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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피카하러 가지 않을래?

안녕, 스웨덴에 사는 객원 필자 남현진이다. 스웨덴에서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 한국의 커피 문화가...
안녕, 스웨덴에 사는 객원 필자 남현진이다. 스웨덴에서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2021. 11. 18

안녕, 스웨덴에 사는 객원 필자 남현진이다. 스웨덴에서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 한국의 커피 문화가 공간 중심이라면 스웨덴의 커피 문화는 시간 중심이다. 스웨덴 사람들이 커피 마시는 시간은 하나의 관습으로 같이 자리 잡아, 피카(Fika)라는 고유의 문화가 되었다. 오늘은 스웨덴의 독특한 커피 문화 피카와 스웨덴의 커피 제품에 대해서 소개해보려 한다.


“우리, 피카 하러 갈래?”

1400_retouched_-3[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아닌 피카]

피카(Fika)는 커피 마시는 시간(coffee break)을 뜻한다. 커피를 가족, 친구, 애인, 동료와 마시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피카라고 한다. 사실 커피 마시는 게 뭐 그렇게 특별할까 싶지만 스웨덴에서 피카는 단순히 커피 마시는 시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적 연대이자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키는 문화라고 할까. 스웨덴의 업무의 효율성과 인관 관계의 중심에는 피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피카는 스웨덴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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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피카는 한국의 회식 문화와 비슷하다. 스웨덴의 회사에는 다과 룸과 비슷한, 커피를 앉아서 마실 수 있는 피카룸을 따로 갖추고 있다. 보통 자연스럽게 ‘피카 하러 갈래?’라고 물으며 피카를 하기도 하지만, 직장에서는 피카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우리 팀의 경우엔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를 피카 시간으로 정해놓고 매주 다 같이 모여서 삼십 분 동안 피카를 한다. 피카 시간에는 업무를 하지 않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국룰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지금은 피카도 화상으로 계속하고 있다. 각자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서 카메라를 켜고 그냥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1400_retouched_-10[다들 재택근무를 해서 텅 비어 있는 사무실. 피카할 수 있는 여러 장소들이 마련되어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휴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피카는 스웨덴 회사의 생산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일의 양보다는 질을, 열심히 많은 일을 해내는 것보다는 개인의 삶에 무리 가지 않을 만큼의 일정한 양의 노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빨리 가려다 무리하면 지쳐버리기 때문에 한순간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일은 100m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까운 셈이다. 피카는 지치지 않고 잠깐 쉴 시간을 가지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자는 사회적 약속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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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다음에 밥 한 끼 먹자’가 있다면 스웨덴에서는 ‘다음에 피카하자’가 있다. 가족을 만날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연인을 만날 때도 피카는 빠지지 않는다. 밥 한 끼 대신 피카를 해서 좋은 점이라면 만남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은 물가가 비싼 나라에 속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외식비가 정말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집밥이나 도시락을 먹는 게 기본값이고 정말 특별한 날 마음 먹고 가서 먹는 게 외식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밥 한 끼 먹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하지만 점심도 저녁도 아닌 오후 3시쯤 만나 커피 한잔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이어나가는 북유럽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웨덴 커피는 무슨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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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커피의 기본값은 아메리카노가 아닌 브루커피이다. 유럽 안에서도 커피를 내리는 방식은 다양한데 이탈리아 남부 유럽에서는 샷으로 내린 에스프레소가 기본이라면 북유럽에서는 오랜 시간 내려서 마시는 브루커피가 일반적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맵부심이 있듯,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커피 부심이 있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커피의 비율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두 스푼 더 넣어서 굉장히 진하고 탁하게 우려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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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현지의 커피 맛이 궁금하다면 드롭 커피(Drop Coffee)를 마셔 보자. 드롭 커피는 스웨덴에서 가장 핫한 로스터리 카페다. 드롭 커피가 유명해진 이유는 단연코 드롭 커피에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 빈 때문이다. 사실 유명세에 비해 드롭 커피의 역사는 굉장히 짧은데 창업자인 요한나 알름(Joanna Alm)이 스톡홀름의 로스팅 챔피언 대회에서 3년을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 로스팅 대회에서도 3년 연속으로 순위권에 오르면서 빠르게 이름을 알렸고, 로스터리 또한 가파르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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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커피는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리카과라, 온두라스 등 여러 지역의 소규모 로컬 농장에 직접 방문해서 인도주의적이고 환경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바잉을 한다. 로스팅 방식은 라이트에서 미디엄까지 있고 최대한 커피콩 본연의 맛을 유지한 투명한 방식을 지향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커피콩의 속성에 따라 산미가 나는 콩은 최대한 산미를 살리고 크리미 한 콩은 크리미 한 맛을 로스팅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드롭커피에서 마치 차처럼 투명하고 깊은 향이 나서 일반적인 커피와 다른 한층 더 고급스러운 맛이 느껴진다.

