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ICK

[M의 취향] 내가 요즘 좋아하는 인센스

안녕하세요, 아침에 눈 떴을 때 코끝에 닿는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습니다. 밤새 차가운 공기에 혹사당했던 코를 훌쩍이며 오늘도 힘겹게 침대에서 몸을...
안녕하세요, 아침에 눈 떴을 때 코끝에 닿는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습니다. 밤새 차가운…

2021. 11. 05

안녕하세요, 아침에 눈 떴을 때 코끝에 닿는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습니다. 밤새 차가운 공기에 혹사당했던 코를 훌쩍이며 오늘도 힘겹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저의 아침 루틴을 말해볼게요. 일단 눈을 뜨면,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활짝 엽니다. 간밤에 제가 내뱉은 날숨을 새로운 공기로 갈아치우는 거죠. 그리고 곧장 침대 맡은 편에 있는 서랍장을 열고 그날의 온도 습도 공기…를 가늠하며 아주 신중하게 ‘오늘의 향’을 고릅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피울 인센스를 고르는 거죠.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는 숲의 향을, 유리구슬처럼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엔 붕 뜬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샌달우드 향을 골라요. 인센스를 홀더에 끼우고 성냥(꼭 UN 팔각 성냥이어야 해요)을 ‘치익’그어 인센스에 불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침구를 팡팡 털어 정리하고, 물도 한 잔 마셔주고, 시간이 좀 되면 청소기도 좀 돌리고 나서야 본격적인 저의 출근 준비가 시작됩니다.

DSC09809

별거 없어 보이는 이 모닝 루틴은 독립한 지 이제 1년 정도 된 저에겐 정말 중요한 의식입니다. 매일 새벽 천근만근 하는 몸뚱이를 힘겹게 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말끔하게 정리된 침구와 익숙하고 좋은 향이 나는 집이 나를 반겨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거든요.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되는 게 없는 것 같은 저의 인생이 그래도 어느 한 조각 만큼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listerine_DSC05737

암튼 스님도 아니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매일 인센스를 피워댔으니 제가 얼마나 많은 인센스를 피워봤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요즘 제가 정말 좋아하고 자주 피우는 인센스를 모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짐작하셨겠지만, 구구절절 설명이 많을 예정입니다.


1. 무하유 포레스트 셀렉션

DSC09816

이제 막 인센스의 세계로 발을 들이신 분이라면, 이렇게 반죽만으로 된 선향을 추천합니다. 얇은 대나무에 핫도그나 빼빼로처럼 반죽을 바른 죽향(흔히 인도식 인센스라고 하죠)보다 그 향이 훨씬 부드럽거든요. 지금 소개할 무하유는 팟캐스트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김도인 님이 만든 브랜드입니다. 다양한 향이 있지만, 제가 고른 건 서로 다른 3개의 향이 마치 샘플러처럼 한 구성으로 묶인 ‘포레스트 셀렉션’인데요. 이름처럼 숲의 이미지를 가진 3개의 향이 들어 있어요. 싱그러운 숲과 은은한 꽃 향이 나는 초록색의 삼발라, 우아한 꽃과 깊은 나무 향이 매력적인 보라색의 디오티마, 굉장히 깊고 진한 나무 내음이 느껴지는 남색의 메블리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골라도 실패는 없어요. 하나같이 깊은 숲속 마법처럼 고고하게 피어있는 한 송이의 난처럼 우아하고 은은한 매력이 있는 향입니다.


2. 에스테반 테크통카 

DSC09820

요즘 제가 푹 빠진 인센스입니다. 에스테반은 프랑스에서 30년 넘게 향수를 만들어온 브랜드인데요. 470년 전통의 인센스 브랜드 니폰코도와 협업해서 인센스를 선보였더라구요. 에스테반이 향수 브랜드라 그런 걸까요? 향의 느낌이 전반적으로 인센스보다는 향수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샌달우드, 파출리, 앰버, 시나몬의 향조로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을 표현했다고 해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아프리카의 태양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느낀 건 아주 향긋한 비누 향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목욕탕의 탈의실 향기랄까요. 문이 열릴 때마다 조금씩 밀려 들어온 수증기의 냄새와 비누 향 그리고 약간의 스킨 냄새가 섞인 듯한 향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센스라는 건 불을 붙이고 난 뒤 남은 잔향을 즐기는 거라 스틱 자체의 향과 막상 태우고 난 뒤의 인상이 다를 때가 많은데요. 이건 태우고 난 뒤에도 캐릭터가 거의 변하지 않더라고요. 맑고 깨끗한 향이라 제가 참 좋아합니다.


3. 니폰코도 화풍 히노키 

DSC09811

위에 잠깐 언급한 470년 전통이 일본 향조 브랜드 니폰코도의 인센스입니다. 니폰코도 중 ‘화풍’은 ‘바람을 타고 오는 은은한 향기’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시리즈에요. 무슨 말이냐면, 불을 붙였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연기가 나지 않고 조용히 타며 향도 그만큼 은은합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정숙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화풍 시리즈는 거의 다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 소개할 건 히노키입니다. 말 그대로 히노키의 향을 극대화한 인센스에요. 저희 향수 취향은 곧고 길게 뻗은 소나무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절에서 날 것 같은 그런 향을 좋아하는 저에게 히노키는 정말 취향 저격인 셈이죠. 피우는 순간 번잡했던 주변이 조명을 끈 것처럼 차분해지고 저는 고요한 산속, 바람에 흔들리는 편백나무 숲에 가만히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DSC09813

