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애플, 너만 가는 그 길

안녕, 여러분. 디 에디트 에디터H다. 샌프란시스코의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애플의 이벤트에 참가하고 왔다. 오랜 팬이자 소비자의 입장에서 현장을...
안녕, 여러분. 디 에디트 에디터H다. 샌프란시스코의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애플의…

2016. 09. 09

안녕, 여러분. 디 에디트 에디터H다. 샌프란시스코의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애플의 이벤트에 참가하고 왔다. 오랜 팬이자 소비자의 입장에서 현장을 다녀온 소감을 전할까 한다. 즐겁게 읽어주신 후엔 열광해도 좋고, 실망해도 좋다. 애플의 신제품이라는 즐거운 안줏거리를 씹으며 맥주 한 캔 곁들여 읽으시면 더 좋겠다.

현장 사진의 대부분은 메이즈(meiz.me)의 lemy님이 촬영했다. 뭔가 사진이 이상하다 싶으면 그건 내가 촬영한 것…

12

전날까진 한산하던 행사장 앞이 온갖 방송국 차량과 전세계 취재진으로 붐빈다. 시차 적응에 실패해 잠을 설쳤다. 새벽부터 커피를 연거푸 마셨더니, 설렘 때문인지 카페인 때문인지 심장이 요동친다.

3

올해의 미디어 카드는 옐로우 리본에 블랙. 바쁜 벌꿀을 연상케 하는 귀여운 컬러다. 이걸 잃어버리면 행사장에 절대 다시 들어갈 수 없다.

5

아침부터 전세계 기자들이 분주한 걸음을 했다. 행사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르는데, 잽싸고 우아하게 걸어가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1초만 정신을 놓았다간 팀 쿡을 새끼 손가락 보다 작은 크기로 봐야 한다.

15

다행히 좋은 자리를 잡았다. 내 옆으로 앉은 중국 기자는 스마트폰을 세 개나 들고 라이브 방송을 하더라.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승낙하며 카메라를 전환해 날 출연시켜주는 호탕함까지!

10 11

행사장 곳곳에서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을 이용한 스마트폰 라이브 방송이 눈에 띄더라. 그야말로 모바일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가장 빠르고, 가까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숙소로 돌아가 무게 잡고 글 쓸 생각만 하는 내가 트렌드에 심히 뒤처진 게 아닌가 싶었다. 다음엔 나도, 하는 마음에 눈동냥만 실컷 하고 왔다.

tim

이벤트 오프닝 영상이 아주 재밌었다. 팀 쿡의 발랄한 출근길엔 퍼렐까지 깜짝 등장했다. 순식간에 행사장이 박수소리와 웃음소리로 뒤덮였다. 이 자리를 축제로 만드는 즐거운 장치였다.

9

약간의 애플 자랑과 함께 행사 초반에 전해진 소식 역시 즐거웠다. 새로운 앱 개발사를 소개한다는데 화면에 낯익은 실루엣이 떠오른다. 빨간 모자에 멜빵 바지. 내 나이가 한 자리이던 시절에, 일상을 지배하던 그 남자가 아닌가. 슈퍼 마리오! 나를 포함해 이 뉴스를 가장 반긴 사람이 많다는 거 알고 있다. 고집 센 닌텐도가 드디어 모바일 시장에 발을 담그며, 화끈한 데뷔 무대를 마련했다. iOS 환경에서 한 손으로 마리오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추가적인 인앱 결제 없이, 한번 앱을 구매하면 얼마든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한다. 무조건 사야지. 따다따따다~딴!딴!

14

18개월 전에 처음 등장한 애플워치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새삼스럽지만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 시장 1위다. 이건 애플워치가 잘해서라기보다는 경쟁사가 워낙 치고 올라오지 못한 까닭이라고 생각하지만, 팀 쿡이 공개한 성적표를 보니 그들의 경쟁사는 삼성이나 핏비트가 아니었다. 지난해 전세계 시계 시장에서 롤렉스의 옆자리를 차지한 2위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이럴 수가. 역사와 전통의 브랜드들을 이리 쉽게 제쳤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씁쓸하기도 하다.

