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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선물하는 방법

올해가 얼마나 남았지. 12월의 남은 숫자를 헤아리다 올해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디에디트의 노란머리, 날 싫어하는 것...
올해가 얼마나 남았지. 12월의 남은 숫자를 헤아리다 올해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2016. 12. 14

올해가 얼마나 남았지. 12월의 남은 숫자를 헤아리다 올해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디에디트의 노란머리, 날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내 말에 대답은 잘 안하는 너. 에디터M에게.

선물은 바로 올해의 추억을 담은 사진 앨범이다. 너무 소녀 취향이라고? 내가 원래 감성적이다. 요즘은 찬바람만 얼굴에 스쳐도 눈물이 고이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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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은 리뷰용으로 품고 있었던 휴대용 포토프린터와 넉넉한 필름, 아이폰 속에 저장된 방대한 사진뿐이다. 내가 사용한 포토프린터는 프린고2. 어여쁜 핑크 모델이다. 솔직히 휴대용프린터치고 가벼운 편은 아니다. 가방에 들고 다니면 제법 묵직해서, 그날 하루 어깨 뻐근하게 만든다. 더 가벼운 제품도 있는데 이걸 사용한 이유는 다른 제품보다 인쇄 화질이 만족스러워서다. 요즘은 스마트폰 사진도 고화질인데 기껏 쨍하고 선명하게 찍어놓은 사진을 어설픈 화질로 출력하고 싶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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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법은 참 쉽다. 앞면에 카트리지 넣고, 뒷면에 인화지 넣고, 전원버튼 꾸욱 누르면 끝. 프린고 전용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와이파이 설정에서 프린고를 선택하면 바로 연결된다. 너무나 간단해서 길게 설명할 것도 없는 명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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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을 실행한다. 프린고 앱은 유아틱한 UI와 번역이 잘못된 것 같은 어투로 나를 반긴다. 첫인상은 불길하다. 나는 원래 휴대용프린터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앱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기능이나 필터가 빈약해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기본적인 연결과 프린트 목적으로만 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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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앱은 살펴볼수록 기능이 많다. 촌스러울 줄 알았는데 자체 내장 필터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다양하다. 무려 35가지 필터를 지원하는데 하나하나 인스타그램이나 VSCO의 필터처럼 감각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필름카메라나 빈티지 감성의 필터가 많다. 명도와 대비도 조절할 수 있으니 사진마다 입맛에 맞게 보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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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프레임이나 스티커 기능을 제공하며, 전용 샵에서 더 많은 아이템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별모양 스티커가 귀엽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데, 에디터M은 쿨병에 걸려서 유치하다고 싫어하더라. 그래서 최대한 자제했다. 차가운 계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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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구성이나 기능이 의외로 탄탄해서 놀라울 정도다. 살펴볼수록 재밌는 기능이 많다. 사진을 카드나 명함처럼 만들어서 출력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명함이 떨어져서 급할 때 써먹으면 완벽하겠다. 용지 사이즈도 실제로 딱 명함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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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프린고는 반짝 반짝 빛나는 메탈 은박 인쇄도 지원한다. 다른 프린터에선 보지 못한 기능이라 사진을 요란스럽게 치장해봤다. 화려한 게 딱 내 스타일이다. 예상하셨겠지만, 에디터M은 이게 무슨 난리냐고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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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나 꾸미기 기능도 좋지만, 어쨌든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선명한 색감 표현이다. 인화를 시작하면 용지가 나왔다,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들어갔다. 밀당을 하듯 서서히 색을 입혀간다. 염료승화식 인쇄 기술인데 옐로우, 마젠타, 시안 순서로 컬러를 입히면 점점 사진 속 컬러가 살아난다. 잉크 필름에 열을 가해 기체로 변화시키는 원리를 사용했다. 덕분에 색의 농도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으며, 잉크의 입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고화질 인화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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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으로 볼 때보다 인화했을 때의 색감이 더 예쁘다. 에디터M이 뉴요커처럼 을지로를 누비는 이 사진은 쨍한 하늘을 강조하기 위해 필터를 덧입혔다.

인화지는 약해 보이지만 코팅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물에 완전히 담가도 번지거나 흐물흐물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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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완충으로 50매까지 인화할 수 있는 강력한 배터리도 특징. 앉은 자리에서 저 만큼 출력해냈다. 위잉, 위잉, 지치지도 않고 돌아가는 프린터와 한 장 한 장 되살아나는 추억. 사실 못생기고 엉망인 추억은 더 많았는데, 예쁜 모습만 골라서 출력하느라 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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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고화질 프린터이기 때문에 원본 사진도 고화질인 게 좋다. 사진 화질이 떨어어지면 선명한 맛도 떨어진다. 카톡이나 메신저로 주고 받은 사진은 원본 용량보다 압축하는 경우가 많으니, 스마트폰에 원본을 저장한 뒤 프린트하자. 나는 아이폰을 사용해서 맥북이나 에디터M의 스마트폰에서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받았다.

손에 들고 있는 건 사진은 상당히 고화질이라 출력하고 나니 맛이 또 다르다. 색감이나 깊이감이 근사하게 표현됐다. 저 사진을 촬영했던 날이 떠오른다. 정말 더운 여름이었다.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야외 촬영을 했었지. 그리고 에디터M이 걸고 있는 라이터 스트랩은 내가 선물한 물건이었다. 다시 한 번 생색내고 싶어서 덧붙인다. 나는 선물 하는 것도 좋아하고 생색내는 것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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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뽑은 사진을 앨범에 넣고 한 두 마디 멘트를 곁들이면 돈 주고도 못 살 포토앨범이 된다. 저 앨범 규격이 용지에 비해 살짝 작아서 사진을 넣을 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는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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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디터M은 사진찍는 걸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남사스럽다고 고개를 돌린다. 그래도 나 아니면 누가 저 소녀(?)의 사진을 남겨주겠냐는 생각에 꾸역꾸역 억지로 찍어댄 사진이 꽤 모였다. 우리 두 사람에겐 의미있는 한 해였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2016년의 치열한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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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M도 중요하지만 나도 중요하므로 나와 함께한 사진을 중심으로 골랐다. 선물은 역시 주는 사람 기분이 더 중요하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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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촬영한 시기마다 에디터M의 머리색이 점점 바뀌는 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녀는 한 해동안 8번의 탈색을 통해 진정한 노란 머리로 거듭났다. 요즘은 탈색을 너무해서 흰색에 가깝다.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창가에 ‘M의 머리 변천사’를 나열해두고 낄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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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대 소녀 마냥 신나게 만들어온 포토 앨범을 보면서 에디터M이 아저씨처럼 반응한다. “뭐 이런 걸 해와” 그래도 이 츤데레 에디터가 뭉툭한 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폼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여러분도 스마트폰에 잠자고 있는 사진을 잘 훑어보시길. 화면 속 사진을 손에 잡히는 사진으로 인화하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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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물이었다. 좋은 한 해였고. 이제 남은 인화지는 내 사진만 뽑아야겠다. 제품이 궁금한 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구경하시길.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