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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는 상중하, 서울의 산 3

안녕. MZ세대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몇 년 전부터 MZ 세대 사이에 등산이 유행한다는 소식이 이슈다. 보기 드문 현상에 대한 각종 분석이 뒤따랐다....
안녕. MZ세대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몇 년 전부터 MZ 세대 사이에 등산이 유행한다는 소식이…

2022. 05. 10

안녕. MZ세대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몇 년 전부터 MZ 세대 사이에 등산이 유행한다는 소식이 이슈다. 보기 드문 현상에 대한 각종 분석이 뒤따랐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해외여행 대신 산을 택했다,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세대의 생존 본능이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일종의 새로운 놀이다, 산을 배경 삼아 입는 아크테릭스 바람막이, 레깅스, 트레킹화가 새 멋이 된 것이다 등.

세상의 흐름이라면 뒤지고 싶지 않은 MZ세대 조서형 역시 2019년부터 산악회 하나를 만들어 산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두기와 함께 산악회는 멈췄고 2년 1개월간 그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일 드디어 야외에서 마스크가 해제되었다. 타임 투 클라임 어 마운틴이다! 오늘은 주말에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서울의 산을 추천해보려고 한다.


<난이도 下 아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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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고도_ 295.7m
소요 시간_ 2시간

아차산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다. 높지는 않지만 올랐을 때 전망이 충분히 멋지다. 적은 노력으로 큰 기쁨을 맛보기에 좋다. 코스 자체가 짧은 데다 바위나 수직 등반 같은 부담스러운 코스도 거의 없어 초심자용으로 제격이다.

등산화를 신어도 되지만 안 신어도 된다. 등산 스틱 역시 있으면 쓰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아차산역에서 오르기 시작해 328m의 용마봉을 거듭 타는 방법도 있다. 아마 하루에 두 개의 산을 타는 가장 쉬운 방법일 거다. 특별한 주의사항은 없다. 주의하지 않고 즐기기만 해도 되는 산이다. ‘기분 좋게 땀 뺐네’ 정도의 생색도 낼 수 있다. 평일 낮에도 등산객이 많아 길을 묻거나 돌발상황에 대처하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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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은 코스가 짧아서 정상에서 뭘 먹기가 애매하다. 먹으면 당연히 맛있겠지만 정상에서 도시락을 까거나 라면을 끓이기엔 민망한 수준의 높이다. 물이나 과일 정도만 간단히 챙기면 된다. 산에서 내려왔다면 바로 집에 가지 말고 들러서 밥을 먹고 가길 추천한다.

아차산 아래에는 ‘신토불이 떡볶이’와 ‘원조 할아버지 손두부’가 있다. 신토불이도 원조도 좋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매운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후자의 경우 메뉴에 온통 딱딱한 두부, 말랑말랑한 두부, 큰 두부, 작은 두부, 숟가락으로 먹는 두부, 젓가락으로 먹는 두부 등 두부밖에 없다. 두부는 대단히 맛있으나 먹다 보면 물려 두 번은 발길이 향하지 않는다. 원조 할아버지 손두부 옆에는 ‘우리콩밭손두부’가 있다. 여기가 진짜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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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반찬으로는 콩나물, 무생채, 미역줄기 등이 나온다. 등산으로 허기가 세팅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집 반찬은 특히 시원하고 짭조름해서 자꾸 집어먹게 된다.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리필을 외치게 되는 마성의 맛이다. 두부 메뉴로는 모두부와 순두부가 있다. 각각 6,000원, 4,000원이고 주문하면 새우젓과 볶음김치가 함께 나온다. 파주장단콩 1등급만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게 뭔진 몰라도 맛을 보면 좋은 콩이겠구나 싶다. 두부삼겹두루치기, 버섯전골, 제육볶음, 해물부추전 등 하산 식사의 정석 메뉴도 있다. 배고픈 등산가들이 여기저기서 해물파전을 주문하자 사장님은 번번이 차분하게 파전은 없고 부추전이 있는데 그걸 시키려는 건지 묻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파전은 없고 부추전만 있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콩밭손두부의 순두부라면이다. 5,000원짜리 라면을 시키면 몽글몽글 순두부가 쌓인 그릇이 나온다. 하얀 설산을 보는 듯 마음이 웅장해진다. 맛은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그 고소한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 끓여봤는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차산은 괜찮은 산이니 부디 한 번씩 하산 후 우리콩밭손두부의 순두부라면을 먹어보시길.

