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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거시기한 맥북 프로

애플이 새로운 맥북 프로 라인업을 공개했다. 내 마음은 실로 고요하다. 왜냐하면 난 이미 7월에 로즈골드에 홀려 맥북을 구입해버렸으니까. 올해 말에...
애플이 새로운 맥북 프로 라인업을 공개했다. 내 마음은 실로 고요하다. 왜냐하면 난…

2016. 10. 28

애플이 새로운 맥북 프로 라인업을 공개했다. 내 마음은 실로 고요하다. 왜냐하면 난 이미 7월에 로즈골드에 홀려 맥북을 구입해버렸으니까. 올해 말에 프로 라인이 나올 것 같다는 심증이 있었음에도 예쁘고 가벼운 애를 택했다. 그러니 새로운 맥북 프로는 내겐 그림의 떡. 한낱 알루미늄 케이스의 무생물에 불과하다. 오래 살펴보면 괜히 갖고 싶어진다. 빠르게 특징을 훑어보자.

내가 요즘 좀 물이 올랐다. 몸무게에. 가을이라 살찌는 건지, 그냥 살찌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좋지 않다. 그래서 전자 제품 리뷰 쓸 때마다 무게와 두께를 언급하며 깊은 반성에 빠지곤 한다. 얘네는 있는 구멍(포트)까지 없애가며 지옥의 다이어트를 감행하는데 나란 여자는 왜 불어나기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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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맥북 프로 13인치 모델을 기준으로 얼마나 줄였는지 보자. 두께는 1.8cm에서 1.49cm로. 무게는 1.58kg에서 1.37kg으로 줄였다. 인상적이다. 고성능 프로 라인업이 이 정도로 가벼워지는 날이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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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우주적 휴대성을 위해 맥북 프로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보자. 일단 SD 카드 슬롯이 사라졌고, HDMI 포트가 종적을 감췄다. 맥세이프 전원 포트도 사라졌다. 그럼 무엇이 남았을까. 그래. 이제 전원 포트는 무조건 USB-C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USB-C 형태의 썬더볼트3 포트가 4개나 들어갔다. 이렇게 비싼 걸 4개나! 썬더볼트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빠르다. 우리가 흔히 쓰는 USB 3.0 보다 이론상으론 8배 빠르다. 1분 동안 사진 2만 5,000장을 복사할 수 있는 성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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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맥북 프로를 위해 만들었다는 5K 모니터와 연결한 모습]

디스플레이 대역폭이 넓어 4K 디스플레이도 자유롭게 물릴 수 있다.

