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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닉 5의 인기, 이 정도일 줄 알았어?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우성입니다. 이제 그분이랑 안 헷갈리시죠? 이름 얘기할 때마다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자동차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리뷰 채널 <더파크>...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우성입니다. 이제 그분이랑 안 헷갈리시죠? 이름 얘기할 때마다…

2021. 03. 04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우성입니다. 이제 그분이랑 안 헷갈리시죠? 이름 얘기할 때마다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자동차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리뷰 채널 <더파크> 운영하는 칼럼니스트 정우성입니다. 볼보 소식 이후 오랜만에 뵙네요. 앞으로는 전기차 관련 소식을 종종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는 요즘 분위기도 심상치 않거든요. 하지만 조바심은 갖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소비재를 보는 관점은 다분히 보수적인 면이 있어요. 분위기가 들썩인다고 왁자지껄하게 편승할 생각은 없습니다. 미래는 한순간에 오는 게 아니고, 시간은 늘 공존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드릴 이 한 대의 전기차가, 요 며칠 제 생각을 조금 바꿔 놓으려는 참입니다. 너무 많이 팔렸거든요.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사전계약 첫날 무려 23,760대가 팔렸습니다. 2020년 수입차 판매 1위였던 테슬라의 판매실적이 11,826대였어요. 테슬라가 1년 동안 팔았던 양을 하루 만에, 사전계약으로만 한참 추월해버린 거죠. 현대자동차가 아이오닉 5를 공개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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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도 적잖이 놀란 것 같았습니다. 사실 올해 목표 판매량이 7만 대였거든요. 대충 계산해도 1/3에 달하는 판매량을 하루 만에 달성한 거죠? 굉장한 인기, 놀라운 신뢰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오닉 5가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진짜 혁신이었을까요? 공개된 면면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해가 될지도 몰라요. 이 차가 왜 이렇게 많이 팔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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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매력은 공간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원래 실내공간을 확보하는 데는 도가 튼 회사예요. 귀신 같은 실력을 가진 회사죠. 한국 시장이 공간에 유난히 민감하기도 하고요. 그 실력을 아이오닉 5에서도 십분 발휘했습니다. 게다가 전기차야말로 창의적인 공간 디자인의 원천 같은 장르거든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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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 익숙한 자동차들, 가솔린이나 디젤 엔진을 쓰는 내연기관 자동차들을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의 개수는 약 3만 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은 1만 개 정도예요. 1/3 수준이죠. 디자이너들은 약 2만 개의 부품이 사라진 공간을 온전히 승객을 위해 쓸 수 있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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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닉 5의 실내를 보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센터 콘솔은 앞뒤로 14cm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앞좌석과 뒷좌석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도 있는 거죠. 뒷좌석은 앞뒤로 13.5cm를 이동합니다. 트렁크에 실어야 하는 짐이 많을 때는 앞으로, 뒷좌석에 공간이 필요할 때는 뒤로 최대한 밀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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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전기차이기 때문에 유리하게 적용할 수 있는 레이아웃이에요. 전기차의 바닥에는 배터리가 넓게 깔려있어서 정말 방처럼 편평하니까, 자동차 실내를 더 적극적인 거주 공간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역시 내연기관 자동차라면 으레 있어야 하는 복잡한 부품들이 빠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거예요. 엔진과 변속기, 동력을 전달하기 위한 복잡하고 무수한 부품들이 전기모터와 베터리로 대체됐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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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이 하나 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아이오닉 5의 전장은 4,635mm예요. 투싼보다 5mm 깁니다. 둘은 거의 같은 크기라고 봐도 되겠죠. 하지만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 아이오닉 5의 휠베이스는 3,000mm입니다. 무려 3미터나 되죠. 반면 투싼의 휠베이스는 2,755mm예요. 아이오닉 5가 245mm나 더 긴 거죠.