  • 우리콩밭손두부
  • 서울 광진구 영화사로 76

<비슷한 난이도의 산>

  • 인왕산 (338.2m): 한양도성길을 따라 오르면 경복궁과 종로구가 한눈에 담긴다. 내려와서 서촌 산책으로 마무리하면 딱이다.
  • 북악산 (342m): 정상에 서면 경복궁과 청와대가 보인다. 인왕산과 연결해서 걸을 수도 있다. 코스에 따라 가파른 구간도 있어 등산하는 기분을 적당히 낼 수 있다.
  • 우면산 (293m): 사당역에서 출발하면 남부터미널 방향으로 내려올 수 있다. 흙산이라 접지력 좋은 신발이 필수는 아니다.
  • 안산(295.5m): 독립문역, 무악재역, 신촌역과 연결되어 있다. 둘레길 수준으로 산책하듯 편하게 걸을 수 있다.
  • 구룡산(306m): 양재시민의숲역에서 수서역에 걸쳐 있는 산. 암벽 코스가 거의 없는 흙산이다. 등산하는 기분을 내며 기초 체력을 기르기에 좋다.

<난이도 中 청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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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_ 582.5m
소요시간_ 3시간

청계산입구역에 내려서 원터골 등산로 입구를 찾아 걸으면 된다. 진달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매바위가 보이고 거기서 100m만 더 가면 정상석이 있다. 청계산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걸어도 헤맬 일이 없다. 곳곳에 표지판을 유난히 잘 만들어둬서 그대로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중간 난이도인 청계산은 모든 게 적당하다. 산의 고도나 경사가 중간이고, 계단과 능선, 데크길과 흙길을 고루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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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에 돌문바위라 불리는 특이한 바위가 있다. 두 개의 돌이 기대고 서 있어 정말 돌로 지은 문 같은 형상이다. 돌문바위의 기를 받아 가라는 안내문 앞에서 기웃거리자,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면서 소원을 빌라고 지나가는 등산객이 알려줬다. 아들을 낳는 데 특히 효험이 있다며.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같은 애매한 소원을 빌었다가는 아들이 생길지 모르니 이왕이면 구체적이고 명확한 소원을 준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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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은 정상보다 매바위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 풍경은 매바위에서 감상하고 인증샷은 정상에서 남기는 걸 추천한다. 모든 게 적당한 적당좌 청계산에서 등산의 매력을 느꼈다면 하산한 다음 쇼핑을 시작하면 된다. 청계산입구역에는 블랙야크, 몽벨, 캠프라인 그리고 코오롱 스포츠 솟솟618점 등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하다. 솟솟 매장에서는 즉석에서 오버로크로 이름을 새길 수 있는 네임택, 뱃지, 와펜 등 소품과 의류, 가방, 신발 등을 판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두리번대다 보면 나오는 길에 등산 아이템 몇 개를 주섬주섬 챙겨 계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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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밥과 콩나물밥 중 선택권이 있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값이 저렴한 콩나물밥을 고를 거다. 그만큼 곤드레밥의 매력을 몰랐다. 곤드레는 해발 700m 고지에서 자생하는 산채다. 옛날에는 고려엉겅퀴라 불렸다고 한다. 밥을 지을 때 이 곤드레를 같이 솥에 넣으면,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색을 띈다. 곤드레는 씹기 좋게 부드러워지고 밥에는 곤드레 향이 은은하게 밴다. 청계산 곤드레집은 숨은 맛집이 아닌 대놓고 맛집이다. 대기를 위한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전체적으로 시설이 깨끗하고, 곤드레나물밥은 9,000원이다. 윤기가 흐르는 곤드레밥이 차려지면 간이 잘 밴 밑반찬을 올려 김으로 싸 먹어도 되고 간장에 쓱쓱 비벼 먹어도 맛있다. 함께 나오는 찌개에 곁들여 먹어도 좋다. 나는 이 집에서 곤드레밥의 맛을 알았다. 태어나서 먹은 곤드레밥 중에 가장 맛있었다.

