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꿈과 열정을 좋은 가격에 파는 법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 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주말에...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 필자…

2022. 04. 26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 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주말에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주말을 쪼개 낱말퍼즐 뉴스레터 <퍼줄거임>도 만들어 보내고 있다) 이번 달부터는 읽은 책 세 권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를 낳았다. 그래서 시리즈 이름은 [꼬꼬북]이다. 글 읽는 재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를.


[1]
<장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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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sales)는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팔지 않고는 수익이 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세일즈맨은 어디에나 있다. 시장 상인, 배관공, 기업 대상 소프트웨어 판매직, 홈쇼핑 쇼호스트, 미술품 판매상 등…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팔아서 수익을 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돌아봤다. 나는 A와 B 중 어디에 가까운가.

팔 줄 아는 사람 A vs 팔 줄 모르는 사람 B
잘 팔릴 것을 만드는 사람 A vs 안 팔릴 걸 알면서도 그냥 만드는 사람 B
수익을 내는 사람 A vs 다른 사람이 낸 수익을 월급으로 받아 가는 사람 B

팔 줄 아는 사람은 수익을 낼 수 있고, 수익을 내는 사람은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심지어 회사에 속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장사를 못하는 사람은 대체로 무능을 미덕인 양 자랑 삼아 떠벌린다.
‘전 거짓말을 잘 못해요’라거나 ‘남을 괴롭히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네요’라고 말한다.
사실 이들도 나처럼 그저 장사 능력이 형편없을 뿐이다.”

– <장사의 시대> 22p

첫 챕터부터 뼈를 맞았다. 글을 쓰면서도 글 파는 일에는 무심했다. 무심하니 유능할 리 없다. 무능을 미덕인 양 떠벌렸다. ‘조회수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라거나 ‘자극적인 제목 다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저 세일즈 능력이 형편없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세일즈를 잘할까’라는 제목의 챕터3가 형편없는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잘 파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2가지다.

첫 번째: 고객이 원하는 걸 빠르게 파악하고, 어떻게든 해결해준다. 세일즈맨을 만날 때마다 저자는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팔 수 있나요?”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거참 모욕적인 질문이군요. 에스키모한테는 얼음을 파고 싶지 않아요. 그들에겐 얼음이 넘쳐나니까요. 대신 이글루를 팔거나 해변 휴가 상품을 팔겠어요.” 훌륭한 세일즈맨은, 어떻게든 고객을 구워삶아서 실적을 한 건 더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이 시달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두 번째: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장기전이라는 점에서 세일즈는 야구와 비슷하다. 훌륭한 타자는 이전 타석에 삼진으로 물러났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다음 타석에서 배트를 휘둘러 홈런을 친다. 훌륭한 세일즈맨은 오전 내내 ‘안 사요’라는 말만 들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날 저녁 대형 계약을 성사시킨다.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적인 욕구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고민할 기회를 얻는 방법으로
세일즈만큼 바람직한 교육도 없다.”

– <장사의 시대> 308p

여기에 두 가지 욕망이 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꿈과 열정을 지키고 싶다는 욕망.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둘 중 하나만 고르고 남은 하나는 버려야 하는 줄 알았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이 있다. 꿈과 열정을 좋은 값에 팔면 된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 <장사의 시대> 필립 델브스 브러턴 | 어크로스 | 2013.02.25 | 15,000원

[2]
<배드 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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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수작과 사기 행각, 바넘 식 광고와 명백한 거짓말,
고객의 마음을 읽고 필요한 물건을 사게 만드는 행위와
고객의 약점을 건드려 이익을 취하는 행위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있다.
하지만 뜨거운 장사의 현장에서는 이 선이 곧잘 사라진다.”

