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여의도에서의 하룻밤

안녕, 여러분.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가까운 호텔에서의 꿀잠을 사랑하는 에디터H다. 모름지기 나처럼 총알이 빈약한 호캉스 마니아라면 부지런해야 한다. 심심할 때마다...
안녕, 여러분.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가까운 호텔에서의 꿀잠을 사랑하는 에디터H다. 모름지기 나처럼…

2019. 02. 11

안녕, 여러분.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가까운 호텔에서의 꿀잠을 사랑하는 에디터H다. 모름지기 나처럼 총알이 빈약한 호캉스 마니아라면 부지런해야 한다. 심심할 때마다 호텔 예약 앱을 들여다보는 살뜰함은 갖춰야 한다는 말씀. 사실 이번 설명절엔 얌전히 집에 있을 작정이었지만, 콘래드 서울의 특가가 뜬 게 아닌가. 때마침 연휴 안에 꼭 마감해야 하는 원고도 있으니 핑계는 모두 갖췄다. 집에선 공부가 잘 안되서 스타벅스에 간다는 레퍼토리가 조금 업그레이드되었을 뿐이다. 후레자식은 동그랑땡과 뒤집개를 뒤로하고 노트북을 챙겨 여의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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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특급 호텔은 대부분 정복했지만, 콘래드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콘래드는 힐튼 그룹의 최고급 호텔 브랜드로 창업자인 콘래드 니콜슨 힐튼(Conrad Nicholson Hilton)의 이름을 따왔다. 흔히 힐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파란 눈의 금발머리 패리스 힐튼은 그의 증손녀다. 힐튼 가문이 호텔의 경영에서 빠지게 된지는 오래지만, 벨보이로 시작해 호텔왕이 된 그의 증조 할아버지가 쌓은 막대한 부가 오늘날 까지 잘 먹고 잘 사는데 기여한 건 확실하다. 호텔 특가에 쾌재를 부르던 나의 마음이 공허해진다. 부러운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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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서울은 지난 2012년 겨울에 문을 열었다. 21번째로 지어지는 콘래드 호텔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전세계 20여개 밖에 없는 특급 호텔이 여의도에 들어선다는 것 만으로도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장 큰 매력은 여의도의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37층, 200m 높이의 아찔함이다. 애석하게도 높이 롯데월드타워 100층에 시그니엘 서울이 오픈하며, 서울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라는 타이틀을 내줘야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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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랐는데 명절은 원래 호텔가는 날인가. 사람이 너무 몰려 체크인에 30분이 걸렸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입실. 와, 그런데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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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그것도 여의도 땅에서 이렇게 넓은 객실을 만나게 되다니. 디럭스 룸이라 이런 널찍함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넓다. 서울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는 48m²의 쾌적함을 마음껏 누렸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도 좋지만, 이렇게 공간이 넓으면 확실히 활동이 시원스럽다. 여행이 아니라 캐리어나 큰 짐은 없었지만, 있었다해도 수납하기에 부족하지 않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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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소개에 나와있는 것처럼 비즈니스와 여가에 모두 걸맞은 장소다. 앞에서 언급한 핑계(!)처럼 글을 쓰러 온 일정이었기 때문에, 창가에 위치한 큼직한 테이블이 반갑다. 보통 호텔의 디럭스 객실엔 벽을 마주보는 작은 책상이 있는데 여긴 오피스 데스크만큼 본격적인 크기다. 일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반원형 테이블이라 객실 안쪽을 바라보며 앉아도 좋고, 의자를 옮겨 창문을 바라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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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한켠에 모든 콘센트가 완비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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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꾸밈이 상당히 스마트하다. 선반 형태로 진열된 미니바와 컵, 커피포트, 커피머신을 보자. 이리저리 서랍을 들쳐보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이 간결하게 한 눈에 보여서 좋다. 집기도 꽤 알차게 갖추고 있다. 에스프레소 잔과 커피잔, 와인잔, 두 종류 크기의 유리 컵이 모두 있으니 추가로 요청할 게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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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자리잡고 앉았다. 생각보다 한 눈 팔지 않고 진득하게 원고를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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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컨디션은 내가 가본 서울 시내 호텔 중 최고라고 평하고 싶다. 인테리어 자체는 인상적이지 않다. 우중충한 날씨와 노오란 조명 덕분에 사진도 형편없이 나왔기도 하지만. 실제로 머무를 때 느낀 럭셔리함에 비해 포토제닉하거나 아기자기한 공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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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교하자면 룸컨디션이나 금액 면에서 광화문의 포시즌스 서울과 비슷하겠다. 널찍한 공간감이나 머무르는 동안의 편리함, 식음료에 대한 만족감은 콘래드가 위였지만, 인테리어의 느낌이나 감성적인 면은 포시즌스가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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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매력은 없지만 확실히 럭셔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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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양옆의 독서등이 상당히 영리하다. 손쉽게 각도를 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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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도 넓은 편이다. 객실과 욕실이 유리로 뚫려있어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세면대 옆의 버튼을 누르면 유리가 불투명한 형태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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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니티는 평범하다. 처음보는 브랜드였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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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역시 좋은 호텔은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이 가장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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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보기 위해 HDMI 케이블을 요청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객실에 애플 TV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 TV 아래쪽 선반에 애플TV와 마우스, 키보드가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나는 너무 야무지게 써먹었지만, 사용법을 모르는 투숙객을 위해 좀 더 쉬운 안내가 필요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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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약했던 패키지에 포함된 행운 포춘백. 작은 콘래드 베어 인형과 경품권을 받았다. 돼지코를 긁었더니 배쓰 오일에 당첨되었더라. 아주 소소한 이벤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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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이 너무 건조해서 목감기에 걸리고 말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가습기를 따로 요청할 수 있다고.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와이파이는 여의도가 아니라 오지에 왔나 싶을 만큼 느렸다. IFC와 붙어있기 때문에 각종 편의시설에 접근성은 훌륭하지만 주차장을 함께 쓰기 때문에 그만큼 혼잡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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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공식 사진, 내가 꿈꾸는 뷰!!!]

IFC가 코에 닿을듯이 가깝게 보이는 건물 전망이라 아쉬웠다. 다음엔 전망이 좋은 방에 투숙하고 싶은데, 콘래드 바로 앞으로 공사중인 파크원 빌딩 때문에 한강뷰가 위협받고 있다더라. 어쩌지. 파크원에 페어몬트 호텔이 들어온다고 하니 거길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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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그닥 화창하지 않았고, 객실이 좋아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역시 호캉스의 꽃은 룸서비스. 저녁은 간단하게 시켜 먹었는데, 명절에 어울리는 갈비구이 정식으로 골랐다. 와,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반찬도 깔끔하고 푸짐하게 나오더라. 함께 주문한 맥앤치즈는 키즈메뉴였는데도 양이 너무 많아서 맥주 안주로 활약했다.

잘 나오기로 소문난 제스트의 조식도 흡족스러웠다. 아침잠을 설치며 먹으러 간 보람이 있었다. 이 밥먹으러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역시 손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밥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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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호텔에 투숙하면서 “아, 여긴 한 달 쯤 살아도 되겠다.” 싶은 곳이 있다. 콘래드가 그랬다. 널찍한 통로나 옷장도 그렇고, 오랜시간 머물러도 될 만큼 편안한 방이었다. 물론 내 방이 된다면 여기도 사정없이 더러워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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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콤한 하룻밤의 휴식에 재산을 탕진하고 다니는 에디터H의 리뷰였다. 스마트하고 럭셔리한 콘래드에서의 하룻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