  • 청계산 곤드레집
  • 서울특별시 서초구 청룡마을1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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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난이도의 산>

  • 도봉산 (740m): 도봉산역, 망월사역에 내려 오를 수 있는 도봉구의 산이다. 코스가 워낙 다양해 초급부터 고급 난이도까지 선택해 오를 수 있다. 손가락처럼 보이는 오봉과 험준하게 솟구친 신선대가 유명하다. 도봉산이 처음이라면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신선대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보자. 핵심 뷰를 모두 볼 수 있다.
  • 수락산 (637m):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 남양주의 경계에 있는 산. 밧줄을 잡고 수직 기찻길처럼 보이는 돌을 오르는 ‘기차바위’ 구간이 유명하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아찔해서 인증샷을 찍기에도 좋다. 고도에 비해 전망은 소소하기 때문에 기념사진은 기차바위에서 남기는 것을 추천한다.

<난이도 上 관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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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고도_ 629m
소요 시간_ 4시간

혹시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는 산은 피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제 알았으니 피하자. 물론 산에는 대체로 두 개 이상의 길이 있기 때문에 이름에 악이 들어간 산이라도 능선을 따라 걷는 둘레길로 가면 된다. 관악산에는 코스만 700개가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그 루트가 다양하다. 한 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는 코스도 있고, 이날 내가 다녀온 코스처럼 악! 소리가 절로 나는 코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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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악회는 매주 일요일 대충 눈 떠지면 산이나 타자고 만들어 이름도 ‘대충 산악회’다. 험준한 산은 피하는 게 기본이었는데, 이날따라 가장 쉬운 코스를 찾다가 최단 거리를 알아본 게 시작이었다. 최단 거리와 최단 시간은 전혀 다른 얘기이며, 난이도와 무관하다는 것을 이날 알았다. 시작은 무난했다. 하지만 이내 자운암능선이 나오자 땀이 줄줄 흘렀다. 바들바들 떨며 아슬아슬하게 등산을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왔던 곳으로 돌아내려 가는 게 낫고, 등산화가 없어 운동화를 신고 왔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낭떠러지 같은 암석을 타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등산화를 신고도 정신을 잘 챙겨야 한다. 워낙 사람이 없는 곳이라 사진을 찍기 좋지만, 사진 찍을 정신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구간도 몇 번 있기에 장갑도 챙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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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상에서는 식수뿐 아니라 등산 중 열량을 보충할 식량도 필요하다. 탄수화물과 당분을 섭취해가며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외투와 땀을 머금지 않는 소재의 옷,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 등에 밀착되는 백팩으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미안한데 하산 맛집은 없다. 진이 빠지도록 산을 타서 뭘 먹긴 했는데 기억이 거의 없다. 누가 제보해 준다면 다음에 재도전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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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난이도>

  • 북한산 (836m): 구파발역의 북한산은 서울에서 가장 높다. 산세가 깊고 그만큼 등산 코스도 다양하다. 마찬가지로 바위산이라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를 추천한다. 운동화를 신으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 상태로 산을 오르면 하산할 때 힘이 다 빠져서 다치기 쉽다. 북한산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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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산은 이 무렵 어디나 사람이 많다. 잠시 멈춰 쉬기에 부담스럽겠지만 20분 마다 숨을 돌리는 게 좋다. 물과 행동식을 챙기고, 그걸 담을 작은 배낭을 메자. 배낭은 길게 늘어뜨리기보다 등에 착 달라붙게 메고, 크로스보다는 양쪽 어깨를 활용해 메야 균형 잡기에 좋다.

모든 산에 등산화를 신을 필요는 없지만, 방수가 되고 밑창이 두꺼운 운동화를 신는 게 도움이 된다. 신발은 올라갈 때는 끈을 느슨하게 묶고 내려올 때는 단단하게 조여줘야 한다. 평지보다는 좁은 보폭으로 걷는 편이 힘을 덜 쓰고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 올라가면 인증샷이 급해도 기특한 자신에게 꼭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할 시간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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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다른 취미에 비해 유난히 건강하고 부지런한 활동 같다. 크루나 모임보다는 산악회라는 고전적인 이름이 어울리는 활동이다. 등산을 할 거라면 늦은 시간 보다는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 게 좋고, 하산 후에 고기에 술을 진탕 먹기보다는 두부에 막걸리 한두 잔으로 적당히 먹고 집에 가는 게 좋다. 산에서 받은 정기와 몸에서 생겨난 엔돌핀이 팽팽 돌기 때문에 남은 하루가 길수록 이득이다. 애써 부지런 떨며 산에 간 김에 갓생 사는 거다. 5월엔 다들 마스크 없이 즐겁게 산 타고 성취감에 취해 갓생 살았으면 좋겠다.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