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백패킹, 처음이세요?

안녕, 중등 산악부 출신 필자 조서형이다. (체스 게임에 빠져 있느라 장기부에 들어갔는데 인원 미달로 등산부와 합쳐졌다) 지난 1, 2월엔 정말...
안녕, 중등 산악부 출신 필자 조서형이다. (체스 게임에 빠져 있느라 장기부에 들어갔는데…

2022. 02. 24

안녕, 중등 산악부 출신 필자 조서형이다. (체스 게임에 빠져 있느라 장기부에 들어갔는데 인원 미달로 등산부와 합쳐졌다) 지난 1, 2월엔 정말 무릎이 닳도록 산을 탔다. 눈 덮인 산꼭대기에 올라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그 일이 어찌나 즐거운지, 만나는 사람마다 백패킹을 같이 가자고 꼬시곤 했다. 단호히 거절당하길 몇 번, 드디어 “그런데 나 장비가 없는데”라 답하는 친구가 나왔다. “장비? 내가 빌려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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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걷다 보면 종종 배낭여행자처럼 커다란 가방을 메고 등산 스틱을 찍어가며 걷는 사람을 본다. 대체 저 안엔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다. 그 사람이 백패커라면, 하루 생존을 위한 짐 일체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백패킹은 배낭여행의 트래킹 버전으로 캠핑장이 아닌 산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에서 즐긴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길을 걸어 하루 머물 장소까지 이동하고, 자신을 먹이고 재우기 위한 체력이 필요하다. 자연에게 신세를 많이 지는 일이고, 캠핑장과 달리 관리자가 없어 각자 책임감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그 고생을 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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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디 보자. 이 답을 찾지 못한 게 내가 친구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가 되겠다. 일단 온통 자연뿐이니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제 발로 대자연을 찾아 나선 자만이 그 대단한 풍경을 보고, 그 풍경 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산은 각자 얼굴이 달라서 새로운 산에 가면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같은 산이더라도 코스를 다르게 오르면 앞 얼굴과 옆얼굴이 다르듯 새롭다. 경치가 멋지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강추위나 맹렬한 바람 등 가만히 자연을 감상하기 어려운 날도 백패킹은 즐거우니까. 전기가 없으니 업무와 멀어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 낭비할 일도 없다. 짐을 지고 걷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 그건 꽤 자유로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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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시작을 물었다. 배낭여행이나 오토캠핑을 하다가 넘어온 경우가 있었고, 자전거, 클라이밍, 카약 등 다른 아웃도어 취미와 결합한 사람도 있었다. 주변에 백패킹을 하는 친구 따라서, SNS에서 백패킹 사진을 보고 시작했다는 답도 있었다. 백패커들이 대체로 답한 백패킹의 장점은 성취감이었다. 몸소 짐을 운반해 의식주를 해결하며 느낀 뿌듯함이 땅에 내려와서도 계속되어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는 나처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처음인 자를 위한 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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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에서는 장비를 더 챙겨도, 덜 챙겨도 얼마든지 빌리거나 사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등에 온종일 짐을 짊어져야 하고, 그것만으로 지내야 하는 백패커는 얘기가 다르다. 장비의 이해와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꼭 필요하고 휴대할 가치가 있는 장비만 담는다. 한국의 선조들은 ‘길을 떠나려거든 눈썹도 빼어 놓고 가라’고 말했다. 하이커 하우스 보보의 조현수 대표는 ‘짐이 많으면 몸이 숙여지면서 자연과 하늘을 보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백패킹이 처음이라면 견뎌야 할 일이 덜하고, 볼거리가 많은 봄이나 가을을 선택하자. (나는 친구의 마음이 바뀌기 전 당장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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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장비, 장소의 세 가지 균형을 따져야 한다. 능력이 부족하면 장비로 보완하고 둘 다 부족하면 장소의 난이도를 조정한다. 오늘 함께할 친구는 평소 등산과 헬스를 즐긴다. 기본 장비만 챙겨줘도 될 것 같다. 백패킹에는 야영, 취사, 이동을 위한 장비가 필요하다. 모두 가볍고 설치가 쉬운 것이 좋다. 넓고 평평한 공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므로 특히 텐트는 작은 것이 좋다. 텐트는 내 것을 같이 사용하고, 겨울용 매트와 침낭만 빌려왔다. 식사로는 스낵류와 과일, 코코아 등을 챙기고 물통에 2리터 정도의 물을 담았다. 마시고, 음식을 하고, 손을 씻는 데 썼다. 백팩은 엄마 걸 빌려다 줬고, 등산화는 자기 걸 신고 왔다. 처음부터 장비를 전부 사기보다 중고 제품 또는 대여를 시작으로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좋다. 장비를 하나하나 비교하며 사 모으는 것 역시 백패킹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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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충남 홍성의 오서산을 골랐다. 까마귀와 까치가 깃들어 사는 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높이는 790m다. 차를 타고 꽤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어 한 시간 남짓 걷는 코스를 선택했다. 여기에 국내외 트래킹 경험이 많은 친구 하나와 장기 자전거 여행 경력이 있는 아웃도어 활동 마니아 둘을 끼웠다. 부디 친구에게 백패킹의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 백패커가 참고하기 좋은 사이트

