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울릉도에서 캠핑하는 법

출항부터 맛집까지
출항부터 맛집까지

2022. 09. 20

안녕, 디에디트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이번 주엔 태고의 섬, 새들의 고향 경상북도 울릉군에 다녀온 얘기를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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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이 고향이지만 울릉도는 처음이다. 포항은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섬 여행은 육지의 것과 다른 매력이 있지만 역시 마음먹는 일이 어렵다. 육지에서 133km 떨어져 있는 섬이라면 더 그렇다. 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멀미에 시달릴 수도 있고 기상에 따라 섬에 고립되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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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드나드는 일이 힘들다 보니 울릉도는 인간의 손을 덜 탔다.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여전히 남아 있다.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제주도와 같지만 울릉도에는 완급이 없다. 점성이 강한 용암이 만든 격정과 극단뿐이다. 동쪽 끝 신비의 섬에서 텐트를 쳐 놓고 해수욕을 하며 여름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1]
“뭐 타고 가?”
울릉행 크루즈 뉴씨다오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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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포항까지 KTX를 타고 이동했다. 포항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항구에 내린 다음 간단한 수속을 거쳐 배에 탔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울릉도에 도착했다. 집에서 오후 네 시에 출발해 울릉도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였다. 약 열다섯 시간이 걸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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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씨다오펄 호는 무려 8층짜리 거대 크루즈다. 기내에 편의점, 식당, 카페가 다 있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야식을 사다가 식당에 앉아서 창밖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6인실과 4인실이 있고 더 좋은 컨디션을 원한다면 2인실을 신청할 수도 있다. 경험상 6인실도 충분히 쾌적하다. 샤워까지 할 수 있는 화장실이 객실마다 있고 침대마다 머리 위에 콘센트와 독서 등이 있다. 책을 읽고 휴대폰을 만지다가 스륵 잠이 드는 호화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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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삼다도라면 울릉도는 오다삼무(五多三無)의 섬이다.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고 도둑, 공해, 뱀이 없다. 울릉도의 볼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패키지 투어나 택시 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해변도로를 달리며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영지버섯 바위 등 이색 암석 이야기와 고전 설화를 들을 수 있다. 잘 정리된 요점 정리 노트 같은 효율을 보인다. 이 외에도 차를 렌트해 여행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와 일행은 버스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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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버스는 배차 시간이 기본 두 시간이다. 총 네 대의 버스가 두 대는 시계 방향으로 두 대는 반시계 방향으로 순환하는 구조다. 음식점이나 관광지에 버스표가 붙어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며칠 지나면 시간을 대충 외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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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KTX와 셔틀버스, 배를 묶은 패키지 아이템도 있다. ‘KTX 레일쉽’이라 검색하면 나온다. 포항 외에도 강릉, 속초, 울진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다.

Tip.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단출하게 짐을 싸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갑을 집에 두고 갔다. 배를 타려고 보니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처럼 당연한 사실을 놓친 채 여행을 시작하려 했다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여객선 터미널에 무료로 주민등록증 초본을 뽑을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요즘은 모바일로도 발급할 수 있다.


[2]
“어디서 자?”
울릉도 독도 해양연구기지 앞바다에 텐트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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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챙겼다. 고생스러울지라도 울릉도에 밀착할 수 있는 시간일 거라 기대해서다. 울릉도에도 캠핑장이 있다. ‘국민여가 캠핑장’은 미리 예약해서 사용할 수 있고 캠핑 사이트 외에 카라반과 생활관을 함께 운영한다. ‘학포 야영장’은 아래로는 놀기 좋은 학포 해변이 펼쳐져 있어 풍경과 위치가 좋다. 인기가 많은 만큼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고 최대 3일까지 머물 수 있다. 두 곳 모두 화장실, 개수대, 샤워실이 잘 관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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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는 다행히 캠핑장 외에도 해수욕장 옆이나 전망대 데크처럼 텐트를 칠 만한 곳이 있다. 특히 해수욕장 근처는 샤워 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 물을 구하기가 쉽다. 파도가 높을 때는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지는 편이 좋고 바람이 거세면 낙석 위험이 있는 절벽을 피해야 한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는 것도 좋지만 자는 사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물가는 피하고 텐트 치려는 자리에 부서진 돌 조각이 있는지 확인해 낙석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먼저 확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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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울릉도 북면 현포리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근처 대풍감에 사이트를 만들었다. 대풍감은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이란 뜻을 가졌다. 바람이 육지를 향해 불기를 기다렸다 출항하는 옛 울릉도의 선원을 떠올리며 텐트를 쳤다. 울릉도 북면에 위치해 파도가 잔잔했다. 근처에 다이빙 스팟과 해수욕장이 모두 있는데도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현포 파출소에서 무료로 구명조끼도 대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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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30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그 역시 여행의 적당히 불편한 재미가 되어 주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면 노을을 볼 수 있다. 다만 강한 조명을 장착한 오징어잡이 배도 밤새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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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울릉도에도 각종 숙소가 있다. 리조트, 모텔, 펜션, 민박, 글램핑장, 게스트하우스, 호텔까지 다 있다. 날씨가 안 좋아지면 언제든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다.

