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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살 걸 그랬지, 로봇청소기

안녕,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이다. 가전이라고 하면 어릴 때만 해도 으레 ‘엄마의 것’인 줄 알았지만,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 것’이 되어...
안녕,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이다. 가전이라고 하면 어릴 때만 해도 으레 ‘엄마의 것’인…

2019. 09. 23

안녕,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이다. 가전이라고 하면 어릴 때만 해도 으레 ‘엄마의 것’인 줄 알았지만,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 것’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기술들이 가전에 더해지는 것을 보면서 관심이 가는 건 직업병(?)이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사실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꼼수’가 결국 가전제품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어지는 것 같다.

냉정하게 보자면 가전의 기술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빨래 못 하는 세탁기 없고, 음식 썩히는 냉장고 없지 않나. 분명 계속해서 더 좋은 기술들이 더해지면서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그 진화의 방향은 대체로 효율성, 편리성, 연결성 등 본질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더 편하게 쓸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다. 그런데 그 유혹에 마음이 끌린다. 10년을 써도 좀체 고장 나지 않는 가전들이 야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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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는 나로선 꽤 큰 도전이었다. 처음엔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로봇청소기는 가전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완전히 뿌리째 바꾸어 놓은 기기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 로봇청소기가 들어온 건 약 3년 전의 일이다.

반신반의 정도가 아니라 마음 속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주 작은 가능성? 기대? 아무튼 상자를 열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꽤 복잡한 모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로봇청소기 홍보 대사가 됐고 내 주변 사람들은 “로봇청소기부터 사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때의 나처럼 “다음에…”를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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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가 인기 없는 비밀 이유
‘못 미더워서’

왜 다들 로봇청소기 구입을 망설일까? 핑계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집이 그렇게 넓지 않다’, ‘청소기가 돌아다닐 공간이 없다’는 반응이 많다. 나도 그랬다. 집이 좁았고 뭔가 바닥에 많이 늘어놓고 사는 환경이었다. 집이 넓다, 좁다는 청소의 빈도나 질과 전혀 관계가 없다. 먼지가 쌓이는 것은 똑같다. 다만 바닥이 복잡한 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다들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 바닥에 늘어놓은 것 좀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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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는 적어도 바닥에 쌓이는 옷, 박스, 전선 이런 것들을 정리하게 해 준다. 습관을 바꾼다. 이건 그 어떤 잘난 기계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어차피 그냥 청소기를 써도 해야 할 일이다. 로봇청소기는 그걸 더 노골적으로 알려준다. 적어도 청소기를 돌리기로 마음먹은 순간이라도 대충 주섬주섬 바닥에 쌓인 걸 올린다. 설령 그게 소파에, 식탁에 다 쌓이는 한이 있어도 정리는 정리다.

그 다음은 그냥 로봇청소기에 맡기면 된다. 자, 이제까지 이야기한 공간에 대한 핑계 속에 깔린 가장 큰 속내는 ‘로봇청소기를 믿지 못하겠다’에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내가 쓰는 3년 넘은 로봇청소기는 나보다 청소를 훨씬 잘하고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그보다 더 잘할 게다. 어느 정도냐면 이제 귀찮아서 로봇청소기를 돌리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청소를 제일 잘하는 게 로봇청소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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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 며칠의 묘한 감정은 편리함보다는 약이 오르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 시끄러운 녀석은 좁은 집을 청소하는 데에도 거의 20분을 돌아다녔고, 엄청난 양의 먼지를 긁어왔다. ‘이게 정말 우리 집에서 나온 건가’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자책감도 들었다. ‘그동안 청소를 제대로 안 한 건가?’

다음날도 또 청소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 물건은 어제만큼의 먼지를 또 어디에선가 가져왔다. 어딘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할 말이 없다. 청소는 진짜 기가 막혔으니까… 청소기를 돌려놓고 집에 들어와 발을 내딛었을 때마다 우리집 마루바닥이 아닌 느낌이다. 청소기는 자주 돌렸지만 늘 걸레질을 자주 안 해서 깨끗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먼지만 깨끗이 빨아냈을 뿐인데 바닥 느낌이 분명 다르다. 좋으면서도 좋지 않은 이 아이러니한 감정은 지금도 가끔씩 마음속을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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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청소기가 청소 잘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잘하는 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일단 청소를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한다. 내가 그동안 청소기를 어떻게 밀었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진공청소기는 공기 흐름으로 먼지를 빨아들이는데, 그 먼지의 양은 힘과 시간에 비례한다. 아무리 세게 빨아들이는 청소기라도 그냥 슥슥 민다고 먼지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오는 건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오래 밀어야 한다. 5분이면 슥슥 온 집안을 다 밀어버리는 내 청소와는 결이 다르다. 그냥 청소 방법과 시간이 문제였던 거고, 그건 여느 컴퓨터나 기계 작업처럼 사람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일이다.

받아들이니 마음은 편하다. 아니 몸도 편하다. 처음에는 좁은 집에 그게 무슨 필요하냐고 하던 가족들도 더 이상 이 아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사할 때는 우리 가족보다 더 빨리 새집에 입주(?)한 게 바로 이 청소기다. 이사하기 전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원격으로 계속 청소를 시켰다. 그리고 오늘도 외출할 때 청소를 하게 될 게다. 가끔 바닥에 떨어진 걸레나 옷자락을 물고 멈춰버리기도 하지만 그건 분명 신경 쓰지 못한 내 잘못일 뿐이다.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물걸레 청소기로 유명한 브라바도 들였다. 이 아이는 일단 조용하다. 그렇게 똑똑한 것 같진 않지만 한번 틀어놓으면 묵묵히 온 집안을 똑같은 힘으로 걸레질한다. 두 청소기를 돌리면 거의 한 시간이 걸리지만 내가 하는 건 아니니까 큰 불만은 없다. 아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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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손을 대신하는 게 가전
“기계를 믿으시라”

인공지능 기술을 비롯해 4차 산업 혁명 이야기에서 항상 나오는 논란 중 하나가 ‘인간의 역할이 줄어든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가전의 역할은 사람의 일을 덜어주는 데에 있다. 특히 반복되는 집안일이라면 가전에 덜어주는 게 낫다. 세탁기가 처음 나올 때는 빨래를 어떻게 기계에게 맡기냐고 했지만 지금 손빨래는 아기 빨래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선풍기 바람은 몸에 해롭고 부채 바람은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는 비단 할머니 할아버지만의 입버릇이 아니다.

물론 기계가 하는 일이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기계를 못 믿겠다는 인식도 쓸데없는 고집인 것 같았다. 조금은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하게 한 계기가 로봇청소기다. 청소기를 들고 끙끙대는 대신 그 시간을 다른 용도로 쓰라는 게 가전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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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 예찬은 가격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한다. 로봇청소기가 비싸다고? 비싼 건 사실이고, 또 비싼 걸 사야 제 값어치를 한다. 그리고 로봇청소기에 무선 제어는 필수다. 그러면 적어도 70만 원은 나가는 것 같다. 결코 싸지 않다. 그런데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가전이 바로 핸디형 무선 청소기다. 다이슨이나 LG전자의 코드제로 같은 청소기 가격도 못지않다. 물론 이 청소기가 더 필요한 환경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 집에서 쓸 청소기를 산다면 로봇청소기와 싼 유선청소기를 살 것 같다.

내가 산 건 청소기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가전을 사는 이유는 대체로 그렇다. 의심하지 마시라. 기계가 더 잘하는 일, 기계가 해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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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