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자전거 타고 춘천 한 바퀴

더 폭넓게 먹고 놀 수 있다. 그러니까 춘천에서 자전거를 타면 말이다. 아, 안녕. 나는 자전거 타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춘천이 자전거...
더 폭넓게 먹고 놀 수 있다. 그러니까 춘천에서 자전거를 타면 말이다. 아,…

2021. 08. 25

더 폭넓게 먹고 놀 수 있다. 그러니까 춘천에서 자전거를 타면 말이다. 아, 안녕. 나는 자전거 타는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춘천이 자전거 타기에 그렇게 좋다기에 다녀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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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북한강이 흐르고 옆으로는 소양강이 흐르는 이 도시는 자연과 자전거 길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춘천까지 가도 좋았겠지만, 아직 여름의 기세가 남아 몸을 사렸다. 대신 ITX 청춘 열차가 자전거도 태워 준다기에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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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으면 종종 파손되는 일이 있다. 거치대가 있는 청춘열차라면 얘기가 다르다. 청춘열차에는 첫 칸과 끝 칸에 총 16대의 자전거가 실리고, 좌석을 예약해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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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춘천에 갈 땐 굳이 개인 자전거를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역에 내리면 자전거 대여소가 촘촘히 있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로드, 전기, MTB, 하이브리드 등 평소에 타보고 싶던 자전거가 있다면 그걸로 빌리면 되겠다. 가게별로 가격 차이는 거의 없다. 바가지를 걱정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빌리는 김에 코스도 추천해달라고 하자. 선택지가 넓어 다양한 여행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소양강을 돌다가, 테마파크 ‘육림랜드’에 들러 바이킹을 타고, 강에서 카누 체험을 한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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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날은 더웠다. 호수 근처를 도는 일은 스포츠가 될 터였다. 그래서 춘천 시내로 갔다. 춘천역에서 남춘천역까지, 한림대에서 강원대까지 자전거를 타고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또 밥을 먹고 또 카페에 갔다. 작은 도시 여행엔 자전거만 한 게 없다. 춘천 여행을 한다면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한다. “너, 여기 또 올 거야?”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어!” 답이 바로 나오는 곳만을 선별했다.


[1]
레귤러 커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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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소양강 처녀상 근처에는 에스프레소 바가 있다.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한다. 그래서 원두가 신선하고 커피가 맛있다고 한다. 아직도 에스프레소 맛을 알지 못하는 나는 입문 버전인 크림 말차를 주문했다. 바리스타가 자리로 가져다주면서 섞지 말고 스푼으로 떠먹으라고 조언해줬다. 입에 넣으니 진하고 쌉싸름하고 달고 향기롭다. 스콘, 바스크 치즈케이크, 테린느 등 실패 없는 베이커리류도 있다. 이날 마신 아메리카노와 크림 말차의 가격은 모두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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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꽤 정성스럽게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로스터리 원두를 시즌별로 소개해 선정하는 것도 재미있고, 매장 내 플레이리스트 얘기도 재밌다. 팔로우했다. 게시물을 읽다 보니 ‘멜팅 초코’를 못 먹은 게 아쉬웠다. 코스타리카 트리니타니오 카카오빈을 사용해 풍미가 깊다고 한다. 인위적인 당이 첨가되지 않은 건강한 초콜릿이 궁금하다. 다음번엔 에스프레소와 멜팅 초코를 모두 주문해 봐야겠다.

@regular.coffee.bar
📞 070-4115-4650
🗺 강원 춘천시 근화동 797-3
🕐 11:00 – 18:00, 월, 화요일 휴무


