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삼각지가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안녕. 집돌이를 꿈꾸면서도 쉬는 날만 되면 또 어디 가볼까 궁리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그래서 요즘은 서울 어디로 나가냐고? 최근에는 삼각지에...
안녕. 집돌이를 꿈꾸면서도 쉬는 날만 되면 또 어디 가볼까 궁리하는 객원 필자…

2021. 07. 27

안녕. 집돌이를 꿈꾸면서도 쉬는 날만 되면 또 어디 가볼까 궁리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그래서 요즘은 서울 어디로 나가냐고? 최근에는 삼각지에 다녀왔다. 전쟁기념관이 버티고 있는 4, 6호선 삼각지역부터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자리한 4호선 신용산역까지. 넓은 대로변과 좁은 골목길, 압도적인 크기의 대기업 빌딩과 낮고 닳은 구옥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네.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포진한 만큼, 하루만 잡고 투어해도 눈과 입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다. 어떤 곳부터 섭렵할지 고민이라고? 뭘 좋아할지 몰라 종류별로 준비했다. 향긋한 필터 커피, 상큼한 레몬 사워, 달달한 초콜릿, 육즙 가득한 수제 버거. 취향껏 골라보자.


[1]
“산뜻하고 깔끔한 커피 한 잔이 필요할 때”
당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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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카키색 차양과 유리창에 대충 휘갈겨 쓴 듯한 Danke라는 손글씨, NBA 레전드 농구선수 ‘레지 밀러’가 담긴 간판. 가볍게 들러 커피 한잔하기 좋은 당케 커피다. 올해 5월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이곳은 주인장 부부가 애정하는 것들로 꾹꾹 눌러 담아 눈과 귀와 입이 즐거워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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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알록달록한 컬러와 자유분방한 무드가 느껴진다. 특정한 컨셉이나 명확한 의도를 정해두고 만들기보다 부부가 오랫동안 좋아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매끈한 상업 공간보다는 누군가의 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 두 사람의 취향이 억지스럽지 않게 전달되도록 신경 썼다. 평소 애용하던 소장품에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발품 팔아 수집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각종 집기들을 직접 제작하기까지. 그렇게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르고 채우는 과정에서 당케 커피만의 독특한 무드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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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 뒤로 보이는 벽면이 인상적이다. 애초에 벽을 뜯었을 때 나온 모양에서 후가공만 한 거라는데 그 자체로 한 편의 페인팅 작품 같다. 실제 어느 작가의 그림과 부부의 딸아이가 그린 그림까지 함께 눈에 들어와, 공간 내에 아티스틱한 느낌이 가득하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 역시 훌륭하다. 입에 남는 애프터 테이스트를 중요하게 여겨 산뜻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커피를 제공한다. 화려한 시그니쳐 메뉴보다는 아메리카노와 라떼, 필터 커피 등 기본 메뉴 위주로 구성. 나는 에티오피아 산타와니와 페루 세군도 에스텔라 바스케스, 두 가지 원두를 필터 커피로 마셨다. 딸기향이 풍부한 에티오피아와 시나몬과 과일잼 뉘앙스가 났던 페루 모두 향긋한 단맛이 좋았다. 디저트는 ‘플레인’과 ‘치즈 솔티드’ 두 종류의 비스킷. 워낙 베이직한 스타일이라 커피와 함께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당케 커피 Danke Coffee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48길 16
  • 월-금 11:00-20:00, 토-일 12:00-18:00 (일 휴무)
  • @dankecoffee_seoul

[2]
“풍미 가득한 수제 버거가 당길 때”
P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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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버거 레스토랑, 저녁에는 뮤직바가 되는 PPS(Post Pleasure Sound). 패션 브랜드 ‘스테레오 바이널즈’와 ‘사운즈라이프’를 비롯해 내추럴 와인바 TBD, NM, Acre를 이끄는 기업 ‘어바웃블랭크앤코’가 전개하는 또 하나의 식음료 공간이다. 인근 회사원들과 트렌디한 숍들을 찾아다니는 힙스터들로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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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집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경쾌하고 키치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차가운 스틸과 대리석, 정갈한 우드 소재가 조화를 이뤄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심플한 구성에 감각적인 그래픽 포스터와 벽면에 진열된 바이닐이 세련된 무드를 더한다. 해가 지고 뮤직바로 바뀌면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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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먹을 수 있는 버거 세트는 3종류다. 나는 스매쉬드 버거 세트와 프리타스 버거 세트를 먹어봤다. 둘 다 맛있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프리타스 버거를 강력 추천. 아주 얇게 슬라이스한 감자튀김을 넣고 특제 마요 소스를 발랐는데 이게 신의 한 수다. 육즙이 흘러나오는 패티 2장과 담백하고 촉촉한 번, 거기에 감자튀김과 마요 소스까지. 그야말로 폭발하는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근래 먹었던 버거 중 단연 베스트 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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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런치 감자튀김도 못 참지. 기름기를 쫙 빼 담백한 감자에 과하지 않을 정도로 간을 해 자꾸 손이 간다. 핫 윙 같은 사이드 메뉴가 없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대신 미니 샐러드가 있다는 거. 특히 스위트콘과 시리얼, 양파 등이 버무려진 콘샐러드는 버거를 먹는 중간중간 한 스푼씩 떠먹으면 입가심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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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S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24
  • 화-토 Burger 11:30-16:30 Wine and Dine 17:00-22:00 (일, 월 휴무)
  • @postpleasuresound

