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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후지필름 GFX 100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지난 5월에는 후지필름의 새로운 카메라를 만나러 도쿄 후지키나 2019에 다녀왔다. 무려 1억 200만 화소의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지난 5월에는 후지필름의 새로운 카메라를 만나러 도쿄 후지키나 2019에…

2019. 06. 09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지난 5월에는 후지필름의 새로운 카메라를 만나러 도쿄 후지키나 2019에 다녀왔다. 무려 1억 200만 화소의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 후지필름 GFX 100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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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 중형 카메라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영어로Medium format’이라길래 이름 그대로 중간쯤 되는 규격이려니 생각했다. 이 미디엄이 풀프레임보다 훨씬 큰 센서를 의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불어 풀프레임이 소형 포맷에 속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세상에, 맙소사. 처음 풀프레임 카메라를 구입하며 얼마나 의기양양했던가. 35mm 이미지 센서가 세상의 끝, 카메라의 끝판왕인줄만 알고 살아왔건만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풀프레임 포맷은 필름 카메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35mm 규격을 의미한다. 필름의 한 프레임 규격과 같은 크기의 이미지 센서를 갖추고 있을 때 풀프레임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기준점이다. 반대로 35mm 규격에 못 미치는 작은 센서의 경우에는, 크롭이라고 통칭한다. 그리고 풀프레임 포맷을 기준으로 더 큰 판형을 중형 포맷이라고 부른다. 중형이 있으면 대형 포맷도 있냐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중형까지만 바라보기로 한다. 풀프레임이 세상에서 제일 큰 판형인 줄 알았던 게 엊그제의 일인데, 벌써 대형 포맷까지 운운하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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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는 태세전환이 빠른 편이다. 좋은 것, 비싼 것, 화소가 많은 것, 스펙이 좋은 것에 밝은 성격이기도 하다. 중형 카메라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던 과거 따위 잽싸게 잊고, 억소리 나는 카메라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핫셀블라드! 페이즈원! 라이카!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할 후지필름.

사실 최근에 후지필름 카메라를 살까 싶어서 좀 깔짝거렸던 전적이 있다. 디에디트를 오랫동안 봤던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소니 카메라를 좋아한다. 하지만 3년 동안 소니만 썼더니 약간 질려버린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은 죄다 후지필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뭔가 압박감 마저 들었다. 그래! 나도 후지필름을 세컨 바디로 들여야겠다! 야심차게 마음 먹었건만 문제가 있었다. 후지필름의 카메라 라인업엔 풀프레임 모델이 없었다. 크롭 바디 아니면 중형 바디다. 피 튀기는 풀프레임 시장을 피한 투트랙 전략인 셈이다. 풀프레임충인 에디터H의 마음이 갈 곳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신제품 발표회에 초대받았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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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GFX 100은 여러모로 놀라운 제품이었다. 중형 카메라 답게 풀프레임보다 1.7배 정도 큰 센서가 들어갔다. 대각선 길이가 무려 55mm다. 후지필름은 이걸 ‘대형 포맷 센서’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우리가 소형, 중형, 대형 카메라를 나누는 센서 크기의 기준과는 별개의 네이밍이다. 중형 포맷이지만 대형 포맷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이미지 퀄리티라는 얘기일까? 약간은 혼란이 생긴다. 게다가 이것보다 센서가 큰 카메라도 얼마든지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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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이니 대형이니를 따지는 것보다는 1억 200만 화소라는 타이틀이 좀 더 자극적이다. 가늠도 되지 않는 화질이다. 내가 사진용 바디로 쓰고 있는 소니 A7R3는 A7시리즈 중에서도 고화소 모델이라 4,240만 화소다. 이걸 쓰면서도 오버 스펙이라는 주변의 참견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1억 화소가 넘는 카메라라니.