📝하이커하우스 보보 : 제주의 하이킹 카페 겸 편집숍. 간소하고 지혜로운 하이킹을 위해 직접 만든 행동식을 판다.
📝케일 : 더 멀리 이동하기 위한 하이킹을 위한 경량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백팩을 중심으로 작은 아이템을 판매한다. 케일은 전문 의류 및 액세서리까지 판매 중.
📝베러위켄드 : 하이커를 위한 온라인 매거진. 제품 리뷰와 하이킹 문화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OTT와 같은 오프라인 하이킹 이벤트도 열린다.


“매너가 백패커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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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커에게 필요한 매너는 아무리 말해도 스크롤이 부족하다. 나 역시 지식이 부족한 채로 시작했다. 몸이 상하지 않으면서 산을 오르는 법, 가방 챙기는 법,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못 배우고 그저 신나서 사진만 찍었다. 부끄러운 실수를 피하기 위한 백패킹 기초 지식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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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쓰레기 버리지 않기’로 시작하자. 여기서 쓰레기는 비닐과 물티슈를 포함한 전부를 말한다. 귤이나 사과 껍질이 비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분해 속도가 느리고 농약이 묻었을 확률이 높아서 버리면 안 된다. 먹고 남은 국물에는 나트륨이 많아 토양을 괴롭게 한다. 남은 기름 역시 마찬가지. 남은 건 빈 페트병에 챙겨오자. 이왕이면 기름이 줄줄 나오는 고기는 저녁 메뉴로 피하는 게 좋다. 소변이나 대변도 호락호락하게 비료가 되지 않는다. 소변은 풀밭보다는 바위에 해결하고 대변은 응고제를 이용해 하산 후 버려야 한다. 큰일 보는 게 번거로워 산에선 적게 먹는 백패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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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체력은 자신 있어요” 서바이벌 콘텐츠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백패킹에서는 자기 체력을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편이 이롭다. 평소 근력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15kg 배낭을 메고 한 시간을 걸으면 관절과 연골이 손상된다. 뼈에 체중을 실으면 오스테오칼신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은 기억력을 높이고 두뇌 용량 저하를 막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준비된 자에게만 가능한 얘기다. 시작부터 어려운 코스를 선택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자. 근육통과 관절염에 시달리거나, 뒤처져서 팀원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 체력 부심은 다른 데서 뽐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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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의 멋진 백패킹 사진에는 장소를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미안하지만 어렵다는 답변도 심심찮게 보인다. 사유지도 아닌데 혼자 즐기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갑자기 사람이 몰려 자연이 훼손될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 백패커는 일반 등산객과 같은 길을 걷고 그 위에서 야영을 하므로 배려가 필요하다. 등산객이 큰 배낭을 멘 백패커에게 응원을 건넬 때가 많은데, 뭐가 된 듯 우쭐하지 말자. 주요 등산로와 전망대를 피해 사람의 발길이 끊기는 해 질 무렵 텐트를 설치하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자리를 정리하는 게 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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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한답시고 험한 길을 찾아 걷는 일 역시 하지 말아야 한다. 단단하게 다져진 땅 표면을 걷고 캠핑하는 것이 좋고 길을 모르겠다면, 앞선 백패커가 만들어 둔 리본을 따라 걷자. 왠지 이쪽 오솔길이 더 빠를 것 같고, 사진 찍으면 멋있게 나올 것 같아 비탐로(법적으로 가지 못하게 규정한 길)를 걸으면 자연훼손이 되고 사람 흔적이 남는다. 다치기도 쉽다. 야영의 낭만인 불멍? 캠프파이어? 당연히 안된다. 그것만은 참아주라.

✅ 백패킹 용어

📝노지: 지붕이 없는 땅을 뜻하는 말로, 관리자나 편의 시설이 없는 캠핑장 외 자연의 장소. 노지 감귤과 같은 의미로 노지 캠핑이라 쓰인다.
📝박지: 1박을 위한 땅.
📝박배낭: 1박을 위한 배낭.
📝비탐: ‘비법정 탐방로’의 줄임말. 등산객이 다니는 길 외에 법으로 가지 못하게 규정해 둔 길.
📝BPL: 가볍게 다니는 백패킹, ‘BackPacking Light’의 약자. 장비의 경량화 및 최소한의 음식으로 자연에 남기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LNT: 백패커의 기본 수칙, 흔적을 남기지 말자 ‘Leave No Trace’의 약자. 하산하는 백패커의 배낭에 달린 쓰레기봉투는 뭘 좀 아는 자의 멋으로 여겨진다.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