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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1타수 1안타

안녕, 취미가 많은 에디터B다. 나의 17번째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보통은 조용한 장소에서 음악만 듣는 걸 좋아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듣는다. 물론...
안녕, 취미가 많은 에디터B다. 나의 17번째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보통은 조용한 장소에서 음악만 듣는 걸…

2020. 04. 16

안녕, 취미가 많은 에디터B다. 나의 17번째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보통은 조용한 장소에서 음악만 듣는 걸 좋아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듣는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음악을 듣긴 하지만 그건 ‘지금 이 순간, 배경음악을 깐다’의 느낌이지 음악 감상이 목적은 아니다. 뭔가 까다로워 보인다고? 나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시작은 4년 전 <쇼미더머니>를 보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혼술로 기분 좋게 취해있는 상태였다. 맥주가 한 캔이 아직 남았는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노래도 끝나니 너무 아쉽더라. 곧장 유튜브에 들어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나 듣자는 생각으로 헤드폰을 낀 채 이것저것 틀었는데 악기 하나하나가 구분되며 귀에 쏙쏙 들렸다. 베이스 위주로 듣다가, 드럼 위주로 듣다가, 보컬 위주로 듣다가, 같은 노래를 몇 번씩 반복 재생하며 들었다.

새로운 취미는 돈을 쓰게 만든다. 소니, 마샬, 닥터비츠의 헤드폰을 쓰다가 한 차원 더 높은 헤드폰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때마침 몽블랑이 그들의 첫 헤드폰 MB01을 출시했다는 뉴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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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 감상을 좋아할 뿐, 오디오 전문가는 아니다. 마장동의 발골장인처럼 MB01의 성능을 하나하나 뜯어내는 건 힘들다. 차라리 한우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에 가깝달까? 그래서 오늘은 내가 평소에 듣는 음악들이 MB01에서는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그 전에 디자인부터 짚고 넘어가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음질보다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1.디자인
“저와 함께 검은색 상자를 열어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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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상자를 열면 검은색 헤드폰이 보인다. 고급스럽다.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상자 양쪽 옆에 있는 끈을 바깥으로 당기면 헤드폰이 떠오른다.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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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컬러는 블랙과 실버뿐이다. 이 색상 조합이 몽블랑의 육각형 로고를 연상시킨다. 번쩍번쩍, 블링블링. 실물로 보면 정말 고급스러운데 사진으로 볼 땐 어떤지 모르겠다. 무게는 280g으로 무거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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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블랑 헤드폰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상상해 봤다. 이미 검증된 음향 기기 브랜드 젠하이저, 보스, 소니가 아니라 몽블랑의 첫 헤드폰을 장바구니에 담아둔 사람들의 마음말이다.

감히 짐작해보건데 그건 몽블랑이기 때문이다. 소니나 보스가 줄 수 없는 것을 몽블랑이 주기 때문이다. MB01의 가격은 80만 원이다. 헤드폰 치고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 아이템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하면 접근 가능한 가격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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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원대가 넘어가는 헤드폰 중에는 젠틀함보다는 투박함이 돋보이는 제품이 많지만 MB01은 그렇지 않다. 제품의 소재와 형태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직선보다는 곡선을 강조했고, 이런 특징이 가죽의 중후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중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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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밴드와 쿠션에는 양가죽이 사용되었다. 어느나라 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부드럽다. 손으로 헤드 밴드를 쥐면 촉감이 부드러워서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아야 할 것 같다. 혹여나 가죽이 다칠까 마음이 쪼그라든다. 덕분에 착용감도 좋다. 오랫동안 착용했을 때도 헤드 밴드가 머리 한 부분만 누르지 않고 전체적으로 머리에 꼭 맞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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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에도 동일한 고급 양가죽이 사용되어서 부드럽다. 이 고급소재는 귀에 밀착했을 때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촘촘하게 밀착된다. 그 덕분에 기본적인 차음성 또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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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가죽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는 소재다. 나처럼 헤드폰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은 우선 땀을 걱정할 수밖에 없고, 땀에 의해 고급 가죽이 오염될까 심히 염려될 것이다. 이제 4월 중순이다. 더워지는 건 한순간이다.

실제로 더운 건 둘째치고 ‘더워 보인다’는 것도 큰 단점이다. MB01이 음향기기이면서 동시에 패션 아이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거금 들여 산 패션템이 여름에 활용할 수 없다면 섭하지 않나. 내가 리뷰를 위해 사용한 제품은 블랙 컬러 하나이고 그 외에 브라운, 그레이 컬러도 있는데 이 중 여름에도 어울리는 색상은 그레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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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드 케이스에 넣어서 안전하게 보관해서 다녀야지’라고 섣불리 생각할 수 있는데… 하드 케이스가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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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얘기를 했으니 다음 차례는 번쩍거리는 크롬 마감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고, 보면 볼수록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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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01의 프레임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알루미늄 소재 위에 크롬으로 마감을 한 것이다. ‘크롬’이라고 하면 예전에 삼성이나 엘지가 만든 스마트폰이 떠오를 텐데, 그런 저렴한 느낌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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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부분을 무광의 차분한 블랙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 해봤지만…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평범한 헤드폰처럼 보이지 않을까? MB01에서는 크롬이 차밍 포인트다.

