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조금 알아요

안녕, 최고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 에디터 B다. 내가 디에디트에 입사하기 전 직장은 익선동에 있었다. 서류상의 주소지는 낙원동이었지만, 익선동 바로 옆에 있었으니 그냥 익선동이라 하겠다. 직장이 익선동에 있다고 말하면 보통은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핫플레이스에서 일하시네요?” “맛있는 거 많이 먹겠어요!” 나도 처음엔 그럴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기대는 일주일만에 무너졌다. 생각보다 익선동에는 맛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직장 동료들은 점심 메뉴를 고르느라 매일 힘들어했고,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나의 결론은 익선동에도 맛집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추천할 만한 곳이 있긴 하다. 익선동에 있는 모든 가게를 가 본 것은 아니지만, 70% 이상의 가게에 한 번씩은 간 사람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말하는 바다.

그나저나 매일 출근하던 동네를 이렇게 다시 취재를 하고 소개를 하려니 기분이 묘하다. 다신 만나지 말자고 헤어진 사람을 일주일 만에 비즈니스 미팅에서 만난 느낌이랄까. 하긴, 회사 다니는 게 연애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 있긴 하지.

빠리가옥

질문 하나 해볼까. 익선동에서 가장 흔한 메뉴는 무엇일까? 정답은…두구두구두구. 바로 파스타와 피자! 고즈넉한 한옥 인테리어에 피자,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은 익선동에 정말 많다. 양식과 한옥의 이질적인 만남이 익선동 비기너들에게는 꽤 신선하겠지만, 맛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괜찮은 레스토랑을 몇 군데 찾아냈지.

빠리가옥은 정통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프렌치 비스트로다.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한국인가 외국인가 싶다. 한국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으니까. 주방과 홀에 있는 다섯 명의 직원들은 모두 외국인. 불어나 영어만 들렸다. 빠리가옥의 오너 셰프는 파리 출신의 미카와 남부 아비뇽 출신의 펠리시안이라는 두 프랑스인이다. 10년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프랑스에서 셰프로 일하던 두 사람이 한국에 반해 레스토랑을 열고 익선동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런치 메뉴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프랑스식 삼계탕인 뿔로뽀, 연어 스테이크, 봉골레 링귀니 오일파스타 이상 3종은 9,500원으로 익선동에서는 드물게 착한 가격이다. 저녁에는 메뉴가 바뀌며 프랑스식 소고기 스튜인 비프 브루기뇽, 살치살 스테이크 등을 선보인다.

[갈릭버터 소스로 맛을 낸 에스카르고. 1만원]

[프랑스식 양파수프. 7,000원]

나는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와 양파수프를 주문했다. 처음 먹어보는 달팽이 요리였다. 어른이 되어도 처음 느끼는 맛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처음은 늘 설렌다.

메뉴판에도 적혀있지만 빠리가옥은 현지화하지 않고 프랑스 현지의 맛을 구현한다. 입맛에 맞지 않다면 스태프에서 요청하면 추가 양념이 제공되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  나는 혼자 방문했지만 25종의 와인리스트와 빠리가옥IPA를 보니 여럿이 왔어도 참 좋았겠다 싶더라.

• 서울 종로구 수표로28길 33-4
• 평일/주말 11:30 – 22:00 브레이크타임 15:00 – 17:00

행복한 집 전과 막걸리

회사를 그만둘 때 직장 동료들이 내게 물었다. “퇴사하면 이제 익선동 안 올 거죠?” 나는 전집 때문에라도 올 거라고 답했다. 익선동의 맛집은 대체할 수 있지만 종로3가역 3번 출구부터 이어지는 긴 포장마차촌은 대체가 되지 않으니까. 지금 소개하는 전집은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마감에 지친 상태에서 처음 간 곳이다. 굉장히 시크한 아주머니가 있는 30년 가까이 된 전집.

일대에 전집이 많다 보니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금 소개하는 행복한 집은 몇 번의 모험 끝에 발견한 괜찮은 가게다. 주문이 들어가면 셰프가 바로 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갓 부친 전은 항상 옳다.

나는 모둠전을 시켰다. 두부전, 햄전, 호박전, 부침개, 동그랑땡 그리고 굴전까지. 굴전을 좋아해서 가끔 먹는데 강한 굴향 때문에 많이 먹기는 힘들다. 모둠전에 들어가는 이 정도의 양이 1인에게는 적절하다. 모둠전 말고 하나 더 주문한다면 육전을 추천한다.

