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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역으로 가주세요

안녕 서울에서 먹고 사는 서울먹쟁이 에디터B다. 오늘은 솔직담백한 얘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내 지인 중엔 나이가 지긋한 분이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안녕 서울에서 먹고 사는 서울먹쟁이 에디터B다. 오늘은 솔직담백한 얘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내 지인 중엔…

2019. 08. 18

안녕 서울에서 먹고 사는 서울먹쟁이 에디터B다. 오늘은 솔직담백한 얘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내 지인 중엔 나이가 지긋한 분이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봤자 10 정도 차이가 날 뿐이다. 연락하는 교수님도 없고, 지나가다 마주치는 이웃집 어르신도 없으니 꾸준히 연락하는 어른은 고향 계시는 부모님뿐인 셈이다.

입으로 이런 말하면 부끄럽지만(사실 부끄럽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독차지했달까. 그중 우리 집과 스무 걸음 거리에 있는 집에 사는 할머니는 특히 나를 예뻐했다. 골목에서 놀 있으면 마당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과자나 용돈을 주셨다.

어느 날 하교를 하고 집을 지나갈 때였다. 대문 밖에서 보는 그 집 분위기는 조용하게 분주했다.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알았다. 그 집 아주머니가 할머니의 유품 돋보기를 내게 줬다. 아직도 왜 돋보기를 줬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서랍장 어딘가에 있다.

노포라는 말을 계속 곱씹고 있으니  할머니가 떠올랐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할머니.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는 어르신들은 그런 분들일 것 같았다. 그래서 노포 투어를 해보고 싶었다. 오늘은 충무로 노포 투어다.


LA갈비거리

서울 중구 을지로20길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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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갈비거리는 로스엔젤레스에 있지 않고 충무로에 있다. 충무로역에서 10 정도 걸어가면 공사 현장이 보이고, 바로 옆에 충무로 LA갈비거리가 있다.

충무로에는 유난히 노포가 많다. 이곳이 한때 잘나갔던 핫플레이스라는 증거다. 충무로는 한국영화계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나,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 ‘충무로의 샛별’이라는 말. 명보극장, 대한극장 등 큰 영화관들이 몰려있었던 이 거리에 사람이 많았던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극장은 지금 사라졌다. 여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포가 충무로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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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갈비거리의 갈빗집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성원식품 또는 용강식당이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허영만 화백이 성원식품을 들린 뒤 입소문 났기 때문이다. 역시 매스컴의 힘이란. 하지만  집의 갈비를 먹어야 하는 아니라면 시골집의 갈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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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거리의 집들은 상호만 다를 뿐 분위기는 비슷해 보였다. 밖에서는 갈비를 굽고, 종업원은 그 갈비를 계속 안으로 나른다. 시골집에서도 푸른 옷을 입은 아저씨가 숯불에 갈비를 계속 굽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였는데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내부 공간은 아담했다.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테이블도 네다섯 개뿐이라 손님들이 열심히 떠들어도 시끄럽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전체적인 데시벨이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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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치킨엔 맥주라는 말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치킨도 맛있고 맥주도 맛있으니 같이 먹으면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LA갈비와 맥주의 조합을 경험한 뒤 알게 되었다. 맥주엔 LA갈비라는 걸 말이다.

갈비가 지나간 기름진 자리를 맥주가 쓰윽 지나가면서 시너지를 일으킨다. “와, 이 조합 진짜 괜찮네” 함께 술을 마신 친구에게 몇 번이나 그 말을 한 것 같다. 라거나 카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있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시너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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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의 LA갈비가 특히 맛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갈비 맛이다. 하지만 젊은 우리가 굳이 을지로를 찾고, 노포를 찾는 이유는 맛보다는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햄스터가 두 손 가지런히 먹이를 욤뇸 먹듯, 친구와 나란히 앉아 갈비를 뜯는 맛, 만족스럽다. 보통은 야장을 깔기도 한다는데 이날은 너무 더워서일까 야외 테이블이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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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해물

