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내 탓인지, 운이 없는 건지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2021. 11. 17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주말엔 디에디트를 위해 내가 읽은 것에 대해 쓴다(얼마 전부터는 주말을 쪼개 낱말퍼즐 뉴스레터 <퍼줄거임>을 만든다).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우릴 위한 책 5권을 꼽아봤다. 운이 안 따라줘도, 주가가 떨어져도, 해외여행이 막혀도, 예기치 않은 다정함에 뭉클해지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며.


[1]
<블러프>

“당신은 결코 원하는 정보를 모두 가질 수 없으며
그래도 여전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확실성은 놔두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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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코니코바는 <뒤통수의 심리학>, <생각의 재구성> 등을 펴낸 심리학자다. 그는 포커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지 1년 만에 세계 최고 대회에서 포커 챔피언이 되었다. 나는 궁금했다. 대체 포커를 누구한테 어떻게 배웠기에 1년 만에 챔피언이 될 수 있었나? 심리학에 통달하면 포커로 돈을 딸 수 있는 건가? 아니 뭣보다, 가방끈 길고 책까지 몇 권 펴낸 심리학 박사가 왜 갑자기 포커에 뛰어들었나?

‘실력과 운의 관계’는 대학원 때부터 저자가 주목해온 심리학 연구 주제였다. 실력은 통제할 수 있지만, 운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뭐가 실력이고 뭐가 운인지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주 실력과 운을 혼동했다. 운이 좋았을 뿐인데도 ‘내 실력 덕분’이라고 착각하거나, 실력을 키워 대응할 수 있는 일인데도 ‘운에 맡기는’ 게으름을 부리거나.

마침 저자의 삶도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니와 남편의 연이은 실직, 그리고 자신의 건강 문제까지 겹쳐 이게 다 내 탓인지 그냥 운이 없는 건지 헷갈렸다. 포커를 통해 운을 길들이고 싶었고, 패가 좋지 않을 때도 좋은 결과를 내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저자는 포커 챔피언 에릭 사이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까지가 책의 인트로고, 이어지는 내용은 20년 넘게 ‘의사결정’을 연구해온 심리학자가 포커 고수로부터 베팅 무공을 전수받아 칩 든 적들을 하나씩 무찌르는 무협지 스토리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조각으로 길을 안내했듯, 저자는 포커 대회 우승자의 길로 나아가며 ‘세상을 플레이하는 법’에 대한 힌트를 흘린다.

  • <블러프> 마리아 코니코바 | 한국경제신문 | 20,000원

[2]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이 시기 직장에서 구조 조정 당한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참여하기 시작하며 ‘전업투자’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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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그렇지만, 2021년에도 나에겐 꽤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 하나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2020년까지는 주식과 나의 거리가 워낙 멀었다. 삼촌 방에서 주식책을 발견하고는 진지하게 삼촌의 앞날을 걱정했고, 야심 차게 구독한 신문을 볼 때도 경제면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스킵했으며, <작전>이나 <돈> 같은 영화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다 눈빛이 무섭게 바뀌어버리는 주인공을 보며 혀를 찼으니까.

그랬던 내가 주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배가 아파서. 그만큼 올해 초의 시장은 ‘역대급’이었다. 주식 잘 몰라도 삼성전자에 돈만 넣어두면 알아서 오른다, 요즘처럼 금리 낮을 때 예금통장은 조금씩 새는 수도꼭지나 마찬가지다, 같은 얘기들이 돌고 돌아 나 같은 주알못 귀에까지 흘러들어왔으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물론 2021년 11월 현재 시점에서 틀린 말들이 많지만…).

그렇게 주식에 관심이 좀 생긴 상태에서 <개미는 오늘도 뚠뚠>을 봤다. 노홍철의 네버엔딩 투자 실패 썰과 딘딘의 단타 타령이 너무 웃겨서 시즌1~2를 정주행해버렸다. 그러고 나니 주식을 안 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렇게 증권 앱을 깔아 처음으로 100만 원을 넣었고, 이 정도가 경력 1년이 채 안 되는 나의 주식 이야기다.

잘 되면 돈 복사, 잘 안 되어 손해를 보더라도 어디 가서 웃긴 썰 풀 수 있는 정도의 해프닝 정도로 주식을 인지하던 나에게 이 책은 내가 몰랐던 풍경을 보여준다. 퇴직 후 매매방에 모여 자기 몫의 모니터를 바라보는 중년 남성. 투자했고, 실패했고, 계속 투자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노홍철은 분명 같은데, 왜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은 <뚠뚠>을 볼 때와 다른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읽어봤다. 그들은 왜 계속 투자하는가. 왜 계속 투자할 수밖에 없는가.

  •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 민음사 | 16,000원

[3]
<텐동의 사연과 나폴리탄의 비밀>

“분명 여러분의 다음 일본 음식은 더 맛있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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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글쓰기’라는 목표를 갖고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영어로 글을 쓰면 독자 풀이 몇십, 몇백 배로 늘어날 거라는 계산이었으나, 지금은 반쯤 포기했다.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 컸다. 머릿속 생각을 전달하는 건 30년 넘게 써온 한글로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서 이 책이 어떻게 쓰였을지 궁금했다.

