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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취향] 나의 사랑스런 통장털이범

나는 29cm를 좋아한다. 이렇게 쓰니까 담백해 보이는데, 사실 29cm를 향한 내 마음은 스토커의 그것에 더 가깝다. 난 매일 너를 훔쳐보고...
나는 29cm를 좋아한다. 이렇게 쓰니까 담백해 보이는데, 사실 29cm를 향한 내 마음은…

2016. 11. 02

나는 29cm를 좋아한다. 이렇게 쓰니까 담백해 보이는데, 사실 29cm를 향한 내 마음은 스토커의 그것에 더 가깝다. 난 매일 너를 훔쳐보고 너를 탐해. 네가 갖고 있는 건 나도 다 가질 거야. 그럼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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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하루 끝 나에게 뭐라도 선물을 해야 잠이 올 것 같은 밤, 모처럼 통장 잔고가 여유로워 지름신으로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날, 이런 날엔 29cm에 들른다. 그러면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물건을 어느새 원하고 원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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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9cm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자면, 29cm는 취향이 좋은 온라인 편집샵이다. 무려 700개가 넘는 브랜드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들은 수많은 상품을 어여쁘게 포장해서 우리 코앞에 들이민다. 이거 봐봐, 보라니까. 일단 보면 갖고 싶어질걸?

234552[얼마 전, 29cm가 로고를 바꿨다. 단 6개의 선으로 29cm를 만든 그들의 센스에 박수를!]

훌륭한 사진과 감각적인 멘트로 우리의 눈을 현혹하고, 나의 통장을 털어간다. 29cm는 실로 아름다운 포장지다. 이렇게 말하니까 욕처럼 들리는데 칭찬이다. 안에 무엇을 품고 있든 29cm를 통하면 욕망의 대상이 된다. 진짜다. 자전거도 못타는 내가 이 요망한 것에 홀려 혼다의 전기 자전거를 결제할뻔 했다면 이해가 될까? 이쯤되면 광고 기사같겠지만 놀랍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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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카드놀이 하듯 제품을 배치한 사이트,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내 마음처럼 일렁대는 모바일 앱은 물건보다는 이미지를 파는 곳처럼 보인다. 몇백 개가 넘는 브랜드를 다루고 있지만, 29cm 특유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톤을 잃는 법이 없다. 아, 아마도 난 너를 사랑하고 있나 봐. 

여기까지 쓰고 보니 갑자기 머쓱해진다. 오랫동안 마음을 품고 있던 남자에게 술기운에 불쑥 고백해 버린 기분.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 오늘은 나의 사심을 가득 담아 현재 29cm에서 판매하는 것 중,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들을 모아봤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진짜 나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나만 죽을 수 없지. 우리 함께 통장이 바닥날 때까지 질러보자. 소리 질러!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리플렉트 에코 히터 REH-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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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갑자기 추워졌지? 벌써부터 아침에 이불 속을 벗어나기 힘들어하면 어떡해. 겨울은 이제 시작인걸. 난 잘 쓰지 않는 쓸데없는 기능 같은 건 모두 버렸어. 작고 귀여워서 전기도 별로 안 먹는다고. 추워? 이리 와. 내가 따듯하게 해줄게. 부끄러워하지말고. 상상해봐. 벌써부터 이렇게 추운데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 거야. 그러니까 나를 사. 있잖아, 나 원래 16만 8,000원인데 너한테만 13만 3,200원에 줄게. 자, 착하지. 카드를 꺼내볼까?


까렌다쉬
849 폴스미스2 볼펜 리미티드 에디션 로즈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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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24시간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너 같은 애한텐 볼펜이 필요 없을 수 있다는 거. 잠깐,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를 한 번만 쳐다봐 줄래? 이렇게 예쁜데 그냥 가기야? 게다가 나는 로즈핑크라니까. 분홍 같은 시시한 색이랑 같이 묶는 다면 나는 너무 슬퍼질 거야. 나는 색의 마술사 폴옹이 직접 고른 색이라구. 폴 스미스 특유의 스트라이프 컬러는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새겨뒀어. 갖고 싶지? 갖고 싶다고 말해. 나 6만 5,000원 밖에 안 해. 비싸다고? 폴 스미스가 만든 건데 뭘 바라는 거야?

235425[넌 이걸 가지게 될 것이다.. 아브라카다브라]

벤헴
Castle_Stripe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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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덥다고 쇼핑하고, 또 춥다고 쇼핑하면서 너네 집에 살고 있는 세 마리의 노견한텐 뭐 하나 사주는 법이 없더라? 지금도 찬 바닥에 누워 자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해봐. 걔네도 예쁜 옷과 좋은 집을 가질 권리가 있어. 강아지 인권(?) 무시하니? 성의를 보이란 말야. 사랑은 돈으로 표현하는 거야. 나 원래 14만 9,000원인데 12만 6,650원으로 할인 중이다? 비싸다고? 흥, 왈왈!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