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ICK

미니멀 라이프와 충동 구매의 기록

계획적이고 충동적인 쇼핑 기록
계획적이고 충동적인 쇼핑 기록

2022. 05. 05

안녕하세요, 계획적 충동구매 쇼핑객 김은희입니다. 계획적 충동구매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도, 듣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조어입니다. 제가 방금 만들었으니까요. “그간 돈과 시간을 쓴 의자, 테이블, 거울, 조명, 책, 신발, 가방 등 물성 있는 것부터 영화, 음악 등 데이터로 존재하는 것들까지 모든 것에 대한 소비”를 정리해봐달라는 디에디트의 초청을 받고 지난 소비를 돌아보니 손 끝에 채인 단어가 이것이었습니다. 계획적, 충동구매.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합니다. 곤도 마리에 씨가 제 집을 보면 코웃음 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끌리지 않으면 당장 갖다 버리라던 그도 쇼핑몰을 운영중이니, 미니멀 라이프란 한번 구매할 때 제대로 된 물건을 사려는 마음까지 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물건’의 기준은 모두에게 다를 것인데, 제게 제대로 된 물건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런 사물을 만나는 일은 대부분 아주 우연히 부닥쳐오고, 그럴 때마다 저는 냅다 낚아채죠. 그리하여 이른바, 나름의 기준을 마음에 품어 오다 순식간에 사들인 경험 다섯 가지를 여러분께 공유해 볼게요.


1. 오리지널인가?
일광전구의 스노우맨22 테이블 스탠드 SNOWMAN22 Table Stand

1400_retouched_-1

어디 제가 비할 바 있겠습니까만은, 내한 공연 때 필히 geotjeori(겉절이)와 eolgal-idoenjang-gug(얼갈이 된장국)을 먹고 싶다고 한 켄드릭 라마의 명료한 입맛에 비견하는 쇼핑 기준이 있다면 하나입니다. 오리지널 디자인인가.

에일린 그레이, 리차드 사퍼, 빌헬름 바겐펠트, 아름다운 디자인을 남긴 디자이너는 손에 꼽을 수 있고 그 디자인을 복제한 가품은 무수하죠. 붙이면 만사형통인 듯 통용되는 ‘st’란 단어와 마주할 때면…,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가끔은 그 ‘st’란 힌트마저 없어 이렇게 저렴할 리가 없는데 디깅이 준 금싸라기 기회인가 고뇌에 빠지고는 합니다. 99.9퍼센트 그럴 리 없습니다. 결론은, 제 가격 주고 오리지널 아이템을 구입하기 부담스럽다면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오리지널 디자인을 찾고 싶다는 겁니다. 오리지널리티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가치이니까요.

일광전구의 테이블 램프를 사게 되기까지의 소개가 길었습니다. 1962년부터 백열전구를 만든 회사이자 현재 국내 유일하게 남은 백열전구 브랜드 일광전구가 젊은 디자인 스튜디오들과 협업해 만드는 조명인 IK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가격은 21만 원. 지불할 용의가 충분히 생기는 오리지널리티와 완성도에 살펴보자마자 주문했습니다. 2021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입니다.

  • iklamp.co.kr

2. 경험이 되는가?
야마다마츠 향목점의 하나쿄카 시즌 세트 Hanakyoka Season Set

1400_retouched_-2

향을 좋아합니다. 향수는 꺼려합니다. 하여 바디워시, 인센스, 캔들로 공기에 향을 입히는 편을 즐깁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디하고 초자연적인 향을 원하는데 아무리 ‘woody’, ‘smoky’, ‘흙내음’ 같은 소개 문구를 좇아도 원하는 향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는 팬데믹 시대가 남긴 우스운 추억 중 하나이기도 한데, 한참 시향이 금지이던 때가 있었죠. 향을 맡아보지 못하고 향을 사야 한다니. 이게 무슨 홍시 맛이 나지 않아서 홍시라 못하는 상황인가 싶지만 ‘에라이, 그럼 온라인 세계에 맡기자’ 몇 가지 캔들과 인센스를 설명문만 보고 구매해봤습니다.

