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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의 LUXURY] 감투왕 야콥센의 총체예술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이번 글의 주인공은 바로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주제 찾으려고 사람들 탄생일과 사망일을 뒤지다가 월척을 건졌지...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이번 글의 주인공은 바로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2021. 05. 11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이번 글의 주인공은 바로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주제 찾으려고 사람들 탄생일과 사망일을 뒤지다가 월척을 건졌지 뭐야! 지난 3월 24일이 바로 야콥센 사망 50주년이더라고. 야콥센을 수식하는 말은 너무나도 많아. 덴마크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대니시 모던 디자인의 아이콘, 덴마크 가구 산업을 바꾼 장본인, 토털 디자인의 왕 등등. 한 마디로 감투왕이지 모. 그래서 각 잡고 생애를 훑으면 곧바로 ‘n만 자’급 몬스터가 돼버려. 그래서 이번에는 특정 단어와 엮어서 소개해볼까 해. 바로 ‘총체예술(Gesamtkunst)’이야.

01[덴마크의 지역색과 기능주의를 결합한 덴마크 모더니즘 건축의 걸작, 쇠홀름 주택단지 앞에 선 아르네 야콥센. 그는 가장 남쪽에 있는 집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머물렀어. © Willy Henriksen]

총체예술이란 용어는 1827년 독일 철학자 트란도르프의 에세이에서 처음 언급되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극작가인 리하르트 바그너 덕분이야.

바그너는 1849년 저술한 에세이 ‘예술과 혁명’과 ‘미래의 예술작업’에서 총체예술을 언급해. ‘오페라의 미래는 음악과 극본, 가사, 시, 춤, 몸짓, 회화, 건축, 무대 장치, 의상, 조명 및 기타 제반 효과까지 하나의 집합체를 이루어 본연의 드라마를 실현하는 총체예술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 이에 따라 그는 ‘악극’이란 장르를 만들고, 죽을 때까지 총체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 오페라의 음악과 극본, 가사, 그리고 연출까지 모두 혼자 도맡았거든. 이런 바그너의 작업은 전 유럽을 강타했고 이후 모든 예술 분야에 전방위적 영향을 미치며 거대한 영감과 방향타를 제시했어. 특히 건축과 장식미술 분야에서 그 결과가 두드러지게 돼.

02[독일의 작곡가, 극작가, 극 연출가, 지휘자, 음악 비평가 및 저술가였던 리하르트 바그너 © Wikipedia]
03[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28년간 혼자 만든 대역작이야. 사진은 바그너가 직접 설계하고 시공까지 참여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 독일의 탕크레트 도르스트가 연출을 맡은 버전이야. © picture alliance / dpa]

19세기 들어 유럽에는 사회, 정치, 경제, 철학,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났어. 시대 정신에 입각해 미래로 나아가려고 했지. 순수미술만 하더라도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계기로 새로운 실험이 수없이 시도됐거든. 근데 유독 건축과 장식미술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어. 그리스, 로마,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지금까지 쌓아온 각종 건축 양식을 서로 섞어 절충하는 답보 상태가 지속됐고, 장식미술 또한 기계와 수공예 사이의 간극을 조화롭게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거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워낙 밀접한지라 금세 과거와 결별하거나, 바로 특정 양식을 새롭게 제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지.

고급미술과 하급미술, 순수미술과 장식미술을 분리하는 태도에 반감이 있던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과 삶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어. 기계에 대해서도 수공예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예술을 구현하는 요소로 적극 활용했지. 이런 경향은 결국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양식의 분출로 이어졌고, 그 결과를 구현하는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총체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됐어. 작은 물건부터 거대한 공간까지 삶과 관련된 모든 아름다움을 유기적으로 엮는 행위를 시도하면서 건축, 인테리어, 가구, 계단, 각종 장식과 공예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온전히 구현하는 데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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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알폰스 무하의 작업 <백일몽> © Wikipedia]