여기서 질문. 중형 카메라는 뭐가 그렇게 더 좋을까? “판형이 깡패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겠지. 말 그대로다. 센서는 크면 클수록 와따다. 큰 게 최고다. 사진의 결과물에서 나타나는 모든 표현에 더 유리하다. 크롭을 쓰다 풀프레임을 썼을 때 사진에서 보이는 느낌적인 느낌이 다르듯이 말이다. 중형 카메라는 이미지 센서 크기가 큰 만큼 계조나 해상력, 보케 표현력 등이 유리하다. 1.7배 큰 센서 덕분에 묘사력 자체가 다르다. 사진을 확대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1억 화소 이상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판형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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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큰 센서와 무지막지한 화소수는 부작용도 낳는다. 그만큼 바디의 크기와 무게가 불어날 수밖에 없고, 모든 작업이 무거워진다. UHS-II 이상의 SD 카드를 써야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용량 관리도 일이다. 게다가 이미지 센서는 고화소일수록 손떨림에 의한 화질 저하에 취약하다. 그래서 온실 속의 화초인 경우가 많다. 아늑한 스튜디오 안, 삼각대 위에서 군림하는 게 중형 카메라의 이미지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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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후지필름은 무거운 중형 카메라가 빠르고 정확하게 구동할 수 있게끔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가장 파격적인건 바디 내장형 손떨림 보정 기능이 들어갔다는 사실. 중형 카메라 중에서는 세계 최초다. 5축 손떨림 보정으로 삼각대를 떠나 핸드헬드 촬영이 가능할 정도의 기동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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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 속도에서도 눈에 띄는 개선이 있었다. 전체 센서를 커버하는 376만 위상차 검출 픽셀을 사용해 이전 GFX 모델의 컨트라스트 AF 대비 속도가 두 배 이상 향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더 정확하고 끈질긴 연속 AF와 추적 AF를 제공한다. 얼굴인식과 눈 인식을 원거리에서 테스트한 영상을 보았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고화소 중형 카메라들은 이런 민첩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 범위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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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건 4K 동영상을 지원한다는 사실. 요즘 세상에 4K가 뭐 그렇게 놀랍냐고? 중형 카메라들은 철저히 사진용 바디로 출시된다. 동영상 기능은 그냥 예의상 달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데 후지필름이 중형 카메라 최초로 4K 촬영에 대응하는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4K 30p까지 지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후지필름 미러리스들이 보여준 동영상 성능이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에 제법 의미 있는 스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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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부를 보자. 여기서도 동영상 촬영에 유리한 변화가 엿보인다. 카메라 바디 왼쪽 상단에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이라는 게 생겼는데 스틸 이미지 촬영과 비디오 촬영의 즉각적인 전환이 가능한 버튼이다. 동영상과 사진을 동시에 촬영해야 할 때 매번 설정을 변결할 필요 없이, 각각의 모드에 대한 카메라 설정을 저장해둘 수 있는 것이다. 다이얼 한 번 움직이는 걸로 필요한 설정을 불러낼 수 있기 때문에 개꿀이다. 이건 정말 바디 한 대로 동시에 영상과 사진을 찍어본 사람만이 안다. 나중엔 내가 뭘 찍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은 변화하는 촬영 환경에 발맞춘 기능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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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피드 다이얼이 사라지고 상단에 1.8인치 LCD 모니터가 생겼다. 히스토그램이나 카메라 설정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뷰파인더에 표시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깔끔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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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따라 다이얼을 조작하는 느낌을 원한다면, 가상 다이얼 모드를 통해 ISO와 셔터 스피드를 조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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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의 서브 모니터에는 노출 설정이나 화질, 노출 보정의 게이지, 히스토그램 등을 표시할 수 있다. 뷰파인더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더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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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NP-T125 배터리를 넣을 수 있는 구조이며, 완충 시 최대 800장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이제 가장 중요한 가격 얘기를 해보자. 9,999달러. 1만 달러에서 1달러가 빠지는 금액이다. 오늘 환율로 계산해보면 1,187만 3,812원. 큰돈이지만 비싼 건 아니다. 실제로 GFX 100 발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놀라운 가격이라고 경탄하는 모습이다. 일반 풀프레임 카메라에서야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지만, 1억 화소급 중형 카메라 중에서는 가성비를 논할 수 있을 만큼 산뜻한 가격이다. 핫셀블라드의 1억 화소 중형 카메라는 저렴한 모델도 3천만 원이 넘어간다. 작년에 출시된 페이즈원의 1억 5천만화소 카메라는 6천만 원을 훌쩍 넘긴다. 기본 단위가 다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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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은 GFX 시리즈를 통해 비싸지만 구매 가능한 가격대의 중형 카메라를 선보이고 있다. 어쩌면 아예 타겟이 다를지도 모른다. 기존에 중형 카메라를 쓰던 사람보다는 중형을 꿈꾸던 사람들을 바라보는 포지셔닝이다. 비싸고, 무겁고, 느리며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카메라가 (조금 노력하면) 살 수 있을 법한 가격에 출시됐다. 게다가 기존 제품보다 빠르고, 흔들림에 강하며, 동영상 성능도 괜찮다. 넘보지 못할 상대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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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GFX 시리즈 사용자의 70%가 풀프레임을 쓰다 넘어온 고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풀프레임을 포기한 이 고집스러운 라인업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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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1억 화소 카메라가 정말 필요하긴 하느냐에 질문이 남았다. 후지필름 측은 GFX 100으로 촬영한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최고의 순간을 최고의 이미지 퀄리티로, 미래를 위해 소중한 순간을 보존하기 위한 카메라”라고 밝혔다. 모녀가 사이좋게 찍은 사진에서 쇄골에 걸린 이니셜 목걸이 디테일까지 확대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오바라고 생각했다. 누가 가족사진을 1억 200만 화소로 찍는단 말인가?