“유목민의 전통 텐트를 둘러싼 한 무리의 말들.
투박하면서도, 부드럽고 감각적인 가죽에 담배, 인센스, 앰버그리스, 엔젤리카 뿌리 에센스가 살며시 스며든다.
사막으로의 야생의 모험이 시작된다.”

아스티에드 빌라트의 울란 바토르 캔들 설명문입니다. 세상에, 글에서 사막의 밤 향기가 납니다. 다만 실제 향은 제게 조금 뭉뚱그려진 단조로움이었습니다.

“팔로산토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나무 중 하나이며,
팔로산토 스머지 스틱은 이를 인위적인 벌목 없이 자연 채집한 완전 친자연적 100퍼센트 천연 인센스입니다.
태우기 전후에 모두 인위적이지 않은 특유의 자연 향기가
심신에 안정을 주고 스트레스를 완화에 도움을 줍니다.”

로어모어의 팔로산토 스틱 소개문입니다. 또 세상에, 딱 원하던 향입니다. 다만 실제로는 제게 조금 강한 ‘특유의 자연 향기’였습니다.

현재까지 저의 향 체험기는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제게 무언가 1퍼센트 부족한 부분까지 채워진 향을 찾아 여전히 헤매는 중이에요. 와중에 만난 야마다마츠 향목점의 하나쿄카 시즌 세트는 한번에 12가지 향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그 향이 1월은 소나무, 2월은 매화, 3월은 벚꽃, 4월은 신록 같이 1년 열두 달의 모양새 따라 만든 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5월은 물가의 상쾌한 꽃 향기, 창포 향이라고 하네요. 이 세트를 산 지난겨울 미리 봄과 여름의 향기가 그리워 3월 벚꽃과 6월 수국 향은 피워버렸지만, 계절은 다시 올 것이고, 재구매 의사 역시 100퍼센트입니다. 막상 태우고 나면 엇비슷한 향으로 마무리 되고, 개당 엄지 손톱만한 크기에 연소 시간은 10분 남짓일 정도로 짧으나, 이순간만큼은 스쳐 지나가는 계절의 잔상이 조금 더 짙게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야마다마츠 향목점의 하나쿄카 시즌 세트는 1만 9,000원.

  • twl-shop.com

3. 내가 좋아하는가?
곳곳의 테이블웨어

1400_retouched_-3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계획적’이란 단서를 달아두었어도 ‘충동구매’가 소비 전반을 지배하는 저로서는 사실상 모든 쇼핑 행위에 붙이기 좋은 너스레입니다만, 저는 제가 이런 류의 테이블웨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독립하고 나서, 필수불가결하게 식기를 대하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제가 고르는 테이블웨어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비정형, 건조하거나 적당히 거친 촉감, 고유한 색채.

골목 구석구석 아름답고 대단한 라이프스타일 스토어가 그득한 요즘이긴 하나,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순간이 더욱 절실한 게으른 인간으로서는 한 번에 많은 제품군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손길 닿는 것을 빠르게 골라내는 과정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그를 위해 즐겨 찾는 곳으로는 해마다 열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같은 대형 행사나 위클리캐비닛, 카바 라이프 등 편집숍에서 비정기적으로 여는 중소형 팝업 스토어가 있습니다. 지금 가장 뜨거운 숍, 뜨거워질 것 같은 숍, 나만 알고 있게 그만 뜨거워지면 좋겠는 숍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런 합리적인 시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한 자리에 꾸려진 여러 디자인을 둘러보다 보면 스스로 끌리는 지점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극명히 대비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옷처럼,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결과 맞는 일상 물건을 몇 번 골라보면 온라인에서도 알아보는 직관이 생기기도 하고요. 하나, 온라인을 통해서는 옷과 마찬가지로 사이즈에 유념하세요. 고백하자면 사진 속 원형 플레이트는 앞접시로 활용할 크기일 거라 예상하고 구매했다가 뜻밖에 인센스 트레이로 사용 중인 도기입니다. 그래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애용 愛用.

  • 노란색 세라믹 소서는 챕터원 STILL LIFE x 정준영 작가, 4만 5,000원
  • 유리 수저받침은 양유완 작가, 1만 6,000원.
  • 하얀색 작은 플레이트는 이스트 스모크, 3만 원.

