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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가 루이비통을 입으면 생기는 일

안녕, 패션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객원 에디터 이예은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출연해서 “입으면 다리가 길~어보이는” , “S라인 살아있는” 같은 카피로 광고하던...
안녕, 패션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객원 에디터 이예은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출연해서 “입으면…

2021. 05. 27

안녕, 패션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객원 에디터 이예은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출연해서 “입으면 다리가 길~어보이는” , “S라인 살아있는” 같은 카피로 광고하던 브랜드 교복을 사 입으며 덕심을 채웠다. 슬쩍슬쩍 보이는 교복 칼라의 체크무늬 안감은 일종의 굿즈였다. 그 아이돌이 광고한 브랜드 교복을 사고, 브로마이드를 챙기고, 최애의 얼굴이 프린팅된 치킨 박스를 고이 간직하는 게 여태까지 팬들의 충성심이었다면, 이제는 스케일이 커졌다. 케이팝 아이돌이 유럽 명품 브랜드의 얼굴이 되기 시작했으니까. 팬들은 방탄소년단 지민이 입은 루이비통 니트와 구찌의 엑소 카이 컬렉션 제품을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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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뉴욕 맨하탄의 중심엔 블랙핑크 로제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렸다. 건물을 뒤덮은 이 초대형 현수막은 로제의 티파니 하드웨어 캠페인 사진이다. 지난달 미국의 하이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는 블랙핑크 로제를 글로벌 앰버서더(홍보대사)로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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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멤버 4명 모두 각자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로제는 생로랑 패션과 입생로랑 뷰티 그리고 티파니, 리사는 셀린과 불가리. 지수는 디올 뷰티와 패션 그리고 제니는 샤넬에서 각각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 셀린, 불가리, 디올, 티파니 이 4개의 브랜드는 루이비통 그룹이라 불리는 LVMH(루이비통 모엣 헤네시) 소속 자회사들이다. 티파니앤코는 올해 초, 오랜 조정 과정에 끝에 루이비통 그룹(LVMH)으로 최종 인수합병됐다. 이미 블랙핑크 멤버 두 명을 자회사 브랜드 앰버서더로 선정한 바 있던 LVMH 그룹이 티파니앤코에도 케이팝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했다는 건 의미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케이팝 아티스트의 협업이 활발해진 가운데, 현재 음악씬에서 가장 성공한 보이그룹으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은 지금껏 어떤 명품 브랜드의 광고 모델도 된 적이 없었다. 시상식마다 걸치고 나오는 브랜드의 제품은 모두 직접 구매한 것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탐내던 방탄소년단이지만, 이런 방침에 브랜드 관계자는 그저 먼저 선택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1400_DIOR_BTS_GROUP[디올맨 킴존스가 디자인한 방탄소년단 콘서트 의상]

방탄소년단과 명품 브랜드와 협업은 디올 남성복 디자이너 킴존스가 각 멤버들에게 영감을 받아 콘서트 의상을 무료로 디자인해준 것이 유일했다. 새들백, 오블리크 패턴, 하네스, 버킷햇 등 디올맨 2019 프리폴 컬렉션의 테마를 가득 담아 특별히 디자인된 이 의상은 디올이 남성그룹을 위해 만든 최초의 무대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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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난 4월, LVMH의 간판 브랜드라 할 수 있는 루이비통이 특정 멤버가 아닌 방탄소년단 전체를 루이비통의 앰버서더로 임명했다.

1400_virgil-abloh-portrait-off-white-interview-dezeen-sq[루이비통 남성복 아트 디렉터 버질 아블로 © LouisVuitton]

현재 루이비통 맨즈는 하우스 최초의 흑인 디자이너이자 DJ로도 활동하고 있는 아트 디렉터 버질 아블로의 지휘하에 운영되고 있다. 버질 아블로는 카니예 웨스트, 에이셉 라키와 같은 힙합 뮤지션과 돈독한 관계인 데다 음악을 좋아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인물이다. 그는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수많은 케이팝 스타들을 주목하고 있다. 버질 아블로의 인스타그램 팔로잉 리스트를 보면 디자이너인지 케이팝 고인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1400_dior 3.37.09[“왜 송민호가 여기서 나와?” 한국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남겼던 루이비통 맨즈웨어 컬렉션 런웨이에 선 위너 송민호
© LouisVuitton]

실제로 루이비통 맨즈웨어 2020 S/S 컬렉션 런웨이엔 송민호를 모델로 세웠으며, 작년 상하이에서 열렸던 루이비통 2021 S/S 컬렉션에선 밴드 혁오의 노래를 패션쇼에 사용하기도 했다.