8

새로운 애플워치는 애플워치2가 아니라 시리즈2다. 완전히 다른 모델로 교체하지 않았다는 뜻일게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제품군과는 다르게 접근하겠다는 의도가 묻어난다. 사실 시계라는 카테고리가 1~2년 마다 기존 모델을 교체해 버리는 시장이 아니다. 애플워치 시리즈2의 가장 큰 특징은 수심 50m에서도 견딘다는 방수 성능이다. 나는 수영을 못하는데, 자꾸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7

내가 애플의 앓는 소리 중 좋아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 때 “이걸 구현할 때 뭐가 제일 힘들었냐면”하고 말해주는 게 재밌고 귀엽다. 마치 “이게 내가 해서 쉬워 보이는데, 안 그래!”라고 어필하는 것처럼. 애플워치의 방수 설계를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스피커였다고 한다. 스피커는 공기가 통해야 소리를 낼 수 있는데, 공기가 들어온다는 건 물도 같이 유입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내부 스피커를 완전히 재설계해서 운동(수영)이 끝난 후에는 스피커에 찬 물을 자체적으로 빼내는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한다. 정확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신기하고 재밌다. 물을 퍼내는 애플워치라니.

참고로 애플워치의 운동 앱에서 수영을 선택하면, 워치 화면이 잠기게 된다. 물속에서 오작동을 막기 위해서다. 필요할 땐 오른쪽 크라운을 도르르 돌려주면 잠금이 풀린다.

6

애플워치의 자체 통신 기능을 기대한 분도 있겠지만, 대신 GPS를 탑재했다. 이제 아이폰이 없이 애플워치만 차고 달리더라도 내 위치를 정확히 기록할 수 있다. 사실 피트니스 워치로선 필수 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폰 의존도가 낮아진 건 반가운 소식이다. 운동 완료 후에는 GPS 이동 경로가 칼로리 소모량 등 상세 정보와 함께 아이폰에 기록된다. 덧붙이자면 성능도 빨라지고 디스플레이의 야외 시인성도 더 훌륭해졌다고 한다.

2

새로운 에르메스 밴드의 소식에 넋을 놓고 있는데, 약간 무섭게 생긴 신제품이 등장했다. 나이키와 함께 만든 나이키 플러스 에디션. 러너들을 위한 맞춤형 워치로 언제 어디서든 러닝 기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갖췄다. 땀이 잘 빠지라는 의도인지 실리콘 밴드에 구멍이 뽕뽕 뚫려있다. 환공포증이 올 것 같은 생김새다.

13

다행히 실물로 보니 그렇게 극악스럽진 않더라. 생각보다 귀엽다. 사용자가 운동을 위한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에 많은 공을 들였다. 뛴 지 오래됐다고 갈군다든지, 날씨가 좋다고 갈군다든지, 친구가 너보다 더 자주 뛴다고 갈군다든지… 이런 식으로.

애플워치 시리즈2의 가격은 45만 9,000원부터(나이키 플러스 모델 포함). 세라믹 애플워치 에디션은 153만 9,000원부터다.

아이폰도 당연 중요하다. 블랙과 제트 블랙이라는 새로운 컬러가 추가됐고, 둘 다 무지하게 예쁘다. 안테나 절연선은 좀 더 모서리로 귀양가고, 아이폰에도 생활 방수 기능이 적용됐다. 전면 카메라가 700만 화소로 업그레이드됐고, 아이폰7도 플러스 모델과 동일하게 광학식 흔들림 보정을 지원한다. 다만, 와이드 앵글과 망원이 함께 들어간 듀얼 카메라는 아이폰7 플러스만 누릴 수 있는 특혜다.

19

배터리 사용시간은 아이폰7 기준 아이폰6s보다 두 시간 늘어났다. 물리적 홈버튼의 시대도 끝났다. 실제론 눌리지 않지만, 탭틱 엔진의 진동 반응 때문에 어쩐지 눌리는 것 같은 홈버튼을 적용했다. 지구 멸망의 날까지 듀얼코어를 고수할 것 같더니 드디어 쿼드코어로 진입했다. 고성능 듀얼코어와 고효율 듀얼코어를 조합한 빅리틀 구조다. 대략적인 설명은 이 정도다. 아이폰7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기사’에 정리해두었으니 참고해주시길.

