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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취향] 안경을 닦았다

여러분 안녕! 여러분에게 지치지도 않고 조금 쓸모없지만 사치스러운 물건을 들이미는 에디터M이다. 고작 안경닦이라도 그 분야의 명품이 있다. 살짝 비싸지만 그만한...
여러분 안녕! 여러분에게 지치지도 않고 조금 쓸모없지만 사치스러운 물건을 들이미는 에디터M이다. 고작…

2019. 06. 20

여러분 안녕! 여러분에게 지치지도 않고 조금 쓸모없지만 사치스러운 물건을 들이미는 에디터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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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안경닦이라도 그 분야의 명품이 있다. 살짝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물건. 손에 닿고 자주 써서 쓸 때마다 ‘역시 명품이야’라고 중얼대며 내 소비를 합리화할 수 있게 만들어줄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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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이씨의 제품은 안경닦이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린다. 에르메스란 말을 너무 쉽게 붙이는 거 아니냐며 손사래를 칠 수도 있지만, 정말 좋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내 말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사용해본 바로는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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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이는 화학회사다. 1926년에 일본에서 시작해 각종 합성 섬유와 물건의 기본이 되는 재료를 만든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알 만한 것 중에 예를 들어 보자면 유니클로의 히트텍 소재를 도레이씨가 만들었다. 사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환갑이 넘은 일본 회사고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중견회사로 기업과 소비자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뭐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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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정식 수입되는 게 없어 직구를 했다. 패턴도 크기도 다양하지만 내가 고른 건 무지에 가로세로 19cm인 기본형 제품이다. 하지만 가격이 그리 만만치 않다. 한 장에 5천원 정도. 정확히 말하면 4,700원 정도다. 가장 기본 제품을 사서 이 정도지, 패턴이라도 들어가면 2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몸값에 놀라게 된다. 고작 안경닦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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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포장을 뜯어보고 솔직히 놀랐다. 안경점에서 안경 사면 공짜로 주는 걸 비싼 돈 주고 직구까지 했는데 나한테 이럴꺼야? 공짜보다 더 얄팍하고 딱히 만듦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폰 화면을 한 번 닦는 순간, 알게 됐다. 아 이래서 에르메스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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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닦이라는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안경도 닦아보기로 한다. 눈도 좋으면서 안경을 쓰는 에디터B의 것을 훔쳐 왔다. 눈이 좋은 데 왜 이런 걸 쓰냐고 물으니, 블루라이트 차단 때문이란다. 아무리 봐도 멋 부리려고 끼는 것 같은데. 이상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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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남의 안경을 빌려다가 지문을 잔뜩 묻혔다. 괜찮다. 이 명품 안경닦이로 깨끗하게 지워줄 예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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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닦는다. 종잇장처럼 얄팍한 천을 손에 쥐고 살살 안경을 닦는다. 안경 좀 써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이런 지문이나 기름때는 안경닦이로 완전히 깨끗하게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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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깨끗하게 닦인다. 전후를 비교하니 세상이 한 톤 밝고 선명해진 느낌. 이건 그냥 천으로 닦은 수준이 아니다. 안경점의 초음파 세척기를 사용한 것처럼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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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사무실에 있는 이런저런 물건을 닦아보기로 한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아이폰 화면을 딱 반만 닦아봤다. 정말 잘 닦인다. 어설픈 것으로 닦으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오히려 기름이 밀린 자국이 생기기 마련인데 도레이씨 안경닦이는 그런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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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렌즈도 닦아본다. 우리 사무실에서 촬영 장비 관리를 도맡고 있는 권PD는 결벽증이 있어 모든 물건을 깨끗하게 관리한다. 권피디가 예비군을 간 틈을 타서 300만 원짜리 렌즈 표면에 검지로 도장을 꾸욱 찍는다. 지문을 떠도 될 만큼 선며엉하게 찍혔다. 아마 이 기사를 권PD가 본다면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어댈 게 분명하다.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천이 왜 이렇게 잘 닦이는 걸까? 자세히 보면 빗살무늬의 결이 보인다. 얄팍하긴 해도 뭐랄까 손에 닿는 느낌이 쫀쫀하다. 하지만 정말 얇다. 손으로 꽉 쥐면 바로 주름이 지는 그런 소재다. 잘 접으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줄어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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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지문의 끝판왕 맥북 화면이다. 물티슈부터 안경닦이까지 어떤 걸로 닦아도 제대로 닦이지 않던 지독한 녀석이다. 이상하게도 내 맥북은 언제나 만신창이다. 키보드부터 시작해 핸드페인팅이라도 한 것처럼 손자국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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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맥북화면을 닦아본다. 역시 난이도 끝판왕답게 쉽지 않다. 안경이나 스마트폰처럼 가볍게 천을 몇 번 왔다 갔다 한다고 닦이지 않는다.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을 주고 닦아본다. 조금 더 여러 번 움직이니 기적처럼 닦인다. 무엇으로도 깨끗해지지 않아서 비눗물로 빨아버리고 싶었던 내 맥북 화면이! 방금 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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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경을 쓰지 않지만 아이폰, 렌즈, 맥북까지 세상에 닦아주어야 할 물건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도레이씨의 안경닦이는 꼭 사세요!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