 Tip. 인기 있는 해변 박지로는 내수전몽돌해변과 사동해수욕장, 학포 해변 등이 있다. 바다에 들어가면 열대어가 헤엄치고 돌에 붙은 뿔소라가 보이지만 함부로 채취했다가 2,000만 원 상당의 벌금을 물게 되니 조심할 것.


[3]
“수영 말고는 뭐해?”
성인봉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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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는 높이 986.5m의 성인봉이 있다. 성스러운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고도 하고 안개가 자욱한 배경 때문에 성스러운 사람들이 놀던 장소라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단풍잎처럼 생긴 우산고로쇠나무, 너도밤나무, 섬단풍, 섬피나무, 마가목을 비롯한 온갖 희귀식물이 살고 있는 군락지로 산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우리에게 명이나물로 익숙한 산마늘도 널려 있다. 명이나물이란 이름은 춘궁기에 울릉도 사람의 명을 이어줬다 하여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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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나리분지 사이에는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계단을 올라갈 것이냐, 내려올 것이냐 선택해 코스를 짜면 된다. 우리는 KBS 중계소에서 팔각정을 거쳐 정상을 찍고 나리분지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맛있는 것부터 먹는 타입의 인간들이라 더 나은 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총 세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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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봉으로 가는 길에는 특히 고사리가 많다. 고생대 무렵 지구에 출현에 중생대에 공룡과 함께 번성한 고사리 군락지에서는 쥬라기월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한낮의 온도가 30도에 가까운 날이었는데도 산속의 공기는 차가웠다. 오랜 시간을 걸쳐 풍화된 산이라 암석보다 흙길이 많아 오르기 평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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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 뱡향으로 내려오면 신령수 약수터가 있다. 마실 물이 흐르고 발을 담글 기다란 욕조가 있다. 계곡물이 솟는 자리라 물이 아주 차다. 운동선수가 근육의 회복을 위해 찬 물 샤워를 하듯 종아리까지 담갔다가 쉬어 가면 된다.

 Tip. 나리분지에는 울릉도 전통의 너와집이 있다. 외지인이 숙소로 쓸 수 있도록 만든 집도 몇 개 있다. 겨울이 되어 마을에 눈이 쌓이면 특히 동화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4]
“밥은?”
천부항 근처 만광식당 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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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항 근처에 산을 등지고 작고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다. 물회를 파는 만광식당이다. 할머니와 며느리가 요리를 하고 할아버지가 음식을 나른다. 꽁치, 오징어, 열기, 해삼 물회를 2만 원에 판다. 이 집이 꽁치 물회의 원조라고 하기에 꽁치 물회와 광어 물회를 하나씩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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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는 천연 에어컨이라 불리는 ‘풍혈’이 흐른다. 산기슭의 찬 기운이 앉은 자리 사이로 흐른다. 겨울에는 오히려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풍혈 근처는 단체석이라 다른 자리에 앉았지만 가게의 신비감이 상승하는 데는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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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을 뒤집어쓴 물회를 생각했는데 회무침에 가까운 비주얼이 등장했다. 대충 섞어 몇 점 집어 먹으니 손님상을 치우느라 분주하던 주인 할아버지가 더 섞어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만광식당의 물회는 양념이 배고 자체에서 물이 나올 때까지 3분가량 충분히 섞어야 한다. 그다음에 식수를 반 컵 정도 넣고 밥을 비벼 먹는다. 처음부터 물과 밥을 다 넣어버리면 재료에 맛이 들지 않는다.

꽁치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져 맛있었지만 동행한 친구들은 먹기가 어렵다고 했다. 날 것이 아닌 메뉴를 원한다면 오징어부추전이나 따개비새알수제비 같은 음식도 있다. 우리는 전을 시켰다. 오징어가 넉넉하게 들어간 부침개라 사이드가 아닌 메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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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광식당 옆에는 모이세 카페가 있다.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사장님이 율무를 직접 갈아 만들었다며 냉율무를 자꾸 추천한다. 엉겁결에 시켰는데 잘한 일이었다. 만광식당에서 물회로 적당히 배를 채웠다면 냉율무로 마무리할 것을 추천한다.

만광식당

  • 경북 울릉군 북면 울릉순환로 3112
  • 054-791-6004

모이세 카페

  •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길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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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울릉도 여행을 검색하면 비싼 물가와 불친절한 상인 얘기가 많다. 그리고 만광식당 후기에는 먹는 방법을 처음부터 얘기해주지 않고 중간에 벌컥 화를 내며 알려줬다던지, 그릇을 탁탁 내려놨다던지, 달라고 하지 않으니 밑반찬을 주지 않았다던지, 일어나기도 전에 테이블을 치웠다는 화가 난 리뷰가 많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이 가격에 냉동 꽁치를 줬다고 불평하던 사람이 있었다. 얼린 꽁치를 쓰는 것은 만광식당의 레시피다. 이렇게 해야 꽁치 비린내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다정한 방식의 친절은 아니지만 사장님 나름의 친절이 있는 식당이다.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