18

아이폰 자체보다 얘기하고 싶은건 3.5mm 헤드폰 단자가 사라지며 함께 일어난 일에 대해서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 원성 속에 애플은 기어코 모두에게 익숙한 3.5mm 단자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멘붕에 빠졌다. 아마 스마트폰에 고급 유선 이어폰을 물려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은 더더욱 멘붕이겠지. 물론 이 과정에서 애플은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째로는 아이폰7과 함께 제공하는 번들 이어팟에 라이트닝 단자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라이트닝 이어폰이 주는 생소함은 그렇다치고,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충전할 수 없는 불편함 때문이다.

17

두번째 해결책은 라이트닝 단자를 3.5mm로 변화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헤드폰 잭 어댑터다. 어댑터를 공짜로 준 것까진 고맙지만, 이 역시 같은 불편함을 초래한다. 매번 어댑터를 챙겨야 한다는 것 자체가 편리함에 역행하는 일이고 임시방편에 불과하니까.

20

이 극단적인 결정은 애플의 다음 스텝인 ‘무선 경험의 재창조’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에어팟이라는 물건이 함께 나왔다. 소리도 좋고, 가벼우며, 작지만 실용적인 배터리 성능과,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하는 무선 이어폰이다. 사용자가 에어팟을 귀에서 꺼내자마자 음악 재생이 멈추는 신박한 기능도 갖췄다. 골프채를 축소해놓은 것 같은 괴이한 모양과 21만 9,000원의 가격이 발목을 잡지만 엄청난 고민과 개발 인력이 투자된 물건인 건 확실해 보인다.

너무나 낯설어서 모든 것이 당황스럽다. 한동안 논란이 될 것도 확실하다. 애플은 무슨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고 이렇게 총대를 메는가. 대체 원하는 게 뭘까. 필 쉴러 애플 부사장은 우리가 3.5mm 헤드폰 단자를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왔다고 말했다. 애플 측은 아이폰7에 공간을 마련해 탭틱 엔진이나 추가 배터리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고 싶은데, 오디오 연결 기능만 제공하는 아날로그 3.5mm 단자가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또, 애플은 이번 결정이 사용자들의 오디오 경험을 바꿀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에어팟은 그 자신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번 행사에서 필 쉴러의 발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왜 아날로그 헤드폰 단자를 없애려 하는 것인지 질문했다. 그는 이렇게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용기’라고 설명했다. 멋진 답변이었다. 사실 현장에서는 꽤 감동받기까지 했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니 애플의 오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

지금도 3.5mm 단자를 없앤 것에 대해 내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라면 아직 “판단불가”라고 밖엔 말할 수 없다. 애플이 라이트닝 단자로 규격을 바꿨을 때도 나는 미치도록 투덜댔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한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3.5mm 헤드폰 단자가 사라진 건 라이트닝보다 더 크리티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결정의 가치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다고 여겨진다. 이 같은 강행군은 애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마이웨이다. 그들의 의도가 값비싼 에어팟을 팔아먹기 위함인지, 사용자들을 아름다운 무선 세계로 이끌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제조사가 더 많은 사용자를 포용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애플은 자꾸만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규격을 재정의하기 위해 바쁘다. 소비자의 편리를 위해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용기도 맞고, 오만도 맞다. 애플이라서 할 수 있고, 애플이라 한다. 결과는 모른다. 애플이 앞서 경험한 신대륙 발견의 신화가 다시 이루어질 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겁 없이 돌진하는 건 이 오만한 회사만의 몫인가 싶어 괜히 훗날을 기대해보게 된다. 주변에서도 우스갯소리처럼 말하지 않는가. 지금은 에어팟을 욕하다가도 다음 달쯤엔 홀린 듯 결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다가 한쪽을 잃어버리고 울게 될지 모르지만.

16

재밌는 행사였다.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서비스, 교육에 대한 화두와 아티스트와의 교감 등 수많은 화제가 흩뿌려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이벤트는 미리 알려진 바가 너무 많아 시시한 놀음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2시간의 이벤트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흥미로웠다. 어쩐지 기진맥진한 상태로 행사장을 나오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모두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모두가 변화를 원하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나는 여전히 이 기업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보고 있다. 여러분은 애플이 벌려놓은 이야깃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