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거 다 아는 노래들이구먼

안녕, 객원필자 김은아다. 연말의 공기에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일년 내내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았더라도 왠지 뮤지컬 한 편 봐줘야...
안녕, 객원필자 김은아다. 연말의 공기에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일년 내내…

2021. 12. 01

안녕, 객원필자 김은아다. 연말의 공기에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일년 내내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았더라도 왠지 뮤지컬 한 편 봐줘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화려한 홍보문구에 현혹당해 작품을 골랐다가는, 모처럼의 극장 데이트에서 피가 난자한 살인 파티를 목격하거나, 어머니와 함께 드래그퀸 로커의 19금 입담을 듣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모두 친구들의 실화다). 뮤지컬을 잘 몰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곡을 준비했으니, 작품 선택에 힌트가 되기를.


[1]
<지킬 앤 하이드>

😈무슨 상황?

‘지킬’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실험을 시작하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순수한 선과 악으로 분리하려는 실험을. 대충 봐도 수상한 작당에 누가 참여하겠나. 그래서 지킬은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결과는? 대성공.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악의 결집체인 ‘하이드’가 깨어나고, 끔찍한 범죄가 이어진다. 지킬이 공들여 개발한 약물을 본인에게 주사하는 역사적인 순간, 그러니까 모든 비극의 기점이 되는 곡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알고보면 축가로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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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작품?

<지킬 앤 하이드>는 정말 인기가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다. 한국에서 처음 공연된 2004년 이후 150만 명이 이 뮤지컬을 봤고, 여전히 공연 때마다 좌석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금 이 순간~’ 하는 후렴구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하다. 어차피 이번 공연도 성공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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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단점은 클래식하다는 것이다. 이 공연이 처음 만들어진 건 30여년 전이다. 어떤 장르든 이만큼의 세월이 흐르면 시대에 맞게 각색을 거칠 법도 하지만, <지킬 앤 하이드>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다. (세트가 화려해졌다거나 하는 등의 미미한 변화를 제외하고.) 때문에 고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우선 지킬이 자신을 내던지는 실험에 공감하기 어렵고, 지킬을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는 납작하고 도구적으로 쓰인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시대 착오적이라 해도 될 만큼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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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지킬 앤 하이드>가 사랑받는 이유 또한 고전미에 있다. 무엇보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아름다운 음악. ‘Once Upon A Dream’ ‘Take Me As I Am’ 등 귀에 익은 명곡들이 이어진다. 화려한 화음과 군무, 노래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귀와 눈을 즐겁게 한다. 마치 ‘이게 바로 뮤지컬이다’라고 외치는 듯 모범적이다. 앞서 말한 단점들에 괴로워하다가도 이런 장점에 즐거워하다 보면, 객석에 앉아있는 내가 지킬 앤 하이드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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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킬 앤 하이드>의 진정한 장점은 지킬(하이드) 역의 배우의 퍼포먼스 그 자체다. 다소 비약적인 전개를 납득시키고, 조명의 변화만으로 1초 만에 두 개의 인격을 오가는 변화를 설득해내는 것이 오직 배우의 기량에 달렸다. 따라서 어느 캐스팅을 만나느냐에 따라 이야기와 감정선, 심지어 체감 러닝타임조차 천차만별로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전혀 다른 긴장감과 맥락을 가진 공연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렇듯 자신만의 호흡으로 1200석의 관객들 설득하고 몰입시키는 배우의 에너지를 지켜보노라면, 뮤지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라이브의 매력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다. 극장에서 듣는 ‘지금 이 순간’은 결혼식장에서의 축가, 팬텀싱어에서의 오디션 곡 등으로 수없이 들어온 그 곡과는 전혀 다르게 들릴 것이다.

  • 기간 2021.10.19 ~ 2022.05.08
  • 장소 샤롯데씨어터
  • 출연 류정한, 홍광호, 신성록, 윤공주, 아이비, 선민 등

[2]
<레베카>

💃무슨 상황?

‘나’는 잘생긴데다 재산까지 많은 ‘막심’과 단숨에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한다. 전 부인 레베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더니 좀 어두워 보이긴 하는데,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등장한다. 시어머니도 아닌 집사 ‘댄버스 부인’. 처음부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더니 갈수록 대놓고 멸시한다. 급기야 죽은 여자에게 살아돌아오라며 신들린 듯 이름을 부른다. 뭐야,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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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작품?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의 오리지널 작품을 보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각자만의 스타일이 있다. 뮤지컬 제작사도 마찬가지다. <레베카>를 만든 EMK는 어떤 작품에서든 ‘K-정서’를 극대화하는 특기를 가진 제작사다. 이를테면 뮤지컬 <엘리자벳>. 원작은 자유를 갈망했으나 평생을 왕궁에 묶여 있어야 했던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를 통해 인간 내면의 불화를 섬세하게 그린다. 그러나 EMK의 손을 거친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서는 ‘우유부단한 남편과 고부갈등’이라는, 한국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키워드가 또렷해졌다. 원작의 주제는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친밀한 화법으로 우리만의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 자연스럽게 몰입하도록 만드는 영민한 접근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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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솜씨는 <레베카>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작 자체가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 감독이 영화화할 정도로 음산함이 감도는데, 뮤지컬은 여기에 속도감을 더하고 치정이 얽힌 한국 막장드라마식의 화법을 살짝 보탰다. 세상을 떠난 전 부인 레베카, 그의 얘기만 나오면 차갑게 돌변하는 막심, 이상할 정도로 레베카에게 집착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수상한 남자 등 미스터리 가득한 인물들과 몰아치는 음악까지. 관객들은 스릴 넘치는 긴장감을 만끽하다 결말에서야 뜻밖의 진실을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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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하이라이트는 1막 마지막 곡, 2막 첫 곡으로 등장하는 곡 ‘레베카’. ‘3옥타브 솔’을 훌쩍 넘어서는 초고음(소찬휘의 ‘Tears’ 정도가 비슷하다고…!)에 광기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더해 ‘나’와 관객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 순간에 느끼는 전율은 올림픽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를 목도했을 때의 감상에 가깝다. 이 카타르시스는 음원도, 영상도 아닌 극장에서만 오롯이 느낄 수 있다.

