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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네 왔다네 여름이 왔다네, 비빔면 5종

안녕, 살 게 없어도 편의점과 마트를 들락거리는 에디터 예화림이다. 나의 아빠는 아메리칸 마인드지만 라면 앞에서는 꼰대로 변했다. 국물 라면은 무조건...
안녕, 살 게 없어도 편의점과 마트를 들락거리는 에디터 예화림이다. 나의 아빠는 아메리칸…

2022. 05. 02

안녕, 살 게 없어도 편의점과 마트를 들락거리는 에디터 예화림이다. 나의 아빠는 아메리칸 마인드지만 라면 앞에서는 꼰대로 변했다. 국물 라면은 무조건 신라면, 짜장 라면은 무조건 짜파게티, 비빔라면은 무조건 팔도 비빔면을 먹어야 했다. 최근에 자취를 시작하며 몇십 년 동안 꾹 눌러온 ‘새로운’ 라면에 대한 욕구가 표출되었다. 편의점과 마트에 들러 신상 라면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하나라도 구매해야 직성이 풀렸다. 라면 코너가 크고 긴 매장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은 덤이었다.

최근에 구매한 비빔면 5종을 소개하려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서 국물 라면보다 비빔면에 손이 가니까. 혹시나 이 글을 읽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비빔면을 찾을까봐 전한다. 편의점은 1인 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봉지 라면을 낱개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컵라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새로 출시한 봉지 라면은 구하기 어렵다. 곧 소개할 ‘농심 배홍동’과 ‘진비빔면 배사매무초’는 편의점으로, 나머지는 마트로 향하길 바란다.


라면1_ 농심 배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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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누가 뭐래도 비빔면이다. 차갑게 헹군 면에 새콤달콤한 빨간 소스를 비비는 것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아빠를 ‘똑같은 라면만 먹는 라면 꼰대’로 칭했지만, 나 역시 비빔면에 있어서 같은 생각이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는 팔도 비빔면을 능가할 라면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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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비빔면에 대적할 ‘배홍동’과 ‘진비빔면’이 등장했다. TV를 자주 보지 않지만 유재석이 하늘색 정장을 입고 나온 광고가 또렷하다. 하늘색 바탕에 빨간 점이 박힌 정장을 입었는데 다시 보니 배홍동 비빔면의 봉지와 똑같다. 봉지에는 시원 달달한 ‘배’, 매콤한 ‘홍’고추, 새콤 ‘동’치미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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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홍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익숙한 맛이다. 상표를 가리고 어떤 라면인지 맞혀보라고 하면 10명 중에 8명은 팔도 비빔면이라 할 거다. 한줄평을 하자면 덜 새콤한 팔도 비빔면. 싱겁거나 간이 안 맞는다는 뜻이 아니다. 간이 튀지 않고 조화롭다. 익숙한 듯 담백한 맛 덕분에 다음 젓가락이 자동으로 대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배홍동이 팔도 비빔면의 고급 버전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름 미식가라 불리는데 배홍동의 앞 글자인 배, 홍고추, 동치미의 맛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맛있냐고, 맛없냐고? 내 결론은 맛있다 쪽이다. 팔도 비빔면과 비교했을 때 양념장이 넉넉해서 배홍동으로 갈아탈 생각이다.

🍜추천_ 팔도 비빔면 소스 양에 불만을 품고 있더라면.


라면2_오뚜기 진비빔면 배사매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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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면 한 개는 부족하다. 맛도 비교할 겸 곧바로 ‘진비빔면 배사매무초’를 끓였다. 기존의 진비빔면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봤더니 배, 사과, 매실, 무, 태양초를 추가했다고 한다. 진비빔면은 액상 소스가 불닭볶음면 소스처럼 묽었고 첫인상은 초무침에 가까웠다. 팔도 비빔면과 다른 결이다. 회무침이나 오이무침처럼 달콤한 맛보다 새콤한 맛이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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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비빔면이 대패 삼겹살에 싸서 크게 베어 물고 싶은 맛이라면, 진비빔면은 어패류에 어울리는 맛이다. 골뱅이와 야채를 썰어 넣고 싶었다. 팔도 비빔면과 배홍동은 다 먹고 나니 살짝 매콤했다면, 배사매무초는 씹었을 때 매콤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팔도 비빔면에 입맛이 맞춰진 내게 새콤한 비빔면은 재구매 의사가 없다.

🍜추천_ 골뱅이만 있고 소면과 식초가 없는 사람이라면.