이제 그동안 고집하던 고전적인 장식 대신 꽃과 덩굴 등을 창작의 모티브로 활용하고, 입체성을 강조하던 경향에서 탈피해 평면성과 선, 그리고 색을 중시하는 경향이 커졌어. 물결치는 곡면들, 유려하게 흐르는 선, 화려한 색채가 낙관주의로 흐르던 풍요로운 시대에 부합하자 대략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약 20여 년간 서구의 일상에 스며들게 되었지. 이런 신경향은 유럽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는데, ‘아르누보’(프랑스, 벨기에), ‘유겐트스틸’(독일), ‘제체시온’(오스트리아), ‘모던 스타일’(영국, 미국), ‘모데르니즈메’(카탈루냐), ‘스틸레 리베르티’(이탈리아) 등 지역마다 명칭은 달랐지만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동일했어. 빅토르 오르타, 앙리 반 데 벨데, 요제프 호프만, 찰스 레니 매킨토시, 안토니 가우디 등 수많은 예술가는 자신의 건축 세계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며 유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환상적인 건물들을 남겼지.

05[벨기에의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가 지은 유럽 최초의 아르누보 양식 건물인 ‘타셀 저택’ © Wikimedia]
06[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엑토르 기마르가 만든, 그 유명한 ‘파리 지하철’ 입구 © WikiArquitec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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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이 설계를 맡고, 구스타프 클림트(우리가 아는 화가 클림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내부 장식을 맡은 ‘스토클레 궁전’. 저택 상속자들이 현재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 © Wikipedia]
1400_08[스코틀랜드의 건축가, 디자이너, 화가인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총체예술이 응집된 걸작, ‘힐하우스’ 내부 모습 © National Trust Scotland]
1400_09[카탈루냐가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대표작, ‘카사 바툐’의 파사드 일부 © Wikimedia]

이런 총체예술과 야콥센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1902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야콥센은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27년 대학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가 1930년 독립해 자기 사무소를 차리게 돼. 이런 과정에서 덴마크 지역에 기능주의 모더니즘 건축을 처음으로 시도하며 큰 관심을 얻게 되지. 여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어. 대학 재학 시절 1925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에서 주최하는 의자 공모전에 작업을 출품했는데 덜컥 은상을 타게 됐거든. 상 받을 겸, 박람회도 구경할 겸 야콥센은 파리에 가게 되었어.

1400_10[은상을 받은 야콥센의 의자는 ‘파리 체어’라는 이름으로 재생산되어 판매 중이야. © Sikadesign]

1925년 4월부터 10월까지 파리 한복판에서 성대하게 열린 <현대 장식미술·산업미술 국제 박람회>는 세계 최초의 장식미술 전용 박람회였어. 파리 한복판에는 아르누보 이후 서구에서 유행하던 건축, 인테리어, 실내 장식, 유리 공예, 장식품, 포스터 등 다양한 장식 미술과 상업 미술의 경향이 총집합하게 되지.

1400_11[박람회 포스터와 입구 구조물. 구조물에 쓰인 서체는 아르데코의 전형적인 느낌을 품고 있어. © Wikimedia]

식물과 곡선, 여성을 활용한 아르누보의 탐미주의와 비교하면, 좀 더 강하고 묵직한 느낌을 강조한 남성성에 초점을 맞춘 당대의 최신 취향은 매우 다양했어. 특히 기계가 발산하는 근대성, 진보한 기술과 그에 걸맞은 생산성, 완벽한 대칭과 패턴으로 구현된 곡선과 직선의 기하학적인 면모가 인기를 끌었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들이 서로 격돌하면서 회오리가 생기고, 총 24개국에서 참여한 1만 5,000명의 관련자와 7개월 동안 박람회를 찾은 1,600만 명의 방문객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자 곧 유럽과 미국의 일상은 새로운 조류에 휘말리게 됐어.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서구에 파고든 이 새로운 양식은 박람회 이름에서 이름을 따서 아르데코(Art Deco)라고 불러.

