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잘 먹어야 잘 논다, 행동식이 필요한 이유

안녕. 한 손 자전거 운전을 연습하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나는 어려서 겁이 많고 또래에 비해 운동 신경이 떨어졌다. (운동 신경이...
안녕. 한 손 자전거 운전을 연습하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나는 어려서 겁이…

2022. 04. 26

안녕. 한 손 자전거 운전을 연습하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나는 어려서 겁이 많고 또래에 비해 운동 신경이 떨어졌다. (운동 신경이 없어 겁이 많았을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운동회 때마다 근본 없는 포즈로 달리던 일이나, 선생님이 끈질기게 던져준 오자미를 결국 하나도 받지 못한 일, 겁이 많아 동네 아이 중 자전거 보조 바퀴를 가장 늦게 뗀 일을 종종 꺼내어 웃곤 한다. 그때도 두 손을 놓고 묘기 자전거를 타거나, 한 손으로 엠피쓰리를 조작하는 친구들을 불안하면서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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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잘 자라 어른이 된 나는 친구들과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캠핑도 다닌다. 그러나 여전히 손잡이에서 손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친구들은 길 위에서 틈틈이 사진과 영상을 남겨주는데, 나는 그러기가 어렵다. “나도 너희들 사진 찍어주고 싶은데 한 손 운전이 어려워.” 내 고백에 친구는 말했다. “장애물이 없는 공원에서부터 천천히 연습해봐. 어차피 한 손으로 자전거 타는 연습은 필요해. 라이딩이 길어지면 자전거 위에서 행동식을 섭취해야 하잖아.”


행동식은 왜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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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식을 먹으려면 한 손 자전거를 연습해야 한다? 그냥 잠깐 내려서 먹으면 안 돼? 아니면 좀 참고 도착해서 먹으면? “그러다가 봉크(bonk) 오는 거지.” 엥? 봉크가 뭐야. 펑크 같은 건가? 봉크는 체내 탄수화물 고갈로 순식간에 체력 저하가 일어나는 순간을 말한다. 저혈당 쇼크나 저체온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얼추 펑크랑 비슷하다. 오늘은 자전거와 산 위에서 먹을 줄 알아야 하는 이유와 뭘 먹어야 하는지 공유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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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옷을 벗긴 게 따뜻한 햇살이었던 것처럼 5월의 날씨는 우리를 밖으로 내민다. 뭐든 될 것 같은 날의 연속이지만, 산과 길, 모험이 있는 곳은 생각보다 거칠다. 등산, 트레킹, 자전거 라이딩 같은 장시간 아웃도어 활동에는 걸맞은 보충 식량이 필요하다. 한때 행동식을 ‘산에서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챙기는 음식’으로 여기기도 했다. 물 한 방울, 초코바 한 입 먹지 않고 장거리, 장시간, 고강도를 이동한 얘기를 정신력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과시적인 얘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들어 주지도, 하지도 말자) 전날 마시고 남은 숙취에 아침을 거르고 산에 왔다가 진땀을 흘리며 주저앉는다거나, 적은 예산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느라 콜라만 마시다가 안장 위에서 기절한다거나, 해가 지기 전에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다가 인적이 드문 길에서 오한과 쇼크가 왔다는 에피소드를 가끔 전해 듣는다. 아웃도어 활동은 스포츠가 아니다. 악으로 깡으로 승리를 쟁취하려 하지 말자. 득 볼 게 없다.


행동식, 언제 먹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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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적시고, 허기를 면할 정도로 한 두 시간에 한 번 정도가 무난하다. 다만 배고프기 전에 먹고, 목이 마르기 전에 마셔야 한다. 지친 다음에는 입맛이 떨어져 음식을 먹기가 힘들어진다. 몸에서 소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인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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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전에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며 빈속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공복에 움직이면 체지방이 잘 빠진다는 얘기도 있고. 그러나 열 시간 넘도록 산을 탄다면 다르다. (등산에 재미를 붙이고 나면, 금방 더 큰 산을 원하게 될 것이다) 마라톤을 2.5회 뛰는 시간과 맞먹는다. 선수들도 경기 전이면 몸에 탄수화물을 최대치로 저장하고, 달리는 동안에도 음식을 섭취한다. 자전거 대회 ‘투르 드 프랑스’ 참가 선수는 경기 당일 소모되는 칼로리의 50% 이상을 자전거 위에서 먹는다. 긴 시간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으면 몸속의 단백질이 분해된다. 살만 빠지는 게 아니라 근육과 뼈가 함께 약해진다.