[2]
첫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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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림고개를 넘으면 조용한 골목에 공유 책방이 있다. 흔들의자와 작은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다. 이용 가격은 음료를 포함해 2시간에 5,000원이며 후불이다. 직접 담갔다는 오미자와 레몬네이드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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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는 크게 두 개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에는 들어본 적 있는 에세이와 문학이, 다른 한쪽에는 그림책이 꽂혀있다. 세 권을 챙겨 자리에 앉았다. 시원한 에이드를 마시면서 여행 산문집을 읽다가 그림책을 읽다가 했다. 으레 잘 꾸며진 서점이나 북 카페에는 규칙이 많다. 사진 촬영은 금지라거나, 책은 한 권씩만 뽑아 가라거나, 나이가 어리면 들어올 수 없다거나, 대화가 금지라거나. 여기엔 주의 사항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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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려 갈 수도 있고, 밖에서 간식을 사 와서 먹어도 된다. 사회를 이루는 사람이면 어르신도 아이도 환영이라고 한다. 달그락, 음료 만드는 소리와 책장 펄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다들 알아서 조심조심 움직인다. 화장실 문은 책장을 열면 나온다. 보통 책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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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공간이라고 하길래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MBC 남형석 기자. 운영하는 브런치 글도 읽었다. 클릭을 부르는 제목에서 프로의 향이 느껴진다. ‘돈 안 받는 북스테이, 뭐가 남을까’, ‘편지 쓰고 가면 커피값 안 받는 북 카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카페 이용료가 무료, 북 스테이는 5년 뒤, 돈이 아닌 것으로 숙박료를 받는다고 한다. 아무튼 보통이 아니다.

@first_booksalon
📞 070-8835-3696
🗺 강원도 춘천시 춘천로145번길 36
🕐 11:00 – 19:00, 월, 화요일 휴무


[3]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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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은 지난 6월 말 오픈한 카페다. 저녁에는 술과 안주를 파는 바(bar)가 된다. 그뿐만 아니다. 자전거 대여도 하고 정비도 한다. 소규모로 모여 춘천 자전거 투어도 한다. 5,000원을 내고 참여하면 음료도 한 잔 받을 수 있다. 매주 토요일 낮에는 자전거 타기도 가르쳐 준다. 만 원을 내면 자전거를 빌리고 음료를 한 잔 받고 자전거 강습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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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에는 자전거 관련 책이 모여있다. 나는 자전거 문화에 대한 사진 에세이 <My Cool Bike> 한 권을 꺼내 읽었다. 자전거도 옷차림도 쿨한 사람들이 가득해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즐거웠다. 아직 오픈 초반이라 메뉴가 가끔 바뀌는 일도 있다. 투어를 위한 코스도 계속 추가된다. 하이볼을 주문했더니 프레첼을 같이 내어줬다. 자전거를 타고 방문한 손님에겐 500원 할인도 해준다.

@chawon643
📞 070-7799-6430
🗺 강원도 춘천시 후석로59번길 9-3 1층
🕐 12:30 -23:00, 월요일 휴무


[4]
밀가루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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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공장은 남춘천역 바로 뒤에 있다. 늦은 시간에 방문했더니 매대가 거의 비어 있었다. 쇼케이스 안에 몇 개 안 남은 슈와 플라스틱병 속 말차 라떼를 주문했다. 혼자서 매장 마감을 하는 동시에 포장 손님과 배달까지 들이닥쳐 직원이 곤란해 보였는데, 그 와중에 나눠 마시라고 얼음 잔까지 챙겨줬다. 하루 이틀 바빠 본 솜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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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빵 이름은 ‘옥슈’. 여기 시그니처 메뉴라고 한다. 인당 5개씩 구매 제한도 있다. 빵빵하게 들어찬 옥수수 크림에 옥수수알과 쿠키 크럼블이 조화롭다. 다섯 개 사다가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커피 머신은 마감했대서 대신 주문한 말차 라떼가 예상외로 맛이 좋았다. 말차 전문점 뺨친다. 빵 종류는 자주 바뀐다고 한다. 신메뉴가 나오면 이전 메뉴는 사라지기도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춘천 여행을 온다고 치면, 그때마다 들러 새로운 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겠다. 옥슈는 빼놓지 말아야겠고.