4. 색다른가?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해피 아워>

1400_1400_retouched_okko-2

‘시네필들은 왜 지금 하마구치에 열광하는가.’ 저도 궁금한 이 주제는 마침 <씨네21> 1354호가 다루었다고 하여 일독해 볼 예정입니다. 그전에, 개인적으로는 요즘 화두에 오르거나 혹은 이슈 여부에 상관없이 흥미로운 작품이라면 감독의 전작을 살펴보는 편입니다. 어떻게, 어째서일까 궁금해서요. 저로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시네필들이 열광한다는 하마구치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낯설고 당황스러운 감정에 더 가까웠죠. 그 감정이야말로 하마구치가 일으키는 강력한 파동 중 하나라는 것을, 그의 전작 <해피 아워>를 보고 나서야 다시금 체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1년 12월에 재개봉한 영화 <해피 아워>는 원래 2015년에 공개된 작품입니다. 317분에 이르는 러닝 타임에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알고 보니 이 영화, 출연 배우가 모두 배우가 아닙니다. 영화 속 에피소드처럼 워크숍을 통해 모인 일반 시민입니다. 단순히 ‘긴 러닝타임’, ‘일반 시민의 연기’만으로 이 영화의 미묘한 매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가령,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늘 대사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현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대사가 될 수 있도록 고대하고 기다린다 했는데, 그렇게 스크린으로 옮겨진 언어들은 어딘가 매우 고요하고 서로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2시간 59분 동안의 <드라이브 마이 카>, 5시간 17분 동안의 <해피 아워>를 통과해 오니 어슴푸레 물든 감각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이 내가 좋아하는 결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파장을 주었다는 면에서 저는 이들이 즐겁습니다. 그 앞면과 뒷면, 내면 모두 궁금해지는 작품은 또 오랜만이기도 하고요. <드라이브 마이 카>와 <해피 아워>는 왓챠에도 공개돼 있습니다.


5. 그럴 가치가 있는가?
강원도 강릉 정동진 심곡 쉼터의 ‘노별의 식탁’

1400_1400_retouched_okko-1

서울에서는 절대 사 먹지 않는 음식이 있습니다. 감자전. 감자전이라 이름 붙이고 만 몇천원 씩 가격을 매긴 것치고 그럴 만하다 기쁘게 먹을 수 있는 감자전을 만난 적 없기 때문입니다. 감자전이 이렇게 ‘홀리’한 존재였나, 저는 유년의 고장 강원도를 떠나고 나서야 감자채전, 감자 밀가루전, 오래된 감자전이라 불러야 마땅한 ‘감자전st’ 군단 앞에서 절망하며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강판에 감자를 간다. – 간 감자를 체에 밭쳐 물기를 거르되 이 감자 물은 모아둔다 – 감자 물을 5~10분 정도 두면 천연 녹말전분이 가라앉고, 이 녹말전분을 갈아 둔 감자에 섞어 (기호에 따라 청양고추도 더해) 부치면 감자전 완성.

부모님이 감자 농사를 짓지는 않으시지만 여름마다 감자를 삶아주시고 전으로 부쳐주시던 강원도민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오직 이 간결한 재료와 과정으로 만든 감자전을 산해진미 몽땅 모인 한양에선 왜 그토록 입에 넣기 어려운가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그래서 공유합니다. 감자전다운 감자전을 드시고 싶다면 위 방법대로 해보시거나 강릉 정동진 ‘노별의 식탁’에 방문해보세요. 순수하고 촉촉하고 바삭한 감자전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순수하고 쫀쫀하고 뜨끈한 감자옹심이도 놓치지 마시고요. 아쉽게도 인증 사진은 없습니다. 저는 먹을 것 앞에서 카메라 대신 젓가락을 듭니다.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665-6 노별의 식탁
  • 감자전, 감자옹심이 모두 7,000원

스스로 좋아하는 순간을 즐기고 알아가기 위해 경계 없이 경험해본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 조금씩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저는 무계획적 충동구매를 향해 지갑을 활짝 열어두려고요. 어머, 이건 사야 해!

1400_eunhee

About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