1400_retouched_2_-1[드롭 커피에는 브루 커피만 12종이 있다]
1400_retouched_2_-2[드롭 커피의 여러 종류의 로스팅 빈]

드롭 커피가 소규모 농장의 커피 빈을 각각 다른 제품으로 만드는 싱글 오리진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커피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커피 체리를 기르고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선택해서 마실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드롭 커피의 제품 이름은 소규모 농장의 농장주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홈페이지에 보면 그 각 제품별로 커피가 자라나는 농장의 풍경, 농장주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읽어볼 수 있어서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생기고 믿을만한 신선한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기분이 물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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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어떻게 드롭 커피를 맛볼 수 있냐고? 다행히 북유럽까지는 안 와도 된다. 얼마 전 김정현 에디터님이 디에디트에 소개한 글에 따르면 드롭 커피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맛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카페가 있다고 하니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 빈들을 판매하고 있으니 카페에서 마시지 않더라도 원두를 사서 집에서 스웨덴 스타일의 커피를 체험해 봐도 좋겠다. 드롭 커피 홈페이지는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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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맛은 볼리비아에서 워시드 방식으로 가공된 카멜리타(Carmelita)다. 이 커피는 갈아보면 다른 커피에 비해 조금 더 오렌지 빛이 돌고 내렸을 때는 홍차처럼 맑다. 배와 앨더 플라워 향으로 시작해서 카카오 향이 감도는 맛이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 법한 커피다. 가격은 250g에 165크로나(SEK)로 2만 3,000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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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제품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른을 위한 달력도 있다. 24가지 원두가 각 35g씩 들어가 있는 크리스마스 달력이다. 크리스마스를 하루하루 기다리며 12월 1일부터 12월 24일까지 매일 다른 원두로 마시며 스스로에게 크리스마스를 선물하는 것이 콘셉트이다. 가격은 750크로나로 한화로 10만 3,000원 정도인데 선물하기 딱 좋은 제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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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에가스(Zoegas)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 중 하나다. 어떤 슈퍼에 들어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만한 국민 커피콩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스웨덴 통신사의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의 팀원들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자동 커피머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커피 머신을 가져와서 내려 마신다. 그리고 우리 팀의 원두는 항상 쏘에가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 여러 브랜드를 거치며 뜨거운 논쟁을 벌이다 최종적으로 모두가 찬성한 쏘에가스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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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항구도시 헬싱보리의 한 카페에서 작게 시작한 쏘에가스는 커피콩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글로벌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쏘에가스는 환경과 여성 인권에도 관심이 많은 브랜드인데, 2011년부터는 우간다 여성을 커피 사업가로 성장하도록 돕는 ‘여성에 의한 커피(Coffee by Women)’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더불어 2021년부터는 오직 전기차로 완제품을 운송하도록 바꿔서 전년도 대비 탄소배출량을 40%로 줄였다. 요즘따라 ‘그린 워싱’으로 그럴듯하게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커피 기업들이 많이 보이는 와중에 쏘에가스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눈여겨보는 커피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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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에가스의 제품은 대중적인 만큼 커피의 종류도 다양하다. 원두는 미디엄 로스팅부터 엑스트라 다크 로스트까지 취급하고, 필터용 원두, 에스프레소용 원두 그리고 캡슐 커피까지 다양한 제품군의 쏘에가스 커피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450g에 45크로나로 한화로 6,000원 정도다.

쏘에가스 커피는 워낙 대중적인 커피라 여러 가지 로스팅 종류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쏘에가스를 대표할 수 있을만한 제품을 소개해 보자면 로스팅이 강하게 된 원두인 스코네 로스트(Skånerost)라는 제품을 추천한다. 쏘에가스는 강한 로스팅에 강점이 있는 브랜드라서 진한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쏘에가스의 스코네 로스트를 즐겨 찾는다. 스코네 로스트는 동아프리카에서 손으로 직접 수확한 원두를 사용하고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로스팅한 제품이다. 원두는 바디감이 넘치고 아로마의 잔향과 블랙 큐런트의 과일 향이 스치는 다크 한 맛이 난다. 워낙 커피가 향도 강하고 묵직해서 커피 자체로 즐길 때보다는 치즈케이크나 과일과 함께 마실 때 빛이 나는 커피다. 한국에서도 아마존 직구를 이용하면 스코네 로스트 커피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450g에 22달러로 2만 6,000원 정도.

1400_retouched_-9[자동 커피머신을 놔두고 쏘에가 커피를 끓여 마신다.]

우리는 창가에 전기 주전자를 두고 쏘에가스 커피를 끓여 마신다. 퍼컬레이터(percolater)라고 부르는 이 주전자는 스웨덴 가정집에서 흔히 커피를 끓일 때 사용하는 제품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모카팟과 비슷하게 증기압으로 올라오는 온수로 커피를 우려낸다. 필터가 커피의 성분을 많이 걸러내지는 않아서 커피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모카팟과 비교해 크레마가 적고 원두의 묵직함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강한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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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 사람 못지않게 커피를 참 많이 좋아하는 게 한국 사람이다. 성인 기준  연간 1인당 353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스웨덴에 오기 전에도 이미 한국에서 친구와 헤어지기 아쉬울 땐 카페를 찾았으니 알게 모르게 K-피카를 해왔던 것 같다. 사실 ‘피카하자’고 하든 ‘커피 한잔’하자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피카에서 배우고 싶은 단 한 가지는 휴식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누군가와 함께하는 휴식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커피를 마시며 바쁜 일상에 한 숨을 돌리며 당신을 충전해 줄 수 있는 시간을 종종 보내기를 바란다.

namhyun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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