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밖에서 좋은 아이템은 집에서도 좋다

안녕. 일주일에 두 번씩 밖에서 먹고 자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기가 막히게 파란 하늘, 물놀이와 불멍이 모두 쾌적하게 느껴지는 일교차, 적당히...
안녕. 일주일에 두 번씩 밖에서 먹고 자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기가 막히게 파란…

2021. 10. 05

안녕. 일주일에 두 번씩 밖에서 먹고 자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기가 막히게 파란 하늘, 물놀이와 불멍이 모두 쾌적하게 느껴지는 일교차, 적당히 긴 일조량, 가을은 정말 아웃도어 활동에 최적화된 계절이다. 멋진 계절에 필요한 건 멋진 기어가 아닐까. 지난달 산 새 텐트에 이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올가을 쇼핑 근황을 나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면, 그게 나의 본질이 되어 의도가 아닐 때도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전혀 다른 얘기를 가져다 붙이는 것 같겠지만 캠핑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괜찮은 속성을 가진 물건은 집 밖에서 써도, 집 안에서 써도 좋다.

세상은 넓고 물건은 많다. 문제는 지갑이 습관적으로 ‘사정을 봐달라’며 죽는소리를 한다는 것. 그럴 때면 스스로 사야 할 이유를 마련해보자. 이번 주제는 아웃도어에서도, 인도어에서도 멀티플레이어로 기능하는 아이템 소개다.


[1]
“물통 딱 정해드림”
Nalgene 워터 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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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이라는 브랜드가 생소할 수는 있지만 보면 누구나 ‘아~’ 할 거다. 나는 아빠의 테니스 가방에서 이 물병을 처음 봤다. 그다음엔 백패커들에게서 자주 발견했다. 그들은 물뿐 아니라 조각 얼음, 방울토마토나 블루베리, 오트밀이나 팬케이크 가루, 파스타면 같은 걸 날진에 넣어 산을 올랐다. 초겨울 자전거 캠핑 땐, 끓인 물을 이 물병에 넣어 안고 자는 경험도 했다. 온기가 아침까지 유지됐다. 올 초엔 물을 많이 마시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마시는 양을 파악하기 위해 이 물병에 물을 담아 마셨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는 요즘은 정수기 물을 이 물병에 담아 냉장고에 차게 보관했다가 마신다. 풋살장에 가져가면 1L는 순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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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은 1949년 뉴욕의 화학자로부터 시작했다. 그가 개발한 것은 바깥과 완전히 차단되어 내용물이 새거나 밖의 습기가 스며들지 않는 실험용 기구였다. 그가 가벼운 데다 부딪히고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견고함을 가진 기구를 만들었다. 환경호르몬을 함유하지 않았으며, 영하 40도부터 100도까지 변형이 없다. 날진 회장은 어린 아들의 보이스카우트 야영에 이 기구를 들려 보냈다. 그리고 그게 아주 편리했던 모양이다. 이후 날진 물병이 아웃도어 활동가에게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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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을 갈 때면 페트병으로 생수를 사는 대신 물병에 물을 담아 간다. 캠핑에서 찍는 사진은 대체로 귀엽지만, 비닐봉지와 페트병이 보이는 순간 감성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물병은 그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날진 물병은 미리 얼려서 아이스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나중에 뜨거운 물을 넣어 핫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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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이 가진 매력은 콜라보레이션에 있다. 날진은 협업에 열려있다. 단체티를 제작하듯 신청만 하면 누구든 원하는 로고를 물병에 새길 수 있다. 초캠장터, 중고나라, 당근마켓을 잘 뒤지다 보면 원하는 브랜드 대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슈프림, 베이프, 헬리녹스, 첨스, 미스테리 랜치 등, 상상하는 브랜드는 웬만하면 있다. 얼마 전엔 스투시에서 날진 협업 물통을 내놨는데, 며칠째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4만 2,000원이고, 스투시 홈페이지에서 살 수 있다. 입구가 넓은 1L의 기본 물통은 18,000원. 구매처는 [여기].