보통 휠베이스는 자동차의 거주 공간을 가늠하는 수치로 쓰입니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 앞좌석과 뒷좌석을 놓는다고 상상해보세요. 현대자동차에서 제일 큰 SUV, 펠리세이드의 휠베이스가 2,900mm입니다. 아이오닉 5의 크기는 투싼 정도인데 실내 공간은 펠리세이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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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외에 220V 플러그를 바로 꽂을 수 있는 콘센트를 마련한 것도 아이오닉 5를 보다 집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요소일 겁니다. 220V 콘센트를 갖추고 있는 자동차는 이미 많이 있었지만, 아이오닉 5처럼 본격적인 용도의 콘센트는 흔치 않거든요. 아이오닉 5에서는 헤어드라이어나 전기장판처럼 높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가전제품들을 쓸 수 있어요. 광고에서처럼 러닝머신을 연결해 숲속에서 뛰고, 몇 개의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감상하는 장면. 원한다면 재연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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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공간보다 감각적으로 시선을 빼앗은 건 바로 아이오닉 5의 외관 디자인입니다. 세단도 아니고 해치백도 아닌 형태. 그렇다고 SUV도 아닌 새로운 느낌의 차체에 지금까지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선과 면이 가득해요. 미래의 자동차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부드러움과 유선형은 일부러 제외한 것 같은 고집도 느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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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이렇게 뾰족하고 날카로운 선을 본 적 있으세요? 현대가 아반떼를 만들기 전까지, 자동차 디자인에서 삼각형은 거의 금기시되는 언어였습니다. 자동차는 보는 순간 안정과 안전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을 선호하고, 뾰족한 직선은 날카롭고 불안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직선과 삼각형을 새로움과 용기, 역동성의 요소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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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닉 5의 디자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어요. 헤드램프와 리어램프에는 사각형까지 소환했습니다. 이걸 파라메트릭 픽셀이라고 부릅니다. 90년대 콘솔 게임의 느낌이 2021년의 전기차에 숨어든 느낌? 과거와 미래가 빛으로 만나는 순간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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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직선을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어쩐지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해요. 자료 사진에서 보던 80~90년대의 자동차 디자인. 담백한 직선 몇 개로 거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빚어냈던 그때의 자동차들. 현대자동차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도 그런 차 중 하나입니다. 아이오닉 5는 2019년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최초로 공개했던 컨셉카, 현대 45 EV를 거의 그대로 살려 만들었습니다. 현대 45 EV에는 포니 이후 45년의 역사를 그대로 잇는 의미가 담겨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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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의 모든 요소들. 어떠셨어요? 분명히 새롭죠? 편리하기도 하고요. 미추의 기준은 결국 취향이겠지만, 아이오닉 5의 완성도만큼은 놀라운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5분만 충전하면 1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고, 18분 안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솔루션이야말로 전기차에 대한 거의 모든 불안을 해소시켜줍니다. 게다가 주행가능거리는 410km. 충분한 수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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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아이오닉 5의 이 모든 요소들이 혁신이냐 아니냐 정색하고 묻는다면 또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인테리어를 본격적인 거주 공간으로 삼고 싶었다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거예요. 조금 더 본격적인 혁신을 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익스테리어도 마찬가지죠. 직선과 삼각, 사각 모티프는 분명히 새롭지만 그래서 그게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냐고 묻는다면 또 다양한 논의가 가능할 겁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 있죠. 아이오닉 5라는 이름이 전기차라는 미래를 한순간에 이렇게까지 퍼뜨렸다는 거예요. 최전선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그 기술을 대중의 일상 속으로 끌어오는 건 아주 다른 맥락의 혁신일 겁니다. 전기차라는 컨셉 자체를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위화감 없이 누릴 수 있게 만든 일이야말로 아이오닉 5가 이뤄낸 일단의 혁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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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기차 이야기를 할 때마다 되뇌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이미 미래 모빌리티의 기술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있으니까. 다만 우리 집 차고까지는 아직 오지 않은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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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정우성

시간이 소중한 우리를 위한 취향 공동체 '더파크' 대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고전음악과 일렉트로니카, 나무를 좋아합니다. 요가 에세이 '단정한 실패'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