1400_GU020_KAI_X_GUCCI_CAPSULE_COLLECTION_PR_CROPS_PRIORITY_72dpi_11© GUCCI

엑소 카이는 4년 전부터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참석하며 구찌와 인연을 맺다가 2019년부터는 공식적으로 글로벌 앰버서더로 임명되어 글로벌 아이웨어 캠페인의 모델이 되는 등 구찌의 얼굴로 활약하고 있다. 구찌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카이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구찌 창립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구찌 x 카이 스페셜 컬렉션을 선보인 것. 평소 팬들이 카이에게 붙여준 별명이자, 카이가 가장 좋아하는 곰돌이를 캐릭터 모티브로 블루 리본을 단 테디베어가 그려진 옷, 가방, 신발 등 상품을 내놨고,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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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는 이를 기념하여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외관에 카이 컬렉션 상징인 곰돌이 패턴을 덮고, 서울 곳곳을 곰돌이 모양의 대형 풍선, 베어벌룬 아트워크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팝업 스토어를 여는 등 대규모 프로모션에 돌입했다. 카이는 구찌와 협업한 최초의 한국인 연예인으로서, 지난 샤넬 X 퍼렐 윌리엄스 콜라보레이션에 버금가는 스케일을 보여줬다.

1400_huYW7oWTAiLjhVXJSeVnWP9DH1fYeiedXjwTXZHk4nk© Givenchy

심지어 또 다른 LVMH 소속 프랑스 명품 브랜드 지방시는 데뷔 4개월에 불과한 SM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전원을 앰버서더로 선정하며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케이팝 루키를 선점했다. 작년 새로 부임한 지방시의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는 에스파와 지방시의 협업으로 가져다줄 이미지 상승효과를 기대한다 밝혔고, 이는 하이패션 업계가 케이팝의 영향력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2015년, 지드래곤은 샤넬쇼에 참석해 크리스틴 스튜어트, 릴리로즈 뎁과 함께 패션쇼 중앙 게임 테이블에 앉았다. 당시 테이블에 앉은 유일한 아시아 셀럽이라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 배두나는 루이비통 여성복 디자이너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의 친구이자 뮤즈로서 2017년엔 루이비통 크루즈 컬렉션의 모델로 서기도 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명품 브랜드의 한국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디자이너 개인, 혹은 연예인 개인에 한정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관심이 케이팝 산업 전반을 향하고 있다.

일차적인 이유는 역시 케이팝 영향력의 증가다. 그동안의 케이팝이 확고한 팬덤을 가지고 아시아권에서 국지적인 영향력을 펼쳤다면 2016년 즈음을 기점으로 그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며 아이튠즈,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케이팝 차트가 생겨난 것도 이 시기다. 이런 변화는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들이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며 주목을 받았다. 블랙핑크 스타일, BTS 아웃핏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몇십만 팔로워를 가지고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이 입은 패션 아이템들만을 소개하는 계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400_BTS_JOIN_LOUIS_VUITTON_AS_HOUSE_AMBASSADORS1[앰버서더로 활동하는 루이비통 의상을 입은 방탄소년단 © LouisVuitton]

블랙핑크 멤버들과 방탄소년단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4,000만 명이 넘는 계정을 가지고 있지만, 팔로워의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셜미디어 인게이지먼트, 쉽게 말해 소비자 반응률이다. 저번 달 티파니앤코가 로제를 앰버서더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트위터상에서는 ‘티파니’라는 키워드가 전날의 500배가 넘는 6만 번 이상 언급됐다. 올 1월에 루이비통이 방탄소년단에게 패션쇼 초대장을 보내는 영상이 업로드된 즉시 루이비통 키워드가 전 세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고, 루이비통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하루 만에 20만 명이 늘어났다. 그 이후 방영된 루이비통의 2021 F/W 남성복 패션쇼는 방탄소년단이 참석할 거라는 기대감에 가득 찬 팬들 덕분에 전체 플랫폼 조회 수 도합 1억 뷰를 넘겼다. 이는 이전 년도 공개된 2020년 패션쇼보다 10배 가깝게 증가한 기록이었다.

