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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등산을 위한 OOTD

안녕. 한라산 정상은 구경도 못 해봤지만 오지랖은 넓은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오늘은 내가 한라산에 갈 때 입었던 옷차림을 소개하려 한다....
안녕. 한라산 정상은 구경도 못 해봤지만 오지랖은 넓은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오늘은…

2021. 10. 31

안녕. 한라산 정상은 구경도 못 해봤지만 오지랖은 넓은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오늘은 내가 한라산에 갈 때 입었던 옷차림을 소개하려 한다. 정상도 못 가 놓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민망하지만, 직전 단계인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갔으니, 일단 한 번 들어주라. 이상하게 내가 한라산에만 가면 기상 악화로 길이 통제되고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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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별 장비 없이 가볍게 즐기기 좋은 모두의 취미다. 동시에 무겁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산은 도시와 어마어마하게 다른 환경을 가졌다. 특히 1,947m 높이의 한라산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거센 바람과 구름의 땅으로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단숨에 정상까지 올랐다’든가 ‘슬리퍼 신고도 갔다’는 모험담은 못 들은 셈 치는 게 좋다. 그런 얘기에 가장 혹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자기 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낙천주의는 위험하다. 오늘은 이번 한라산 등산에 챙기길 잘했던 아이템, 실수였던 아이템을 등산 팁과 함께 공유한다.


[1]
등산화
Danner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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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너는 내 첫 등산화다. 지인이 50만 원짜리 새 신발을 20만 원에 내놓는 바람에 고민도 없이 덥석 샀다. 가격은 사나웠지만, 외모만큼은 신뢰가 갔다. 대너는 1979년에 세계 최초 고어텍스로 신발을 만든 브랜드다. 방수 기능이 탁월해 평소에도 비 오는 날이면 자연히 꺼내 신게 된다. 원조의 자신감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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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는 오동통한 양말과 신을 것을 고려해 평소보다 5-10mm 정도 크게 신는 게 좋다. 사이즈가 크면 깔창을 깔거나 양말을 덧신는 등 해결 방법이 생기지만, 발에 딱 맞는 신발은 발톱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줄 뿐 답도 없다. 신발 끈을 조였을 때 발등과 복사뼈, 발가락이 신발에 닿지 않으면서 발이 고정되면 알맞은 사이즈를 찾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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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일행 중 등산화를 신은 건 나뿐이었다. 러닝화와 스니커즈를 신은 친구들은 출발과 동시에 발이 비에 젖었다. 축축하게 불은 발가락은 쉽게 상처를 입는다. 방수되는 신발을 추천하는 이유다. 비 오는 날 등산은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옷이 젖어 무거워지며, 바닥이 미끄러워 어렵다. 가을 산은 낙엽까지 쌓여 길을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이런 때 바닥의 마찰력이 좋은 등산화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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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바닥과 발목까지 잡아주는 단단한 착용감은 믿음직스럽지만, 넘어졌을 때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 등산화로 꽉 조이면 발과 다리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크게 다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각자 등산 유형에 맞춰 무게와 모양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대너 라이트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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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너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캠프라인, K2, 블랙야크로 눈을 돌려보자. 국내 브랜드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다. 산에 다녀오면 먼지를 털고 등산화 왁스를 바른 다음 환기를 시켜가며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좋은 등산화를 잘 관리한 경우 평생 신고 대를 이어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봐야겠다.

📝Tip. 알다시피 등산 사고 대부분은 하산할 때 일어난다. 발 앞부분이 땅에 먼저 닿고 뒤꿈치가 공중에 떠 있는 형태의 걸음은 균형 잡기도 어렵고 관절에 큰 충격을 가한다. 올라갈 때는 작은 보폭으로 경쾌하게, 내려올 때는 무게 중심을 낮추고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디디며 천천히 걷자.


[2]
양말
Mini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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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산길을 걸어 오르내리다 보면 발이 아플 수밖에 없다. 등산이 즐거워지려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발이다. 발만 안 아파도 에너지가 크게 절약된다. 견고한 등산화가 미처 흡수하지 못한 충격이 있다면 이는 양말이 마저 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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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신은 양말은 원목 가구 브랜드 ‘미니라이프’의 것. 의류 브랜드 물건은 아니지만, 이만한 가성비 아이템을 본 적이 없다. 스판덱스가 섞여 탄성이 좋다. 사이즈를 맞출 필요 없이 발이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이 함께 신을 수 있다. 면과 폴리에스터 혼용으로 땀을 잘 흡수하고 배출하는 기본기에도 충실하다. 도톰하고 폭신해서 평소에 신어도 기분이 좋다. 가격은 8,000원. 구매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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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목이 높은 등산화를 신어도 젖지 않을 수 없는 날씨였다. 하산할 무렵이 되니 젖은 바지를 타고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값비싼 등산화도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책에서 본 조언을 따라 양말을 한두 켤레 더 챙겼다면 중간에 갈아 신을 수 있었을 텐데.