[2]
“커피를 담는 필터를 담는 파우치”
하이커 워크샵 커피 필터 파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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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하이커 워크숍 작업실에서 처음 이 파우치를 봤다. 가방 브랜드에서 자투리 천으로 파우치를 만들었겠거니 생각했다. 귀엽게 생겼길래 친구에게 선물했다. 몇 번 써 본 친구는 극찬했다. 그동안 왜 이걸 살 생각을 못 했는지 후회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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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필터는 짐을 쌀 때마다 애매하다. 두어 장을 꺼내 일회용 비닐에 넣기도 하고, 상자째 챙기기도 하고, 그냥 가방에 넣었다가 습기에 축축해지기도 한다. 립스톱 원단으로 만든 이 필터 파우치를 사용하고 나서 알았다. 이건 필요한 물건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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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커 워크숍은 아웃도어 의류 패턴사로 일하던 대표가 만든 브랜드다. 가볍게 짐을 꾸려 산행을 하는 ‘BPL(BackPacking Light)’을 위한 경량 제품들을 선보인다. 무게를 줄이고 자연에 더 집중한 하이킹을 권유한다. ‘BPL’에는 무게 이상의 의미도 있다.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는 일이 곧 삶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빼는 연습이라 말한다. 그건 그렇고, 필요한 것만 챙긴다면 이 파우치는 아무튼 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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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가 일일이 재봉틀로 만드는 만큼 마감이 깔끔하다. 한쪽에 고리가 있어 행어에 걸어두고 사용하기에 좋다. 집에서도 국자 옆에 걸어두고 커피 내릴 때 찾아 쓴다. 크기는 15 x 15cm로 가장 큰 사이즈 필터까지 들어가며, 무게는 14g. 색상은 검은색과 갈색 두 종류다. 가격은 27,000원. 구매는 [여기]


[3]
“하나의 그릇 천 개의 밥”
Montbell 알파인 스태킹 접시 &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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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는 접시가 없었다. 냄비째 먹거나 국물을 컵에 담아 먹었다. 마른 음식은 손바닥에 올려두고 먹기도 했다. 친구들과 캠핑을 하면서부터 식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여러 음식을 해놓고 나눠 먹을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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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터 고민했다. 트렌디한 법랑, 소박해 보이는 나무, 깔끔한 스테인리스, 선택은 ‘폴리프로필렌’이었다. 왠지 이름이 꺼림칙하지만, 아기 젖병에도 쓰는 안전한 소재다. 일종의 플라스틱이라 볼 수 있는데, 현존하는 플라스틱 중 가장 가볍고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자유롭다. 탄소와 수소로만 이뤄져 그린피스에서 미래 자원으로 점 찍어 놨을 정도. 용해 온도가 160도라서 뜨거운 음식을 담아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된다.

접시 위 음식이 붕- 뜬 묘한 느낌이 특징인데, 이 역시 기름기 많은 설거지도 쉽다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약간의 세제 또는 뜨거운 물만 있으면 바로 뽀득뽀득 씻긴다. 집에서도 사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대체로 한 그릇에 전부 담아 먹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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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벨의 폴리프로필렌 식기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 몽벨의 쿠커와 결합이 되는 구조라 결국 쿠커 세트도 사게 되어 있다. 제품명부터가 쌓인다는 뜻의 ‘스태킹’이다. 용케도 아직 구매하지 않고 잘 참고 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다. 며칠전 섬으로 백패킹을 갔는데 냄비 속에 넣은 그릇들이 걷는 내내 절거덕절거덕 요란을 떨었기 때문이다. 몽벨의 쿠커와 식기는 정확한 크기로 결합해 부피와 소란을 확실하게 줄여준다. 아, 역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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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스태킹 접시의 지름은 21cm로 1.1L의 음식이 담긴다. 무게는 85g 가격은 4,900원, 구매는 [여기].