<텐동의 사연과 나폴리탄의 비밀>은 일본인이, 한국어로 쓴, 일본 음식 안내서다. 일본인이기에 현지인의 관점을 가졌고,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한국인들이 뭘 궁금해하고 뭘 헷갈려하는지 안다. 그것이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일본 음식’이라는 주제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식을 정말 많이 먹는구나…’ 총 70여 개의 음식 중 50개 이상은 이미 먹어봤고, 완전 처음 들어보는 음식은 두세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특별한 추억이 있는 음식 몇 개들. 첫 일본여행의 첫 끼였던 징기스칸, 부위 이름을 못 읽어서 회식 중인 일본인들이 먹고 있는 걸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했던 야키니쿠 가게, 귀국한 후에도 그 맛을 못 잊어 대량 주문해 달고 살았던 낫토… 저자의 표현처럼, 책을 읽다 보면 ‘망상 여행’을 하게 된다. 다음에 일본 가면 카이센동은 꼭 여기 가서 먹어야지!

외국어로는 글을 잘 쓸 수 없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혹시 든다면… 다음 문장의 따뜻함이 생각을 바꿔줄 것이다. “일본에는 나이 차이가 커도 부담 없이 친구로 지내는 문화가 있어요. 열 살,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도 마음이 통하면 다 친구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나이가 다르거나 익숙한 입맛이 다소 달라도, 이 책에서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텐동의 사연과 나폴리탄의 비밀> 네모 | 자기만의방 | 17,500원

[4]
<다정소감>

“하나하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했다.
뻔한 다정이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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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존댓말로 써보려고 합니다. 디에디트 독자분들을 향한 제 마음은 매우 다정한데, 글만 봐서는 그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가끔 걱정했거든요. 제한된 분량에 최대한 많은 생각을 담기 위해 반말투로 글을 쓰는 것이니, 앞으로도 너른 마음으로 헤아려주시기를:)

저의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좀 더 다정해지기’였습니다. 없는 다정을 억지로 만들자는 건 아니었어요. 다정한 마음이 샘솟을 땐 그걸 충분히 드러내자, 그래서 상대방도 내 마음을 알게 하자, 는 거였죠. 저에겐 결코 만만치 않은 목표였어요. 꺼내 보인 마음이 행여나 우스꽝스러워지진 않을까,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사진 않을까, 표현한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상처로 남지 않을까, 여러모로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저는 최근 몇 년간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다정을 주고받으며 거기서 오는 행복을 충분히 느꼈기에, 일단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꽤 다정해졌습니다. 아니, ‘다정함을 시도했다’에 가깝겠네요. 동료의 장점을 발견하면 타이밍을 좀 놓쳤더라도 용기 내 말했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도움 될 책을 발견하면 링크라도 슬쩍 건넸고,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는 먼저 ‘커피 한 잔’을 제안했습니다. 아직 작고 투박한 다정이지만, 시작이 반이니까요. 그리고 훌륭한 레퍼런스가 되어줄 이 책, <다정소감>을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다정한 장면들이 <다정소감>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저자가 친구에게, 친구들이 저자에게, 그리고 저자가 저자 본인에게 건네는 다정한 마음들. 책을 보면서 저는 제가 받았던 다정한 마음들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도 다정을 표현할 수 있구나, 나도 더 다정해질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내년에도 저의 목표는 ‘좀 더 다정해지기’입니다.

  • <다정소감> 김혼비 | 안온북스 | 15,000원

[5]
<모두의 가로세로 낱말퍼즐 추리>

“저는 여러분 덕분에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퍼즐을 풀 때만큼은 외롭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꾸준히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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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번 글도 존댓말로 쓰는 게 좋겠네요. 혹여나 글을 다 읽고 배신감을 느끼실까 싶어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책은 제 책입니다! 신간 중에 다른 훌륭한 책도 많았지만, 제 손으로 낳은 자식을 내버려둘 수 없어서 이렇게 데리고 나왔습니다. 한 번 더 너른 마음으로 헤아려주시기를:)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읽는 것도 물론 좋지만 사고, 꽂고, 구경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영화도 좋아합니다. 행복한 영화, 슬픈 영화, 웃기는 영화, 무서운 영화 모두 좋지만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음악도 좋아합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 없이 두루 즐겨 듣고, 그런 저의 ‘취향 없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낱말퍼즐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 그 밖에 세상 돌아가는 일과 주변의 일상을 낱말퍼즐 안에 담습니다. <대학내일>에 ‘기명균의 낱말퍼즐’을 3년 가까이 연재했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이 세 번째 책입니다.

저는 유행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신조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유난히 입에 딱 붙는 말이 있습니다. “OO에 진심이다.” 춤에 진심이다, 포커에 진심이다, 마라탕에 진심이다… 저보다 낱말퍼즐에 진심인 사람, 아직 전 못 봤습니다. 만약 저 같은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만나 뵙고, 그분이 만든 퍼즐을 풀어보고 싶습니다. 낱말퍼즐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역시 푸는 재미는 못 따라가거든요. 제가 이렇게 퍼즐을 계속 만드는 이유도 풀 퍼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흥미가 생기셨다면, 꼭 낱말퍼즐을 만들어 주세요. 만약 이 책이 당신이 만드는 낱말퍼즐의 출발점이 된다면, 전 정말 기쁠 거예요.

  • <모두의 가로세로 낱말퍼즐 추리> 기명균 | 보누스 | 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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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