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번거로운 건 싫어, 불 없이 캠핑하는 법

안녕, 주말이면 산을 헤매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춥고 혹독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 아쉬운지 모르겠다....
안녕, 주말이면 산을 헤매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춥고 혹독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2022. 02. 10

안녕, 주말이면 산을 헤매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춥고 혹독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 아쉬운지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또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번 주에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방태산에 다녀왔다. 여전히 계곡물이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무릎까지 쌓여 겨울이 한창인 곳이다.

1400_retouched_-15

바로 직전 백패킹에서는 큰 배낭을 메고 고생을 했다. 겨울옷은 죄다 부피가 크고, 매트, 침낭, 핫팩까지 챙기느라 도무지 짐을 줄일 방법이 없었다. 짐이 커지면 무거운 것은 둘째 치고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얼어붙은 좁은 길을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더욱 더 그렇다. 어떻게든 짐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조리도구 일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1400_retouched_-42

캠퍼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불을 사용하는 일은 불법이다. 모닥불을 피우는 일은 물론 라이터를 들고 산에 오르는 일도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오늘은 영하 20도에서 불을 피우지 않고 1박 2일을 보낸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어묵탕을 끓여놓고 술 한 잔 기울이며 불멍을 하는 캠핑의 아기자기한 맛은 없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좋다. 담백하고 깔끔하며 생존에 유리하다. 번거로운 건 어차피 싫던 터였다.

1400_retouched_-37

불을 쓰지 않는 야영은 주로 ‘비화식 캠핑’이라 부른다. 한자로 이뤄진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버너를 비롯한 화기를 안 챙기면 비화식이 된다.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과 컵라면을 챙기거나, 발열 도시락을 사용하거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거나, 미리 김밥을 싸는 것도 방법이다. 먹는 일에 크게 흥미가 없다면 에너지바만 챙겨 가는 것 역시 비화식 캠핑이 된다.


[1]
“절대 지켜, 생명수”

1400_retouched_-16

산을 타기 전에 근처 마을에서 옹심이 칼국수와 메밀전병을 주문해 배를 두둑이 채웠다. 이날 텐트를 칠 곳까지는 8km의 산길을 걸어야 했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쉬지 않고 네 시간은 걸어야 했으니까. 이날처럼 영하 10도 아래의 날씨라면 걷는 동안 물통의 물은 금세 꽁꽁 얼어붙는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는 대신 약간의 여유를 두면, 출렁이느라 어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몹시 추운 날엔 그마저도 소용이 없다.

1400_retouched_-8

텐트에서 얼음을 깨고 녹이느라 씨름하고 싶지 않았기에 보온병을 챙겼다. 용량은 1L, 무게는 500g으로 비교적 가벼워 백패킹에 가져갈 만한 제품이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날진(nalgene) 물통에는 올라가면서 마실 물을 담았다. 6시간까지 고온을 유지할 수 있는 써모스의 보온병은 4만 1,500원. 구매는 여기.


[2]
“행동식 앞으로!”

1400_retouched_-2

겨울 산행은 에너지 소비가 어마어마하다. 추울 때 나가는 칼로리와 중량을 치고 오르막을 걸을 때 나가는 칼로리가 동시에 쓰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불을 가져가지 않더라도 열량은 제때 채워줘야 기운이 떨어지지 않는다. 손에 잘 닿는 곳에 걸으면서도 먹을 수 있는 작은 간식을 배치하자. 이걸 ‘행동식’이라 부르는데, 그 말이 왠지 멋있다. 산을 타기 전에 스스로 ‘잠깐, 행동식은 챙겼나?’ 물으며 멋도 챙겨 가자. 포도당 캔디나 꿀처럼 당을 빠르게 채워줄 만한 실용적인 것도 좋고, 양갱이나 육포, 견과류처럼 열량이 높은 것도 좋다. 나는 오늘만을 기다렸다가 편의점에 새로 나온 초콜릿들을 신나게 사 왔다.