[4]
“가장 작은 호화”
코베아 스텐레스 주전자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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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부터 여러분은 오감을 동원해 자연 속으로 캠핑을 온 풍경을 상상해봅니다. 아침이네요. 어제 미처 치우지 못한 잡동사니를 한쪽으로 치우고, 버너를 찾아 불을 붙입니다. 주전자에 물을 올렸어요.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습니다. 아, 향이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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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는 계륵이라 생각했다. 물은 냄비에 끓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기름 범벅이 된 프라이팬을 닦아서 커피 물을 올릴 때, 지난 저녁의 고추장 흔적이 남은 냄비를 아침에 마주했을 때, 뜨거운 차 한잔 마실 타이밍인데 쿠커 안에 음식이 남았을 때. 주전자의 필요성을 몸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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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베아에서 작은 주전자를 샀다. 별 이유는 없다. 친구 선물로 코베아 버너를 사면서 배송비를 아끼려고 같이 샀다. 몽벨에서 샀다면 몽벨 주전자를 샀을 거다. 용량은 800mL다. 두 명이 커피 한 잔씩 마시기에 딱 좋다. 사람이 많다면 부족하겠지만, 그런 때는 큰 주전자보다 냄비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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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따르는 곳 길이는 좀 짧다. 얇은 물줄기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대신 가방에 넣어 다니기 덜 까다롭다. 짧아서 귀엽기도 하다. 삑 소리가 나거나 전기 포트처럼 알아서 전원이 꺼지지 않으니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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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를 하면서 주전자를 사용할 일이 많아졌다. 따분함을 이기려고 온종일 뭘 마신다. 그때마다 불 앞에 서서 물이 끓는지 가만히 쳐다본다. 이내 물이 끓고 주전자가 뚜껑과 부딪히느라 ‘보글보글’과 ‘다글다글’이 작게 들려온다. 업무 중 작은 명상 시간 같은 거다. 주전자의 가격은 1만 5,480원. 구매는 [여기].


[5]
“너의 밀크박스를 펼쳐라!”
하이브로우 플립박스 & 플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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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로우가 캠퍼에게 우유 박스를 제안한 것도 벌써 8년 전이다. 배우 이천희의 브랜드, 효리네 민박 아이템으로 명성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캠퍼들의 도구로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하이브로우는 다양한 색의 우유 박스를 발표하고,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여러 모양으로 출시했다. 그랬던 하이브로우가 이번에는 우유 박스를 차곡차곡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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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으면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조립과 해체도 쉽다. 퍼즐 조각처럼 접는 형태라, 옆의 한 면만 열 수도 있다. 번번이 상판을 열어 뒤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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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로우는 제품마다 영어 슬로건을 만들기 좋아한다. 이번 플립박스에는 ‘UNFOLD YOUR LIFE’가 붙었다. ‘네 삶을 펼쳐라!’ 정도의 뜻이다. 머릿속에 광고 음악이 스친다면 정상이다. 플립박스 자체에는 하이브로우의 슬로건인 ‘ENOUGH IS ENOUGH’만 쓰여 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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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아닌데 캠핑에서 수납과 정리는 왜 필요할까. 음식과 장비가 널브러져 있으면 야생동물이 물고 가도, 바람에 날아가도 모른다. 깜깜해지면 금세 물건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저분한 상태에서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 그저 집 나온 사람처럼 보이기에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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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활동을 마치면 장비를 플립박스에 잘 정리해 담아뒀다가 다음에 그대로 트렁크에 실으면 된다. 매번 짐을 다시 쌀 필요가 없다. 용량은 이전 하이브로우 캐리어 박스와 비슷한 40L다. 크기는 525x365cm. 높이는 펼쳤을 때 270cm, 접으면 85cm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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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재택근무를 플립박스 위에서 한다. 책과 노트를 올렸을 때 딱 좋은 크기다. 그때그때 해가 드는 곳을 따라 박스째 이동해가며 일한다. 색상은 총 다섯 종류다. 앞에 ‘화로대 속 잘 타고 남은 고운 재를 닮은’과 같은 긴 수식어를 떼고 보면 올리브, 베이지, 그레이, 화이트, 블랙이다. 플립박스 가격은 3만 7,000원 구매는 [여기]. 상판은 플립박스 모서리에 맞게 최적화했다. 상판이 쉽게 들리지 않으면서 옆문을 여닫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했지만, 기존 캐리어 박스와 호환은 안 된다. 재질과 색은 각각 두 개의 버전이 있는데, 나는 낙엽송 재질의 어두운색 상판을 사용하고 있다. 상판 가격은 4만 5,000원. 구매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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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고작 하룻밤을 자면서 집처럼 편하길 바라지 않는다. 집에서 쓰는 물건을 밖에서도 쓸 생각은 없다. 들고 옮길 능력도 물론 없다. 밖에서 쓰던 장비를 집에서도 쓸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석이조, 일타쌍피, 일거양득, 개이득이다. 따로 두 개를 사야 할 것을 하나만 사면 되니까 쇼핑에 죄책감도 덜하다.

su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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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