젊었을 적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서로 조금씩 오해하고 있던 기억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서 다시금 좋은 추억으로 매만져지기도 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할 정도가 되면 아빠가 좋아하던 가곡을 틀어놓고 떼창을 하는 웃픈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말이다. 여전히 나는 이 파티에서 매번 눈물이 터지고, “아빠가 어디 아주 멀리 여행 갔다가 이제 돌아오는 거면 좋겠다”고 술주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형식적인 제사보다 우리의 파티가 아빠를 더 생생하고 즐겁게 기릴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분명 아빠가 더 맛있게 먹고 마셨을 것 같아서, 나는 다행히 울면서도 웃을 수 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