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깃털 같이 가벼운 백팩 주세요

안녕. 열흘째 집에서 쉬고 있는 바깥쟁이 조서형이다. “이 산에서 내려가면 꼭 나도 BPL한다!” 쑤셔오는 무릎을 부여잡고 2주 전 나는 말했다....
안녕. 열흘째 집에서 쉬고 있는 바깥쟁이 조서형이다. “이 산에서 내려가면 꼭 나도…

2022. 06. 28

안녕. 열흘째 집에서 쉬고 있는 바깥쟁이 조서형이다. “이 산에서 내려가면 꼭 나도 BPL한다!” 쑤셔오는 무릎을 부여잡고 2주 전 나는 말했다. 새로 생긴 지하철역 근처에 등산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섯 명이서 백패킹을 갔다. 한 명은 BPL이고 나머지는 아니었다. BPL은 ‘BackPacking Light’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백패킹을 가볍게 다니는 일을 말한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 장거리 하이커들이 만든 개념으로 ‘경량 백패킹’ 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비가 촉촉하게 내린 날 커다란 가방을 메고 휘청거리며 산을 탔다. 풋살을 하다 다친 발목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BPL이 아닌 넷은 배워서라도 경량으로 갈아타겠다며 이를 갈았다. 도시로 내려오자마자 나는 성수동 BPL의 성지 ‘하이커워크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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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백패킹을 시작하고 싶다고요? 별거 없어요. 적게 가져가면 돼요.”

하이커워크샵의 하준호 대표는 말했다. BPL은 주로 10kg 이내의 짐을 진 백패킹을 말한다. 정해진 수치나 고정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너 짐 9kg? 경량 백패커네. 너 짐 10kg? 넌 경량 탈락” 같은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대표의 말이 맞다.

“경량 백패킹을 시작한다면 여름이 딱이죠. 동계와 다르게 30L 가방에도 준비물이 충분히 들어가니까요.”

여름 짐에는 두툼하고 무거운 보온 장비가 빠진다. 겨울보다 칼로리 소모가 덜해 식량을 많이 챙기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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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호 대표는 패션 전공자다. 졸업한 다음엔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패턴사로 일했다. MYOG(Make Your Own Gear) 문화가 유행하던 때 재봉틀 앞에 앉아 자기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으로 만든 가방 대신 개인적 활용도에 맞출 수 있어 좋았다. 그는 그렇게 종종 주변 사람에게 하나씩 선물하고, 어쩌다 제작 의뢰도 받고, 로고를 만들어 붙이기도 하며 회사와 브랜드 일을 병행했다. 그러다 지난 2020년 3월 회사를 그만두고 성수동에 작업실 겸 쇼룸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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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커워크샵의 라인업은 심플하다. 백팩은 타입1, 2, 3, 4, 5안에서 고르면 된다. 경량 백팩 하면 떠오르는 다른 브랜드와 다르다. 케일의 백두, 고싸머기어의 마리포사, 마운틴로버의 타르시어, HMG의 사우스웨스트에 비하면 하이커워크샵 가방은 이름이 없는 수준이다. “그냥 크기 별로 이름 붙였어요.” 대표의 답변 역시 간결했다.

10L 이하 용량은 ‘타입1’, 20L는 ‘타입 2’, 30L는 ‘타입 3’, 40L 백팩의 이름은 ‘타입4’다. 그럼 ‘타입5’는 50L 가방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타입 5는 타입 1과 같은 디자인에 크기만 좀 커요. 15인치 노트북을 넣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타입 1 – Urban’ 이렇게 붙일까 하다가 구구절절한 것 같아서 그냥 5라 불러요.”

한동안 하이커워크숍의 신제품은 계속 다음 번호를 따다가 만들 예정이다. “글쎄요. 제품명은 ‘타입 15’ 정도까지 나오면 생각해 볼까 봐요.” 그는 백팩밖에 모르는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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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1]

  • 7L / 200g / 22 x 42 x 15cm

타입1은 7L의 용량의 데일리 하이킹 백팩이다. DCM사의 DCF 소재를 활용했다. 짧게 다이니마라고도 불리는 이 원단은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소재로 만들었다. 생긴 건 얇은 종이를 구겨놓은 듯 특이하다. 물에 젖지 않고 반쯤은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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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예스아이씨와의 컬레버래이션 백팩도 이 소재로 만들었다. 어찌나 가벼운지 손으로 들어보면 ‘슉’ 소리가 나는 듯하다(이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이미 스크래치를 한가득 가져서인지 마모에 강하다. 업계에선 강철보다 15배 강하다고도 한다. 시중의 섬유 중에서는 무게 대비 최대 강도를 가졌다고 한다. 아무튼 보기보다 세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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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2]