– <장사의 시대> 84p

<장사의 시대>엔 전설적인 장사꾼이자 희대의 사기꾼으로 불렸던 서커스 단장 P. T. 바넘의 이야기도 잠깐 나온다. 바넘이 장사꾼과 사기꾼의 경계를 넘나들었듯, 사기꾼 되길 두려워해서는 결코 전설적인 장사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기꾼은 뛰어난 장사꾼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 ‘손가락 끝을 찔러 피 한 방울만 뽑아내면 200개의 질병을 진달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팔아 돈과 명성을 얻었던 테라노스 CEO 엘리자베스 홈즈처럼.

홈즈는 주삿바늘 공포증에 시달리는 환자들뿐 아니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CEO의 성공담에 목마른 사람들까지 테라노스의 잠재 고객으로 삼았다. 홈즈는 그들에게 제품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팔았다. 제대로 된 제품 하나 없이도 테라노스가 ‘혁신 기업’ 대접을 받으며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테라노스 제품들이 기준 미달이며 테스트 결과 또한 조작되었음이 밝혀졌고, 홈즈는 하루아침에 사기꾼이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부패상에 대한 이 책의 생생하고 영화 같은 묘사는 경이로울 정도다.”
<배드 블러드>에 대한 추천사 by <커커스 리뷰>

위의 추천사처럼, 촉망받던 기업의 비리가 끝내 밝혀지는 과정은 범죄 스릴러를 보는 듯하다. 실제로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홈즈 역을 연기하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홈즈도 아니고, 저자 존 케리루도 아니다. ‘뭔가 찜찜하다’ 싶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 다가올 불이익을 무릅쓰고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던 테라노스 직원들. 앨런, 에리카, 타일러 등 책에 등장하는 이름과 저자가 밝히지 못했을 이름들. <배드 블러드>의 주인공이라면, 그들이 첫손에 꼽혀야 할 것이다.

  • <배드 블러드> 존 케리루 | 와이즈베리 | 2019.04.01 | 16,000원

[3]
<다른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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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일의 진행을 가로막는 기업 내 문화였다.
엘리자베스와 서니는 우려를 표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직원을 모두 냉소적인 반대론자로 치부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소외시키거나 해고했으며, 아부하는 직원은 승진시켰다.”
<배드 블러드> 239p

<배드 블러드>를 읽고, 실리콘밸리에 실망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리콘밸리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저렇게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도 사기꾼에게 당하는구나… 저렇게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도 ‘다른 의견’은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잘 못하는구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 <다른 의견>을 펼쳤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다른 의견’을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새로운 내용은 별로 없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아 재밌게 잘 읽힌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메시지는 널을 뛴다.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다른 의견’이 중요하고, 타인의 ‘다른 의견’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다른 의견’을 얘기할 땐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세상을 나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에야
내가 어떤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지를 슬쩍 볼 수 있게 된다.
(…)
방문하는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나의 문화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경험들이 나의 관점을 만들어왔는가?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어디일까?”
– <다른 의견> 231p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려면 2가지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남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자. 둘째,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자. 나에겐 내가 디폴트값이지만, 남에게 나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니까. 내가 아는 것에 갇히지 않고 남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스스로를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호기심을 갖자는 대목도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의 대화가 재미없고 기 빨리는 이유는 ‘다른 의견’을 마주했을 때 싸우거나 도망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친구를 만났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는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영화 볼 줄 모르네’ 같은 생각을 속으로 하지 않는가? 혹은, ‘난 이러이러한 이유 재밌던데?’라며 승자를 가리려 들지는 않는가?

‘어떤 부분이 재미없었어?’, ‘난 이 부분이 좋았는데, 여긴 어땠어?’ 같은 질문을 던지면 대화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다른 의견>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을 남겨 달라. 심리학책에 좀처럼 흥미를 못 느끼는 나의 독특함을 인지한 채로, 묻고 싶다. ‘어떤 부분이 재밌으셨어요?’ 난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께 호기심이 많다.

  • <다른 의견> 이언 레슬리 | 어크로스 | 2021.10.27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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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