제가 니폰코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꼭 저의 한결같은 향의 취향 때문만은 아닙니다. 50개가 들어있는 인센스 한 박스의 가격이 고작 6,000원 정도인데, 그 안에 이렇게 귀여운 인센스 홀더까지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홀더를 끼워주는 건 위에 소개한 에스테반x니폰코도 인센스도 마찬가지죠. 흔히 다 타고나면 일명 대나무 꽁다리가 남는 죽향과 달리, 불씨가 끝까지 타들어 가는 선향은 인센스 홀더를 고를 때 안전을 위해 타지 않는 소재를 고르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어떤 인센스 홀더를 쓰더라도 결국 불씨가 인센스 홀더에 닿아 꺼지는 원리라서 필연적으로 인센스에 검은 그을음이 남더라고요, 참 속상하게.

DSC09845

그래서 저는 선향을 자주 피우시는 분들에게는 비싸고 좋은 인센스 홀더 보다는 이렇게 인센스를 사면 나눠주는 작은 홀더를 쓸 것을 추천합니다. 높이가 낮기 때문에 인센스를 끝까지 쓸 수 있어 경제적이고, 오히려 타고 남은 부분을 버리기도 쉽거든요.


4. 다르샨 로즈마리

DSC09832

인센스 중에 뭔가 푸릇푸릇 한 풀숲의 향을 찾고 계신다면, 다르샨의 로즈마리를 추천합니다. 사실 풀숲 향으로 가장 유명한 건 같은 브랜드의 레인 포레스트지만, 가끔 그 향은 저한테 좀 달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로즈마리는 레인 포레스트보다 조금 덜 달고, 조금 더 허브스러운 향입니다. 사실 로즈마리에서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어요. 여러분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겠죠. 풀을 돌로 짖이긴 것 같은 향에 다르샨 특유의 날카로운 비누 향이 더해져 참 향긋합니다. 인센스 중에 가장 초록에 가까운 향이 무엇이나면 묻는다면 아마 주저하지 않고 다르샨의 로즈마리라고 답할 거예요.


5. 다르샨 쿨워터

DSC09840

다르샨의 쿨워터는 이름처럼 청명하고 깨끗한 물의 향입니다. 사실 이 향은 ‘오 드 콜로뉴’라고 하는 독일 쾰른 지역에서 굉장히 오래전부터 사랑받은 향에서 따왔다고 해요. 가벼운 시트러스 향으로 시작해 장미 향으로 끝나는 이 향은 인센스를 즐기지 않는 에디터H도 반하게 만든 그런 향입니다. 그냥 그 차제로도 향긋하고 상쾌해서 꼭 태우지 않고 그냥 인센스 홀더에 꽂아 방향제도 즐기셔도 좋을 정도죠.

DSC09824

지금까지 소개한 다르샨은 흔히 인도식 인센스라고 하는 죽향, 그중에서도 차콜 인센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차콜 인센스는 숯가루에 프레그런스 오일을 넣어 반죽을 하고 그걸 얇은 대나무 반죽에 입힌 걸 말해요. 숯가루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인센스가 새까만게 특징이고, 차콜 인센스를 대표하는 브랜드로는 지금 소개한 다르샨과 헴(HEM)이 있습니다.

죽향 중에도 또 다른 종류는 마샬라 인센스가 있습니다. 마샬라 인센스는 허브 가루와 허브 오일로 반죽을 만든 뒤, 그걸 마찬가지로 얇은 대나무에 입혀줍니다. 그리고 그다음 또 허브 가루를 솔솔 뿌리는 과정을 거치죠. 검은색을 띠는 차콜과 달라 마샬라 인센스는 황토색이 특징이구요. 마치 꽃의 수술처럼 살짝만 건드려도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곤 합니다. 마샬라 인센스의 대표적인 게 바로 가장 유명한 나그참파와 다음에 소개할 비제이스리가 있습니다.


6. 비제이스리 골든 나그 

DSC09823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죠? 비제이스리는 제가 마살랴 인센스 중에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에요. 발향이 굉장히 강하고, 맡자마자 “아, 인도식 인센스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인센스의 경우 저는 태울 때 나는 향보다는 잔향으로 즐기는 것이 훨씬 좋더라구요. 불을 붙이면 특유의 꼬릿한 캐릭터도 강하고, 향이 너무 맵고 달기 때문에 별로라고 느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향수 못지않은 파우더리하고, 머스크한 잔향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샬라 인센스의 경우 밖에 나가기 바로 전에 인센스에 불을 붙이거나, 아니면 인센스가 타고 있을 때는 창문을 열고 방문은 닫은 채로 두다가 불이 꺼질 때쯤이 되면 방문을 열어둡니다. 여러분 인센스는 꼭꼭 창문을 열고 태우셔야 해요. 인센스를 태울 때마다 공기청정기가 가열차게 빨간색 불을 켜고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니 창문을 꼭 열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더라고요.

DSC09828

헴(HEM)의 찬단은 조금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입니다. 마샬라 인센스 특유의 향이 강하게 나고, 바닥에 가루도 상당히 많이 떨어지는 편이긴 하지만, 노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밭에 와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브랜드에 따라 인센스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자 오늘 제가 좋아하는 인센스 6개를 추천해 봤습니다. 저의 서툰 글과 조급한 마음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이 향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다들 마음에 드는 향 하나쯤은 담아두셨길 빕니다. 요즘 인센스 피우기 참 좋은 때거든요.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