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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취향] 나는 왜 이런 걸 살까?

안녕, 맥시멀리스트 에디터B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이 변하고,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듯 내 방에는 물건들이 쌓인다. 오늘은 그중 기묘한 제품만 골라서 소개하려고...
안녕, 맥시멀리스트 에디터B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이 변하고,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듯 내 방에는…

2021. 08. 11

안녕, 맥시멀리스트 에디터B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이 변하고,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듯 내 방에는 물건들이 쌓인다. 오늘은 그중 기묘한 제품만 골라서 소개하려고 한다. 이 물건들을 보고 ‘도대체 이런 걸 누가 사?’라는 생각이 든다면 정상이다. 하지만 그런 물건일수록 반대편에는 강한 마니아 층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예약 주문을 하고 몇 주 동안 기다릴 정도로 강한 수요가 있다.


[1]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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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덧없음을 종종 느낀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위기를 보며 한낱 인간 따위가 몇십 년 더 살아서 뭐 하겠냐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퇴근 후 난이도 상급의 가구를 조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새벽 2시까지 조립을 하고 있는 건지… 참을 수 없이 허무해지는 이 마음이 반가사유상을 보면 조금 나아질지 모르겠다.

국보 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생로병사를 고민하는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웃는 듯 애처로운 듯 이모티콘으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 몹시 신비로운데, 반가사유상의 초탈한듯한 표정에서 위안을 얻기 위해 국립박물관을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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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은 뮤지엄샵을 통해 작년 12월부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팔기 시작했다. 분홍색, 남색, 노란색, 주황색, 회색 등 7가지 컬러로 제작했는데, 반가사유상이 힙해졌다고 꽤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예약 주문과 품절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의 RM도 이 제품을 샀다는 소식이 퍼지며 품절 대란은 그칠 줄 모른다. 수작업으로 표면을 칠하다 보니 생산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고 한다. 인내와 스피드가 필요하다. 가격은 4만 5,000원으로 마냥 저렴하지 않지만 나만의 반가사유상을 소유할 수 있다면, 아미가 아니어도 이건 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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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디테일이 좋다. 오른손 모양, 옷자락 등이 복잡한데 그 부분도 잘 표현되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 나는 이 제품을 배송받았을 때 모자 부분이 떨어진 상태로 받아서 교환을 받은 적이 있고, 옆자리 권PD는 반가사유상을 30cm 정도 되는 높이에서 떨어뜨려 목이 똑 떨어졌다.


[2]
렉슨 MEZZO FM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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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글스의 노래 가사와 달리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를 죽이지 못했다. 물론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건재한 매체다. 오히려 팟캐스트까지 라디오에 포함시키면 수십년 전보다 더 잘나가는 중이다. 라디오를 듣지 않는 사람들은 라디오를 인기가 주춤한 방송인들이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DJ의 면면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장성규, 김이나, 허지웅, 레드벨벳의 웬디 등 각 분야의 정점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지키고 있다.

렉슨의 메조 라디오를 샀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제품이 없어도 라디오를 듣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라디오를 듣고 실시간 채팅에 참여하는 게 더 편한 방식이다. 라디오를 듣기 위해 라디오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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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어쩐지 아날로그 라디오가 좋다. 주파수를 맞출 때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따뜻하고 정겹다.

메조 라디오의 인터페이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버튼을 누르거나 돌리는 방식으로 전원, 음량, 주파수를 컨트롤할 수 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기능이 없다. 애초에 라디오에는 대단한 기능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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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쇼핑에 ‘라디오’라고 검색해서 첫 페이지에 나온 것을 사지 않고 굳이 렉슨 메조 라디오를 산 사람이라면 디자인 때문에 샀을 확률이 높다. 70년대 아날로그 라디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형태와 톤다운된 컬러가 매력적인 제품이다. 참고로 메조 라디오를 디자인한 사람은 이오나 보트린(Ionna Vautrin)이라는 디자이너다. 2012년 올해의 프렌치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한 실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라고 한다. 가격은 6만 원대 후반에서 구매 가능하다.


[3]
팔로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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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산토는 에콰도르, 페루 등 남미 지역에 주로 자라는 나무의 이름이다. 팔로산토에는 독특한 향이 나는데, 이 향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렵다. 박하 향 같은 시원한 향기와 우디한 향이 섞였달까? 음…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옛날 옛적부터 남미 주민들은 팔로산토를 벌레 퇴치, 종교의식 등에 다양하게 활용했다고 한다. 천연 인센스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팔로산토를 심신을 안정시키는 용도로 쓰려고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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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스틱에 불을 붙이고 30초 정도 기다렸다가 불을 끈 후에 잔향을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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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붙은 팔로산토는 어마어마한 연기를 내뿜는다. 만약 창문을 열지 않고 팔로산토를 피우면 자욱한 연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창문을 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이웃집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고 찾아올 수도 있다. 실제로 옆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위해 팔로산토를 태우고 있을 때 사무실에 있던 권PD가 혹시 타는 냄새 나지 않냐며 찾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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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산토의 향은 인센스와 다르다. 인센스가 절에서 나는 향냄새에 가깝다면, 이건 사우나 냄새 혹은 히노키탕 냄새다. 캠핑하는 느낌이 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별도로 팔로산토를 올려두는 버너를 판매하는 스토어가 많은데, 내열성 재질에 올려두면 되기 때문에 꼭 팔로산토용 버너를 살 필요는 없다. 팔로산토 가격은 한 박스에 약 9,000원. 보통 5개에서 7개 정도의 스틱이 들어간다.


[4]
뚜까따 블루 머그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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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과 음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상극이다. 보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뭘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하냐고 생각하지도 모른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구글에 ‘파란색 음식’이라고 검색해보자. 파란색 떡볶이, 파란색 와플을 볼 수 있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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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뚜까따 블루 머그컵은 음료를 따라 마시는 물건으로 적합하지 않다. 파랗디파란 이 컵에는 뭘 따라 놓아도 손이 가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나의 구매 이유가 나온다. 나는 뚜까따 머그컵을 오직 인테리어용으로 샀다. 이런 색감의 머그컵은 정말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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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까따는 라이스프타일 전반에 관한 제품을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간혹 예쁜 소품을 잔뜩 만드는데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는 브랜드를 소개할 땐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말하면 대충 정답이다.

사실 뚜까따에서 가장 유명한 제품은 인형이다. 화려하고 예쁜 인형이 아니라 멍한 표정의 채소, 과일, 버섯을 닮은 인형이다. 어딜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매력적이다. 궁금하다면 여기 사이트에 놀러 가서 구경하자. 블루 머그컵의 가격은 1만 7,000원이고, 현재 품절이다. 언제 입고될지는 모른다. 이 제품 역시 인내와 스피드가 필요하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