하지만 역시 카메라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대답은 사진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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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발표회 뒤에 GFX 100으로 촬영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고화소 사진이 주는 그 예리하고 현실적인 디테일. 피사체가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그 입체감에서는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사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또렷함. 크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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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를 둘러보는 사람들 모두, 점점 더 사진을 향해 가까이 가까이 다가갔다. 현미경이라도 들여다보듯 사진 속 디테일을 확인하다가 “와우…”를 연발하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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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진이 참 좋았다. 전시된 사진을 어두운 곳에서 다시 촬영한 것이라 해상력이 떨어지지만, 클로즈업 사진을 하나 더 보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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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나무 뿌리가 사진 바깥으로 튀어나올 듯 선명하고 입체적이다. 실제로 본다면 압도적인 디테일에 놀라셨을텐데 지금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다 표현되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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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는 것보다 직접 사진을 둘러보는 게 훨씬 즐거웠다. 이제 모두가 사진을 디지털 파일로 생산한다고 해도 확실히 인화된 사진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다. 사진 속 모델들의 시선이 사진 바깥으로 머물 것 같은 무게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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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후지필름 측에서 제공한 GFX100으로 촬영한 원본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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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를 확대해서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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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디테일이다. 하나 더 보자. 이번엔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인물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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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봐도 사진의 쨍한 화질이 느껴진다. 모든 질감과 입자가 예리하고 날카롭게 살아있다. 자, 모델의 한 쪽 눈을 확대해서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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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얼굴을 직접 눈 앞에서 들여다봐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긴 힘들 것이다. 손을 대면 눈동자 밑에 붙은 스팽글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단순히 선예도만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눈종자 위 아래로 그늘진 곳까지 엄청난 레벨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보다 더 확대해도 선명하지만 그러면 너무 무섭기 때문에 이 만큼만 크롭했다. 이 카메라가 가진 저력을 잘 보여주는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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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도 있었는데, jpg 파일이지만 보정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샘솟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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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부를 밝히면 이 정도 디테일이 살아난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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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제품을 만져볼 기회도 있었는데 1.4kg의 바디는 생각만큼 무겁진 않았다. 물론 하루종일 들고 다니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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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나 컬러가 주는 느낌이 유니크하다. 사실 후지필름의 큰 매력중의 하나가 클래식한 디자인인데, GFX 100은 바디 자체가 크다보니 투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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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하게 쏟아지는 창가에서 샘플샷 몇 장 찍어봤다. 문양이 독특한 화병을 찍었는데, 노출차가 심한 역광 상황에서 대충 셔터를 눌렀는데 잘 나온다. 이 당시에 정말 구형 SD 메모리를 카메라에 넣어둔 상태라 촬영 후 처리 속도가 슬플 만큼 더뎠다. 그만큼 엄청난 이미지 정보가 처리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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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해보니 신세계다. 만화경 처럼 반짝거리는 화병의 문양이 또 다른 작품 같다. 고화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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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보존하는 카메라라는 말은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카메라로 촬영해둔 순간은 20년 뒤에 봐도 그 순간 그대로 선명할 것이다.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그때는 1억 화소 정도야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나한테 혹시 필요한 건 아닐까. 이 땅의 얼리어답터로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압박이 느껴진다. 그 비용이 9,999달러라면 합리적인 것 같은데, 대표님이 거품을 물겠지.

카메라도 흥미롭지만, 이상할 만큼 마이웨이를 걷는 후지필름의 행보도 흥미로웠다. 모험가랄지, 아웃사이더 기질이랄지. 타이틀이야 이름 붙이기 나름이겠다. 남들 하는 건 안 하는 이 재밌는 회사의 앞날에 또 무슨 일이 생길까.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