1400_24-54[V자를 그려보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몽블랑 뽕’에 취한 건지도 모른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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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01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몽블랑 로고는 케이블에도 들어가있다. 이쯤에서 1분간 기립 박수를 치도록 하자. 헤드폰과 함께 제공되는 구성품은 USB-C 충전 케이블, 3.5mm 오디오 케이블 그리고 기내용 어댑터 등 세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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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로고는 케이블 양쪽 끝에서 볼 수 있다. 로고가 지워지면 마음이 너무 아플 거다. 기내용 어댑터에는 몽블랑 로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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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컵 윗부분에도 관절이 있어서 약 100도 정도 회전이 된다. 보관할 때는 용이하겠지만 고정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목에 걸고 다니다가 한쪽만 접히는 일도 생겨서 멋이 안 날 때가 있다. 디자인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했으니 이제 사용성으로 넘어가자.


2.사용성
“물리버튼 사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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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어컵부터.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이어컵에는 재생/일시정지가 가능한 버튼이 있다. 왠지 터치 버튼처럼 보이지만 물리 버튼이다. 실리콘 안에 버튼이 숨겨져있는 구조다. 누를 때 딸깍하는 느낌이 없어서 살짝 아쉽지만 물리 버튼인 점은 마음에 든다. 물리가 낫냐, 터치가 낫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하도록 하자. 이건 취향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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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버튼도 모두 물리 버튼으로 만들었다. 모든 버튼은 오른쪽 이어컵 하단에 몰아서 배치해 놓았는데, 위쪽 사진을 보면 왼쪽부터 구글 어시스턴트 호출, ANC on/off, 볼륨 조절, 전원 버튼이다.

1400_24-30[이어컵 하단에는 충전을 위한 USB-C 포트가 있다]

버튼이 조금 많다는 느낌이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버튼 하나를 할당한 만큼 효용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시리와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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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위해 노이즈 캔슬링 음향기기를 제대로 써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MB01의 정확한 ANC 성능을 말하기는 어렵다. 도로의 차 소음, 버스 엔진 소리, 지하철 안에서 들리는 저음역의 소음은 당연히 잘 잡아주었다. ANC가 너무 강하면 멀미를 느끼기도 한다는데, MB01의 노이즈 캔슬링은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고 적당했다. 적당해서 더 괜찮았다. 더 강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ANC를 켰을 때와 껐을 때의 음질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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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부분은 음성 안내다. ANC 버튼을 누르면 라이브 모드/ANC on/ANC off로 변경할 수 있다. 라이브 모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증폭시켜 외부 헤드폰을 벗지 않고도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드다.

문제는 모드가 바뀔 때마다 “Live mode on” “noise cancelling mode off”라는 영어 멘트가 나오는데 이 음성 안내가 나오는 동안 음악이 잠시 멈춘다. 그 시간이 하염없이 길다. 만약 전용 앱이 있다면 음성 안내 해제를 선택하면 되겠지만, 아직 앱이 나오지 않았다. 앱은 4월이나 5월 중에 출시된다고 한다.

MB01에는 숨겨진 기능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인텔리전트 재생/정지 기능이다. 헤드폰을 벗고 쓰는 동작을 감지해 자동으로 노래가 멈추거나 재생되는 똑똑한 기능이다. 하지만 완성도가 높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기능은 기본적으로는 꺼져있고 사용자가 원한다면 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나는 추천하지 않는다.


3.음질
“듣는 음악의 장르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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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질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영역은 분리도와 공간감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마샬 메이저3, 닥터비츠 솔로3 역시 좋은 헤드폰이지만 MB01에 비하면 큰 차이가 느껴졌다. 평소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데 MB01로 밴드 음악을 들으니 두 배 이상은 더 넓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코토바의 ‘메론’, 새소년의 ‘파도’를 들었을 때 베이스, 일렉트릭 기타, 드럼, 보컬이 나오는 소리의 위치가 더 넓게 느껴지고 각각의 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각각의 악기가 내는 소리가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선명하게 들렸다. MB01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이전 헤드폰으로 돌아갔을 땐 확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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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츠 솔로3를 사용했을 때는 드럼 사운드가 강조된 힙합을 많이 들었는데, MB01을 쓰는 동안은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부각되는 음악을 훨씬 더 찾게 되었다. <조커>의 계단신에서 나오는 배경음악 ‘Rock’n roll part.2’,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 같은 음악들 말이다. 물론 수십 번은 더 들어본 노래들이다. 그럼에도 계속 듣게 되더라. 들어도 들어도 계속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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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디오 기기를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좋은 음향기기를 자주 접할 일이 없었다. 때문에 고급 헤드폰이 얼마나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해상력, 공간감, 분리도라는 것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천적으로 황금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해상력이 더 좋다는 건 온몸으로, 아니 온 귀로 느꼈다. 무엇이 좋은 헤드폰인지 누구라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다만 내게 좋은 헤드폰이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들려주는 헤드폰이다. 고로 MB01은 충분히 좋은 헤드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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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보컬, 기타, 바이올린 소리가 나는 중음역대와 고음역대였다. 특히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리베르 탱고’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최문석이 드라마틱하게 고음으로 끌어올리는 격정적인 선율이 다른 사운드를 뚫고 나올 때 소름이 돋았다. 난 그럴 땐 마냥 좋아서 헛웃음이 나오더라. 작곡가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리메이크한 고상지의 곡에는 비브라폰, 반도네온,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가 모두 있어서 청각적인 쾌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4.결론

어느새 결론이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뭐야, 좋잖아?” 정도가 되겠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전자기기를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진 채 볼 수밖에 없다. 마치 패션 브랜드가 메이드 인 차이나 쿼츠 시계에 비싼 로고만 박아서 파는 것처럼, 럭셔리 브래드는 전자기기를 만들 때도 딱 그럴 것 같으니까. 하지만 MB01은 헤드폰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는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건 굉장히 멋스럽지 않나? 생각보다 음질면에서 만족스러웠지만 이것보다 살짝 안 좋아도 별로였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신 “뭘 더 바래? 이건 몽블랑이잖아.”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