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맥주의 섬, 구스 아일랜드

요즘 서울에서도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널려있다. 하지만 한 브랜드의 맥주를 침착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하지만...
요즘 서울에서도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널려있다. 하지만 한 브랜드의…

2016. 12. 12

요즘 서울에서도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널려있다. 하지만 한 브랜드의 맥주를 침착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하지만 이제 서울에도 그런 근사한 곳이 생겼다. 놀랍게도 척박한 빌딩숲, 역삼에 말이다.

오늘은 그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맛있는 음식과 더 맛있는 맥주와 함께한 흥겨운 시간이었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노란부리의 거위가 보인다면 제대로 찾은 것이 맞다. 구스 아일랜드는 1988년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작은 브루펍으로 시작했다. 구스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우리 노들섬처럼 시카고 강에 구스 아일랜드의 섬에서 따왔다. 독특한 이름과 구스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거위때문에 한 번 보거나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도 맥주도 역시 캐릭터가 중요하다.

Processed with VSCO with c1 preset

구스 아일랜드의 맥주가 특별한 이유는 깐깐함과 느림에 있다. 맥주의 맛 중 팔할은 발효와 홉에서 나온다. 구스 아일랜드는 1,700에이커나 되는 너른 땅에서 50종 이상의 홉과 15종 이상의 효묘를 직접 재배한다. 벌써 꽤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맥주는 만드는 과정 하나도 그냥 넘기는 법 없이 브루어가 달라붙어 꼼꼼히 챙긴다. 크래프트 오브 크래프트, 다른 맥주가 그냥 커피라면 구스 아일랜드 넌 TOP야.

Processed with VSCO with c1 preset

따져보니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느는 건 고집뿐인데, 구스 아일랜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거침이 없다. 1992년 버번 위스키를 담았던 통에 맥주를 숙성시키는 버번 배럴 에이징이 그랬으며, 와인을 담은 배럴에 과일과 함께 숙성하고 여자 이름을 붙인 사워시스터즈도 그렇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시카고에만 머물던 구스 아일랜드가 처음 시카고를 벗어났다. 그리고 서울에도 드디어 자랑할 만큼 크고 알찬 브루 하우스가 생겼다. 이곳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는 26종의 맥주와 다양한 맛의 크래프트 맥주를 경험할 수 있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사실 그간 와인에 비해 맥주안주는 그 조합이 궁핍했다. 치맥(치킨+맥주) 피맥(피자+맥주) 감맥(감자튀김+맥주) 정도가 있을까.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음식은 단순히 맥주의 맛을 받쳐주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맥주와 음식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가장 완벽한 조합을 찾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또한 가격도 1만 원 미만부터 3만 원대까지 합리적인 가격대로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구스 아일랜드가 준비한 푸드 페어링을 씹고 느껴보자.

소피 & 부라타 치즈와 절인 토마토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식전주는 입안을 긁어야 한다. 그래야 본격적인 식사의 입맛과 흥을 돋울 수 있다. 소피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거의 완벽한 식전주다. 와인 배럴에 오렌지 껍질을 넣어 2차 숙성을 거쳐 탄생한 맥주로 부드러운 탄산감, 오렌지의 거친 향과 마지막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닐라 향까지 입안이 호사스럽다. 샴페인처럼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함께 마셔도 좋고, 맛이 화려해서 혼자 마시면 더 좋다. 소피는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모차렐라와 크림으로 만들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부라타 치즈에 선드라이 토마토로 감칠맛을 돋운다.

포 스타 필즈& 시저 샐러드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강한 블루치즈에 슈거 코팅으로 단짠의 화신 같은 맛의 바삭한 베이컨, 여기엔 강한 블루 치즈 드레싱을 얹은 시저 샐러드와 포 스타 필즈를 함께 마셨다. 청량하고 깔끔한 맛의 이 맥주는 독일 홉과 미국 홉을 함께 사용한단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카스나 오비에 홉을 가득 넣은 맛이다. 어떤 필스너도 이렇게 묵직하면서도 독특한 맛을 내는 건 없었다.

혼커스 에일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홍커스 에일은 구스 아일랜드의 든든한 장남이다. 1988년 영국의 시골 펍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몰트와 홉의 맛의 조화가 묵직하게 어우러져서 누구라도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21일 동안 숙성 후 300도까지 올라가는 오븐에서 터프하게 구워진 등심과 함께 마시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312 어반 위트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맥주에 312라는 숫자라니. 뭔가 했는데 시카고 지역 번호란다. 만약 우리나라 서울이라면 02가 되었을까. 시카고의 지역 번호를 딴 이 맥주는 시카고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가 되었다. 무겁게 누르는 홉의 맛과 향 그리고 살짝 스쳐 지나가는 상큼한 과일향의 이중적인 모습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버번 카운티 스타우트 & 라즈베리 셔벗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오늘의 발견, 구스 아일랜드의 자랑, 버번 카운티 브랜드 스타우트. 알콜 도수 14.3%에 악마처럼 검고 진하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검은 액체가 입천장과 혀를 코팅하는 천천히 감싸는데, 그맛이 달콤하고 유혹적이라 이 맛을 온전히 느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을린 오크와 초콜릿, 바닐라 그리고 캐러멜 같은 복합적인 맛이 나는데, 아아 이건 일단 마셔봐야 한다.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Processed with VSCO with a1 preset

주소: 서울 강남구 역삼로 118
문의: 02-6205-1785
영업시간: 11:00AM – 01:00AM

이곳에서는 서울만의 새로운 레시피를 활용한 맥주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누룩 등 한국 전통 재료를 더한 이 맥주는 내년 2월이나 3월에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우리에겐 이곳을 들릴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긴 셈이다.

여담인데, 구스 아일랜드와 사랑에 빠진 나는 바로 다음 날 에디터H의 손을 잡아끌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결과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이 맥주는 에디터H와 나누는 데 실패했다. 공식 오픈은 12월 15일 부터였다고 한다. 창피했다. 설명할 때 잘 들을 걸. 여러분들은 나처럼 헛걸음 하시는 일이 없기를!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