빅데이터 업체인 ‘런치메트릭스’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루이비통 영상은 미디어 영향력 가치(MIV) 43만 달러, 약 5억 원의 가치를 창출했다고 한다. 게다가 블랙핑크  지수가 나온 디올의 SNS 포스팅 하나는 61만 달러, 한화 약 7억 원의 가치를 창출해냈다. 케이팝 스타의 영향력이 단순히 팔로워 숫자를 넘어서 실제 그만큼의 폭발적인 소비자 반응을 끌어낸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브랜드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이전까지는 행사 참여, 화보 등으로 브랜드 앰버서더와의 파트너십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SNS를 통해 앰버서더를 대대적으로 공식 발표하는 관례까지 생겼다.

1400_lisa 4.07.37[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셀린 가방을 든 리사]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가 보여주는 영향력은 SNS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명품 브랜드가 계속해서 케이팝 아이돌을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 밀레니얼 소비자의 성장이다. 모두가 예상하듯 케이팝 팬의 대부분은 전 세계 10~20대의 어리고 젊은 소비자들이다.

최근 명품 시장에선 전통적인 구매층이 아닌 20~30대의 MZ세대가 급격하게 비중을 늘리고 있다.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저성장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저축보다는 FLEX, 그러니까 소비를 택한 MZ세대가 명품의 주요 소비자층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구찌의 총매출 중 60%는 35세 이하의 젊은 소비자층에게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 1월 루이비통이 공개한 인스타그램 영상에서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입은 제품은 공개 즉시 한국,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16개국 루이비통 매장에서 빠르게 품절되었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자주 입는 브랜드 셀프포트레이트 제품은 멤버들이 착용한 모습이 미디어에 노출된 즉시 판매량이 수직 상승했다. 리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셀린의 트리옴프 아바백은 리사백으로 불리면서 품절됐고, 제니가 공항에서 든 샤넬의 19 플랩백, 가브리엘 백팩은 단숨에 샤넬의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엑소 카이가 입은 구찌X카이 컬렉션의 곰돌이 니트는 런칭 전에 품절 되었을 정도다. 케이팝 스타를 향한 관심이 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1400_cover-3_1440_1200[다양한 인종 모델을 쓴 디올의 2020 S/S, 2021 S/S 캠페인 사진 © DIOR]

명품 브랜드가 케이팝 아이돌에 주목하는 마지막 이유는 MZ세대의 또 다른 특징과도 연관되어있다. 비건 패션, 지속가능성을 내세우는 윤리적인 기업에 MZ세대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모피 사용을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원단을 사용한 컬렉션을 내는 등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거기다 작년을 기점으로 다시 대두된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은 패션브랜드로 하여금 인종, 문화적 다양성 확립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1400_1614323882566630-DIOR_SS21_MAIN_CAMPAIGN_7© DIOR

루이비통 남성복 2021 F/W 컬렉션의 테마는 인종적 정체성이었다. 버질 아블로가 흑인 디자이너로서 유럽 예술의 탄생지에서 아티스트로서 살아가는 삶을 컬렉션에 투영해 보여줬다. 그리고 작년 프라다는 블랙페이스를 연상시키는 모형과 상품을 판매했다가 비난을 받고 판매 중지 결정을 내리며 공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2018년 돌체앤가바나는 캠페인 영상 속 인종 차별적 내용이 큰 문제가 된 적 있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브랜드 창립자 스테파노 가바나의 인종차별적인 DM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은 더 거세졌다. 그 결과로 디자이너 듀오는 급하게 사과 영상을 올렸지만 여전히 중국시장에서 돌체앤가바나의 매출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다른 명품 브랜드가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서 2년이 넘게 지난 현재도 매출 하락을 겪으며 고전하고 있다.

반면 몇몇 패션브랜드는 유색인종 할당제를 적용하여 직원을 채용할 것을 발표하기도 하고, 브랜드 캠페인을 찍을 때 백인, 흑인, 아시안 다인종으로 구성된 모델을 캐스팅해 인종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브랜드임을 어필한다. 인종차별과 인종 다양성이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이 때, 아시안 케이팝 아이돌을 브랜드 얼굴로 기용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반응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특히나 중국과 한국, 아시아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아시안 모델 기용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포용할 수 있는 시장 규모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1400_rose-saint-laurent-official-site_1© Saint Laurent

케이팝 스타들과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은 뉴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찾아온 케이팝의 부상, 새로운 소비 패턴의 등장, 다양성을 위한 움직임이 타이밍 좋게 한데에 얽혀 이뤄진 성과다. 케이팝 아이돌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럭셔리 브랜드들의 러브콜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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