@flour__mill
📞 033-257-1113
🗺 강원도 춘천시 우묵길 32 102호
🕐 11:00 – 22:00, 화요일 휴무


[5]
도토리 중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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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이름에 속지 말자. 거칠고 터프한 책방이다. 친절한 안내 같은 건 없다. 심지어 문도 잠겨 있다. 노크하면 그때서야 열어주는 식이다. 서울에서 오래 책방을 하던 사장님이 춘천에 내려오면서 인터넷 판매만 하려고 구한 장소라 그렇다. 종종 나 같은 손님이 오면 문은 열어준다. 콕 집어 찾는 책은 없지만, 헌책방 구경은 하고 싶은 나같은 손님들 말이다. 방문 전에 미리 전화로 영업시간은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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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잡지도 있고 영문 서적도 많다. 상태가 좋은 초판본이나 도록도 꽤 보인다. 본격적으로 희귀한 책은 입구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 거기만 구경해도 재밌다.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것 같지만 책 분류가 굉장히 체계적이다. 잠깐만 둘러봐도 금방 파악이 된다. 뒤적뒤적하는 기분을 즐기다가 책을 몇 권 골랐다. 다섯 권 합쳐 만 원도 되지 않았다. 노크하길 잘했다.

🗺 강원 춘천시 충혼길5번길 6 1층
🕐 10:00 – 18:00
📞 0507-1336-2325


[6]
춘천 세종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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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레트로를 겨냥한 빈티지함이 아니다. 1962년에 오픈한 리얼 올드 호텔이다. 그래서 재밌다. 당시 최첨단이던 흔적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고풍스러운 엘리베이터나 잔디밭의 인공폭포 같은 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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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묵었던 객실은 방 앞에 사진도 붙여 놨다. ‘개나리실’, ‘금잔디실’이라 쓰인 연회장이나 ‘후론트 데스크’ 같은 이름도 귀엽다. 전화기를 들어 물어보고 싶어진다. “거기 후론트죠?” 오래되어 묵직한 가구와 노란 조명 사이를 걷다가 노래도 해 본다. 후론트라라, 후론트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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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고도가 높은 데 있다. 춘천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에겐 고립을 뜻한다. 양껏 먹고 마신 다음에 쉴 때만 올라와야 한다. 주변에 편의점도 없다. 호텔 뒤로는 봉의산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녀오려 했는데, 당연하게도 늦게 일어났다. 가격은 2인 기준 5만원 선이며,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할인을 받았다. 조식은 별도다. 전체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편의만 제공한다. 클래식하고 깔끔하다.

Chunchonsejong.co.kr
🗺 강원도 춘천시 봉의산길 31
📞 033-252-1191


[7]
춘천사랑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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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춘천행 기차를 찍어 올렸더니 영국인 친구가 맛집을 추천해줬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그의 한국 이름이 막국수인 것도 있지만(영어 이름은 Marcus다), 춘천엔 닭갈비 집이 너무 많기도 했다. 숯불과 철판 두 버전 모두가 있다고 했는데 가서 보니 철판만 있다. 메뉴를 줄였다고 한다. 사장님은 앞으로도 철판만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게 더 맛있기 때문이란다. 철판이라야 사리도 마음껏 추가할 수 있고 남은 양념에 밥도 볶아 먹을 게 아니냐고. 그렇다. 오히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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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미리 익혀 나온다. 테이블에서 마저 익히는데, 여기서 사장님이 타이밍을 툭, 무심하게 알려준다. “지금 먹어요.” 이 집은 기름을 쓰지 않고 비트, 양배추, 마늘즙에 꿀을 더해 닭갈비를 볶는다. 채소에서 나온 물이 고기에 적당히 배어든 때를 알려주는 거다. 고구마, 떡, 양배추 같은 부재료 보다 고기 비율이 유난히 높다. 닭갈비는 먹고 나면 매운 양념에 속이 쓰린 메뉴였는데, 여기선 괜찮았다. 후식으로 막국수를 먹으려면,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주문해야 한다. 주문과 동시에 반죽해서 면을 뽑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춘천사랑의 닭갈비는 밀키트로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바닥을 긁어가며 먹으라고 주걱까지 배달온다. 63년생 유원진 사장님은 인스타그램을 마치 카카오 스토리처럼 운영한다. 매일 운동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재료를 손질하는 정직한 일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wonjinyu63
강원도 춘천시 낙원길 47-1 춘천사랑닭갈비
🕐 11:00 – 21:00
📞 033-256-9211

su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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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