1400_12[박람회 전경 © Wikimedia]
1400_13[봉마르셰 백화점 파빌리온 © Wikimedia]
14[아르데코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는 난간 © Wikimedia]

이 ‘아르데코’ 박람회에 놀러 간 야콥센은 한 건물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아르데코와 가장 거리가 먼 존재였어. 강철과 유리, 콘크리트를 사용해 아무런 장식 없이 기하학적 면과 선으로만 아주 간결하게 구성한 건물이어서, 경비원이 그 초라함을 감추려고 박람회 오픈 전까지 울타리를 치며 노출되는 걸 막으려고 할 정도였어. 1920년 창간한 잡지 <에스프리 누보>에서 마련한 ‘에스프리 누보 파빌리온’이었지. <에스프리 누보>는 미술, 문학, 과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계 미학과 기능주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글을 주로 실었는데, 편집 동인으로 활동하는 에두아르 잔느레와 그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가 파빌리온 건축을 맡았어.

15[에스프리 누보 파빌리온 전경 © Wikimedia]
16[에스프리 누보 파빌리온 내부 © Wikimedia]

에두아르 잔느레는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위해 본명 대신 필명을 쓰면서 이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는데, 바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야. 그가 박람회에서 선보인 이질적 건물은 이후 아르데코를 무너뜨리고 전 세계 건축 사조를 이끄는 기능주의 모더니즘의 초석 역할을 했어. 여기에서 비범함을 느낀 대학생 야콥센의 통찰력이란…👀

대학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던 야콥센은 1929년 절친한 친구인 플레밍 라센과 함께 덴마크 건축가협회에서 주최하는 ‘미래의 집’ 공모전에 지원했다가 덜컥 최고상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건축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어. 그들의 아이디어는 포럼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실제 크기로 구현됐는데, 나선형 모양의 평평한 지붕을 가진 집은 개인 차고, 보트 선착장, 헬리콥터 착륙장을 통합한 파격적인 형태였지. 이들이 제시한 미래의 집은 덴마크에 최초로 출현한 기능주의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적 예로 평가돼.

17[콘크리트와 유리를 활용해 장식을 모두 제거하고 기능에 초점을 맞춘 미래의 집에는 자동차 유리창처럼 손잡이를 돌리며 조정하는 주택 창문,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전달하는 우편, 즉석 간편식을 갖춘 부엌까지 있었어. ⓒ Det Kongelige Bibliotek]

이런 상황에서 개인 사무소를 차렸으니, 사람들이 야콥센에게 큰 기대를 거는 건 당연한 결과랄까. 그 또한 자신에게 쏠리는 눈을 만족시키는 성과를 확실히 보였어. 그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1930년 만든 개인 주택 ‘로텐보리 하우스’야. 하얀 외관, 직선과 시원한 비례를 활용한 단순 무결함, 철제 창호, 입체적인 구조를 갖춘 이 집은 덴마크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어. 야콥센을 코르뷔지에와 비교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로텐보리 하우스가 중요한 이유는 야콥센의 총체예술이 실질적으로 구현된 시작점이기 때문이야. 그는 단순히 집만 짓지 않고 인테리어를 비롯해 가구와 각종 부속품까지 모두 디자인했어. 즉, 로텐보리 하우스는 야콥센의 총체예술을 실현한 거대한 작품이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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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텐보리 하우스 전경 © Wikimedia]

이런 총체예술적 창작 태도는 야콥센의 생애 전반에서 나타나는 일관적인 성향이야. 게다가 그만큼 완전하게 구현한 예도 매우 드물어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야콥센에 대해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들어. 그가 맡았던 벨레부에 휴양단지 프로젝트도 하나부터 끝까지 야콥센의 감각이 총동원된 좋은 예야.