서울 중구 필동로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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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이름난 노포 중에는 ‘필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평양냉면을 파는 필동면옥, 숯불닭꼬치를 파는 필동분식 그리고 필동해물. 두 번째 목적지는 필동해물이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계획은 영덕회식당에서 시원하게 물회를 먹는 것이었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10시에 닫는다는 가게가 9시도 되지 않아 재료가 소진되었다고 영업을 종료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플랜B, 필동해물로 간 것이다. 사는 건 역시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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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었을  내가 처음 마주한 광경은 주인 할아버지가 취객을 혼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어쩌려고 그렇게 술에 취했어, 으이그” <운수 좋은 날>에 나올 법한 대사 같지만 그렇게 문학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취객은 눈이 풀린 상태로 테이블에 엎드려 인사불성이었다. 그 손님과 어쩌다 눈이 마주쳤는데, 얼굴은 나를 보고 있는데, 눈은 허공을 보고 있더라. 그럼 눈이 마주친 건가 안 마주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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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 지나서야 취객은 일행의 부축을 받았다. 일행은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취한 친구의 입을 닦아준 뒤 밖으로 나갔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고 사방에 휴지가 날려있는 것이 뭔지 몰라도 큰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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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실내포차다. 모둠 해물 27,000원이라는 가격을 보면 알겠지만,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대접하는 횟집과는 다르다. 그러니 횟집의 퀄리티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하게 된다.

대여섯 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나를 제외한 다른 테이블에도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었다. 20 중반부터 30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눈에는 해산물의 신선도가 안 좋아 보여서 실망스러웠는데 다른 손님들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내가 너무 큰 걸 바랬던 걸까, 하긴 여긴 횟집이 아니라 포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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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식당에 들어왔을 때나 서빙을 해줄 때 사장님이 굉장히 무뚝뚝하다고 느꼈는데,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기를 찾아보니 ‘불친절한 매력이 있다’, ‘쿨한 사장님이다’ 같은 평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접객이 별로면 입맛까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불친절하다는 말과 매력이 함께 사용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았던 게 하나 있었다. 해산물과 미나리 그리고 초장의 궁합이다. 문어나 오징어를 미나리와 함께 초장에 찍어먹는 맛은 호불호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마돈나 가발 포차

서울 중구 충무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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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이번 투어에서 제일 궁금했던 곳이다. 이름도 없는 실내포차다. 이름이 없다는 건 간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가게에 이름 없다는 뜻이다. 마돈나 가발이라고 적힌 노란색 간판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포장마차라고 적힌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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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곳에 술집이 있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없을 같은 곳이다. 진정한 스피크이지바(speak easy bar)가 아닌가 싶었다. 식당 안에 기둥이 있어서 좁다는 느낌도 드는데, 파티션 같은 역할을 한다. 테이블은 소박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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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은 있지만 필요가 없다. 자리에 앉으면 아주머니가 안내를 시작하니까.

처음 왔지? 오늘은 뭐가 맛있는지 말해줄게. 오늘은 생선구이가 맛있는데, 특히 가자미 구이를 추천해요. 암놈인데 알도 있고 맛있어. 고등어구이도 괜찮고.”

처음 왔다고 나를 특별히 대접하는 아니라 모든 손님들에게 그렇게 안내해준다. 메뉴를 추천하는 태도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30 여자 손님 2명이 더 왔다. 이번에는 손님이 먼저 물었다. “이모, 오늘은 뭐가 맛있어요?”. 그렇게 묻는 손님은 단골인 같았고, 같이 온 일행은 처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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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게 이름이 없는지 몹시 궁금했는데, 처음에는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직접 지은 건 아니고 23년 전에 이사 왔을 때 대문에 개미라고 적혀있었다는 이유로. 문을 여러 차례 보수하면서 그 이름도 지워졌는데 굳이 이름이 필요 없어서 새로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게 이름을 몰라도 사람들은 단골이 되고  사람 친구들 데리고 오면서 23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대화가 끝난 아주머니는 다른 테이블을 순회하며 계속 얘기했다. 손님들이 먼저 부르기도 하고, 아주머니가 맛이 어떠냐고 묻기도 하면서.

우리 테이블 쪽에서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자신은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항상 좋은 재료를 쓴다고. 그래서 맛이 없다고 말하는 건 괜찮은데 재료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안 좋다고.

식당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다음에는 다른 메뉴를 먹어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도 그랬다. 다음에는 동그랑땡과 해물라면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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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군데를 돌아다니느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체력 배터리가 깜빡깜빡하고 있었다. 오늘 물회를 먹지 못해 아쉬웠지만 좋은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주는 이름 없는 노포를 발견해서 뿌듯했다. 참고로 이곳은 현금과 계좌이체만 가능하다. 다른 노포를 갈 때도 카드 결제가 가능한지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