  • 20L / 460g / 25 x 13cm

타입2는 20L 용량의 백팩이다. 여기서부터는 간신히 1박 하이킹용으로 가능하다. 엑스팩X-Pac과 30D 립스탑 소재로 만들었다. 파트별로 소재와 색을 다르게 주문할 수 있다. 소재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 흙바닥에 내려놓아도 가방이 상하지 않도록 바닥만 두꺼운 소재로 구성했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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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3]

  • 30L / 600g / 25 x 13cm

전면에 사선으로 큰 지퍼가 있는 것이 타입3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방 내부 사이즈 자체는 타입2와 같다. 대신 확장성이 좋다. 롤탑 형식의 입구는 물건이 많지 않을 때는 돌돌 말아 부피를 줄여 사용하면 된다. 똑딱이 버클 두 개를 활용하면 서너 가지 스타일링이 된다. 엑스팩은 원단의 이름이 아니라 여러 원사를 층층이 쌓아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결과물이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대체로 가볍고 내구성이 좋다. 30L 가방으로 치면 다이니마 소재가 100g 정도 가볍고 내구성과 가격은 엑스팩이 좋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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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4]

  • SM 47L 900g / ML 50L 950g

백패킹 자체가 처음이라면 시작부터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애초에 큰 용량의 가방을 택하는 걸 추천한다. 힙벨트와 상단의 파우치가 탈착 가능하고, 등산 스틱, 텐트 폴대와 매트 등을 수납할 수 있는 탄성 코드가 전면과 하단, 두 군데에 있어 확장성이 좋다. 하이커워크숍은 다른 경량 가방에 비해 힙벨트가 두껍고 탄탄해 지지력이 좋은 편이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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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5]

  • 15L / 400g

타입1의 전면 사선 지퍼와 상단의 U형 지퍼를 그대로 따 왔다. 같은 디자인과 같은 소재에 용량이 조금 커졌는데 무게는 2배가 더 나간다. 노트북을 넣어서 다닐 수 있도록 도톰한 패드를 안에 추가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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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입5는 올 6월 아웃도어 잡화 브랜드 ‘히치HITCH’와 컬레버래이션 백팩을 만들었다. 데일리 백팩으로 쓰다가 당일 산행에도 메기 좋겠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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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백패킹 문화가 궁금하다면 성수동에 놀러 온 김에 하이커워크샵에 들러보길 바란다. 하준호 대표는 한 땀 한 땀 물건을 제작하느라 바쁘지만, 누구든 쇼룸의 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도 메 보고 만져도 보고 무게도 느껴보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두 건의 브랜드 협업을 만들어 낸 하이커워크숍은 정말로 분주하다. 가방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금요일부터는 캠핑을 할 거라서 목요일까지 가방을 많이 만들어야 해요. 너무 많은 분이 오면 제가 바빠서 곤란할 수도 있겠네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빠다코코넛 같은 비스킷을 씹으며 재봉틀 앞의 대표가 말했다. 이는 그의 수줍은 화법일 뿐이다. 머뭇거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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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는 강아지 ‘워키’가 같이 있다. 수줍은 성격으로 자기도 지지 않는다면 워키와 먼저 인사를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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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커워크샵은 매장과 온라인 숍에서 바로 살 수 있는 백팩과 사코슈, 파우치, 지갑, 쿨러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문 제작 방식이다. 인터넷에서 품절이라도 제작 의뢰는 된다. 용량, 디자인, 소재, 색깔만 정해 두면 거의 구현 가능하다. 색 조합엔 자신이 없는 주제에 멋진 가방은 메고 싶어 한참 인스타그램에서 남이 멘 가방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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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환경과 조건에 대응하는 절대 백팩 같은 건 없다. BPL이 백패킹의 종결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도 아니다. 경량 백팩은 단단한 프레임이 없어 어깨와 허리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뭐든 덜어내다 보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무게를 줄이려면 혹시 몰라 챙기던 아이템을 빼야 한다. 방한용품과 응급약은 같은 ‘만약에템’이 산에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자기랑 스타일이 안 맞을 수도 있다. 자연에서 먹는 밥이 좋아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음식을 넉넉하게 챙겨 동료들과 나눠 먹는 게 낙이다. 그는 경량 가방을 사봤자 음식의 무게가 그 자리를 다 차지할 거라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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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백패킹을 위한 최적의 가벼움은 집 밖에서 찾아야 한다. 짐도 많이 싸 본 사람이 잘 싼다. 백팩에도 백패킹에도 답은 없다. 올여름엔 BPL 스타일로 가뿐하게 산을 타보려 한다. 그나저나 무릎이 아직도 쑤신다.

하이커워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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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