당시 덴마크에서 휴가가 노동자의 법적 권리로 정식 인정되자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폭증했어. 그들의 타깃이 된 장소는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외레순드 해협을 따라 길게 이어진 외레순드 해안가였지. 곧 코펜하겐 북쪽 근교인 클램펜보르에 위치한 벨레부에 해변이 명소로 떠오르게 됐어. 700m 길이의 고운 모래사장과 녹음이 공존하는 이곳은 코펜하겐 도심에서 10km 거리라, 당일치기로 바람 쐬고 오기에 최적이었거든. 이를 놓칠세라 지방 정부는 벨레부에 해변에 휴양단지를 계획하려고 공모전을 진행했는데 여기에 야콥센이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지 모야.

재능왕 야콥센은 1931년부터 1936년까지 벨레부에와 관련한 세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첫 번째로 벨레부에 해변을 디자인했어. 해변을 디자인하는 게 뭐냐고 물을 텐데, 말 그대로 해변 이용객들을 위한 여러 시설과 자잘한 것들을 자기 혼자서 몽땅 만들었어. 지금은 해변의 상징이 된 파란색 스트라이프의 구조대 타워를 비롯해 매점, 탈의실, 텐트부터 티켓, 시즌권, 직원 유니폼까지 말이야. 두 번째로는 벨레부에 해변가에 건립한 벨라비스타 주택 단지를, 마지막으로 벨레부에 극장과 레스토랑을 만들며 대망의 막을 내렸어. 특히 벨라비스타 주택 단지는 매끄럽고 눈처럼 희게 처리한 건물 표면에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기를 주었고, 매우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 덕분에 이국적이면서 우아한 현대성을 품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당대 덴마크에 나타난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힐 정도였어.

1400_19[벨레부에 해변 구조대 타워 ©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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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레부에 해변 매점 디자인 스케치 ©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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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비스타 주택 단지 사진과 벨레부에 해변 구조대 타워 스케치 © Hendrik Bohle]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야콥센은 기능주의와 합리성에 입각한 건물을 만들면서, 건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하는 총체예술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어. 일생의 걸작으로 꼽히는 ‘SAS 로열 호텔’(1960)부터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캐서린 컬리지’(1964), 유작인 ‘덴마크 국립은행’(1978)까지 건물 설계는 기본이고 인테리어, 가구, 소품, 심지어 정원까지 포괄하는 A-Z식 창작을 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완벽한 수준을 유지했지.

풍요로움에 젖은 미국인 관광객이 유럽으로 밀려들자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은 유럽 최초의 시내 공항 터미널을 코펜하겐에 구축하기로 계획하면서 덴마크 최초의 초고층 건물인 20층짜리 ‘SAS 로열 호텔’까지 묶은 ‘SAS 하우스 프로젝트’를 야콥센에게 의뢰하게 돼. 그는 ‘모던 가든’이란 테마 아래 호텔 외면을 알루미늄과 녹색, 녹회색 유리창으로 가득 채워 코펜하겐의 도심과 하늘이란 외부 풍경을 건물에 담았어.

‘도심 속 정원’이란 콘셉트에 어울리는 유기적인 디자인으로 호텔 로비, 리셉션, 객실,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면서 각 장소에 놓을 의자와 소파, 조명부터 레스토랑의 커틀러리 세트에다 심지어 기념품 가게의 재떨이, 공항버스 외관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영역이 없었어. 놀라운 점은 이렇게 광범위한 범위로 진행한 작업의 퀄리티가 장소적 맥락을 거세하고 독립적으로 보아도 대니시 모던 디자인이 도달할 수 있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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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SAS 로열 호텔 앞에서 사진을 찍은 아르네 야콥센과 SAS 로열 호텔 전경 © Danmarks Kunstbibli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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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센의 집요함이 엿보이는 SAS 공항 버스 © Radisson Collection]
24[완공 직후 호텔 로비 모습 © Radiss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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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야콥센의 기조는 지키면서 동시대에 맞게 리노베이션한 호텔 로비 © Radisson Collection]