여러모로 좋은 인터페이스이긴 한데… USB-C 포트를 사용하는 만큼 한동안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들과 호환성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걱정마라. 곧 적응된다. 불편할 때마다 현질하면 해소할 수 있다. 별도 어댑터를 사거나, 허브를 사거나… 돈을 쓰면 걱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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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바로 터치바를 살펴보자. 루머가 들끓었던 터치형 키보드가 드디어 등장했다. 시중엔 이미 화면 터치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노트북이 다수 출시돼 있다. 키보드 입력과 화면 터치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기기가 천지빼까리인데 애플은 키보드 상단에 얇은 터치바 하나 추가하고 온갖 생색을 내고 있다. 실로 애플답다. 그리고 흥미롭다. 노트북 본연의 입력장치인 키보드 영역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고, 물리키의 영역에 터치를 들였다는 발상은 진보적이다. 본래 살던 터에 집을 허물고 주상복합이 들어온 경우다. 사실 키보드에 OLED 터치바를 적용한 제조사는 애플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린 또 애플만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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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키보드는 역마살 낀 남자친구 같다. 적응할라치면 떠나고, 다시 적응하면 또 떠난다. 한영전환키가 자꾸 바뀌는 바람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번엔 수 년간 함께해왔던 기능 키보드 한 줄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우리는 또 적응해야 한다. 아, 물론 기능 자체를 삭제한 건 아니다. 기존 키 배열을 쓰고 싶을 땐 키보드의 fn 키를 길게 누르면 된다. 터치바 발상는 좋지만, 실제 사용할 때 손이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 남는다. 키보드 최상단은 원래 자주 손이 닿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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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기대도 크다. 터치바가 구현된 모습을 보자. 섹시하다. 그 자체로 디자인의 요소처럼 여겨질 정도다. 작업에 따라 자동으로 모습을 바꾸는 터치바는 살아있는 것처럼 요염하다. 때로는 단축키가 되고, 때로는 이모티콘이 되며, 사진 편집 툴로 변신하기도 한다. 현재 공개된 시연 내용으로 봤을 땐 애플 사용자라면 곧장 적응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들이 주를 이룬다. 어쩌면 터치바가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입력장치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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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일 끌리는 건 파이널컷에서 구현되는 모습. 영상을 전체 화면으로 띄워놓고, 터치바에서 영상 타임라인을 확인하며 훑어볼 수 있다. 터치바 조작을 통해 마우스나 트랙패드로 하기 힘들었던 미세한 컨트롤이 더 쉬워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쿵덕거린다. 안 그래도 하루 전에 공개된 서피스 스튜디오의 서피스 다이얼을 보며 손 끝에서 영상 프레임을 조절하면 얼마나 편할까 설레던 나다. 맥북 프로를 사면 편해질까? 지름신이 엄습해오는 걸 느낀다. 정신을 차리자. 영상 편집 경력 2개월의 풋내기는 오늘도 장비 탓을 하며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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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바가 너무 궁금해 샌프란시스코 키노트 현장에 나가있는 최호섭 기자에게 아이메시지를 보내보았다. 터치바는 마치 살아있는 버튼같으며, 꽤 신박하다고. “화면 넘어갈 때마다 그때 그때 쓸 만한 적절한 거시기들이 뜬다”라는 얘길 전해 들었다. 거시기라. 터치바에게 딱 알맞은 표현이다. 거시기가 어떤 말이든 지칭할 수 있듯이, 터치바는 어떤 기능이든 품을 수 있다. 거시기할 때마다 거시기를 불러낼 수 있는 거시기한 기능이 아닌가.

참고로 기사 속의 현장 사진은 모두 최호섭 기자가 촬영한 것이다. 이번 키노트 내용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기사’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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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모델을 출시했으니 그래픽 성능이나 프로세서 성능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얘길테니 넘어가자. 맥북 프로의 퍼포먼스는 항상 옳다. 이제 맥북 프로도 P3 색상 영역을 지원한다. 아이맥으로 시작해 아이폰7, 맥북 프로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넓은 적색과 녹색을 표현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를 업그레이드했다. 두께를 줄였으니 내부 설계가 모두 바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스피커도 새롭게 디자인해서 볼륨은 높이고, 다이내믹 레인지는 넓어졌다고. 트랙패드가 더 커지고, 키감도 더 안정감 있게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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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얘기를 들어도 우리 머리속엔 터치바만 남는다. 아, 터치바 오른쪽에 터치ID도 들어갔다. 이제 우리 지문 간수만 잘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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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는 스페이스 그레이와 실버의 두 가지. 로즈골드가 없어서 아쉽지만, 나라면 무조건 스페이스 그레이다. 사겠다는 건 아니고… 흠흠. 재밌는 사실은 터치바와 터치ID의 탑재를 이렇게 강조했으면서, 터치바와 터치ID를 제외한 모델도 함께 출시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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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즈온 섹션에서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는 터치바 미탑재 모델]

일종의 ‘비싼 저가형 모델’인 셈이다. 터치바가 필요없다면 189만원 부터. 터치바가 궁금하다면 229만원 부터다. 가격을 들으니 정신이 돌아온다.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거시기한 맥북이 자꾸 궁금하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맥북의 리뷰를 준비해보겠다.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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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