[3]
가방
Epperson Mount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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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배낭 없이 등산을 오는 친구들이 있다(내 친구들 얘기다). 집 근처 낮은 산을 가더라도 맨몸은 추천하지 않는다. 변덕이 심한 산의 비위를 맞추려면 갖춰야 할 준비물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에 맞춰 옷을 덧입거나 벗어야 하고 간식과 음료도 틈틈이 보충해야 한다. 등산은 시간당 최대 800Kcal를 소비한다. 세 시간만 등산해도 하루 먹은 열량을 모두 사용할 정도다. 비와 돌풍이 부는 이런 날엔 초콜릿, 견과류, 과일 등 고열량 간식을 넉넉히 챙기는 게 좋다. 특히 매점이 없는 한라산을 갈 때는 뭐든 더 챙기는 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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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은 손으로 쥐거나 한쪽 어깨로 메는 형식보다 배낭이 좋다. 간식과 물, 휴대폰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손에 닿는 구조라면 더 좋다. 아무튼 산에서 손은 자유로워야 한다.

ep[출처: Epperson Mounteering 홈페이지]

아웃도어와 시티 감성을 결합한 브랜드 ‘에퍼슨 마운티어링’의 가방을 챙겼다. 빈티지 클라이밍 배낭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가운데 커다란 카라비너가 특징이다. 귀엽기도 하고 필요한 장비를 부착하기에도 좋다. 생활 방수 기능이 되며, 내구성이 우수한 고급 소재를 활용해 질기다. 양옆과 덮개 상단에 주머니가 있어 데일리 백으로도 좋다. 가격은 $180, 상세 설명 페이지는 [여기].

[출처: mmo garden 홈페이지]

📝Tip. 10분 만에 폭우로 가방은 물을 머금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비 소식이 있다면 아예 얇은 나일론 소재 가방이 낫겠다. 대체할 가방으로는 에메모 가든의 백팩을 추천한다. 가격은 9만 3,000원. 구매는 [여기].


[4]
바람막이
Patagonia / North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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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 옷차림은 중요하다. 대자연과 기념사진을 찍을 절호의 기회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입은 옷은 컨디션과 직결되기 때문. 간편한 옷차림으로 시작해서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체온을 조절하자. 등산은 다른 운동과 달리 땀을 흘리지 않는 게 좋다. 액체가 증발할 때 주변의 열을 빼앗는 원리로 산에서 땀은 에너지 낭비와 저체온증을 부른다. 추워서 몸이 굳으면 부상도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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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적게 흘리는 법은 간단하다. 속도를 줄이거나 옷을 가볍게 입는 것. 귀찮더라도 몸 상태에 귀를 기울여 더우면 벗고, 쌀쌀하면 바로 바람막이 등을 꺼내 입는 거다. 나는 이날 노스페이스 면 티셔츠에 빈티지 파타고니아 바람막이를 덧입었다. 생활 방수 기능은 역시나 시작과 동시에 무너졌다. 티셔츠와 속옷까지 젖은 채로 하산하는 동안에는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다. 뜨거운 물을 준비하지는 못할 망정 마실 걸 죄다 얼려온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고 박영석 대장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기념해 출시된 티셔츠를 호기롭게 입은 게 무의미한 볼품없는 꼴이었다.

📝Tip. 등산용 티셔츠가 따로 있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쿨맥스 소재 티에 방수가 되고 잘 마르는 폴라텍 재킷 등 기능성 의류를 추천한다.


[5]
바지
Grami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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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미치는 1970년 요세미티 암벽 등반을 이끈 미국의 스톤 마스터가 만든 기능성 바지다. 브랜드가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오늘날엔 시티보이 룩의 상징이 되었지만, 본질은 클라이밍 바지다. 이 여름용 그라미치 팬츠는 격한 움직임까지 커버하고 얇으며 주머니가 많다. 그동안 백패킹과 산행에 애용해 왔는데, 이날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 면바지는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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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가을은 ‘3대 열성 질환(유행성출혈열, 쯔쯔가무시병, 렙토스피라증)’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때다. 진드기나 들쥐에게 옮을 수 있으니 긴 팔과 긴 바지를 입는 게 도움이 된다. 평소에 쓰는 향이 강한 화장품, 향수는 하루만 참자. 벌레가 꼬일 수 있다.


+추가 TIP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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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산 정상까지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미리 예약하지 못한 나는 전날 밤 <쇼미더머니>를 보며 예약 취소자의 자리를 기다려야 했다.
  • 산에서 쓰레기통 찾을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쓰레기를 담아 올 봉투를 가방에 챙기자.
  • 가을 아침 다섯 시 반에는 해가 없다. 혹시나 하며 다이소에서 헤드랜턴을 두 개 샀는데 유용하게 썼다. 해가 뜨기 전 한 시간 동안 휴대폰이나 앞사람 빛에 의지해 걸을 뻔했다.
  • 산에서는 날씨가 큰 변수다. 가기 전에 산악기상정보시스템에서 날씨 확인을 추천한다.
  • 무리한 산행은 사고로 이어진다. 산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끔찍이 위험하다. 비상식량처럼 체력의 30%는 늘 비축해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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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 무능력한지 또 어떤 일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모험은 그저 마음속에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한 번도 모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모험과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보통 대단히 불쾌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을 겪게 된다.”

– 빌흐잘무르 스테팬슨, <에스키모와 함께한 나의 삶(191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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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