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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여러분

솔직히 말할까. 나는 프로 불편러다.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무음 모드로 해놓지 않는 사람이 싫다. 대관절 내가 왜 너의 ‘까똑!’ 소리를 30분간...
솔직히 말할까. 나는 프로 불편러다.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무음 모드로 해놓지 않는 사람이…

2016. 11. 11

솔직히 말할까. 나는 프로 불편러다.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무음 모드로 해놓지 않는 사람이 싫다. 대관절 내가 왜 너의 ‘까똑!’ 소리를 30분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에스컬레이터 앞을 막고 서 있는 ‘길막족’도 싫다.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으면 좋겠어? 낯선 커플의 코맹맹이 소리도 싫다. 내 애교 말고 남의 애교는 다 불편하니까. 싫어하는 건 하루 종일 읊을 수 있지만 가장 싫은 건 지금 이 시절이다. 아름다울 美를 붙여 부르던 나라가 가장 못생긴 속내를 드러냈다. 내 나라도 마찬가지다. 불길한 이름들을 두고 매일 원색적인 소식이 쏟아진다. 올해가 무슨 해더라, 2016년이 간지로 어느 해인지를 거듭 곱씹는다. 병신같이.

분노가 많은 나와 여러분을 위해 ’에디터H 분노 조절 Kit’을 소개한다. 요즘 내가 즐겨 쓰는 것들이다. 맥락은 없으나 목적은 있는 리스트랄까.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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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사를 쓰며 사용 중인 앱 ‘노이즐리(Noisli)’. 집중력을 높이고 마음에 안정을 주기 위해 귀에 거슬리지 않는 수준의 백색소음을 들려주는 용도다. 흔히 말하는 ‘자연의 소리’ 같은 것들. 비 내리는 소리나 바람 부는 소리,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사실 비슷한 기능의 백색소음 앱은 꽤 많다. 그 중에서 노이즐리를 추천하는 이유는 UI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간결한 디자인과 직관적인 아이콘 배치로 ‘눈에 보이는 스트레스’마저 덜어준다.

내가 추천하는 건 ‘카페 소리’. 집에서도 카페에 있는 기분이다. 실제로 카페에 앉아있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일품이다. 좋은 이어폰으로 들으면 달그락거리는 접시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 사람들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서 공간감마저 느낄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카페에서 떠드는 목소리가 한국말이 아니라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레이어드할 수 있으니, 본인 취향에 맞게 조합해보자. 각각 볼륨 조절도 가능하다. 카페 소리에 작은 볼륨의 비 오는 소리를 더하면 완벽. 집구석에 가만히 앉아서도 외국 카페의 정취를 느끼며 일할 수 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는 모닥불 소리가 최고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이 소리는 괜히 귀 기울이게 만들고 괜히 배고프게 만든다. 에디터M은 기차소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어디론가 떠나는 느낌이라고. 스마트폰 앱이 아니더라도 웹사이트에서도 바로 쓸 수 있으니 당장 들어가 보자. 개인적으로 물 흐르는 소리는 잘 듣지 않는다. 화장실 가고 싶어지거든요…


뱉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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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 시리즈2를 쓰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이키 플러스 에디션인데, 운동을 하지 않아서 좀처럼 신제품의 성능을 체감할 날이 없다. 내일은 꼭 뛰어야지. 뛰어야지. 아, 몰라.

오후 무렵에 갑자기 손목이 도로록, 울렸다. 애플워치가 말했다. 심호흡할 시간이라고. 나는 사람을 대하듯 짜증냈다. 아 지금 바쁜데 왜 너까지 보채! 정말 바빴다. 정신이 없었다. 무시하고 다시 일하려는데 문득 서글퍼졌다. 1분이면 되는데. 1분이면 되는걸. 나 사는 모습은 왜 이리 여유가 없을까. 일을 마치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손목을 들어 1분의 심호흡을 시작했다. 꽃잎이 커지면 숨을 들이쉬고, 꽃잎이 작아지면 숨을 내쉰다. 생각보다 숨이 깊다. 가슴속을 누가 건드리는 것처럼 쿵 울린다. 정말 오래간만에 깊게 숨을 쉬었다. 심호흡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하던데 그건 아직 모르겠다. 다만, 기분이 좋았다. 심장이 벌렁 벌렁 뛰는 게 느껴졌다. 내가 심호흡을 위해 1분의 시간을 냈다는 여유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앱등이 감성이라고 비웃어도 상관없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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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웹툰을 본다. 어떤 걸 보면서 낄낄 웃고, 어떤 건 밤잠을 설치고, 어떤 웹툰은 보고 나면 코끝이 찡해서 아프다. 그럴 땐 하품을 하며 졸린 척한다. 웹툰보고 우는 게 아니라니까?

요즘 같은 기분에 추천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의 웹툰이다. 과하게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다만 좋다. 다음에서 연재 중인 김정연 작가의 ‘혼자를 기르는 법’.

이 만화는 묘하다. 기본적으로 ‘흑백 만화’지만 완전히 검은색이 아닌 묘한 세피아톤을 사용한다. 마치 인쇄물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흐릿한 색감. 군더더기 없는 그림체와 독특한 폰트 사용. 특이한 점은 없는데 기묘하다.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주인공이(작화 탓일 수도 있다) 담담하게 하루를 보낸다. 햄스터를 기르고 가끔 실내 낚시를 하며, 직장에선 야근에 시달린다. 주인공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나 특별히 좋은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병신 같은 순간에도 실낱같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좋은 작품을 근사하게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러 문장을 썼다 지웠다. 그냥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써두겠다. 감상은 ‘여기로’.

“전 저의 인생이…
필름 없는 카메라 앞에서 취하는 포즈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해 믿지는 않지만
혹 천당이란 것이 있다면
클라우드 서버 위에 지어지는 게
좋겠다고는 생각합니다.”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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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마신 위스키다. 얼리 타임즈. 버본 위스키의 대명사라고 하더라. 옥수수 농장이 많은 켄터키 주에서 만들었다. 지금 약간 켄터키 주를 통째로 갈아 마시고 싶은 기분이라 이 술을 다시 마셔야겠다. 금주법의 시대에 태어났지만, 약용으로 허가받고 판매했다더라. 향은 달콤하다. 하지만 막상 혀끝에 닿으니 쓰고 알코올 향이 강하다. 노동자들을 위한 위스키라더니. 소주 같군.

누군가는 부드럽고 순하다던데 내겐 독했다. 지금 딱 맞는 위스키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