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마음이 울적하면 산복도로를 탔다

부산의 구시가지는 기묘한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좁은 지역에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차 있다. 중앙동을 통과하는 대로에서 산 위의 집들을...
부산의 구시가지는 기묘한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좁은 지역에 빼곡하게 집들이…

2019. 02. 26

부산의 구시가지는 기묘한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좁은 지역에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차 있다. 중앙동을 통과하는 대로에서 산 위의 집들을 올려다보면 “잘도 저런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있구나”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학창시절 내가 살았던 지역은 동래였다. 부산에서 거의 유일하게 넓은 평지로 된 지역이다. 부산의 강남이라도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엄마와 싸우거나 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마음이 조금 울적해지면 동래를 벗어났다. 서면에서 52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산복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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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는 기묘한 길이다. 망양로(望洋路)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도로는 범천동에서 범일동, 수정동, 초량동을 거쳐서 중구 영주동까지 10km 넘게 이어진다. 산복은 산의 허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산복도로는 산 경사지를 주택지로 개발하면서 중턱에 빚어놓은 도로다. 나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무시무시하게 턴을 반복하는 버스 창밖으로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항구도시의 정경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건 신이 세상을 만들다가 “아이고 귀찮아 저기에는 그냥 알아서 집들을 던져놔버려”라고 외쳤을 법한 풍경이었다. 조화로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부조화가 나는 좋았다. 동래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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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가 건설된 것은 1964년 10월이다. 이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 살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피란민들에게 허락된 평지는 없었다. 그들은 산허리에 판잣집을 지었다. 그리고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급수 시설이 없어서 물을 파는 물장수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무자비한 생의 터전은 이제 부산시가 홍보하는 관광지가 됐다. 부산시는 기민한 관광정책으로 이 오래된 지역을 꿰뚫고 지나가는 산복도로를 관광지로 만들었다. 중간중간 버스에서 내리면 리우데자네이루를 연상시키는 부산의 구도심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수백 개의 계단 대신 고지대로 오를 수 있는 모노레일도 있다. 부산 토박이만이 아는 가장 부산다운 광경을 이제는 모두가 훔쳐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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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여 년간 부산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해운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백 층에 가까운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해운대는 한국에서 가장 층고가 높은 도시가 됐다. 모두가 해운대 지역으로 간다. 그것은 새로운 부산을 상징하는 스카이라인이다. 그러나 나에게 새로운 해운대는 낯설다. 학창 시절 우리에게 해운대는 그저 바다와 횟집만이 가득한, 그리고 카바레가 무성한 부산의 변방이었다. 거대한 자본이 들어온 해운대는 예전과 같은 찌릿한 맛이 없다. 해운대는 한국의 두바이가 됐다. 나는 부산의 변화가 못마땅하지는 않다. 변하는 건 변해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의 도시만을 부둥켜안은 채 추억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부산은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바로 그 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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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영도에 갔다. 무릇 강다니엘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 섬은 하나의 구다. 산허리까지 빽빽하게 작은 집들이 들어차 있다. 내가 부산 살던 시절 영도는 오로지 태종대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면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 지역이었다. 꽤나 낙후된 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영도는 변화를 겪고 있다.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곳곳에 힙한 카페와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덕이다. 구도심의 산복도로와 마찬가지로 영도 역시 서서히 관광지화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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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린이라는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카페에 앉아 부산항을 내려다봤다. 거대한 빌딩도 없고 해변도 없다. 삶의 흔적을 세월에 따라 차곡차곡 쌓은 집들과 다리, 거대한 컨테이너선들만이 가득하다. 나는 생각했다. 무릇 이것이 바로 부산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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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산복도로도 영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지 모른다. 사람은 변한다. 집은 변한다. 도시는 변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나는 지금도 산복도로를 탄다. 고향으로 내려가면 부모님 몰래 서면으로 가서 버스를 탄다. 그리고 학창시절 달렸던 그 도로를 버스와 함께 달린다. 내 권유로 억지로 함께 버스를 탔던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니는 볼 것도 별로 없구만 요는 말라꼬 오노?” 나는 교복을 입은 채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니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이해할끼다” 유치한 십 대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 역시 산복도로를 달리는 즐거움을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부산 사람이니까. 시답잖은 해답이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산 사람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kimdo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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