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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날려주세요

솔직히 아이폰7 플러스는 내게 크다. 손이 큰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긴 것도 아니라 버거운 사이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7 플러스를 고집한...
솔직히 아이폰7 플러스는 내게 크다. 손이 큰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긴 것도…

2016. 12. 13

솔직히 아이폰7 플러스는 내게 크다. 손이 큰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긴 것도 아니라 버거운 사이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7 플러스를 고집한 이유는 단 하나. 인물 사진(Portrait) 모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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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모드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가자. 아이폰7 플러스에는 두 개의 카메라가 있다. 둘은 역할이 다르다. 왼쪽에는 아이폰7 카메라와 똑같은 1200만 화소 와이드 앵글 카메라. 오른쪽에는 멀리있는 피사체를 더 가까이 당겨서 촬영할 수 있는 1200만 화소 망원 카메라가 있다. 우리는 이 망원 카메라를 이용해 앉은 자리에서 2배까지 광학 줌을 이용할 수 있다. 멀리 있는 걸 더 가깝게 촬영할 수 있다는 점에선 나를 더 게으르게 만드는 카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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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의 카메라는 화소 수가 같긴 하지만 실제 성능엔 조금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와이드 앵글 카메라가 더 좋다. 얘가 메인 카메라니까. F/1.8 조리개에 광학식 흔들림 보정 기능을 적용해 빛이 적고 흔들림이 많은 환경에서도 훨씬 깨끗한 사진을 촬영해준다. 망원 카메라는 F/2.8 조리개로 메인 카메라보다는 저조도 촬영에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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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모드는 이 두 개의 카메라를 동시에 활용해 피사계 심도 효과를 적용해주는 기능이다. 용어가 어려워서 낯설게 느껴지는데, 결과물을 보면 명확해진다. 인물(피사체)은 또렷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날려주는 효과다. DSLR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심도효과와 보케 표현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영리하게 구현한 것이다. 두 개의 렌즈를 통해 심도를 측정하고, 이걸 영리하게 소화해서 그럴싸한 결과물로 만져준다. 실제로 DSLR에서 조리개를 통해 구현되는 효과와는 원리가 다르다. 일종의 꼼수고 편법이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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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모드에서는 뒷방(?) 신세였던 망원 카메라가 메인을 맡는다. 와이드 앵글 카메라는 배경을 잡고, 망원 카메라로 인물을 잡는다. 때문에 일반 촬영 모드보다는 피사체가 훨씬 가깝게 잡힌다. 인물 사진 모드를 사용하면 아이폰 화면에 피사체를 약 2.5m 거리 내에 두라는 안내문이 표시된다. 그 정도 거리에서 가장 안정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요령 껏 피사체와 거리를 조정하며 촬영하면 3m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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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 장의 연구(?) 결과 얼굴이 화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거리에서 심도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결론내렸다. 인물과 배경 사이의 거리도 중요하다.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 인물과 벽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심도 효과가 약하게 적용된다. 이건 DSLR로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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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와 아이폰의 거리, 피사체와 배경의 거리가 조화롭게 맞아 떨어지면 우리가 원하던 뿌연 ‘블러 효과’가 적용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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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인물의 경계를 확인해보자. 빛이 충분하고 경계가 확실할 때는 머리카락이나 앙고라 니트의 털 같은 섬세한 디테일도 잘 표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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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배경과 피사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뿌옇게 뭉개지는 경우도 있다. 절대 DSLR처럼 나오진 않는다. 앞서 말한 조건들이 딱 맞아 떨어질 때만 예술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폰카메라의 작은 렌즈로 촬영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여태까지 여러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시도해왔던 심도 효과 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인물 사진 모드 베타 서비스가 지나고 나면 좀 더 정확도 높은 사진 처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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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물 사진 모드라는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건 변수를 피해가려는 제조사의 의도가 담긴 명칭일 뿐이다. 음식 사진을 찍어도 좋고, 사물을 찍어도 좋고, 동물 사진을 찍어도 좋다. 개인적으론 음식 사진을 찍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뭐든 찍으면 더 맛있어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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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이 먹었다. 아이폰7 플러스 사진 샘플 찍으려고. 어쩔 수 없이.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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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점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폰7 플러스의 망원 카메라는 저조도 촬영에 약하다. 어두운 곳에서 인물 사진 모드를 사용하면 피사체에 미세한 노이즈가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되도록 빛이 충분한 환경에서 촬영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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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메라는 가볍고 가깝고, 친근하다. 내겐 고성능 카메라가 따로 있지만, 그 아이(?)는 때론 너무 멀리 있다. 내가 가장 예쁘고, 내가 가장 사진을 찍고 싶을 때 곁에 있는 건 언제나 아이폰 카메라다. 주머니 속의 폰카메라가 전보다 더 멋진 사진을 담아주는 건 기쁜 일이다. 어쩐지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는 건 나의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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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촬영한 조악한 사진으론 인물 사진 모드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포토그래퍼들이 촬영한 사진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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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Cowart의 VSCO로 보정한 흑백 사진은 굉장히 힙하다. 나도 모든 사진을 VSCO로 보정하는데 왜이리 다를까. 그는 배경이 깔끔한 곳에서 촬영해야 피사체에 시선이 집중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역광일때 아이폰 카메라 기능에서 노출을 내려 촬영하면 머리카락 같은 디테일을 훨씬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니 따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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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i Ketron의 동물 사진은 2.5m 거리에서 촬영해 얻은 모범적인 인물 사진 샘플이다. 피사체가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인내심있게 기다렸다가 포착한 멋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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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Sean Golatt의 감각적인 사진을 보면 아이폰7 플러스로 패션 화보도 촬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카메라인가 포토그래퍼인가.

여러분은 아이폰7 플러스가 품은 두 개의 카메라로 어떤 사진을 담아내는지 궁금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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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