1400_retouched_-17

목이나 어깨에 거는 작은 파우치인 사코슈에 이날의 행동식이 담겼다. 사코슈는 백패커를 위한 각종 아이템을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드는 브랜드 ‘코너트립’의 제품. 뭘 잘 모르던 때 ‘책 한 권이 들어가는 사이즈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다소 사이즈가 크다. 산에 오르면서 목에 책을 걸 일은 좀처럼 없지만, 대신 넉넉한 양의 행동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니 됐다. 코너트립의 사코슈. 구매는 여기.


[3]
“도시락이여, 눈치껏 때 되면 끓거라”

1400_retouched_-12

날이 이렇게까지 춥지 않았더라면, 비화식 캠핑을 위한 식량으로 빵과 쿠키, 닭강정을 챙겼을 것이다. 식었을 때 오히려 더 맛있는 음식은 대체로 비화식 식량으로 적합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하의 날씨에 사나운 기세의 바람이 부는 산골짜기에선 다르다. 몸을 데울 뜨끈함이 필요하다.

1400_retouched_-23

1400_retouched_-24

참미푸드에서 나온 ‘라면애밥’은 한국인의 등산 메이트로 이미 굳게 자리를 잡은 제품이다. 라면에 밥을 만 라면밥부터 김치찌개, 짬뽕, 비빔밥, 짜장밥, 미역국 등 종류가 다양해 패키지로 사뒀다가 골라 먹기 좋다. 포장을 뜯으면 발열팩과 도시락이 나온다. 각각 찬물을 조금씩 붓고 순서대로 파우치에 집어넣으면 이내 파우치에서 100도 이상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10분 정도 기다리면 조리가 끝난다.

1400_retouched_-3

동결건조 식품이라 대단한 식감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매콤달콤하고 간이 짭짤해 끊임없이 들어간다. 도시락의 400Kcal 열량이 부족하다면, 스트링 치즈나 떡국 떡, 누룽지, 달걀, 어묵 등을 넣어 같이 끓이자. 산에 국물을 버리면 식물에게 민폐가 되므로, 다 먹지 못할 것 같으면 애초에 물과 소스를 조금씩 덜 넣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사 간 삼각김밥을 국물에 적셔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라면애밥의 가격은 3,870원. 구매는 여기.


[4]
“아침식사는 왕처럼”

1400_retouched_-26

강풍으로 휘청이는 텐트 속 두어 개의 핫팩에 의지한 채 밤을 지내느라 아침부터 허기가 진다. 어제 8km를 걸었다면, 오늘은 11km 약 5시간 반의 하산이 예정되어 있으니, 뭐라도 먹고 텐트를 접어야 할 터. 습관처럼 마시는 모닝커피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새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아침은 왕처럼 먹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

1400_retouched_-5

1400_retouched_-33

아침으로 준비한 것은 미주라 토스트와 카페 모카다. 고소한 토스트 위에는 후무스나 연어 스프레드도 잘 어울리지만, 아침부터 달콤함만 주고 싶어 꿀과 딸기잼을 가져왔다. 카페 모카는 믹스를 이용해도 좋고, 핫초코와 에스프레소 스틱을 섞어 마셔도 좋다. 단단한 토스트와 얼어버린 크림빵을 커피에 적셔 먹으며 아침 식사를 마무리했다. 다음 겨울에는 배포를 좀 더 길러 와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수프에 빵을 찍어 먹는 호사를 부려볼 예정이다. 물론 이번에는 텐트 안에서 웅크린 채 토스트를 먹었지마는.

1400_retouched_-39

삼겹살을 굽고 제철 회와 술을 즐기는 야영의 즐거움이 있다면 비화식에는 비화식 나름의 재미와 매력이 있다. 짐 무게와 부피가 크게 줄어들고, 안전사고 걱정도 덜하다. 자연에 잠시 빌린 자리를 잘 정돈하고 얌전히 돌아오기에도 더 좋다. 여름이 오면 산에 올라 둥지 냉면을 씻어 후루룩후루룩 먹을 것이다. 디저트로는 가져온 얼음에 연유와 팥을 얹어 떠먹는 게 좋겠다.

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