  • 기간 2021.11.16 ~ 2022.02.27
  •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 출연 신영숙, 옥주현, 민영기, 김준현, 에녹, 이장우, 임혜영, 박지연, 이지혜

[3]
<프랑켄슈타인>

💆무슨 상황?

빅터와 앙리는 하나의 뜻을 향해 달려가는 친구이자 동료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 즉 생명 창조다. 재료(시체)를 구하려던 이들은 해프닝에 휘말려 살인자로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앙리는 빅터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너의 꿈 속에서’를 부른 뒤 대신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잘린 머리는 마침내 빅터가 탄생시킨 생명체 ‘괴물’의 머리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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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오늘 소개하는 네 편의 공연 중 유일하게 한국 창작진이 만든 작품이다. 그 답게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강렬한 매운 맛이 있다. 일단 <프랑켄슈타인>은 시작부터 몰아치고 밀어붙인다. 빅터와 앙리가 만나고, 과거를 공유하고, 우정을 쌓고,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마침내 생명을 창조하는 것까지 모두 1막 안에 진행된다. 특히 거대한 무대 장치를 이용해 새 생명을 창조해내는 신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냉탕 온탕을 반복하며 질주하는 음악과 감정선 사이에서 담금질되는 사이, 관객들은 어느새 ‘생명창조’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도 기꺼이 내놓는 주인공들의 절대적인 관계 속에 완벽하게 안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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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얄궂게도 작품은 그 즉시 두 사람의 관계를 정확히 반대로 바꾸어놓는다. ‘앙리의 목’을 가진 괴물과 그를 탄생시킨 창조주 빅터는 서로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는 원수가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유독 회전문(재관람) 관객이 많은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1·2막에서 정반대로 갈리는 캐릭터들의 관계성이 자꾸만 더욱 파고들고 싶게 만든다. 생을 넘어서 이어지는 애증과 복수의 여정을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관객을 기다리는 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이다.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배우들의 열연. 둘도 없는 친구에서 둘도 없는 원수까지, 감정을 끝까지 몰아붙이고, 바닥을 구르고, 한계치까지 자신을 내던지는 배우들의 에너지는 다른 공연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 기간 2021.11.24 – 2022.02.20
  •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 출연 민우혁, 전동석, 규현, 박은태, 카이, 레오, 해나, 이봄소리, 서지영, 김지우

[4]
<빌리 엘리어트>

🏃무슨 상황?

광부인 형과 아빠, 치매인 할머니는 빌리에게 신경을 쓸 수 없다. 권투 수업에 늦은 빌리는 우연히 발레 수업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매료된다. 윌킨슨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광부들은 파업 시위에 나선다. 빌리는 발레를 배운다. 경찰은 시위를 진압한다. 빌리는 발레를 연습한다. 갈등은 심화된다. 빌리는 피루엣(회전)을 성공한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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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작품?

천재의 탄생은 언제나 축하할 일일까? 작은 탄광촌에서, 그것도 광부 대파업 시기에 하필 발레의 소질을 발견한 빌리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빌리의 가족에게나 이웃에게나 발레는 ‘게이나 추는 춤’일 뿐이다. 그러나 발레 수업을 가르치던 윌킨슨 부인은 빌리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 역시 가난한 마을의 무기력한 어른이었으나, 빌리만큼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그의 등을 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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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2000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무대 위로 옮긴 것이다. 원작 영화의 감독인 스테판 달드리가 연출을 맡고 전설적인 뮤지션 엘튼 존과 영국 최고의 안무가 피터 달링이 안무를 맡았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빌리 역을 맡은 네 명의 소년이다. 1년 3개월 동안 훈련과 연습을 거친 이들은 ‘아역’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배우로서 배우로서 극을 이끌어나간다. 그 작은 몸으로 꿈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 기간 2021.08.31 ~ 2022.02.02
  • 장소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 출연 김시훈, 이우진, 전강혁, 주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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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전시, 공연, 와인에 대한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뉴술레터' 운영자. 뭐든 잘 타요. 계절도, 분위기도, 쏘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