라면3_ 풀무원 로스팅 파기름 & 고추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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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빨간 봉지 사이에서 매트 블랙이 눈에 튀었다. 대부분의 라면 봉지에는 토핑이 왕창 올라간 실물 라면 사진이 크게 박혀있다. 하지만 정작 라면을 끓여보면 큼직한 버섯도 없고 고기나 꽃게도 없다. 풀무원 로스팅 짜장면은 보통의 라면 봉지 디자인과 달리 손으로 쓴듯한 글씨 아래에 파와 고추 그림만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기보다 직관적이라 눈에 띄었다. 맛도 직관적이길 바라며 라면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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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름은 특색이 없었다. 매력을 찾으려고 계속 먹었지만 실패했다. 우리가 아는 짜파게티는 짜장면이 아닌 짜장 라면이다. 짜장면을 먹고 싶을 때 중국집을 찾아가지, 짜파게티를 찾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짜장면과 짜장 라면은 다른 종류라 생각한다. 풀무원의 ‘로스팅 파기름’은 중국집 짜장면을 구현한 것도 아니고 달콤짭짤한 인스턴트 짜장 라면 맛도 아니라 애매하다. 장점을 찾아보자면 건면이라 짜파게티에 비해 150kcal가 낮다는 것 정도? 대신 양도 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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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름’과 ‘고추기름’ 이 두 라면은 면 굵기부터 다르다. 파기름의 굵기는 짜파게티와 비슷하다면 고추기름은 너구리와 비슷하다. 면이 더 굵다. 동봉된 고추 풍미유를 넣고 비비는데 고추기름 향이 코끝을 스쳤다. 처음엔 매운지 몰랐는데 먹을수록 매운맛과 감칠맛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캡사이신의 매운맛이 아닌 고추기름에서 나오는 매운 불맛은 라면에서 처음이다. 짜장 라면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남은 소스에 밥을 말아 계란 후라이 얹어 먹고 싶은 맛이다.

🍜추천_ 짜파게티 먹을 때 고춧가루 뿌리는 사람이라면, 로스팅 짜장면 고추기름을.


라면4_ 농심 샐러드 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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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의 드레싱 누들이 단종되고 샐러드 누들이 출시됐다. 이름만 보고 다이어트 식품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건강을 관리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MZ세대를 겨냥했다는데, 칼로리 측면에서 방금 소개한 로스팅 고추기름과 10kcal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단백질 함량도 큰 차이가 없고, 당류는 3배 이상 많다. 나는 최근에 8kg을 감량했다. 식이조절로 몸무게를 감량하면서 음식을 먹기 전에 영양 정보를 보는게 습관이 됐다. 아무튼 다이어터에게 추천하지 않는 성분이다. 나는 애매한 음식으로 칼로리를 섭취하는 게 싫다. 자고로 라면이란, 칼로리 따위 생각 안 하고 간편함과 맛으로 먹는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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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누들은 면을 오리엔탈 드레싱에 버무린 맛이다. 간드러진 맛 표현을 하고 싶지만 이게 전부다. 상상이 안 가겠지만 상상하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맛.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소량의 양배추와 아몬드가 올라가고, 작고 네모난 닭가슴살 큐브가 네 개 정도 있다. 토마토나 치즈를 올려 먹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샐러드를 먹든지 다른 라면을 먹겠다.

🍜추천_ 단종된 드레싱 누들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라면5_ 팔도 꼬간초 & 꼬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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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들기름 막국수 붐이 일었다. 용인 맛집이라고 소문난 고기리 막국수와 오뚜기의 콜라보가 시작이다. 고기리 막국수의 대표 메뉴인 들기름 막국수를 밀키트로 출시하면서 비빔면 계보에 슴슴함을 추가했다. 오뚜기에 이어 여러 브랜드에서 간장 베이스에 들기름을 두른 비빔국수를 출시했고, 역시나 라면도 출시 되었다. 비빔면의 최강자 팔도에서 ‘꼬간초’와 ‘꼬들김’을 출시했는데 슴슴한 라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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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보니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들기름 막국수의 매력은 툭툭 끊어지는 면 뒤에 오는 슴슴함이다. 슴슴하다는 건 약점이 아닌 매력이다. 꼬간초와 꼬들김은 슴슴한 매력보다 느끼함이 강했다. 기름에 튀긴 유탕면에 들기름과 참기름을 섞으니 느끼함이 배가 됐다. 양이 많은 것도 아닌데 쉽게 물려 젓가락을 놓았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건면이었으면 더 나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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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들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면을 들기름과 김가루에 비빈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아이들은 좋아할 법하다. 하지만 들기름 막국수를 상상하고 먹으면 실망이 크다. 평양냉면처럼 자기 전에 생각나는 맛도 아니고, 들기름 막국수처럼 다 먹고 속이 편한 느낌도 아니다. 꼬들김은 더부룩하다. 말수는 적은데 하는 말마다 빵빵 터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인상은 조용한데 알고 보니 능글맞은 사람이 있다. 미안하지만 꼬들김의 첫인상은 후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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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간초’는 간장 베이스에 식초와 참기름이 들어간다. 꼬들김과 다른 양념이지만 면도 똑같고, 향도 비슷하다. 기본 베이스 맛이 비슷하다. 음미하며 면을 씹어보면 팔도 비빔면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둘 중 하나를 택하자면 새콤한 식초 덕분에 덜 느끼한 꼬간초를 택하겠다.

🍜추천_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빠가 똑같은 라면만 고집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겠다. 모험 대신에 안전한 한 끼를 택하는 거다. 가끔은 반숙란을 넣고, 가끔은 날달걀을 찍어 먹으며 변주를 줘도 좋다. 그래도 신상 라면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거다. 익숙함을 뛰어넘을 새로운 라면을 기대하며 편의점으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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