터미널 이용객이 앉는 의자는 ‘시리즈 3300’이였고, 호텔 로비 라운지에 놓기 위해 디자인한 가구가 누구나 딱 보면 ‘앗!’ 소리 지를 ‘에그 체어’, ‘스완 체어’, ‘스완 소파’야. 객실과 레스토랑을 위해서 ‘드롭 체어’를 만들었고, 레스토랑 커틀러리 세트는 미래적인 디자인 때문에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의 전설적인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우주인의 소품으로 발탁되었지. 현재 대니시 모던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여러 작업들이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야콥센의 총체예술이 얼마나 전무후무한 경지인지 알 수 있어. 참고로 여기는 ‘세계 최초의 디자인 호텔’이기도 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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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3300에 앉아서 대기하는 여행객들. 1970년대 추정 © Wikimedia]
27[2018년 리노베이션한 호텔 라운지 모습. 스완 소파, 스완 체어, 에그 체어 등 대니시 모던 디자인의 아이콘들이 착석용으로 무심하게 있는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져. © Radiss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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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적인 조형미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의자 삼총사. (왼쪽부터) 드롭 체어, 에그 체어, 스완 체어 © Fritz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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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레스토랑 커틀러리 세트. 지금 봐도 미래적인데, 60년 전에 만들었다니 할 말이 없어져. © Radisson Collection]

옥스퍼드 대학 세인트 캐서린 컬리지와 덴마크 국립은행에서도 야콥센의 총체예술은 유감없이 발휘됐지. 세인트 캐서린 컬리지의 경우 건물과 인테리어는 기본이고, 의자, 등잔, 문손잡이는 물론 은 식기, 도자기 등 소품과 함께 정원 조경까지 맡아 연못에 사는 물고기 수종까지 골랐어. 1971년 야콥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사후 완공된 덴마크 국립은행은 햇빛의 움직임과 하늘의 변화가 그대로 담기는 파사드와 그 단단하고 옹골찬 비례의 아름다움도 감동적이지만, 사무실용 의자로 백합의 생명력을 닮은 ‘릴리 체어’와 건물 벽시계로 독특한 다이얼 표시가 인상적인 ‘뱅커스 클락’을 남겼다는 점도 굉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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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캐서린 컬리지와 정원 © Wikiw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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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립은행 외부. 노을로 물든 모습이 정말 장관이야.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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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공간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덴마크 국립은행 1층 로비 © Danmarks National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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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립은행을 위해 만든 릴리 체어와 뱅커스 클락 © Danmarks National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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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센의 그 유명한 ‘앤트 체어’도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노르디스크 사옥을 만들면서 사원용 구내식당을 위한 의자로 기획했다는 사실! 그래서 싸고, 튼튼하고, 쌓을 수 있고, 옮기기 편하게 만들었어. © Wikimedia]

공공 기관, 주택, 병원, 학교, 호텔, 사옥 등 100채 이상의 건축물부터 의자, 소파, 양념통, 토스트 보관대, 재떨이, 주전자, 벽지, 텍스타일 등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한 야콥센을 독특하게 기념하는 공간이 있어. 현재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로 이름을 바꾼 옛 SAS 로열 호텔의 606호야. 여기는 1960년 오픈 당시 야콥센이 디자인한 오리지널 가구와 그 배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곳이야. 실제 숙박객이 예약해서 머물 수도 있는 이 살아있는 방의 별명은 바로 ‘야콥센의 잃어버린 총체예술’. 정말 그답게 그를 기억하는 공간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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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재정비한 606호.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 Radisson Collection]
About Author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디자인, 건축, 예술 관련 글을 기고한다.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손기술로 먹고산다'는 사주 아저씨의 말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