[3]
“밝은 분위기에서 부담 없이 낮술 하고 싶을 때”
애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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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하기 좋은 공간을 내가 추천하다니. 나는 술을 잘 못 한다. 맥주 한 캔만 먹어도 온몸이 벌게지는 사람이다. 근데 이런 나조차도 애시드라면 기꺼이 낮술을 즐길 용의가 있다.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상큼한 술과 밝은 분위기, 거기에 힙한 굿즈 제품까지 둘러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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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드의 대표 메뉴는 프루츠 사워. 신선한 제철 과일을 베이스로 상큼하게 즐기기 좋은 칵테일이다. 일반적인 ‘사워 칵테일’이나 일본식 ‘사와’와는 다른, 여러 테스팅 끝에 만들어낸 애시드만의 고유한 메뉴다. 술을 보조하는 과일이 아닌, 과일이 메인이 되고 술이 곁들여지는 식이랄까. 제주 레몬, 영천 살구, 플로리다 자몽 등 국내외 다양한 산지의 제철 과일을 수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즌에 따라 라인업에 변화가 생기는 점이 재밌다.

진짜 술 못하는데 마실 수 있냐고? 내가 보장한다. 그래도 불안하면 더 약하게 혹은 논알콜로도 가능하니 걱정 말자. 이날 내가 먹은 건 레몬 사워와 수박 사워. 상큼하고 달달하니 무더운 오후에 꿀꺽꿀꺽 마시기 좋았다. 곁들일 음식으로는 들기름 레몬 파스타를 추천한다. 배가 꽉 찼는데도 기어이 싹싹 비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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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캐주얼한 공간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통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과 아늑한 나무 가구. 거기에 포인트가 되어주는 청량한 민트색까지. 작정하고 술 퍼마시러 가는 주점들과는 다른, 적당히 기분 좋게 느슨해질 수 있는 칠(chill)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나처럼 잘 못 마시는 사람 모두 편하게 머물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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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자체 제작한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직접 사진을 찍고 디자인해서 만든 패브릭 포스터와 모자, 티셔츠 등. 온라인으로도 판매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로 들어가 보자. 참고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애시드의 자매 공간 격인 멜로디 바 ‘에코’가 나온다.

애시드 ACID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210-1, 1층
  • 수-금 16:00-22:00, 토-일 14:00-22:00 (월, 화 휴무)
  • @acid.seoul

[4]
“눈이 번쩍 뜨일 달콤함이 필요할 때”
카카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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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보충이 필요할 땐 삼각지에 위치한 카카오봄으로 향하자. 카카오봄은 벨기에 수제 초콜릿 & 이탈리안 전통 젤라또 전문점이다. 국내 최초로 벨기에 전통 수제 초콜릿 기술을 선보였다고 알려진 ‘고영주’ 쇼콜라티에가 이곳을 이끌고 있다. 초콜릿, 젤라또, 와플까지 우리에게 행복만을 안겨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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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도 궁금했지만 처음이니까 초콜릿과 젤라또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뭐 하나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초콜릿 종류가 다양하다. 그럴 때 유용한 메뉴가 ‘만 원의 행복’. 허니 콤브 바크, 카카오닙스 바크, 쿠키 바크 등 여러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초콜릿들을 조각내 한 컵 안에 골고루 담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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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번 잘 지었다. 정말이지 만 원의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다. 진하게 풍겨 오는 단맛이 우리가 흔히 먹는 불량식품의 인공적인 단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미 바크는 시중에 판매하는 크런키 초콜릿이 연상되는 식감에 훨씬 더 고소한 맛이 느껴졌고, 비주얼과 맛 모두 귀엽고 상큼한 딸기 블루베리 바크는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다.

젤라또도 꼭 먹고 오자. 젤라또의 최대 장점이라 하면, 쫀쫀한 식감과 극강의 당도 뒤에 오는 깔끔한 끝 맛. 일반적인 아이스크림처럼 먹고 나면 텁텁해서 갈증이 심화되는 느낌이 없다(물론 갈증이고 나발이고 나는 모든 아이스크림을 사랑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순수한 우유’와 ‘악마 초콜릿’을 꼭 같이 먹을 것을 추천한다. 부드럽고 순한 우유 맛과 깊고 진한 다크 초콜릿 맛의 궁합이 흡사 후라이드 반 양념 반 혹은 짬짜면의 조합을 방불케 한다.

카카오봄 CACAOBOOM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길 45-11 카카오봄
  • 화-일 11:00-20:00 (월 휴무)
  • @cacaoboom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