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치앙마이의 낮, 방콕의 밤

안녕,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 정경화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세계는 여전히 시끌시끌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해외로 휴가를 떠났다. 나...
안녕,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 정경화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세계는 여전히 시끌시끌하지만,…

2022. 09. 04

안녕,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 정경화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세계는 여전히 시끌시끌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해외로 휴가를 떠났다. 나 또한 그 틈에 끼어 여름 도피 여행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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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이유가 지난한 일상을 벗어나서인지, 낯선 이국의 풍경 때문인지, 오랜만의 인천공항이어서인지, 여행 그 자체인지, 아니면 그 모두 다인지 채 되짚어 보기도 전에 끝나버린 이번 태국 여행. 7월 22일 방콕행 비행기는 그렇게 설렌 나와 사람들을 가득 싣고 축축한 여름 밤하늘에 기체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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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떨어진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치앙마이행 아침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낯선 장소와 시간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음식. 우리는 곧장 공항의 푸드코트로 향했다. 낯선 타이 음식을 먹고 편의점에서 생경한 주황빛의 타이 밀크티를 마시고 있으니 점차 이 세계에 녹아 들어가는 기분이다. 7박 8일의 여행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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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행한 도시는 치앙마이와 방콕. 방콕은 서울을 닮은 글로벌 메가시티의 느낌이다. 시카고는 미국이지만, 뉴욕은 뉴욕인 것처럼 방콕은 그냥 방콕이다. 반면 치앙마이에는 태국만의 정체성이 좀 더 살아있다. MBTI에 비유하자면, 방콕은 엣프피, 치앙마이는 인프피 느낌이랄까. 정적이고 순수한 태국을 느끼고 싶다면 치앙마이를, 화려하고 역동적인 태국을 경험하고 싶다면 방콕에 가야 한다. 아, 그리고 음식은 어딜 가나 맛있다. 저렴한 물가에 한층 더 즐거운 기분이 난다.

1400_bangkok_retouched_-2 [반투명한 건물의 카페 란딘]

치앙마이에서 처음 우리를 반긴 곳은 란딘(Lan Din)이라는 카페다. 현지의 예술가들이 주도해 만든 마을인 반캉왓(Baan kang wat) 근처에 숙소를 구했는데, 숙소로 향하는 길에 보이던 이곳이 딱 상상했던 치앙마이의 모습이라 절로 탄성이 나왔다. 정말이지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를 원했답니다.

Lan Din

  • เลขที่ 89 7 ถนน สุเทพ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 08:00 –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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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카페로 향했다. 초록초록한 숲속에는 란딘과 함께 얼웨이즈 로프 유(Always loaf you)라는 귀여운 이름의 빵집, 건강한 로컬 식품을 파는 숍, 향초를 만드는 스튜디오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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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가운데의 공터에서는 작게 마켓이 열리고 있고, 한쪽에서는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다. 가사는 모르지만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흥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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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 스튜디오에서 향을 시향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가방에 한가득이다. 이날 구입한 향 제품을 뿌리고 잠드는 것이 한국에 돌아와 매일 밤의 루틴이 되었다. 여행을 가면 꼭 그곳의 향 제품을 구입해보기를.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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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여행의 매력은 시장이다. 방콕의 짜뚜짝 시장, 치앙마이의 선데이 마켓, 나이트 바자 등 태국에도 많은 시장이 있다. 그중 방콕의 조드 페어(Jodd fair)는 최근 태국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야시장이다.

Jodd fair

  • Rama IX Rd, Huai Khwang, Bangkok 10310 태국
  • 17:00 –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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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를 중심으로 가게도 사람도 빽빽하다. 고추와 레몬그라스를 잔뜩 넣어 만든 새콤칼칼한 육수에 돼지 등뼈를 푹 삶아 등갈비처럼 뜯어 먹는 요리인 랭쌥이 특히 유명하고 초밥과 볶음밥, 코코넛 주스와 맥주, 칵테일, 커피, 아이스크림 등 음식부터 디저트까지 골라가며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코리안 팬케잌, 호떡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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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냄새를 맡으니 허기가 잔뜩 몰려온다. 서둘러 가게 분위기를 스캔하고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고민하는 것을 어찌 알고 옆자리의 태국 언니들이 자신들이 먹는 메뉴를 추천해준다. 여행 내내 느꼈지만, 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웃음이 예쁘다. 그들을 따라 랭쌥, 그리고 바질과 돼지고기를 휘리릭 볶아 튀기듯 구운 계란을 올린 볶음밥을 주문하고, 옆 가게에서 시원한 맥주를 사 온다. 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저녁의 끈끈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짠맛과 매운맛이 입안으로 퍼지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동남아 여름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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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태국 사람들은 왜 이리 커피에 진심인 건지. 야시장에서도 라마르조꼬 커피 머신을 가져다 놓고 에스프레소를 내려 주는 가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야외에 늘어놓은 테이블에서는 한국 소주와 맥주를 먹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아서 여기가 한국인가 싶다. 오늘은 아직 수요일인데 소맥을 말아먹는 방콕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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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풍경이 시장이라면, 아침을 여는 장소는 공원이다. 방콕의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룸피니 공원은 57만㎡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숲이다. 원래는 왕실의 소유였다가 지금은 시민을 위한 휴식처가 된 방콕 최초의 공원이라고 한다.

Lumphini Park

  • 192 Wireless Rd, Lumphini, Pathum Wan, Bangkok 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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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숲과 엄청난 규모의 인공 호수, 그리고 공원을 둘러싼 수많은 고층 빌딩이 만드는 스카이라인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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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현지인부터 근처에서 숙박하는 관광객까지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공원 주변으로는 갖가지 노점이 들어서 음식과 과일을 팔고, 낮이면 고양이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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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풍경은 바로 도마뱀. 코모도 도마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마뱀이라는 물왕도마뱀이 유유히 기어 다니는 광경을 보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다가도, 이내 느릿한 모습에 속도를 맞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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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 머무는 동안 두 번 공원에 갔고, 한번은 오후 1시의 뙤약볕 아래에서 반바지를 입은 채로 자전거를 탔는데, 허벅지가 몽땅 타버렸다. 더위에 푹 고아지는 느낌을 경험했다. 만약 낮에 간다면 생수 한 병은 꼭 챙겨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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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수완나품 공항은 한층 눈에 익은 풍경으로 우릴 반긴다. 갓 태국에 도착해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로 여행을 시작하던 그 기분이 공항을 떠나기 전부터 벌써 그리워진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고 썼다. 태국을 다녀온 나의 세계는 이렇게 또 한 뼘 더 넓어진다. 회사에서 점심 먹고 나른한 오후가 되면 탁상 달력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또 언제 어디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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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정경화

공간, 건축 관련 글을 씁니다. 낮에도, 밤에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5년 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