행동식으로는 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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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이 좋다. 우리가 격하게 움직일 때는 주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이 쓰이는데, 밥, 빵, 과자, 떡 같은 탄수화물은 소모한 에너지를 빠르게 충전한다. 종종 소풍처럼 김밥을 사 오거나, 몸만들기 좋은 바나나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고 정해진 건 없지만 행동식의 기본은 부피가 작고, 가볍고, 보관이 쉬우며, 열량이 높고,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음식이다. 낮이면 여름처럼 온도가 치솟는 요즘이라면 김밥은 쉬기 쉽고, 바나나는 무게가 많이 나간다. 100g당 80kcal에 21g의 탄수화물이 담긴 데 비해 무겁고, 살짝만 눌러도 물러지며, 먹고 나면 껍질이 남는다. 여기 주변 아웃도어 활동가들이 추천하는 행동식을 모았다. 밖에 나가 놀 때 대체 뭘 먹는 게 좋을지 고민이라면 아래 예시 중 골라잡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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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행동식_ 바나나의 무게 대비 탄수화물 비율이 1/5이었다면, 연양갱 56g에는 36g의 탄수화물이 포함되어 있다. 반 이상이 탄수화물인 식품인 것. 초콜릿보다 영양가도 높고, 목도 덜 마른다. 씹어먹을 수도 있고 녹여 먹을 수도 있다.

✅ Tip_ 행동식으로 뭐가 좋을지 모르겠다면, 100g당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량을 체크해보자. 탄수화물 비율이 높은 걸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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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서 채우기_ 먹는 일은 삶의 커다란 기쁨이지만, 씹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을 때도 있다. 이런 때는 마시면 된다. 수분에 미네랄, 비타민, 염분 등이 더해진 에너지 젤이나 이온 음료도 좋다. 그보다는 본격적으로 탄수화물을 마시면서 섭취하고 싶다면, 미숫가루를 추천한다. 미숫가루 100g은 392kcal로, 210kcal의 밥이나 244kcal의 식빵보다 고효율이다.

✅ Tip_ 날진 같이 입구가 넓은 물병에 물과 미숫가루, 각설탕 하나를 넣고 흔들어 보라. 고체 설탕이 머들러 역할을 해 가루가 먹기 좋게 풀어진다. 당 충전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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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_ 초코바를 정말 좋아한다. 건강만 아니면 끊임없이 먹고 싶다. 초코바를 더 먹으려고 자전거도 타고 산도 탄다. 초콜릿은 갈증을 유발하고, 순간적으로 당수치를 올리기 때문에 행동식으로 최선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크리스퍼 스니커즈는 굉장히 맛있다. 한입 크기 두 개로 초코바가 쪼개져 있어서 먹기에도 깔끔하다. 적어도 베어 무느라 캐러멜과 침을 줄줄 흘릴 일은 없다. 초코바가 끈적여서 싫다면 대안으로는 젤리, 에너지바, 포도당 캔디, 젤리도 있다.

✅ Tip_ 맛없는 걸 먹으려면 손실된 에너지만큼 섭취가 어렵다. 그러니 행동식으로는 맛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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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 행동식_ 김밥이 상하기 쉽다면, 쉽게 상하지 않는 속 재료를 넣은 주먹밥으로 대체할 수 있다. 잼을 듬뿍 바른 샌드위치도 좋다. 나는 밥보다 과자가 좋아서 비스킷을 애용한다. 이날은 버터도 끼워 먹었다. (땅콩이 콕콕 박혀 씹는 맛이 좋은 버터는 성수동 ‘더 버터 팬트리’의 피넛 토피 버터) 짭조름한 대구알 스프레드도 곁들이면 좋다. 참치와 마요네즈를 새콤하게 버무린 샐러드를 크래커 위에 얹어 먹는 방법도 있다. 상큼한 음식 속 구연산은 회복도 도와준다. 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입맛에 맞는 행동식을 각자 개발해 두는 걸 추천한다.

Tip_ 주먹밥을 만든다면, 매운 재료는 피하는 게 좋다. 매운 음식은 불필요하게 에너지 대사를 높이고, 탄수화물을 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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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행동식의 세계는 넓다. 피로 해소를 바로바로 하기 위해 ‘한 뿌리’를 선택한 사람도 있었고, 천하장사 같은 소시지나 육포로 염분과 단백질을 충전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행동식이어도 고칼로리가 싫다면 갈증 해소와 포만감을 돕는 곤약 젤리나, 비타민과 수분 충전을 돕는 방울토마토나 오이도 방법이다. 휴대성을 생각해 곶감이나 건포도, 슬라이스 망고 같은 말린 과일도 있다. 의외의 답변도 있었다. 조미김이었다. 부피로 따지자면 진짜 깃털보다 가벼울 테고, 염분과 글리코겐도 섭취할 수 있어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아, 김은 식빵 사이에 끼워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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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활동을 마친 다음에는 뭘 먹는 게 좋을까? 여전히 밥, 국수, 감자 같이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가 좋다. 30 분 이내에 먹으면 근육의 회복률이 월등히 높아진다고 하니, 먹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김종국은 일찍이 ‘먹는 것까지가 운동’ 이라 말했다. 아웃도어 활동도 그렇다. 하산 식사까지가 등산이고, 맛집을 찍어야 라이딩의 완성이다. 5월에 아웃도어 활동을 계획 중이라면, 끝나고 갈 음식점까지 찾아 두자. 윤기 나는 쌀밥, 뜨거운 김이 나는 잔치 국수, 모서리가 잘 익은 감자전 같은 메뉴 잘하는 집으로.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