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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GO, 뒷북을 울려라

안녕, 여러분. 리뷰 요정 에디터H다. 2016년엔 여러 가지를 이뤘는데 한 가지를 못 해봤다. 바로 포켓몬 고. 나이언틱의 증강현실 모바일게임 포켓몬...
안녕, 여러분. 리뷰 요정 에디터H다. 2016년엔 여러 가지를 이뤘는데 한 가지를 못…

2017. 01. 25

안녕, 여러분. 리뷰 요정 에디터H다. 2016년엔 여러 가지를 이뤘는데 한 가지를 못 해봤다. 바로 포켓몬 고. 나이언틱의 증강현실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가 드디어 한국 앱스토어에 등장했다. 뒷북인 거 알고 있다. 짝사랑하던 오빠가 동네 계집애들 다 한 번씩 사귀고 나서 나한테 대쉬한 것 같은 찝찝함이 남지만 왔으니 됐다.

그래서 직접 해봤다. 하루종일. 아니, 이게 뭐라고 전 세계가 난리였던 거지? 이게 재밌어요? 오빠 겨우 이런 사람이었어? 라고 말하고 싶은데 넘나 재밌다. 영하 12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스마트폰을 붙들고 걸어 다녔다.

아침에 상쾌하게 변기에 앉아 튜토리얼을 시작했다. 화장실 타일 위에 나타난 첫 번째 포켓몬을 잡았다. 파이리였다. 몬스터볼을 손가락으로 휙, 던지니 쉽게 포획된다. 뭐야, 이건.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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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이 많아서 오전이 훅 지나버렸다. 택시 탄 김에 여유가 생겨 게임을 열어보니 못생긴 두 번째 포켓몬이 등장한다. 야외 플레이는 처음이라 괜히 떨린다. 택시 뒷좌석에서 몬스터볼을 이리저리 던진다. 어째서인지 자꾸 빗맞아서 포획 실패. 몬스터볼을 여섯 개나 낭비하고 나서야 못생긴 쁘사이저 따위를 잡을 수 있었다. 별거 아닌데 가슴 속에 묘한 성취감이 싹튼다. 적금 통장에 돈을 넣은 것처럼 뿌듯하다. 돈…아니 포켓몬을 더 모으고 싶어져버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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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선 포켓몬이 잘 잡힌다는 풍문을 듣고, 외부 미팅 후에 카페에 앉아 아이폰을 다시 꺼냈다. 에디터M의 노란 머리 주변으로 주뱃이라는 못난이가 날아다닌다. 또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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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에서만 열댓 마리를 잡았다. 새로운 포켓몬이 보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밖에 나가면 더 많겠지? 자꾸만 나가서 걷고 싶다. 아까 말했듯 영하 12도였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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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도 아이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에디터M이 춥지도 않냐며, 주책 떨지 말라고 잔소리를 한다. 쟤도 포획해버리고 싶다. 오늘따라 고기가 땡겨서 오겹살을 구우러 갔는데, 옆 테이블에 엄청 귀여운 포켓몬이 나타났다. 두리뭉실한 바디라인이 내 모습 같다.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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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엔 버스에 앉아 화면에 시선 고정. 1월 24일 밤, 버스에서 과년한데 귀여운 처자가 30분 내내 포켓몬만 잡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 나다. 버스로 이동하니 걸어 다닐 때보다, 더 많은 포켓몬이 눈에 띈다. 내가 좋아하는 이상해씨도 나타났다. 아아아아아아아앙, 널 잡을 거야!

그런데 아무리 몬스터볼을 던져서 포획해도 자꾸만 빠져나온다. 이상해씨는 볼에서 나오고, 나는 욕이 나온다. 장난치니? 열 번을 넘게 시도했는데 계속 실패다. 이렇게 내 몬스터볼이 바닥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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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파덕이 나왔는데 왜 잡지를 못하니… ‘볼이 없습니다’라는 글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현질을 고민한다. 일단은 노가다를 선택했다.

 pogo10다행히 버스가 지나가는 길에 무수히 많은 포켓스톱이 보인다. 몬스터볼 같은 아이템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버스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포켓스톱이 내 사정권에 들어오면 지나가버리기 전에 재빨리 아이템을 따 먹는다.

버스가 오늘따라 빨리 달리는 것 같다. 점점 집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초조하다. 나는 아직 사냥에 목마른데. 그래서 결정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영하 12도의 추위를 견디며,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모바일 게임 주제에 날 걷게 하다니. 건방져. 손이 얼어붙을 것 같지만 참을 수 있다. 하루는 거뜬히 버티는 아이폰7 플러스의 배터리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버틸 수 있다! 나는 포켓몬 트레이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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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갑자기 너무 썰렁해졌다. 집주변으로 가까이 갈수록 포켓스톱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다. 포켓몬도 나오지 않는다. 뭐야. 우리 동네 시골이에요? 다들 어디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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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의 오지인 듯한 우리집에 도착했다. 아이폰을 충전하며 오늘 잡은 포켓몬들을 다시 구경했다. 꽤 많이 잡았고, 레벨 6을 찍었다. 내일은 더 많이 걸어야겠다. 알도 부화시키고, 향로도 피우고, 체육관에도 가봐야지.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외장 배터리도 꼭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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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이미 다 해본 게임을, 6개월이나 늦게 뒷북치며 열광하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다. 작년에 포켓몬 고 열풍을 보며 (해보지도 못한 주제에) 기술의 힘이 아니라 콘텐츠의 저력이라고 잘난 척 했던 기억이 난다. 직접 해보니 더 실감한다. 증강현실이나 GPS는 도구일 뿐이다. 내일을 기다리며 설레는 이 마음의 근원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캐릭터다. 이 중독성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금세 질릴지도 모르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포동포동한 피카츄를 잡고 싶다. 다들 한 마리씩 데리고 있던데…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