베이커리가 빵 굽는 향기로 사람들을 유혹하듯 전집에서는 전 부치는 소리, 기름 냄새, 셰프의 퍼포먼스로 행인을 붙잡는다. 가게 정문 옆에 있는 개방형 조리대에서 전이 부쳐지는 동안 노포 앞에는 촌스러운 플라스틱 테이블이 하나둘씩 놓인다. 저녁 7시가 넘을 무렵, 그 시간이 종로3가의 골든타임이다. 이제 날씨도 슬슬 더워질 테니 미세먼지가 없는 날, 늦기 전에 방문하자.

•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돈화문로11길 20
• 평일 14:00 – 00:30
• 금/토 14:00 – 03:30(일요일 휴무)

강북빵상회

익선동에서 의외로 드문 가게는 빵집이다. 디저트를 파는 카페는 차고 넘치는 데 반해, 빵집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강북빵상회는 작년에 오픈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베이커리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이곳이 주변 직장인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빵 굽는 냄새 때문.

그야말로 마성의 향기. 이미지에 향을 첨부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익선동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 이곳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빵냄새에 이끌려 꼭 돌아보게 된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매장의 크기는 작은 편이고, 빵 종류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 영향인지 적은 메뉴 때문에 더 신뢰가 간다. 가장 잘 나가는 빵은 우유식빵과 스콘.

[오후 세 시, 스콘은 이미 다 팔려서 촬영할 수 없었다]

살면서 여러 스콘을 먹어봤다. 스콘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한 조각 건네곤 했는데, 대체로 퍽퍽했다. 식을 대로 식은 닭가슴살처럼. 그렇게 스콘에 대한 편견이 생겼고, 강북빵상회의 스콘을 알기 전까지는 자비로 스콘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몽블랑. 4,800원]

강북빵상회의 스콘은 상당히 부드럽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입속에서는 사르르 녹아내리고, 속은 부드러운 듯하면서 쫄깃쫄깃하다. 익선동에 들릴 일이 있다면 스콘과 우유식빵은 꼭 사 먹어보자. 그리고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당연히 스콘이다.

•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수표로28길 15
• 평일/주말 09:00 – 20:00

반기다

연남동이나 경리단길 같은 핫플레이스와는 달리 익선동만의 특징은 폭넓은 연령대의 손님이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만 보이는 다른 곳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가족 단위의 손님, 40대 이상의 중장년층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이대가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비율도 꽤 있다. 지금 소개하는 레스토랑은 젊은 세대, 중장년층, 외국인이 다양하게 방문하는 식당이다. 바로 한식 전문점 ‘반기다’.

반기다는 바둑판처럼 생긴 익선동 골목의 끝자락에 위치한 식당이다. 작년 5월 29일에 오픈했으니 이제 막 1주년이 되어가는 새내기 식당. 익선동의 많은 레스토랑이 예쁜 인테리어로 손님을 끌어모을 때, 반기다는 오직 맛으로만 승부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한식으로.

시그니처 메뉴는 육회비빔밥인데, 가격은 1만 5,000원. 소에서 약 3kg만 얻을 수 있는 꾸리살만 이용하는데, 일반 음식점에서는 꾸리살만 사용하는 육회비빔밥은 많이 없다고 한다. 반기다에서는 단일 메뉴를 주문해도 식전주가 나오는데 작년 여름에는 청포도 막걸리를 줬고, 이번에는 사과주를 제공하더라.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더라.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3스타를 받은 신라호텔 라연 출신의 박성윤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라연 외에도 싱가포르 한식당 창, 남극 세종과학기지 셰프를 지낸 셰프라고. 첫 방문이라면 단연 육회비빔밥을 권하지만 다른 메뉴도 솔찬히 괜찮다. 한식만 있는 건 아니고 차돌박이 파스타처럼 퓨전 메뉴도 있으니 다양하게 먹어보는 것도 좋겠고. 메인 메뉴와 함께 나오는 미역국, 비빔장, 밑반찬도 마음에 쏙 들었다.

•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돈화문로11다길 51
• 평일/주말 11:30 –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